영랑호 푸른 바람
예감도 없이 아버지가 죽었다
설밑이면 어김없이 불어오던 영북의 바람이
그날도
먼 데 사람들이 밤낚시를 하며 흘끗 자신의 운명을 훔
쳐보고 가곤 했던 짙푸른 호수
짙푸른 호수를 뒤집는 묵묵부답을 바라보는
입관 전의 장례식장에는
오지 않는 그의 처와
올 수 없는 그의 첩이
어쩌면 똑같이 화투 패를 섞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섣달 비에 손님이 오니
정월 송학이면 소식이 오리라)
그런,
예감도 없이 아버지가 죽었다
첩과 살던 아버지는 여름철의 별자리가 마당을 채 메
우기도 전에 누군가 버리고 간 아이를 길렀다―두 사람
에겐 선물 같았던 업둥이 여동생은 간질이었다
이 민물호수는 바다와 이마를 맞대고 있다
그믐의 낮과 밤 동안
낚시에 걸린 곤鯤의 비늘을 이어 식구들의 옷을 짓던
어머니와 누이들은
이 푸른 호수에
어떤 눈물을 보탠 것일까?
바람이 막고 나선 갈매기의 길
기억하니?
이 북항北港의 어판장에는 동전이 아니면 받지 않았던
모자란 일꾼이 살았다 판장에 사람들은 그에게 일값을
치르기 위해 매번 은행에 들러 동전을 바꿨지
아버지는 아침마다 구걸 온 거지들을 한 밥상에 앉히
곤 했다
누이는 그 이율배반에 치를 떨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가 갈아입을 속옷을 어린 누이에게 들려 여관방으로 심
부름 보냈다―어머나, 세상에! 열린 문틈으로 동산東山
이가 아버지 등 뒤에서 내다보고 있는 거야!
(어머니는 왜 그랬을까?)―여진족의 딸이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재수표를 떼고 있다
그때부터
누이의 삶은 아름답게 금이 간 걸까?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막 결혼식을
끝낸 북쪽의 신랑과 신부가
이쪽을 보며 웃고 있다)
그런,
예감도 없이 그가 죽던 날이었다
―그래도 너는 사랑받았잖이
간질의 누이동생이 큰누이 앞에서 울고 있다
괜찮은 걸까?
우리 모두
타지 않는 혀
함성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