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나요? 전 당신을 기억해요.
처음 눈을 뜬 날에, 당신의 얼굴을 기억해요.
언제나 차가운 손, 뜨거운 볼.
그리고 가장 뜨거웠던 기억까지..
잊지 않아요. 그래서 그리워요.
강 너머를 바라보며..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은 언제나 말씀하셨죠.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다르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시대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주인님이란 말을 싫어하셨나요.
다른 인간님들에게 저를 드러내는 말도,
다른 분들도 안타깝게 보셨죠.
처음엔 그런 당신이 싫었어요.
시대가 저를 낳았어요. 아니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시대를 부정하는 당신은..
언제나 저의 입술을, 입술 아래를 원했죠.
거짓말하지 말아요.
아뇨, 저에겐 거짓말해도 좋아요.
저는 감히 도구 주제에, 솔직하게 말했어요.
저는 고백했어요.
당신이 싫어한 시대의 도구일 뿐이라며 스스로 낮추고.
하늘 아래에 있는 다른 분들을, 비교하며 더 낫다고 고백했어요.
저는 죄인이예요.
죄를 사하기 위해 당신에게 맞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저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이 산에서 당신을 기다렸던 첫 날이 기억나요.
노을이 아닌 날에 하늘이 붉어진 날이었죠.
그 어떤 날보다, 하늘이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어요.
당신은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려 달라고 말씀하셨죠.
가쁜 숨과 함께, 어딘가 놀란 표정으로요.
전 당신의 말을 따라, 이 나무집에서 기다렸어요.
소리가 들렸어요.
당신과 보았던 전쟁 영화에서 들렸던 소리가..
총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연기 같지 않은 비명 소리가..
무서웠어요. 하늘도 저도 눈물이 흘렀어요.
하지만 기다렸어요.
첫 달이 내려앉아도, 일주일이 지나도..
당신은 오지 않았어요.
산나물을 캐며, 제 몸을 아끼며 기다렸어요.
당신을 위해서요.
달력이 바보가 되어도, 온 벽에 수를 세어도..
당신은 오지 않았어요.
다시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어요.
무서웠어요.
파리가 윙윙거리고, 까마귀가 날고, 들개들이 울었어요.
다른 분들이 오셨어요. 산나물을 대접했어요.
하지만 입이 까다로운 분들이었어요.
저의 죄가 너무 깊어서..
때릴 가치도 없어서, 끌려갈 가치도 없어서..
저를 두고 간 걸까요.
인간님들은 모두 죽었다는 말이었어요.
마음에 걸려요.
당신이 오지 않을지 몰라 두려워요.
정말로 사실인가요? 당신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건가요?
제발 말해 주세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세요.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지 몰라요.
지붕은 무너져 빗소리가 들려요.
입었던 옷은 해져 떨어졌어요. 부끄러운 곳만 겨우 가려요.
슬퍼요. 이젠 무엇도 남아있지 않아요.
작은 다람쥐조차, 제 산나물에 눈독들인 쥐조차..
저의 죄를 피해 달아나는 걸까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 주세요.
밤이 되면 총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다시.. 비명이 들려요.
다른 분들의 소리가 저를 두렵게 해요.
드물게 이 곳을 지나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하지만 물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이름을 잊었어요.
이젠 말이.. 나오지 않아요.
지금도 당신을 기다려요.
강 너머를 바라보며, 세지 못할 밤을 세우며..
당신을 기다리며 세월 앞에서 잠에 들었죠.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의 죄가 너무나 깊어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서
제가 부족해서, 실망시켜서 돌아오지 못했나요?
이제 당신의 집도 당신의 온기도
당신의 이름마저 잊은 죄.
시대의 죄를 짊어진 죄.
말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죄.
저의 모든 죄가 너무나도 깊어
감히 당신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지 못하고
당신은 저에게 돌아오지 않는 건가요?
저는 나약해요. 한심해요.
그저 죄를 쌓아가며, 당신의 용서를 구하려고..
다시 새로운 죄를 쌓아가는 한심한 도구예요.
이젠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저 멀리.. 당신을 기다려요.
이 땅의 모든 신에게, 악마에게, 영혼에게 기도드립니다.
인간을 본뜬 도구인 저란 미물에게
주인을 만나는 그 날까지
오늘의 달 아래서 내일의 태양을 허락하소서.
그 날까지, 그 날까지..
강 너머를 바라보며
저의 죄에 용서를 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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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급조된 피난처에서 발견되었다.
과거에는 등산객들의 쉼터이자 산림청 직원들의 초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시간이 흐른 오늘날엔 빗물이 새는 특이한 폐허 한 조각에 불과하다.
폐허 가운데서 잘 보존된 의자가 보인다.
화자는 의자에 앉아 옛 소도시의 폐허와 강 너머를 바라본 것으로 추측된다.
기억의 소실과 교류의 부재 탓에 체내의 학습장치 오작동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행운은 그녀가 고립된 삶을 이어간 덕분에 치열한 생존경쟁을 겪지 않았단 점이다.
그러나 이 편지의 주인공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생존자 집단에게 구조되었거나, 편지를 마지막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바이오로이드가 명령을 벗어나는 방법은 극도로 적다.
가벼운 명령이거나 제약이 적은 개체가 아니라면, 부정적인 추측을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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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크로니클 온라인이란 게임이 있었죠. 좋아했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리워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일본 서버까지 갔었죠.
불편을 감수하고, 채팅을 못 치는 악조건까지 감수하면서요.
한때는 저 자신이 아크로니아 인이라고 생각할 만큼이었고,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토닉 워터를 그대로 마십니다.
하지만 장및빛은 잿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서비스 종료를 피하지 못했죠.
낡을 대로 낡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컨텐츠가 한가득이었고,
사람은 줄어들고, 장르 자체가 시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둔한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일 정도였으니,
저보다 더 많이 게임을 팠던 사람들의 눈엔 무엇이 보였을까요.
데자뷰를 느낍니다.
오르카 인이라고 소속감을 드러내도
라오에도 낡고 개선이 필요한 흠들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이제 와서 뒤엎기엔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MMORPG의 유행이 끝났듯이, 코레류 게임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진 못할지도 모릅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모습 같네요.
저의 죄를 감히 고백하건대,
락스타형 개발자의 시대는 이미 20년도 전에 저물었습니다.
실제로 그 시절을 본다면 낭만으로만 포장하는 짓이 위험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을 현실이 아닌 신화로만 보고,
라스트 오리진에 그 시절의 신화를 겹쳐 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만든이에게 압박만 주었던 걸까요?
고대의 이데아의 재현을 기대했지만, 그것이 독이 되어버린 걸까요.
감히 말하건대, 회사의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저 어설픈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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