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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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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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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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46169
“오랜만이야, 장화야.”
사령관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엄밀히 따지자면 삼일 전 반쯤 미쳐버린 장화를 의료실로 직접 옮겼으니 조금 잘못된 인삿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만, 인사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장화와의 재회는 꽤나 오랜만이니 또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으리라.
“응, 오랜만…”
인사를 받으려던 장화가 돌연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 사령관과 홍련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흐릿한 풍경 속에서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코가 아리도록 풍겨왔던 짙은 피 내음.
“호, 혹시… 내가…”
혹여라도 그 피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더없이 두려운 마음이 솟아오른다. 장화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넌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았어.”
“다행이다…..”
장화의 눈동자가 불안함으로 정처없이 떨리는 것을 알아차린 사령관이 재빨리 덧붙였다. 그제서야 작게 미소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화.
“...일단, 구속 좀 풀어줄래?”
“그건…”
“안 돼. 절대로 안 돼.”
장화가 넌지시 묻자,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보던 닥터가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설령 사령관이 명령을 내리더라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다.
“장화 언니 온 몸에 상처가 몇 개나 있었는지 알아? 피는 또 얼마나 흘렸는지 알아? 수술하다가 기절한 언니들이 자그마치 두 명이야! 나는 그 꼴은 두 번 다시 못 봐! 절대로 안 풀어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닥터의 일갈에 장화가 내심 예상하고 있었던 듯 쓴웃음을 짓는다. 그 자리의 누구라 한들 닥터를 탓할 수는 없었으리라. 상처투성이가 된 동료의 모습이 달가운 이는 아무도 없을 터이니.
“역시 안 되는구나. 그럼 뭐, 됐어.”
장화가 예상 외로 순순히 물러선다. 다소의 소요를 예상했던 닥터는 장화의 미온한 태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령관, 그리고 홍련. 둘한테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두 사람만 빼고 다 나가줄 수 있을까?”
장화는 누운 채로 고개만 움직여 병실의 모든 사람들을 한 번씩 짧게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사령관과 홍련은 서로 시선을 한 번 맞춘 뒤 다른 사람들에게 눈빛으로 퇴실을 간청하였고, 이내 모두는 세 사람을 남겨두고 병실을 떠났다. [구속구 풀면 가만 안 둬!] 라고 말없이 전하는 닥터를 마지막으로, 병실 문은 굳게 닫혔다. 방 안에 남은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맴돈다.
“그래, 장화야. 이제 우리밖에 없어.”
“하고 싶다는 얘기가 뭐니?”
“...후우.”
사령관과 홍련이 장화의 양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물었다. 장화는 시선을 천장에 둔 채로 눈을 한 번 힘주어 감았다가, 긴 한숨과 함께 도로 떴다.
“우선은, 묻고 싶은 게 많지? 너희가 내게 궁금한 것들… 지금 전부 답해줄게.”
장화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지금이 아니면 대답 못해줄 테니까.”
들릴 듯 말 듯, 한 마디를 덧붙이며.
“묻고 싶은 게 뭐냐- 고 물을 필요도 없지. 뻔한 얘기니까.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상처입혔는지를 묻고 싶지?”
장화는 거기까지 말한 뒤, 생각하는 것조차 괴롭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고 호흡을 골랐다.
“나 말야. 오르카에 합류한 후 의식이 없는 동안 줄곧… 홍련을 죽이고 또 죽이는 꿈을 꿨어. 둘 다 알고 있지? 내가 이 세상이 멸망하기 전부터 계속, 계속 홍련과 몽구스 팀을 죽여왔다는 걸. 날 때부터 주입받은 맹목적인 증오를 연료삼아, ‘여제’님과 가족이 되고 싶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담담한 어투를 흉내내지만, 그 목소리는 숨길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잠에 들면, 내가 홍련을 죽였던 모든 광경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반복돼. 마지막 홍련이 죽으면 다시 첫 번째 홍련이, 그리고 또 처음부터 다시.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광경을 쭉 보고 있었어.
그런데 잠에서 깨면, 오르카의 홍련을 보게 되지. 지금처럼 말야. 내가 죽이지 않아도 되는. 나와 기꺼이 가족이 되어 줄.”
장화와 홍련의 눈이 잠시 마주친다. 하지만 장화는 그 잠깐의 눈맞춤이 되려 괴로웠는지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참 우습지. 과거의 그 수많은 홍련들도,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모두 나와 가족이 되어 주었을 텐데. 가족이라는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면서, 정작 정말로 가족이 되어 줄 이들을 전부 내 손으로 죽여 버렸어.”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동시에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이 눈물을 글썽이는 장화.
“그게… 그저 너무 괴로웠어. 내가 죽인 그 많은 홍련들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말을 먼저 걸어봤다면, 손을 내밀어 봤다면… 나는 진정으로 ‘가족’이라는 존재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 한걸음을 내딛지 못해 모든 걸 다 망쳐 버렸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견딜 수가 없더라.”
애처롭게 떨리는 장화의 눈꺼풀은 차오르던 눈물을 그리 오래 잡아두지 못했다. 굵은 눈물 방울이 눈꼬리를 타고 주륵 흘러내린다.
“장화야….”
“....”
홍련도, 사령관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설프게 위로하려 들었다간 자칫 그녀에게 더욱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또 다른 내가 나타나더라. 나만 볼 수 있는.”
장화가 병실의 구석을 바라본다. 좀 더 정확하게는, 메스가 꽂힌 고통에 익숙해짐에 따라 조금씩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본다.
“또 다른 나는 항상 내게 말해. 그딴 짓을 저지른 주제에 행복해지려고 하냐고. 너 같은 건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붉은 머리칼, 보라 눈동자.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죽여야 할 증오스러운 년. …그게 바로 나라고.”
[잘 알고 있네.]
또 다른 장화가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답한다. 장화는 더 이상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사실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너무도 잘.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부정했을 뿐.”
[오오? 웬일로 순순히 인정하네.]
“그래서였겠지. 내가 받는 고통이, 흘리는 피가, 이 미칠듯한 괴로움을 잊게 해준 건.
그 거지같은 악몽도, 끊임없이 괴롭혀대는 또 다른 나도, 내 몸에 상처를 내면 감쪽같이 사라졌거든.
아마도… 스스로를 상처내는 것으로 죄를 조금 덜어냈다고 생각했던 걸거야. 나는.”
장화가 조금 후련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하고 꽁꽁 싸매 감추던 상처를 드러낸 것에 대한 해방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내가 흘리게 한 피가 얼마인데.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어.”
“장화야. 그 말은…”
사령관이 다소 불안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지만, 장화는 그의 말을 끊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있지, 사령관.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안돼. 절대로 안 돼.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돼! 제발 부탁이니 그 이상 말하지 ㅁ…!”
사령관이 엎드려 빌듯이 간청한다. 장화가 어떤 말을 할지 직감하고 만 탓이었다.
“날… 죽여 줄래? 직접 죽이는 게 어려우면 죽으라는 명령을 해도 좋아.”
“장화야, 무슨…!”
허나 무정하게도, 장화는 그 마음에 담은 말을 입 밖으로 뱉어내고 말았다. 홍련이 질겁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거야?”
“죽고 싶지 않으니까.”
사령관이 어렵게 꺼낸 물음에, 장화는 알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영문을 모르겠어.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나는 더럽게 뻔뻔하고 이기적인 년이니까, 그딴 짓을 하고서도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년이니까.
나 하나 죽으면 다 해결될 문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아 추하게 발버둥칠 년이니까.
그리고 또, 그렇게 발버둥치며 또 수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힐 테니까. 나 스스로마저도 숱한 상처를 입고 그저 괴로워할 뿐이겠지.”
장화가 웃으며 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죽여 달라는 거야. 난 절대 스스로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
한동안, 그 자리의 누구도 말이 없었다. 장화에게만 보이는 또 다른 자신을 제외하고는.
[드디어 올바른 선택을 하는구나? 그래. 너 같은 년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어. 행복해질 자격도 없고, 내일을 꿈꾸는 것조차도 네겐 과분한 사치라고. 살아서 민폐나 끼칠 바에 그냥 죽어 사라지는게 백 배는 나아. 아- 이것 참 아쉽네. 나한테 실체만 있었어도 직접 죽여주는 건데.]
장화는 살아남기를, 발버둥치기를, 행복해지기를 포기하니 놀랍도록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서 끊임없이 떠드는 또 다른 자신의 독설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만큼.
단지 그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장화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어차피 곧 죽게 될 텐데, 한두 마디를 더 해 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난, 나는…”
사령관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의 눈동자만이 애처롭게 떨려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장화에게 손을 내밀어 돕겠다고 결심하였지만, 정작 그녀가 스스로 죽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되려 장화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령관은 자문해 보았으나, 답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크, 아으으윽!”
[넌 어떤 식으로 죽게 될까? 기왕이면 가장 고통스러운…]
사령관은 이를 악문 뒤 손을 뻗어 장화의 팔에 꽂힌 메스를 집은 뒤 살짝 비틀었다. 살갗이 억지로 비틀려 열리는 고통에 장화가 비명을 지르고, 그와 동시에 귓가에서 끝없이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또 다른 장화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령관 님, 무슨…!”
홍련이 사령관을 제지하려다 그의 눈빛을 보고 손을 거둔다. 그가 허투루 이런 짓을 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 속에 새기며, 한걸음 물러나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장화야.”
사령관은 장화의 눈가를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진짜 소망을 말해줄래? 부탁이야.”
“난, 죽고 싶어. 더 이상 아무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장화는 조금 전 한 말을 재차 반복한다.
“그게 아니라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말해줘.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부탁해.”
“난… 죽고… 싶…”
장화가 눈을 힘주어 감았다. 의지를 다지기 위한 의식적인 움직임이었으나, 되려 눈꺼풀 안에 차 있던 눈물이 더욱 세차게 흘러나오게 만들 뿐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볼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눈물의 감각이, 장화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마음을 끄집어냈다.
“싫어…. 싫어, 역시 죽는 건 싫어….”
가느다란 한 줄기의 물이 둑을 터뜨리듯, 한 번 흘러나온 본심은 더욱 격렬한 감정으로 화(化)했고…
“이제야 겨우 가족이란 걸 가질 수 있게 됐는데… 행복이 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은데….
나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별 거 아닌 행복에 웃고 싶어…!”
장화는 아이처럼 흐느끼며, 일평생 바라오던, 소박하기 그지없는 소망을 그 입에 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되잖아. 그 모든 짓을 저지르고,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거잖아…. 나 같이 나쁜 년은, 죽어버리는 게, 죗값을 치르는 게 맞는 거잖아….”
장화가 눈을 떠 사령관과 홍련을 바라본다. 눈물로 가득 차 일렁이는 그 보라색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빛을 잃을 것처럼 미약하고 또 위태로웠다.
“네가 저지른 모든 죄는, 모두 인간의 명령 때문에 생겨났지.”
“아, 아아아악!”
사령관은 이를 악문 뒤 다시금 장화의 팔에 박힌 메스를 쥐고 비틀었다. 고통 어린 장화의 비명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짐에, 사령관 역시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싶을 만큼 괴로워진다. 허나 그는 그저 견딘다. 눈앞의 이 가녀린 여자아이를 위해.
“그러니 그것을 거두는 것 역시 인간이어야 맞는거야. 그렇지? 이 시대에 살아있는 유일한 인간은 나니까, 네게 벌을 내리는 것은 나여야만 해.”
“하, 하아… 흐읏…!”
장화가 고통을 갈무리하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던 탓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사령관은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던진 화두가 아니었으니.
“그래. 네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무거워. 쉽게 속죄할 수 없지. 지금 네가 느낀 고통따위, 과거 수많은 홍련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한 줌 모래만도 못해.”
“아악, 아아아아! 흐아악!!”
형편없이 떨려오는 반대쪽 손을 억지로 꽉 쥐어 숨기며, 사령관은 다시금 손에 힘을 주어 메스를 비튼다. 그리고 동시에 단호한 목소리로 고한다.
“그러니 그 모든 죗값을 치르기 전에, 뻔뻔스럽게 멋대로 죽어 편해지려 하지 마. 수십 년이 걸리든, 수백 년이 걸리든, 내가 내리는 모든 벌을 견디며 죗값을 치러. 제가 죽을지 말지 정하는 것은 그 다음이야.”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아집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살린다는 핑계를 대며 되려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내세우고 어울리지도 않는 연기를 한 뒤에 남는 것은 숱한 상처뿐일지도 모른다.
“아침, 눈을 뜬 직후. 그리고 밤, 잠들기 직전. 난 그렇게 매일 두 번씩 올거야.”
하지만 이렇게 얻어낸 유예 속에서, 장화가 행복을 향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리라. 기쁘게 오명을 뒤집어쓰리라.
“오늘 아침의 몫은 방금으로 끝났어. 밤이 되면 돌아와서 ‘벌’을 마저 주도록 할게.”
메스를 짐짓 거칠게 잡아 뽑으며, 사령관이 몸을 일으킨다. 몸을 돌려 병실의 문을 여니 문에 귀를 대고 있던 닥터가 부리나케 달려와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 자신을 용서해라. 원망할 것이라면 오로지 나만을 원망해라.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해봐라….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았지만, 사령관은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병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 모든 행위는 어디까지나 ‘벌’이어야 했으니까.
“우욱…!”
장화의 병실 문이 닫힌 즉시, 사령관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져 토사물을 쏟아냈다. 자신의 손으로 장화를 상처입혔다는 사실이 너무도 혐오스러워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은 손 한 구석에는 장화의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사령관 님. 여기….”
홍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수건을 건넨다. 사령관은 눈물 어린 눈을 하고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그런 사령관을 바라보는 홍련 역시,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은 사람….’
홍련은 눈물을 겨우 참으며 애써 웃음지어보인다. 여기서 슬픈 기색을 내보였다간, 눈앞의 남자 역시 울음을 터뜨리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했으니까.
‘어울리지도 않는 거친 어투까지 써가며 장화를 압박한 것도, 직접 그 아이를 아프게 한 것도….’
장화의 죄책감을 대신 짊어지기 위함이겠지. 바로 곁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홍련은 알 수 있었다.
구태여 매일 아침 저녁마다 ‘벌’을 주겠다고 한 것 역시, 장화가 깨어 있는 동안 또 다른 자신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자는 동안 악몽을 꾸지 않도록 하기 위함.
그 잠깐의 ‘벌’을 주고서 이렇게나 힘들어 하는 주제에 구태여 강한 모습을 꾸며낸 것도, 전하고픈 따스한 한마디를 힘껏 참아낸 것도, 그 손에 직접 피를 묻힌 것 까지도. 모두 장화의 마음을 돌릴 시간을 벌기 위함.
바로 조금 전의 잔혹한 광경, 그 이면에는 사실 따스한 자애의 마음이 가득했음을 새삼 깨달으며, 홍련은 사령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나… 잘한 걸까? 이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 걸까?”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사령관이 묻는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요. 신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홍련은 미약하게 떨려오는 사령관의 손을 감싸쥐고 답했다.
“하지만… 머잖아 장화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땅한 근거 하나 없는, 순전한 제 직감이지만요.”
그리고 그의 눈동자를 올곧게 바라보며 덧붙인다.
“그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언제까지나 줄곧 당신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미력하나마 당신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사령관의 떨림이 잦아든다. 그의 울음소리 역시.
“그래요. 당신 역시 진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언제까지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눈에서 눈으로 전해지는 마음이, 수많은 감정을 실어나른다.
“...응. 고마워.”
그렇기에, 사령관은 그 짧은 한 마디만을 되돌려 주었다. 목소리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마음이, 감정이, 의지가, 이미 전해졌으니까.
“이만 갈까. 저녁까지 업무 끝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한결 편해진 장화의 숨소리를 뒤로 하고, 사령관과 홍련은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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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사령관 저색기 싸이코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드신 분들을 위한 부가설명:
장화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죽으려고 함 > 죄책감을 덜어주려면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함 > 그렇다고 셀프로 하라고 하면 또 피칠갑돼서 집중치료 받아야 됨 > 안전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비교적 해가 덜 되는 방식으로 죄책감을 덜어줌 > 자해 욕구 감소해서 시간 벌 수 있음 + 스스로에 대한 원망을 사령관에게 조금 돌릴 수 있음 > 이 상태에서 어떻게든 으쌰으쌰해서 회복시키자!
하는 논리의 흐름으로 저런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는거 다 억지논리고 말도 안 되죠. 순전히 장화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밀어붙인 겁니다.
쓰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참 많았어요. 원래 의도했던 방향에서 좀 멀어졌거든요.
원래는 사령관이 장화랑 공의존+쌍방집착하는 불쾌한 질척임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전편까지의 흐름하고 안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제 멘탈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ㅎㅎ… 살짝 유기하는 느낌으로 그냥 올려버리기~~~~
아무래도 전 후회집착피폐랑 안 맞는 것 같네요. 이거 에필로그 한 편 더 써야 되는데 어떡하지… 큰일났습니다.
장화… 애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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