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 주의
**잔혹한 표현 있음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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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님. 홍련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홍련의 메시지를 읽은 사령관은 그녀에게 즉각 집무실로 오라 일렀다.
“실은, 장화가….”
홍련은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고는 사령관에게 최근 장화에게 있었던 일들을 조심스레 보고했다. 몇날 며칠을 두문불출하며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 식당에서 식료품을 몰래 챙겨가려 했던 것. 얼핏 봐도 눈가가 퀭하고 피부가 푸석푸석한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
“장화는 원래 종종 그러지 않았던가?”
사령관은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의 초췌한 안색을 보고서, 홍련은 그에게 괜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조금 심상치 않아요.”
장화의 방문 앞에 둔 식료가 며칠째 그대로인 것, 방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문틈 사이로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고 망설임을 거두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문제가 있는 거겠지. 같이 가보자.”
사령관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무의식적으로 목을 어루만졌다. 일전에 장화가 반쯤 미쳐서는 그어버린 곳이었다. 사령관은 그 때를 떠올리고서 무심코 몸을 떨고 만다.
“장화 상태가 점점 나아진다고 보고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혹시 짐작가는 원인이 있어?”
사령관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리리스를 호출했다. 리리스가 무장을 챙겨 집무실에 도달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홍련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령관.
“원인은… 저도 짐작 가는 바가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형식상 물어보기는 했지만, 에상했던 바다. 막막한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내쉬어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주저앉아 있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령관은 리리스가 도착한 즉시 장화의 방으로 향했다.
“주인님, 괜찮으시겠어요? 장화 양에게 떨어진 접근 금지 명령은 아직 유효해요. 주인님이 장화 양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는 금지되지 않았지만, 혹여라도….”
이동 중에, 리리스가 사령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제 주인이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경호원의 충성스러운 간언(諫言)에,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답한다.
“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설령 무슨 일이 생긴다 한들, 주인님께 실오라기 한 가닥만큼의 생채기조차 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리리스가 머리를 살짝 숙이며 굳은 결의를 드러내 보였다. 그 대화를 끝으로, 세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
침묵 속에서 사령관이 입술을 짓씹는다. 방금의 그 대답을 내뱉고 나서야, 그 안에 [장화가 날 다시 공격할 수도 있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장화를 신뢰하고 있다면, [난 장화를 믿어.] 내지는 [네가 나설 일은 없을 거야.] 따위의 대답을 했을 터이다.
“....”
“....”
사령관의 곁을 지키는 홍련과 리리스 역시 그 속뜻을 알아차렸으나, 둘은 제 주인을 배려해 침묵을 지켰다. 리리스가 기계적으로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복도 벽에 반향(反響)하며 유난히 크게 울려퍼진다.
“윽.”
장화의 방문 앞에 당도한 사령관이 외마디 신음과 함께 콧잔등을 찡그렸다. 닫힌 문틈 사이로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악취가 새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가에 놓인, 홍련이 가져다 두었을 터인 식료들을 조심스레 옆으로 밀어내고, 두 번 노크한다.
“장화야, 나야. 사령관이야. 들어가도 될까?”
대답은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힘을 주어 문을 두 번 두드린다.
“장화야? 안에 있으면 대답 좀 해볼래? 들어가도 될까?”
목소리도 조금 더 키워 봤지만, 마찬가지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귀를 기울여 본다.
“흐, 히힛….”
숨죽여 키득이는 소리.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
-콰드득.
섬뜩한 파육음(破肉音).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문고리를 돌려 보지만, 굳게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리리스.”
“네, 주인님. 잠시만 뒤로 물러나 주세요.”
사령관이 리리스에게 눈짓하자, 리리스가 문 앞으로 가서는 자세를 잡는다.
“흡!”
리리스는 문고리를 부수어 잡아 뺀 뒤, 힘주어 문을 밀어 열었다. 문 앞에 쌓인 이런저런 가구들이 리리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내며 문과 함께 딸려 밀려간다.
“우웁…!”
문이 열리자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겨운 냄새가 훅 풍겨온다.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코를 막고 한 걸음씩 물러섰다.
“흐, 히. 후히히.”
-콰드득.
그리고 보고 말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손에 든 뾰족한 무언가를 연신 자신의 몸에 박아대는 형체를. 그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검게 굳어 바스라지고 있는 것을.
“장화…니?”
사령관이 떨려오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묻는다. 그 애처로운 물음 속에는, 저 형체가 제발 장화가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지만….
“아, 사령관…. 홍련도 왔네.”
되돌아온 것은 장화 특유의 여리디 여린 목소리였다. 홍련은 제 자매가 이리도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쓰러질 뻔 하였으나, 겨우 정신을 다잡고 버텨냈다.
“이거 굉장해. 이렇게 상처를 내고서 잠들면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을 수 있어! 나한테 끝없이 말 거는 미친 년도 없고, 온종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고!”
장화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그리 말했다. 사령관과 홍련, 리리스는 두서 없이 시작된 장화의 말에 굳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은 피범벅인 채로 짓는 미소가 저리도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자, 봐. 간단해. 아무거나 날카로운 걸로, 이렇게…!”
세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장화가 허벅지에 박힌 유리조각을 뽑아낸 뒤 높이 치켜들었다.
“장화야, 안 돼!”
먼저 움직인 것은 사령관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리리스와 홍련도 움직였다.
리리스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손에 들린 유리조각을 쏘아 산산이 부쉈다. 사령관과 홍련은 한달음에 달려가 장화의 손목을 붙들었다. 두 사람은 장화의 살갗이 깜짝 놀랄 만큼 차갑고 창백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전율했다.
“헤, 흐헤….”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장화가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맑은 눈물은 검게 굳은 핏자국을 녹이며 흘러내리다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화의 의식은 끊어졌다.
“리리스! 의료 팀에 연락해! 긴급 환자가 있다고!”
사령관은 망설임 없이 장화를 안아들고 방을 뛰쳐나갔다. 핏자국이며 토사물 따위가 사령관의 몸을 더럽혔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
“장화… 장화가…!”
세 사람은 오르카 의료팀에 의식 없는 장화를 맡기고, 굳게 닫힌 수술실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인님. 우선은 돌아가셔서 씻고 조금 쉬시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리리스. 그녀의 최우선 가치는 사령관의 안위였기에, 조심스레 돌아가기를 권하였다.
“...그래. 홍련, 너도….”
“저는 여기 있을게요. 장화가 깨어날 때까지.”
사령관은 홍련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두 번 말해봐야 그녀가 뜻을 굽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리리스. 너도 좀 쉬어.”
침실에 도착한 후, 사령관은 리리스에게 간단히 작별을 고했다. 리리스는 너무도 위태로워 보이는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곁에 머물러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뜻을 존중해 물러나기로 하였다. 사령관은 리리스가 고개를 짧게 숙이고 뒤돌아 사라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 침실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으흑…!”
허나 리리스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알아차리고 말았을 것이다.
사령관이 자신의 옷에 묻은 장화의 핏자국을 보고서 남몰래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을, 혹여 누가 들을까 염려되어 욕실의 물소리로 그 소리를 감췄다는 것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모두 수돗물에 녹여 배수구 너머로 흘려넘겨 버렸다는 것을.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르카의 사령관, 그녀의 주인은, 바보같을 정도로 미련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들까지도 떠안아 고뇌할 만큼 요령이 없는 남자였으니까. 그런 그였기에, 이렇게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일 테지만….
“후우….”
역시나 걱정이 앞선다. 그 상냥함이 화근이 되어, 주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화를 입게 되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리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무장을 정비했다.
자신의 주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온몸을 바쳐 그에게 헌신할 뿐이다. 리리스는 그렇게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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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2화 안에 끝날 것 같습니다. 원래는 마지막화에 성행위 묘사를 넣어서 라오19게에 올리려고 했는데, 그런 분위기로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네요. 전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건전하게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그냥 본편과 이어지지 않는 1화짜리 떡씬을 따로 쓸 예정입니다.
숨막힐만큼 찝찝한 이 분위기는… 완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리 말씀드렸듯이 구원은 구원이지만 찜찜한 구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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