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거의 눈팅만 하는 회원입니다. 이번에 출판사 차려서 처음으로 만화책 세트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한참 전부터...2015년에 오사카에 갔다가, 관광할 것도 없는 허름한 상점가에 어떨결에 진입하고,
<시카쿠シカク>라고 적힌 정말 조그만 독립서점을 발견했었어요.
지금은 이전한 모양인데, 관련 기사에 옛날 사진이 있네요.
https://www.itmedia.co.jp/ebook/articles/1501/17/news006.html
도쿄에 있는 나카노 브로드웨이에도 제가 좋아하는 독립서점 타코셰가 있는데, 여기도 크기는 작지만 타코셰처럼 뭔가 상품이 눈에 들어오게 배치되어 있고, 볼만한 게 많더라고요. 거기서 처음으로 후쿠시 치히로(福士千裕)의 만화책 2권을 만났습니다.
독립만화가 후쿠시 치히로
후쿠시 치히로(福士千裕)는 코미티아(COMITIA)같은 동인행사나 독립서점에 책을 유통하는 (오리지널 창작)동인 작가입니다. 만화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형 출판사 만화보다는 덜 정형화 되어 있지만, 개인이 제작의 거의 모든 걸 통제해 나오는 만화책이라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많더라고요.
책은 잡기 편한 포켓북 사이즈 책으로, 펼쳐보니 그림이 언뜻 보면 어린 시절 그리던 낙서처럼 뭔가 데포르메가 심한(?) 정형화가 덜 된 그림처럼 보였어요. 근데 왠지 휙 덮게 되진 않고, 페이지를 몇 장 넘기다보니 실은 엄청 섬세하고 디테일한 느낌이 들었어요. 아, 일부러 아이처럼 그리고 있구나. 만화가 최성민 님 표현 빌자면, '그리운데 낯설다'고 할까요?
저는 일본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책은 일단 사온 후, 한국에서 이래저래 정신없이 일하다가, 좀 지나서야 내용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내용이 독특하더라고요. 일본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실험적인 구석이 있는데, 딱딱한 게 아니라 반갑고 더 알고 싶고 그런...당시 두 권의 만화책 『천년과 천엔(せんねんとせんえん)』(2012),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2014)의 구입을 시작으로, 작가를 알리고픈 마음에 후쿠시 치히로의 팝업 개인전(피아☆방과후, 2016)을 서울에서 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작년 가을 출판사 '살라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 출판사를 차렸냐면, 한국어판을 출간하기로 했거든요. 덕질의 끝이 사업이라더니...
망원역 인근에 차린 저희 사무실 모습입니다. 둘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름 공간 계획도 짜 보고(책상에 선반 뿐인데도 ㅋㅋㅋ)
공사 마치기 전 사진이라 엉망이네요. 취미용 3D 프린터도 있고, 플로터도 한 대 있고, 나름 쾌적한 곳입니다.
아래는 예전에 했던 후쿠시 치히로의 초소형 개인전 사진입니다. 유머러스한 전시에요.
한국 외대 앞 맥도날드 2층에서 열린 초소형 개인전입니다. 나름 서문을 작성해 오프닝 날 찾아온 관객들과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맥도날드에서 열린 이 개인전은 매장관리에 의해 금방 철거되었습니다. 다만, 개인전 사진과 글이 홈페이지와 SNS에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일본은 상업 만화 시장이 크고, 서점에서 수많은 만화가 경쟁하는 만큼, 역으로 독립서점이나 동인 시장엔 해당 시장에서 다루기 어려운 흥미로운 시도도 많이 있더라고요. 실력이 충분해도 작품 성향에 맞춰 독립만화가로 활동하는 경우인 거 같아요. 에이전시를 끼지 않은 독립만화가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는 일은 거의 말이 안되고, 대부분 네이버 블로그 같은데서 서이로 불법 번역 유통되는 모양인 거 같습니다. 일본에선 상업만화 씬이 크니 독특한 시도가 자리잡긴 어렵고, 한국에서 출판하기에도 출판사 입맛에 딱 맞아주질 않고.
여기에선 메이저한 만화들과 같이 유통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생각해보다가, 한국 만화시장은 또 다른 시장이니까, 예를들면 여긴 유명한 만화가여도 500부 겨우 파는 일이 허다한 곳 이잖아요. 어차피 작은 시장이니 작품별로 판매 부수 차이가 아주 크게 나진 않을 거고, 내가 좋아하는 이 책을 디자인을 다르게 해서, 일반 만화책처럼 유통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직접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 하고, 계약을 진행하고, 텀블벅 모금을 진행하고, 현재 9일 남은 상태에서 92%니, 무리 없이 8월 출간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만화책을 사면서 요즘 느낀 불만이 있었는데, 대체로 책을 사면 제작비를 아끼려고 그럴테지만, 손으로 그린 효과음이나 대사를 구글 번역기의 카메라 번역 기능으로 보는 것처럼 정말 대충...폰트를 휘어서 해결하더라고요. 그러니 원서랑 동일하다는 게 정말 말이 안되지만 비교하게 되고, 가끔은 불법 번역물이 더 좋은 퀄리티로 식질하는 모습도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제작하는 후쿠시 치히로의 한국어판 만화책은, 여러 미술가, 디자이너 님들과 함께 효과음을 직접 그리고, 세로쓰기 말풍선을 변형하며 지워진 그림도 재작업 해가며 공들여 만들고 있습니다. 좋은 만화책 만들어서 제 만화책용 책장에 꽂을 생각하니 절로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장사를 하는 건지 동인활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작업 중인 페이지 스프레드. 효과음 보세요!
작가는 2012년부터 만화책을 발간했고, 이번에 출간하는 것은 현재까지 만든 6권입니다. 각 권 68~106페이지 남짓, 편안하게 손에 잡히는 얇은 책이 될 예정이에요. 아래는 목업 이미지 입니다.
목업이 왜 맨날 더 좋아보이는 거죠
책의 제작에는 『실종일기』, 『데빌맨』, 『Sunny』, 『파레포리』, 『전염됩니다』, 등을 번역한 오주원 번역가,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강문식 그래픽 디자이너, 미술가 김정태, 김혜원, 최고은, 디자이너 박보희, 그리고 어시스턴트로 김보영, 김소윤 님 등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주원 번역가 님이 예전에 하시던 블로그 덕에 일본의 다양한 만화 세계를 엿볼 수 있었고, 이렇게 출판사를 차리는 날까지 오네요.
플레이스테이션 1 시절의 감성
책에 자꾸 공을 들이는 데엔 이 책이 전하는 감성이 제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90~00년대 플레이스테이션 1의 RPG게임이나, 00년대 온라인 MMORPG 감성을 닮았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최근 플레이 하는 게임은 «여길 파라! 푸카(ここ掘れ!プッカ)»라는 플레이스테이션1 시절 게임입니다. ‘푸카’라는 쥐 캐릭터를 통해서 우주의 여러 행성으로 흩어진 우주석이라는 광석을 채굴하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어릴 때(90년대 후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과 게임보이를 하고 자랐어요. 게임 속 세계도 영원히 이어지지 않고, 작고 큰 모형의 정원 안에서 롤플레잉을 하죠. 그런 경험을 제공해주거나 보이지 않는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세계 자체의 변두리를 연상시키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그건 시스템 구조나 세계관 등 다양할 텐데요. 마음이 설레는 이미지는 모두가 다 공통으로 갖고 있지 않을까요. 또한 저는 캐릭터와 물건/오브젝트의 좋은 디테일에 매료되는 편이에요. 그중 어떤 하나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출처가 너무 많아요. 조촐하게 물건을 모으고 육성하고 캐릭터를 레벨 업하는 등 게임의 수수한 점을 좋아해요. -후쿠시 치히로와의 인터뷰 중
후쿠시 치히로의 책을 처음 읽을 때 당황했던 건, 매 페이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부분입니다. 마치 온라인 게임 서버의 게임 운영자(GM)가 되어 세계의 이곳저곳을 틈틈이 마우스로 클릭해 관찰하듯, 이야기라기보단 세계 속의 다양한 캐릭터의 활동이 그냥 펼쳐지는 식이에요. 근데 또 내용이 없다기보단, 시집처럼 그냥 쭉 보다 보면 책의 끝에서 한 책을 관통하는 어떤 정서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판타지 게임 속이고, 때로 작가가 방문한 도쿄의 근교가 등장하기도 해요. 도쿄 인근의 해수욕장이라든가. 어딘가 90년대 게임이나 만화,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사물들. 이런저런 탐험, 놀이, 대화를 매 페이지 넘기다 보면, 때론 아이 같은 그림의 디테일에 놀라기도 하고, 대도시에서 파트타이머이자 개인, 여성이자, 만화가로 살아가는 후쿠시 치히로의 일상의 파편이 스며들어 오기도 합니다.
만화책이 보여주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닮았는데요, 성장을 위해 설계되어 있지만, 성장은 제한적이고 그 주변적 플레이에 마음이 가는 세계랄까요.
떠들썩한 놀이와 탐험 속에 흘려보낸 여러 감정
어서 출간해서 책장에 꽂힌 모습 보여드리고 싶네요. 짧은 책 한 권을 마칠 즈음 전해지는 작은 에너지와 감동, 저만 즐기기 아쉬워 출판합니다.
재밌는 리워드가 있으니 관심 가신다면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 체크 부탁드리고, 아니어도 (온/오프)서점에서 만나게 되면 한번 들여 보아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텀블벅 페이지는 여기로
『후쿠시 치히로 만화, 챕터 1~6』 번역 출판만화
판형: 120x180 mm
분량: 각 68~106쪽 내외
형태: 무선제본 외 기타 옵션
번역: 오주원
북디자인: 강문식
편집 진행: 김보영, 김소윤, 김정태, 박보희, 최고은
책임 편집: 강정석, 이수경
도움: 콘노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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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ㅋㅋ 감사합니다 :) 건승하세요-! | 20.07.29 19: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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