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저는 게임의 텍스트 구조는 선형식 보단 비선형식을 좋아합니다(물론 대사 하나하나를 자신의 생각 그대로 표현하는 TRPG나 온라인 게임에 비할 때 제한된 선택권을 갖는 CRPG 게임들을 두고 비선형식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다소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형화된 일본식 RPG보단 북미 RPG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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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식으로 되어있다. 우체통, 전기 청소기, 동물원, 소스 통.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쥐 덫.’ -무라카미 하루키-1973년의 핀볼 중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게임에서 오프닝이 있으면 엔딩이 있기 마련이고, 자잘한 퀘스트 조차도 의뢰를 받았으면 성공과 실패라는 끝이 있다.
끝이 있음으로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끝이 있음으로 과정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끝이 없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게임과 같이 계정 아이디의 삭제나 서버가 문을 닫아버리기 전까지는 끝없이 계속되는 게임이 있으며, 나카무라 씨의 ‘이상한 던전’ 시리즈와 같이 엔딩 후의 끝없는 반복 플레이가 목적인 게임도 있기 마련이다.
끝이 없음으로 도전 할 수 있는 것이며, 끝이 없음으로 과정을 즐겨 볼 수 있는 것이다.
[소감] 입구와 출구 사이에 설치된 쥐 덫, 페이블
작성자: 바토리여백작
페이블의 스토리는 단순하고 유치하며 재미가 없다.
그래서 어른들의 동화라는 말들이 있지만, 동화라고 재미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어쨌든 처음 시작시의 황당할 정도로 단순하고 유치한 ‘소년의 꿈’이 바로 페이블이 말하려는 모든 것이며, 꿈을 향해 나아가기까지 플레이어가 할 일이란 단지 제작진이 준비해둔 스토리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방법 또한 제작진이 준비해둔 방법으로 따라다녀야 한다.
A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B와 C, D등과 같이 수많은 방법론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페이블의 경우는 오로지 B만 선택해야 한다는 말.
쉽게 말해 주로 정형화된 일본식 RPG게임들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인 ‘일직선 진행’이, 발매전 그렇게나 ‘자유도’를 언급하며 떠들어대던 페이블에서는 오히려 여타 일본식 RPG 보다 더욱 단순해졌다고 할까.
게다가 일직선 진행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조차 페이블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니...
사실 RPG게임의 스토리야 일본이든 북미든 간에 대부분 유치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있지만, 플레이어의 선택권마저 제한되었다는 것에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더구나 페이블은 발매전부터 ‘무한한 자유도’에 대한 꿈을 심어놓았던 터라 더욱 충격이 컸으며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
하지만 필자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발더스 게이트’의 경우에도 메인 스토리의 일자 진행(나름대로 분기를 주었다곤 하지만)은 어쩔수 없는 것이기에 그나마 플레이어의 선택권이 강하게 주어지는 ‘서브 퀘스트’들에 기대를 걸기로 하였으며, 결국 ‘메인이야 어쩔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가적인 퀘스트야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또다시 부푼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너무나 단순하고 강제적인 이야기 구조
‘역시나’라고 할까.
그랬다.
메인이 일직선인데 서브가 자유로울리 없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1. 누군가를 구출하는 퀘스트를 받음.
2. 퀘스트 도중 적의 거센 반발로 구해야 되는 인물이 죽어버림.
3. 결국 퀘스트는 실패하였고 의뢰인으로부터 거센항의와 함께 길드의 명성과 플레이어의 명성이 떨어짐.
이와 같이 어느정도 자유도가 있는 RPG라면 이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시작이 있다면 당연히 끝이 있을 것이고, 퀘스트의 끝이란 성공과 실패로 나뉘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페이블의 퀘스트는
1. 누군가를 구출하는 퀘스트를 받음.
2. 퀘스트 도중 적의 거센 반발로 구해야 되는 인물이 죽어버림.
3. 성공할때까지 퀘스트는 사라지지 않음(퀘스트 자체를 시작하기 전의 상태).
4. 끊임없는 재도전.
이란 공식이다.
결국 페이블에선 오로지 성공할때까지의 ‘재도전‘ 만이 존재할 뿐, 플레이어의 선택권이란 없는 것이다(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를 악의 성향으로 키우고 있을때 선한 퀘스트를 선택하였다면, 위와같이 ‘강제 완료’ 후에는 무조건 ‘선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말).
이런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실망하여 퀘스트를 기피하였더니
1. 누군가를 구출하는 퀘스트를 받음.
2. 구하러 가지 않음(퀘스트 기피).
3. 20살 때 받은 퀘스트가 주인공의 나이 65세가 되도록 사라지지 않음(결국 45년 동안 붙잡혀 있다는 소리).
4. 구하나 안 구하나 퀘스트는 영원하며, 20살 때 구하나 백발의 노인이 되어 구하나 결과는 똑같음.
이란 가공할 공식이 나왔으니...
물론 몇몇 퀘스트는 하나의 목적을 두고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1-A 산적들의 편에서서 경비병들과 싸움.
1-B 경비병들의 편에서서 산적들과 싸움.
이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면 그 퀘스트가 성공할때까지 끊임없는 도전 많이 남아 있을 뿐이어서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란 느낌.
결국 페이블의 이야기에서 ‘자유도’를 찾기란 어려우며, 필자와 같이 네러티브의 비선형 구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단점으로 다가온다(물론 일본식 RPG 스타일인 선형 구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선형구조에서 중요한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페이블에선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는게 문제).
*부족한 퀘스트, 협소한 페이블의 세계
퀘스트의 자유도에 굉장히 실망하였지만, 그래도 퀘스트의 종류가 많다면 그나마 용서할 수 있다(?)란 생각에 게임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메인 스토리가 짧다는 것은 발매전 정보들로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그래도 이 정도로 짧을 줄은 몰랐다), 주변 퀘스트 조차 이렇게까지 짧고 수가 부족할 줄이야!
메인을 비롯하여 부가적인 퀘스트들까지 대부분 클리어하고 난 시간이 20여시간도 되지않을 정도였으니, 이건 뭐 액션 게임인 닌자 가이덴의 첫 클리어 시간과 비슷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맵은 좁디 좁고 그렇게 좁은 맵에서 조차 길이 아닌 곳은 갈 수 없으며, 존재하는 마을들은 인구수 20~30명 내외의 코딱지 만한 수준인데다 게임전체에서 네 군데 밖에 없다는 황당한 사실.
웅장한 성과 수많은 사람들을 기대하였더니 이건 뭐 ‘부락’ 수준에 그칠 정도이니...
정말 ‘해도 너무한다’랄까?
물론 너무 거대한 맵으로 인하여 방만한 진행으로 흐르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모험‘이나 ’여행‘이란 기분을 느낄수 조차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작은 동네(그렇다. 동네다. 절대 ’세계‘란 거창한 말을 붙이면 안된다)를 집어 삼키려는 악당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골목대장이 되려고 아둥바둥하는 코뭍은 아이의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너무나 제한적인 진행과 협소한 세계(동네)에서 벌어지는 고만고만한 퀘스트들...
이렇듯 퀘스트의 제한된 선택과 더불어 협소한 페이블의 세계는 필자에게 적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러한 충격보다 더한 충격이 또다시 필자에게 엄습한다.
*이런 RPG가 있었나?
과연 중세를 배경으로 한 RPG에서 방패(실드)가 없는 RPG를 상상할 수 있는가?
아니면 직업이 없는 RPG는?
그것도 아니라면 동료가 없는 RPG는?(돈을 주고 고용하는 용병은 ‘스컴‘의 사당에 바칠 제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상점에서 구입한 무기가 전설의 아티팩트들을 오히려 능가하거나, 아니면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진 RPG는?
그리고 열심히 경험치를 모았더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스킬의 레벨업을 할때마다 무지막지하게 늙어버리는 탓에 마음먹고 레벌업도 못하는 RPG는?(필자의 경우 경험치를 모아두고 한번에 레벨업을 하였더니 18살이던 주인공이 45세가 되어버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사람이 모인데서 트럼을 해대고 낄낄대며, 방귀를 끼어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RPG는?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어쨌든 페이블에선 일반적인 RPG에서의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물론 필자의 성향은 정형화된 틀인 고정관념(stereo type)이나 매너리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페이블의 새로운 시도를 반겨야 할 입장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페이블의 새로움은 무언가 핀트가 어긋낫다고 본다.
과연 무엇이 어긋난 것일까?
과연 피터몰리뉴씨는 페이블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RPG의 신기원? 아니면...
발매전부터 제작진이 밝혀온 정보들을 살펴보면, 항상 ‘여타 RPG에서 보여주지 못한 어떠한 것‘을 내세우며 ’자유도‘와 ’방대한 무언가‘를 위주로 설명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유도는 온데간데 없고, 세계는 협소하기 짝이 없으며, 여타 RPG에서 보여주던 것을 ‘간략화’시키거나 ‘희화화’ 시켰다는 느낌이다.
결국 페이블에서 받은 느낌이란 ‘RPG의 신기원‘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기존의 RPG를 비꼬는 풍자‘라고 할까.
물론 막상 제작하다 보니 기기의 성능으로 인해 어쩔수 없었다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기기의 성능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풍자’라는 것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이다.
게다가 ‘풍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 후의 개량과 교정’이라는 느낌보단 ‘냉소적인 태도’와 ‘단순한 비방’의 느낌이었으니...
굉장히 따스한 그래픽으로 동화의 느낌을 주는 페이블을 즐기며 ‘냉소적인 풍자’를 느낀 것은 과연 필자 뿐일까?
...이렇듯 페이블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겼다.
게임에 대한 아쉬움 뿐만 아니라 제작진에 대한 아쉬움까지.
어쨌든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낀 필자는 입구와 출구가 너무나도 짧고 명확한 페이블의 세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원했으며, 그에 걸맞는 빠른 진행을 하였다(물론 대부분의 퀘스트는 수행하는 조건으로).
게임의 난이도 또한 엄청 쉬웠기에 막힘없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으며, 주인공의 누나가 손녀딸(주인공의 나이가 65세가 되었음에도 누나의 얼굴은 그대로이다. 시간의 흐름에 의한 나이가 아닌, 레벨업에 의해 나이가 먹는 시스템이 가진 최악의 단점)이 되어버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열심히 다가간 결과 20여시간 정도에 엔딩을 보게 되었고, 엔딩의 썰렁함에 또한번 실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필자는 그렇게 페이블을 클리어 하였다.
*페이블은 하이브리드 액션 게임?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랄까.
첫 인상에 너무 실망하여 플레이시엔 느끼지 못했지만, 게임을 클리어하고 생각해보니 잦은 로딩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시스템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굉장히 빠른 진행을 하였기에 단순히 스토리의 짧음만을 탓하고 있었지만, 시스템의 쾌적화 또한 빠른 진행을 더욱 빠르게 느껴지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시위를 당길때의 부르르 떨리는 손맛이 이상하리 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닌가.
쾌적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빠른 진행과 더불어 짜릿한 손 맛.
결국 필자는 ‘이건 RPG라기 보단 액션 게임이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듯 ‘페이블은 액션 게임이다’란 생각을 하게 되자, 유치한 스토리와 더불어 짧은 플레이시간이 용서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짧은 플레이시간을 자랑(?)하기에 재 도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 다시한번 페이블을 플레이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악의 성향으로 키울 것을 다짐하며, ‘어드벤쳐와 캐릭터의 성장이라는 RPG적인 요소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액션 게임‘인 페이블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번째 플레이에서 본 페이블의 매력
낮과 밤.
노을지는 모습과 쏟아지는 빗줄기.
태양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
차가운 CG의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꿈속에서 보아왔던 마을과 동산의 느낌.
그리고 이런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NPC들의 모습...
첫 번째 플레이에서 ‘그래픽은 괜찮구만’ 정도의 생각이 두 번째 플레이에선 산산히 부서졌다.
세밀한 묘사야 요즘 추구하는 게임들의 그래픽으론 당연한 것일지 모르나, 페이블에겐 요즘 게임들에게선 느낄수 없는 ‘따스함’이 묻어난다랄까.
단순히 쓰여진 기술들의 대단함이라던지 아니면 시각적 퀄리티가 뛰어나서 ‘보기만 해도 즐겁다’란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껴버렸다.
굳이 조악한 표현이나마 글로써 나타내자면
‘따스함에 녹아 버릴 것 같다’
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
이렇듯 그래픽에 대한 새로움을 느끼고 놀라는 가운데, 이번에는 귓속에서 무언가를 잡아채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의 선율을 자랑하는 페이블은 장소에 따라, 스토리 진행에 따라, 퀘스트의 성향에 따라 적절한 묘사를 해준다.
한없이 고요하다가도 폭풍이 몰아치듯 과격하게 내달리며 또한, 아련함을 품고 따스하게 퍼지다가 갑자기 습한 기운을 내치며 차갑게 가라앉아 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는 선율이 귓속을 파고드는 가운데 5. 1채널이라는 테크놀로지의 결합으로 더할나위 없는 임장감까지 느껴버리니...(마을을 거닐다보면 소근대는 주민들의 말소리가 뒷머리를 간질이며, 전투중 등을 돌린 상태에서 헐떡이는 적 크리쳐의 숨소리에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한 판타지 게임이라면 배경음은 단성음악이면 충분하고(대위법이 도입되기전이니 오히려 고증에 철저하지 않은가) 그 외 효과음들만 신경써주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필자였지만 페이블로 인해 ‘적어도 중세를 배경으로한 판타지 게임이라면 페이블 만큼은 되어야한다’로 바뀔 정도였다.
또한 첫 번째 플레이에서의 보았던 수많은 단점들이 어느덧 감미로운 선율로 사그라질 정도였으니, 페이블의 사운드가 얼마만큼 뛰어난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듯 필자는 기존 RPG에서 추구한 캐릭터의 성장과 이야기 구조의 탄탄함에서 얻게되는 재미와는 또다른 재미,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손으로 조작하는 ‘비디오 게임 본연의 재미’를 추구한 페이블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입구와 출구 사이.
좋은 그래픽과 사운드, 합당하게 짜여진 조작감에 만족하던 필자는 스토리 진행에서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물러나서 무얼할까라고 생각하던 중 악한 성향으로 플레이하리라 다짐 한 것이 생각, 캐릭터를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물러나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족족 욕설을 퍼붇고 트럼과 방귀를 끼어대며 혼자 낄낄거리고는 피에 굶주린 외침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점에 들려 있는데로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거리를 배회하며 으슥한 밤이 찾아오면 자물쇠를 따고 도둑질을 하였다.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다 반반한 얼굴의 여성 NPC가 나타나면 온갖 교태와 갖은 아양을 떨어 선물공세를 한후 결혼을 하였고, 마을간의 거리가 떨어진 것을 감안하여 마을마다 한 명씩 부인을 두기에 이른다.
하지만 꿈에서나 그리던 일부 다처제의 생활에 만족하기도 잠시.
뼈빠지게 일해서 번 부인의 돈으로는 도박을 일삼으며, 여러명의 부인들과 마을을 오가며 하루에도 몇번씩 짐승같은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또다른 마을 처녀들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결국 음주와 주정, 노름, 강도, 간음, 혼인빙자 사기극, 아동학대, 기물파손, 무단침입 및 도둑질 등에 지쳐갈 무렵 주민들을 마을밖으로 유인하여 교살하고 그들의 텅빈 집을 차지하여 타인에게 임대하거나 비싼 값에 팔아버리는 악독한 행위까지 서스럼 없이 저지르게 되는데...
이렇게 방탕하고 사악한 생활을 즐길다가 문득 돌아본 얼굴에는 흉측한 뿔이 돋아난게 아닌가.
그러나 사악의 상징인 뿔조차 온갖 더러운 수단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신전에 기부를 해버리니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으니...(약간의 흔적은 있다).
진행이 이쯤 되고보니, 페이블에 대해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일자진행 게임임에도 자유함을 느낄수 있다’란 것.
그랬다.
너무나 단순하고도 곧은 진행을 보이는 퀘스트에서 한발짝 물러서자 페이블은 너무나 큰 자유함이 있었다.
비록 주변의 환경에까지 완벽하게 영향을 미치거나 아님, 제작진이 개발당시에 말한 것처럼 극도의 세밀함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마을 주민에게 'f■ck you!'를 먹일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만큼은 지금까지 즐겨왔던 어떠한 RPG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아무리 멋진 스토리와 다양한 분기로 무장하였어도 지금까지의 RPG에서 플레이어의 입장이란 캐릭터의 인생에 관여하는 신의 역할에 불과했다면, 페이블에선 어쩔수 없는 일에 휘말린 플레이어 자신의 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캐릭터와의 싱크로가 강렬하다랄까.
소설에 비유하자면(게임에도 텍스트와 구조의 상관관계가 중요하니까) 지금까지의 RPG가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면 페이블은 1인칭 시점이라는 말.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자 페이블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기기의 성능으로 의도한 바를 나타내지 못했다는 제작진의 볼멘 소리가 단순한 변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막연하게만 느꼈던 차세대기의 도입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정말로 제작진이 말한대로의 결과물이 현세대 콘솔에서 구현되었다면 어땠을까?
정말로 ‘프로젝트 에고’가 XBOX로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쥐 덫
필자는 아직까지 두 번째 플레이의 엔딩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알비온’의 생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가까웠던 출구가 지금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그렇게나 유치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적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나 실망했던 몰리뉴 씨의 언행이, 지금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꿈이라고 생각된다.
입구와 출구.
여느 게임보다 명확한 입구를 가졌고, 여느 게임보다 간단한 출구를 자랑하는 페이블.
너무나 명확하고 간단하기에 많은 오해를 사게되는 게임이다.
하지만 입구와 출구 사이에 숨겨진 것이 하나 있다.
쥐 덫.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단단하게 그러쥐는 쥐 덫은 쉽사리 대상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걸려버린 덫으로 인해 출구를 돌아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미 필자는 페이블에 사로잡혀 버렸으며, 더이상 출구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덫에 걸린채로 계속해서 몸부림만 치고 있는,
필자는 이미 쥐 덫에 걸려버렸다...
-the end
*못다한 말-페이블과 프로젝트 에고
쥐 덫의 뉘앙스는 결코 밝지 못하다.
인용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사용되었으며, 필자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숨겨진 재미를 발견하여 페이블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쥐 덫은 쥐 덫, 즉 페이블에서 필요한 것은 출구이지 쥐 덫은 아니라는 말.
허술하게 만들어 놓은 출구를 감추기 위해 덫을 풀어 놓았다면, 그것에 상처입는 대상을 생각해야 한다.
한번이라도 상처를 입는다면 덫에서 풀려난다고 해도 또다시 입을 상처가 두려워 다시는 입구를 두드리지 않을테니까.
페이블과 프로젝트 에고.
차세대기에서는 메인과 서브가 조화된 멋진 출구를 예비해 놓길 바라며...
작성자: 바토리여백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