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 보석의 일족
부제: 화려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멋이 있지.
밖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기쁘게 달려나가는 타이요를 붙잡는 어린아이의 손이 있었다.
덥썩
“으악-!”
우당탕탕-!
타이요가 뒤로 넘어지면서 서로 뒤엉켜서 데구루루 구른다. 그렇게 둘은 출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하필이면 경사가 진 곳이였을까, 한참을 뒤로 굴려가다 쿵-! 겨우 멈춘다. 도착한 곳은 빛과 많이 멀어져있었다.
“아으윽-, 뭐야-.”
상대방도 많이 어지러운지 말이 없다. 이 낯선 곳에서 만난 인물이라 반갑긴 하지만 출구로 달려나가는 중에 막혔던 터라 말이 곱게 나가지가 않는다.
“너는 뭐야...? 왜 날 붙잡았어...?”
“... 지금 그곳으로 가시면 위험해요.”
상대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면서 차분히 말했다. 음울하지만 확실히 여자아이의 목소리다. 그에 타이요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면서 말했다.
“위험하다니, 뭐가...?”
“현재 그림자의 일종인 섀도르들이 폭주하고 있어요. 그림자가 비치는 곳으로 가면 안되요.”
“그림자...? 섀도르...? 그게 뭔데...?”
그에 소녀는 예상했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타이요의 손을 더듬더듬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저희가 쓰는 은신처가 있어요. 그곳으로 가면서 설명해드릴게요.”
“어, 응...”
수상하지만 말에서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의까지 느껴진다. 왜 이렇게까지 잘 대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니 따라갈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인간소년의 손과 작은 돌 조각으로 이루어진 손이 맞잡아졌다.
*
소녀를 따라 걸어간 곳은 자신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웅성웅성.
“또 낙오자인가...? 형씨도 고생이군...”
“…”
소녀는 타이요와 단둘이 있을 때랑 다르게 말이 없었다. 아까보니 목소리가 좋던데, 왜 말을 안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른 소리에 묻혀서 그 생각은 사라진다.
“쳇, 또 무시냐. 어이 거기 새로 온 형씨! 형씨도 거울미로 출구에서 왔는가?”
“어...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왜 다들 여기 모여있는 거예요?”
“우리도 잘 모른단다. 글쎄, 여기 사는 주민분들이 밖으로 못 나가게 막아서는 원. 이유도 섀도르니. 그림자니 이상한 소리만 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도 소녀같은 주민들 빼고는 모르는가 보다. 나 따라오기를 잘한 거 맞을까...? 그냥 무시하고 출구로 나갔어야 됬나...?
“그건 이제 설명해주지, 인간들이여.”
젊고 호탕한 남성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온다. 자신이 데려올 마지막 사람이라는 듯 주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들은 ‘젬나이트’라는 보석의 전사들이며, 현재 ‘섀도르’라는 어둠의 몬스터 군단을 그림자없는 동굴로 쫒아내는 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섀도르들이 최후의 반항으로 동굴 속에 묻혀있던 시체들을 부활시켜서 개체 수가 역전되었으며, 왜인지 몰라도 인간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워프당하는 민간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는게 그들의 주된 설명이었다.
“인간계...? 그게 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따로 있기라도 한거요?”
“그렇다. 여기는 듀얼몬스터즈의 정령들이 살아가는 정령계. 일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정령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계지.”
“이건 말도 안돼...! 그 수많은 듀얼리스트들을 놔두고 내가 이런 피해를 당해야 하는 거요...!”
타이요가 여기 도착하기 전까지 불만이 차곡차곡 쌓였던 걸까, 낙오자들 대표로 나선 중년 남성의 짜증어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분위기가 점차 안 좋아진다.
“엄마... 보고싶어...”
“정령은 게임중독자들의 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내가 이런 꼴을...”
“진정하시오, 인간들.”
뭘 진정하라는 거야, 우릴 돌려보내줘...! 사람들의 불평이 보석일족들을 향해 쏟아진다. 하지만 그들도 차원이동 능력이 없는 평범한 정령들이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희는 여러분들 돌려보낼 힘이 없어요. 대신 근처 인간마을까지 안전하게 데려다드릴게요.”
타이요를 데려다줬던 소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제안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이 폭발한 상태라 전해지지 못했다.
“아니, 정령이라면서...! 뚝딱 그냥 우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으라고, 납치범!”
“맞아. 애시당초 정령인 것도 맞아? 그냥 평범한 사람과 다를게 없구만...!”
“집에 돌려보내주세요... 으앙-.”
이건 뭐 물 빠진 사람 건져올렸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이다. 상대는 충분히 우리를 존중하고 자세하게 설명도 해주었다. 할 도리를 다한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가 이거라면 누가 도와주고 싶겠는가. 불안감이 타이요를 조금씩 잠식한다.
콰카캉-!
동굴 어디선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저 멀리 날카로운 불꽃과 함께 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히익-! 어떻게든 해 봐. 우릴 도와준다며...!”
“맞아...! 얼른 해결해 줘…!”
“잠시만, 여러분. 진정하세요.”
작은 돌조각들이 모인 차가운 손이 타이요의 손을 꼬옥 잡고 안심하라고 우릴 믿어달라고 소리친다. 그 뜨거운 마음에 타이요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이들을 믿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