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가끔 뜬금없이 시작되곤 합니다
지난 3년간 제대로 된 여행을 가지 못해 몸이 너무 근질근질하던 차에
11월에 시간이 남아 어딘가로 혼자서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주도를 갈 지, 일본을 갈 지 망설이던 차에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 지 어머님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21년도에 제주도를 다녀오셨다며 (전 못갔습니다) 일본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네,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방탕한 여행을 즐기려던 계획은 어느샌가 가족여행이 되었고
마침 옆에 있던 이모도 같이 간다고 하셔서 부모님과 이모, 이모부, 이렇게 어른 4명을 모시는 여행이 되었고
여행 계획부터 모든 것을 제가 처리하는 관광(가이드 - 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짜게 된 여행 계획, 11월 4일 (금)부터 10일(목)까지 6박 7일의 일정의 기차 여행입니다
제 취향보다는 어른들의 취향에 맞춰 계획을 짜서 산과 풀을 찾아가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이 이동 시간은 줄어 들지만 거의 2배 차이나는 비행기표값과
너무 좋지 않은 비행기 시간 등을 이유로 후쿠오카에서 출발하기로 합니다.
어차피 JR패스를 쓸 거니 신칸센 요금은 신경 안 쓰도록 합니다.
그 외에도 계획을 짜며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귀찮고 별 재미도 없으니 거두절미하겠습니다.
올리는 사진은 모두 어른들이 제공해주셨습니다
1일차 후쿠오카 - 오사카
정말 오랜만에 풀린 해외여행인데다가 강화된 검역절차 때문에
후쿠오카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고 말았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후 7시 즈음에 오사카 숙소에 도착해야 하지만,
오사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푸니 저녁 9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저녁이나 먹을 겸, 도톤보리로 나가봅니다.
늦은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금요일인데도 한산한 거리와 불꺼진 글리코 간판이
관광객들로 넘쳐나던 코로나 전의 도톤보리와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식당도 문 연 곳이 많지 않아 돌아다녀보다가
햄버그 스테이크 전문점인 빅쿠리동키가 영업중이라 이곳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냥저냥 맛있게 먹었지만, 어른들은 쌀밥이 맛있다고 감탄하십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10시 반이라서 다른 곳을 가지 않고 그냥 난바에서 신사이바시까지 걸어갔습니다.
미도스지의 가로수에 일루미네이션을 해놔서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부께서 화려한 배경에 사진 한 컷을 찍으셨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자동매표소에서 내일 갈 가나자와 행 티켓을 뽑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잔 게 1일차의 전부입니다.
2일차 가나자와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가나자와로 향합니다.
아직 오사카에서 가나자와로 가는 신칸센은 없는 지라 거리에 비해 시간이 꽤 오래걸립니다.
3시간이면 2배 거리에 있는 도쿄를 신칸센으로 가는 시간이죠
가나자와 역에 도착해서 한 컷
가나자와 역은 저 북을 형상화했다는 거대한 건축물이 상징입니다.
어찌보면 신사에 있는 도리이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구도는 이쪽이 더 좋은 거 같습니다. 단체 사진에는 좀 부적절하지만요
가나자와 시내 관광은 1일 버스 승차권을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가나자와라는 도시가 성하마을(조가마치)의 전형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가나자와 성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관광지가 몰려있어 체력만 있으면 걸어다녀도 괜찮을 정도지만,
행군형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얌전히 버스를 타고 다니는 편이 좋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히가시차야마치(동쪽 찻집거리)입니다.
오래된 목조건물이 많은 곳으로 교토보다 규모는 작지만
교토와는 달리 빽빽하게 모여있기에 일본 전통거리 실전압축 체험을 하기에는 적절합니다.
골목마다 이런 분위기라서 돌아다니는 맛이 있습니다.
가나자와가 금박으로 유명한 도시라서 금박 공예품을 파는 곳도 골목 이곳저곳에 꽤 많이 있습니다.
히가시차야마치 옆에 있는 아사노 강입니다.
단풍이 한국에 비해 늦은 일본이지만 동해 쪽은 태평양 연안의 일본 주요도시보다 단풍시기가 빨라 단풍이 이곳저곳에 보입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겐로쿠엔입니다. 일본 3대 정원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오카야마 고라쿠엔은 저번에 가봤으니 이제 이바라키의 가이라쿠엔 하나 남았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돌다리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이 이루어져 있으나
그런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굉장한 모양의 나무들로 가득합니다.
대충 실물크기 분재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모양을 잡기 위한 지지대와 눈을 막기 위한 움막집 형태의 나뭇살(유키츠리)이 인상적입니다.
나무의 모양은 굉장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나무고 무엇이 지지대인지 구별이 잘 안갑니다.
이 정도면 나무가 지지대인가 지지대가 나무인가 호접지몽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겐로쿠엔 바로 옆에 있는 가나자와 성입니다.
일본 성의 상징인 천수각은 없지만 천수각을 지키기 위한 성곽과 기다란 망루는 볼만 합니다.
망루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가 필요합니다.
겐로쿠엔 입장료를 내면서 세트권을 구매했기에 일단 망루 안으로 들어가봤습니다.
그냥저냥 볼 만합니다. 하지만 세트권이 아니었다면 굳이 돈내고 입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피로가 꽤 쌓여있는 상태라 아직 해가 떠 있지만, 이 정도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합니다.
어른들을 모시고 다닌다면 체력은 꽤나 신경써야 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6박 7일이나 되는 일정인 만큼 2일차부터 벌써 체력을 과소모할 필요는 없으니 말입니다.
3일차 시라카와고 - 도쿄
오늘은 산으로 갑니다. 시라카와고로 갑니다.
시라카와고로 가는 열차는 없습니다 완전 깡촌이거든요.
가려면 버스를 타든지 자가용으로 가든지 해야합니다.
버스는 일본답게 비싸고 자주 운영하는 것도 아니라서 렌터카를 빌리기로 합니다.
가는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ETC(일본 하이패스) 전용 차로에 진입했는데 차에 ETC 카드가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어찌 해결하고 나서 휴게소에 들려 렌터카 사무소에 전화해 물어보니 ETC카드는 따로 돈을 주고 대여해야 한답니다.
ETC기기가 달려 있었기에 으레 카드도 당연히 있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전에는 그냥 있었던 거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안나니까 그냥 그런갑다 합니다.
가나자와에서 1시간을 조금 넘게 운전해 가면 시라카와고에 도착합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마을 초입부터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차가 줄지어 있습니다.
30분 정도 줄을 서서 겨우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는 출렁다리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속 출렁거립니다.
그래도 많이 출렁거리지는 않습니다.
출렁인다해도 쫄보인 제 가슴을 철렁이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시라카와고 특유의 지붕인 갓쇼즈쿠리가 무척 눈에 띕니다.
초가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서
어릴 적에 초가집에 살던 어른들도 신기해합니다.
이런 생활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곳이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낙안읍성에서 느낀 그런 느낌입니다.
한국어 안내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여행이 본격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한국 사람은 적습니다.
여행 내내 후쿠오카를 제외하면 한국 사람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산속 오지마을이었던 시라카와고도 관광지화가 제법 진행되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고 나서 그런 면이 더욱 강화된 것 같습니다.
허나 관광객이니까 관광지로 찾아가는 겁니다.
적당히 구경하고 가나자와로 돌아갑니다.
렌터카 반납시간도 있고, 도쿄로 가야하기 때문에 기차 시간도 생각해야 합니다.
더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재밌었으니 괜찮습니다.
도쿄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졌습니다.
도쿄는 한국보다 더 동쪽에 있어 해가 지는 시간이 30분 정도 빠릅니다.
한국이라면 아직 어스름할 때지만 도쿄는 이미 밤 중입니다.
숙소인 츠쿠바 아사쿠사 역 바로 근처의 센소지입니다.
같은 한자인 浅草를 쓰지만 지역은 훈독인 아사쿠사로 읽고 절 이름은 음독인 센소로 읽습니다.
일본어는 이런 점이 헷갈립니다.
센소지는 밤에는 한산한 분위기로 낮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다른 고즈넉함이 느껴집니다.
숙소에서는 정말 애매한 곳에 있습니다.
걸으면 25분 정도 걸리고 대중교통으로는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걸어갔습니다.
많이 걸었지만, 별로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더럽게 긴만큼 착시효과를 일으키기에 딱입니다.
겨우 도착해서 바로 밑에서 위를 보고 사진을 찍어봅니다.
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인생같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간토 평야의 빛의 바다와도 같은 야경은 분명 볼만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스카이트리의 너무나도 높은 높이로 인해 어디를 보든 비슷비슷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높은 건물 낮은 건물 할 것 없이 다 같아 보입니다.
다만 "사람이 쓰레기와도 같구나" 라고 한 번쯤 말해보고 싶으시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걸로 3일차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서 휴식을 했습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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