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만 해도 줄곧 내리던 비가 열 시쯤 되니 슬슬 그쳐가네요.
지난주에도 집 안에만 있었더니 게임+잠만 반복했던 아쉬운 주말인지라, 여행지를 고르던 뽑기 앱을 돌려서 적당히 갈 곳을 골라 봤습니다.
서울 + 중부. 뭐 서울역 쯤 가서 생각을 해볼까 싶네요.
서울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영등포에 차 주차하고 대중교통으로 움직여 봅니다.
여행 가는 기분이나 낼 겸, 서울역까지 무궁화호라도 타고 갈까? 했는데 마땅한 열차가 없는 시간대네요.
뭐 영등포에서 서울가는데 기차 걱정을 할 일은 없죠, 그냥 지하철 타고 넘어가 봅니다.
오랜만에 온 서울역.
요즘은 지방으로 여행을 가도, 출장을 가도 보통 자차를 몰고 가니까 여기 올 일이 정말 없습니다.
대학생 때는 카메라 때문에라도 자주 왔었는데 말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풍경은 없네요. 코로나 덕에 생긴 선별 검사소 정도?
나머진 다 그대로입니다, 조금 변했으면 하는 것들 마저도요.
환승센터를 통해 건너게 되면, 또 명동으로 흘러갈 것 같아서 이번엔 평소에 안 가던 길로 틀어봤습니다.
가끔 버스 행선지에서 보이던 동네 이름인 후암동이 도로명에 보이네요.
후암로를 따라 걷던 중 어쩐지 평소보다 컨디션이 영 아쉽습니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토요일 답게 늦잠을 잤고 커피 한 잔 안 마시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쩐지 힘도 안 나고, 영 찌뿌둥 하고... 딱 커피가 땡긴다 느낄 때쯤에 보이던 이 입간판.
팔자려니 싶네요. 한 잔 해야죠.
맛은 모르겠고, 타이밍은 좋았던 커피 한 잔.
잠깐 자리에 앉은 김에 나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잠깐 체크해봅니다.
생각 없이 걷고 싶어 나온 건 맞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커피를 마시던 중, 갑자기 근처가 환해져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비구름이 슬슬 걷히나 보네요.
해도 떴고, 생각도 떴으니 다시 걸어 봅시다.
>대충, 이 길을 따라 쭉 걸으면 해방촌에 가겠구나 싶네요.
길을 가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여럿 보여서 조급함에 아쉬워하던 중, 후암시장을 만났습니다.
옛날 도나쓰 파는 가게가 있으면 하나 먹고 싶어서 기웃거렸는데 빵집만 있군요.
분식집이 보이긴 하는데 점심으로 피넛버터스태커를 먹은 지라, 먹고 싶었던 음식이 아니면 영 끌리지가 않네요.
뒤편에 있는 높다란 오피스텔과 대비되니 서울 한복판에 있는 재래시장이 한층 더 이질적입니다.
사실 서울 하면 마천루가 빽빽한 이미지인데, 의외로 이렇게 사람 사는 냄새 풀풀 나는 동네가 많기도 하죠.
점점 사라질 풍경일 것 같으니 부지런히 담아 봅시다.
그냥 걷기에는 저 높은 빌딩 사이보다 뒷산 정도는 보이는, 이런 동네가 더 좋거든요.
후암로의 끝.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고민을 해봅니다.
신호가 먼저 켜지는 쪽으로 갈까 싶었는데 하필이면 동시 신호네요.
그렇다면 사진을 찍던 방향, 그대로 가로질러 가봅니다.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길을 가로지른 뒤, 쭉 걷다 보니 길이 끝납니다.
그런데 옆쪽으로 왠지 눈길을 끄는 녀석이 있네요.
사진을 찍던 중 승강기가 올라가 버려서, 그냥 계단으로 쭉 올라가 봅니다.
뭔가 산비탈에다가 마을을 만든 느낌이네요.
인천, 그중에서도 남쪽에 살다 보면 동네에 비탈길이 있는 곳이 많지가 않아 그런지 인천 촌놈은 이런 것도 신기합니다.
약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과 아닌 곳의 차이일까요?
노량진 근처에 단지 들어서는 걸 보면 요즘은 뭐 비탈졌다고 아파트 못 짓는 것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요.
드디어 정복한 해방촌 정상. 이런 길에도 버스가 잘도 다니네요.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들어가고 싶었던 가게가 몇 개인지...
제 몸이 하루 세 끼를 넘기기 힘들고, 커피도 하루 석 잔을 넘기기 힘든게 참 아쉽습니다.
해방촌 밑자락의 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낮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네요.
약간 외국 느낌? 지금이 밥 시간은 아닌데 식당들도 가득 차 있고, 역시 핫플이라는 느낌입니다.
요즘 금주 중인게 참 아쉽네요. 뭐, 영등포에 차가 있으니 어차피 술은 못 마시지만요.
>
따라가다 보니 여기가 경리단길이군요. 하도 아류가 많아서 여기도 뭐 이름 따다 만든 동네인 줄 알았네요.
그런데, 해방촌과 비교가 돼서 더 그럴까요? 뭔가 토요일 치고 참 한적합니다.
경사가 너무 져서 그런가...
끝나지 않는 오르막길, 이거 그냥 남산 올라가는 길 같은데...
오늘 뭔가 정상을 두 번째 오른 느낌입니다.
경리단길의 끝인 하야트호텔에 도착했네요. 뭔가... 땀이 맺혀서 모자까지 벗었습니다.
여기 여름에는 오기 싫겠는데요?
하야트까지 버스라도 타고 와서 내려가는 방향으로 걷던가 해야지...
조금 지치기도 했고, 이대로 이태원에 넘어가 봐야 식당도 안 열었을 테니 슬슬 카페를 들어가 볼 시간입니다.
케냐 국기가 걸려있는 건물 바로 옆에 '케냐키암부' 라는 카페가 있길래,
혹시 춘천의 '이디오피아벳' 같은 느낌일까? 싶어서 빨려 들어왔네요.
케냐카노에 피넛버터 쿠키 하나.
뭐, 맛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케냐랑 별 관련은 없는 것 같네요.
케냐 국기가 걸려있던 건물은 들어와서 찾아보니 케냐 대사관이었는데, 여기랑 다른 건물이었습니다.
그래도 안이 넓고,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음에 들어 제법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책이라도 한 권 들고 올걸 그랬네요.
휴식을 마치고 다시 걷던 중, 저 멀리 한강이 살짝 보입니다.
오늘 강가로 갈 일은 없다만, 그래도 왠지 강이 보이는 이 길이 마음에 들어 여기로 내려가 보렵니다.
리움미술관 앞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바로 익숙한 길가네요.
여길 왔으면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줘야 제맛이죠.
가고 싶었던 우육면 집이 브레이크 타임이 한 10분 남아서, 그냥 동네나 걸어 봅니다.
나이를 먹었나, 어째 이태원 분위기가 영 부담스럽네요.
언제 찍어놨는지 모를 핀.
마침 걷던 길에 가고 싶었던 식당이 있어서 와 봤습니다.
뭔가 입구에 미슐랭 딱지가 주렁주렁 붙어 있네요.
아쉽게도 기대엔 미치지 못했던 우육면.
제가 너무 강한 마라향에 익숙했는지, 뭔가 부족합니다. 고기는 그래도 여태 먹은 우육면 중에 제일 맛있네요.
그래도 우육면은 한 그릇 먹고 나면 든든하니, 입가심할 생각만 들어야 제맛인데...
특으로 시켰는데도 뭔가 속이 허전한 게 아쉽네요.
그래서 터키 디저트를 먹기로 했습니다.
이걸 먹으면 입가심도 되고 속도 든든해 질 것 같네요.
바클라바 한 통 사서 가방에 장전하고, 적당히 사람 없는 길가 나오면 앉아서 먹어야겠어요.
어느덧 해질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녹사평까진 쭉 걸어볼까 합니다.
녹사평역 근처 벤치에서 6개를 뚝딱.
역시, 디저트는 터키... 술도 못 마시는 술탄들 욕구 충족시키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6개를 다 먹고 나니 이제야 속이 든든해집니다. 입가에 있던 마라의 기운은 이미 실종이네요.
영등포까지 어떻게 갈까 하던 중 눈에 들어온 이 녀석.
오늘 강가 갈 일 없다 했는데, 이거나 타고 드라이브를 해볼까요?
간만에 타는 밖에서의 자전거에 제법 신이 나네요.
삼각지, 용산을 거쳐 한강대교 위에서 이번 나들이의 마지막 한 장을 남겨 봅니다.
실컷 걷고, 강바람 맞으며 자전거도 타고...
참,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2022.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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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야. 사진빨이 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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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운 동네네요..제가 다녔던 모교가 보이네요. 벌써 20년이 넘었는데...집이 가까운 친구들이 살던 후암동 언덕동네도 보이고..(저는 집이 멀어서 숙대역에서 지하철타고 통학해서 반대쪽으로 내려갔었지요). 사진 정말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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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네요 다음 주말에 가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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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에서 신검받으셨다면 연배가 꽤 있으신가 보네요. 제가 90년대생인데, 저 유딩때 이미 사람들이 그 자리를 '구병무청'이라고 부르거나, 택시기사님한테 후암동 가달라 할 때 '옛날 병무청 있던 동네 가주세요'라고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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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후암동... 1990년도 후암동에 있던 정일학원을 다녔었는데 옛 생각도 나고 참 좋네요. 계단에 승강기가 설치돼서 좀 낯설긴 합니다만 저 계단을 108 계단이라고 해서 많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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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야. 사진빨이 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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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진은 아니니 눈으로 보는 것 보단 좋아야 제맛이죠~ | 22.03.27 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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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없이 떠돌아도 쉽게 돌아갈 수 있다는게 참 좋습니다. 다음 뽑기에는 어디가 나올지 궁금하긴 하네요 ㅎㅎ. | 22.03.27 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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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말씀을요, 좋은 하루 되세요~ | 22.03.27 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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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 22.03.27 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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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운 동네네요..제가 다녔던 모교가 보이네요. 벌써 20년이 넘었는데...집이 가까운 친구들이 살던 후암동 언덕동네도 보이고..(저는 집이 멀어서 숙대역에서 지하철타고 통학해서 반대쪽으로 내려갔었지요). 사진 정말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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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쓰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 계신 분들이 고향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네요. 제 작은 일상이 즐거움이 되신 것 같아 기분 좋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22.03.27 1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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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네요 다음 주말에 가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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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래요~ | 22.03.27 15: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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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도 제법 있고, 거리에 비해 훨씬 재밌었던 길이네요 ㅎㅎ. | 22.03.28 22: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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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사진이 스크롤에 잘 안 맞아서 시작했습니다만, 여러모로 만족 중입니다 ㅎ. | 22.04.10 16: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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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인생
후암동에서 신검받으셨다면 연배가 꽤 있으신가 보네요. 제가 90년대생인데, 저 유딩때 이미 사람들이 그 자리를 '구병무청'이라고 부르거나, 택시기사님한테 후암동 가달라 할 때 '옛날 병무청 있던 동네 가주세요'라고 했었거든요. | 22.04.07 16: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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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일모레 반백이네요 ㅠㅠ ㅎㅎㅎㅎ 아 시간이여!!! | 22.04.08 1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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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쪽 근처가 병무청 자리였군요 ㅋㅋ. 어쩐지 쎄하더라니 _-.. | 22.04.10 16: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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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산자락이었을 것 같긴 하네요. 고지도를 보니 조선신궁이 있던 위치와 비슷한 걸로 보입니다. 그냥 신사도 아니고 그 조선 신궁 위치였군요, 다음에 찾아가게 된다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걸을 길을 정하게 될 것 같네요, | 22.04.10 16: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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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후암동... 1990년도 후암동에 있던 정일학원을 다녔었는데 옛 생각도 나고 참 좋네요. 계단에 승강기가 설치돼서 좀 낯설긴 합니다만 저 계단을 108 계단이라고 해서 많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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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108계단이었는지, 128계단이었는지... 뭔가 이름이 있긴 했습니다 ㅎㅎ, | 22.04.10 16: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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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걷다 갑니다~ | 22.04.10 16: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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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전거 타고 영등포로 리턴했습죠 ㅎㅎ. 그냥 걷다 보면 쭉 걷게 됩니다~ | 22.04.10 16: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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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조금 번화가도 많긴 했지만 자연인은 아닌지라 어찌되던 좋더군요 ㅎㅎ. | 22.04.10 16: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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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회생활 보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즐겁게 다녀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 22.04.10 16: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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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외지인인지라 동네 분들 입맛에 맞는 코스였을까 싶긴 한데, 다들 좋게 반응해주셔서 감사하네요 ㅎㅎ. | 22.04.10 16: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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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공들여 가야 하는 곳이 아니니, 편히 다녀오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 22.04.10 16: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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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한두번 정도, 혼자 시간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한 번씩 다녀와야죠~ | 22.04.10 16: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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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엘리베이터가 생겼습니다 ㅎㅎ. | 22.04.10 16: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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