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사정으로 갑자기 공강이 생겼다.
요즘 논문 덕분에 꽤나 피폐한 하루하루였기 때문에, 이 틈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올까 해서 행선지를 골라보던 중 포항이 눈에 띄었다.
덕분에 논문 초록을 일요일까지 끝내고, 다녀와서도 발표 준비로 바빠질 예정이지만 일단 오늘은 다 잊고 즐겁게 다녀오자.
마침 오늘 쉬는 날인 K를 불러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KTX여서 식사를 못했는데, 서울역에서 출발한 K가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왔다. 오늘 먹부림은 통새우와퍼부터 시작된다.
동대구를 지나니 열차 안은 거의 비었다. 최근 해외로 여행을 다니다보니 KTX를 타 본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다.
광명에서 두 시간 남짓, 포항에 도착했다. 당연히 더울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 인천보다 시원한 것 같다.
주차장에서 렌터카를 받고, 바로 양동마을로 출발했다. 초행이라 몇 번 헤매긴 했지만 별 탈 없이 양동마을에 도착한다.
입장료를 내고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연꽃으로 가득 찬 못, 그 뒤로 언덕을 따라 들어선 집들의 모습. 거기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적함까지 갖춘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양동마을은 다른 민속촌과 달리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그래서일까, 여느 전통마을과 다른 생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먼저 마을의 서쪽부터 돌아보기로 한다. 관가정으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던 중, 정충비각이 보여 잠시 살펴본다.
입구의 안내를 읽어보니 병자호란 때 쌍령전투에서 ‘손종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 한다.
비석이 세워진 곳 옆에는 함께 전사한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는 건물도 함께 세워져있다.
걷기 시작하니 이내 땀이 나기 시작한다.
거리의 의자 뒤에는 꽤나 오래되 보이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서있는데, 벼락을 맞았는지 크게 꺾인 흔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기와 잎이 아주 무성하다.
초가집에 TV 안테나가 달려있다. 이 안테나, 군 시절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솔가지가 잔뜩 꽂힌 담장을 지나 관가정을 향한다.
멀리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사진기를 돌리니 급히 날아간다. 새소리가 제법 듣기 좋았는데, 그냥 둘 걸 그랬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관가정의 마루. 직접 올라가서 바람을 맞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아쉽게도 올라갈 수 없었다.
관가정을 크게 돌아 다시 들어왔던 문으로 나선다.
다음 목적지인 향단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한적한 마을에 조용히 울리는 새소리, 제법 따가운 햇볕임에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참 걷기 좋은 날이다.
초가집 지붕에서는 까치의 식사가 한창이다. 지붕 속에 벌레가 제법 있는건지, 계속해서 쪼고 먹고 반복한다.
향단으로 가는 길, 옆에 있던 가게에서 스리슬쩍 나와 짖던 강아지 한 마리. 좀 이따 가게에 한 번 들러볼까?
회재 이언적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그의 노모를 돌볼 수 있도록 지어준 건물인 향단의 뒤편은
아직도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이기에 사진을 찍은 곳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서 활기를 띄지만, 그렇기에 많은 고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들러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강아지가 나왔던 가게에 들러 소프트를 하나 사먹는다.
은은히 울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그늘에서 소프트를 먹고 있다 보니 더위가 쉽게도 잊혀 진다.
일본에 자주 다니다 보니 관광지에서 눈에 보이는 소프트를 사먹는 습관이 생겼는데, 제법 얼음알갱이가 씹히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좋다.
K의 말을 빌리자면 소프트 보다는 젤라또에 가까운 식감이다.
무첨당으로 가는 길. 여전히 마을은 조용하다만, 멀리서 단체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게 보인다. 조금 서둘러 돌아 봐야겠다.
무첨당으로 들어가기 직전, 옆에 대성헌이라는 건물이 보여 들어와 봤다.
향단의 유래를 말할 때 언급했던 이언적의 자손이 분가하면서 새웠다는 이곳은 지금도 그분의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대성헌의 뒤편으로는 또 많은 초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대충 집의 위치나 모양만 봐도 양반가인지 일반 백성의 집인지 알 것 같다.
여강 이씨의 대종가를 구성하는 건물 중 별당 건물인 무첨당. 아직도 쓰고 있는 걸까? 마루 밑에는 여러 잡동사니가 쌓여있다.
안쪽에는 흥선 대원군이 썼다는 편액이 걸려있다. 좌해란 경복궁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에 위치한 영남을 의미하고, 금서는 거문고와 책을 말한다.
풀어 쓰자면 영남의 선비가 가진 높은 풍류와 학문을 기린다는 뜻이다.
뒤편에는 집안의 제사 역할을 분담한 표가 적혀있는데, 초헌, 아헌, 종헌은 기본이고 옛 예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함부로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지만, 정유년 2월, 즉 올해에도 이렇게 신경 써서 집안의 제사를 준비했음은 엿볼 수 있었다.
뒤편으로는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다른 한쪽으로는 쪽문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쪽으로 내려가면 한참을 뱅 둘러가야 할 것 같기에 그냥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기로 한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서백당으로 가본다. 텅 빈 고택만 보다 보니, 아래에 널린 이불에서 새삼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안강리의 모습. 불과 강 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른 모습이라니, 재밌는 모습이다.
언덕을 올라가니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꽤 걸어 다녔기에 잠깐 쉬고 가기로 한다.
서백당으로 생각되는 건물은 뭔가 공사로 바빠 보인다.
조금은 풍경에 질렸던 걸까? 이걸 핑계삼아 서백당은 넘기고 그냥 크게 마을을 돌아 빠져나가기로 한다.
이름 있는 건물이 아닐지라도, 마을 곳곳에 있는 건물은 모두 충분히 아름답다.
꼬리가 없는 녀석이 아마 이 부근의 전통견인 ‘동경이’일 것이다. 사람을 잘 따른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정말 바로 다가와서 살갑게 군다.
사실 나오면서 조청을 넣었다는 소프트를 하나 먹으려 했는데, 아쉽게도 가게 바로 옆의 나무에 약을 치느라 잠깐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시며 슬금슬금 마을을 빠져나온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불국사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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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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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 17.05.26 22: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