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해녀들의 섬" 리사 시 지음 (2019), 북레시피.
우리는 거의 매일 내장까지 다 넣어서 만든 전복죽을 먹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이고 또한 그 맛을 좋아하도록 아기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물옷의 옆을 묶었던 끈을 느슨하게 묶었다. 우리는 아기가 "바다 한복판에서" 태어나기를 바랬다. 그것은 아기들이 첫 숨을 배 위에서 쉬거나, 우리가 바닷속에 있을 때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 "해녀들의 섬" 중에서
"해녀들의 섬"은 미국인 작가가 쓴 제주도의 해녀 이야기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중국인이어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 단순히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제주도의 이야기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현대사를 거치며 살아왔던 해녀의 삶.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면서 4.3 사건이라는 비극을 겪어야 했던 주인공은, 대다수의 제주 여성들이 그렇듯, 육지로 치면 어지간한 남자들 뺨치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멀고 먼 러시아 바다까지 해녀 원정을 나가며 부푼 배를 안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몸보신을 하기 위해 배 위에서 만들어 먹었던 "내장까지 다 넣은 전복죽"은 왠지 아내가 임신했을 때 전복을 찾던 일이 떠오르게 만듭니다. 미국 유학중이라 살아있는 전복을 구하려면 자동차로 두시간 반 거리의 한인마트까지 가야 했더랬지요.
지금은 자전거 타고 조금만 가면 나오는 수산시장에서 큼직한 녀석들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니 다행이네요.
살아있는 전복을 손질하는 첫 단계는 흡판 부분을 솔로 씻어내는 과정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에는 초보 주부가 손질했다며 완전히 새하얗게 닦아낸 전복을 자랑하는 것도 본 적 있는데,
그렇게 손질하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쉽사리 따라할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주름 사이는 좀 대범하게 넘기고 닦기 쉬운 부분 위주로 솔질해서 검은색을 벗겨냅니다.
초보 해녀가 바위에서 전복을 따낼 준비가 되려면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전복은 혼자 있을 때면 영양분 많은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그것을 둘러쌀 수 있도록 껍질을 바위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놀라면, 설사 큰 물고기가 지나가면서 만든 해류 때문에 놀랐다 해도, 전복은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버린다. 그러면 단단한 껍질이 안에 있는 전복을 모든 약탈자들로부터 보호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전복에 접근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빗창 끝을 껍질 밑에 집어넣은 다음 한 번의 신속한 동작으로 전복을 홱 튕겨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복이 빗창에 달라붙어서 그것을 바위에 고정시켜버린다. 그렇게 되면 빗창이 해녀의 허리에 묶어놓은 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해녀는 바위에서 떨어져 나올 수가 없게 된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서만 전복으로부터 도망쳐서 공기를 찾아 표면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남겨두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해녀들의 섬" 중에서
책을 읽으며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전복이 생각보다 위험한 생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해녀들이 채집할 때 쓰는 도구는 놓쳐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허리에 묶어놓는데, 전복이 움츠러들면서 이 도구가 전복과 바위 사이에 끼어버리면 해녀가 바다 위로 다시 올라갈 수 없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이러한 위험성은 심지어 다 잡은 전복을 손질할 때도 여전히 약간은 남아 있습니다.
관자를 껍질로부터 분리해야 하는데 워낙 단단히 붙어있다보니 이걸 떼어내려다가 날카로운 껍질에 손이 베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이소에서 파는 천원짜리 조개칼을 전복의 길쭉한 쪽 끝에 집어넣고 껍질쪽에 밀착해서 위 아래로 긁어내듯 움직이며 조금씩 더 깊게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긁으며 들어가다 보면 관자가 걸리는 게 느껴지는데, 관자만 절반 정도 떼어내면 나머지는 손으로도 쉽게 떨어집니다. 내장을 터뜨리지 않고 깔끔하게 떼어낼 수 있지요.
손에 몇 번 상처를 입어가며 터득한 비법입니다.
전복을 껍질에서 떼어낸 후, 내장을 가위로 조심스럽게 잘라냅니다.
내장 끝에 툭 튀어나온 부분이 모래주머니인데, 맛과 식감이 별로 좋지 않은 부위인지라 잘라버립니다.
어차피 다 갈아서 죽을 끓이면 크게 티도 안날 것 같은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전복죽 먹고 자란 아들은 입맛이 예리해서 다 알아채더군요.
"아빠, 모래집 떼어냈어요?" "아빠, 전복 이빨 다 뺐어요?"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전복 이빨도 제거합니다.
뭉툭한 부분의 끝쪽을 칼이나 가위로 살짝 자른 다음 꾹 눌러주면 딱딱한 전복 이빨과 여기에 매달린 침샘이 뽁 빠져나옵니다.
이거 귀찮으면서도 은근 뽑아내는 재미가 있어서 중독성이 있습니다. 콩깍지에서 삶은 콩 눌러서 빼는 느낌이랄까요.
손질된 내장은 물을 조금 붓고 핸드블랜더(=도깨비 방망이)로 곱게 갈아줍니다.
쌀을 씻고 참기름 둘러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채수를 부어서 죽을 끓입니다.
전복 내장은 처음부터 넣기보다는 80%쯤 완성되었을때 넣고 끓여주는 편이 풍미가 더 좋습니다.
전복을 큰 걸로 열 마리 정도 사면 그 중 서너마리는 썰어서 죽에 넣고, 나머지는 찜솥에 넣어 술을 살짝 뿌려서 쪄먹습니다.
회로 먹어도 좋을 정도로 신선한 전복인지라 김이 올라오면 10분 정도만 쪄도 충분합니다.
완성된 전복찜. 딸내미는 희한하게 전복을 싫어하는데, 초등학생 아들은 말 그대로 흡입합니다.
특히 통전복을 뜯어먹는 것을 좋아해서 한 마리는 꼭 썰지 않고 남겨둡니다.
여기에 갓 만든 뜨끈한 전복죽까지 곁들이면 맛있는 한 끼 완성입니다. 딸내미 전용으로 달걀볶음밥을 따로 해줘야 하는 게 좀 번거롭기는 하지만요.
이렇게 가끔씩 요리를 하고 있노라면 책에 나왔던 노동요라도 흥얼거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황금빛 조개와 은빛 전복들." 그녀가 노래했다.
"그것들을 전부 따게 해주세요" 우리가 화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하게요."
"그가 집에 온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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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꼬막 하얗게 닦은 거 보고 충격이었죠 ㅋㅋ | 26.01.07 1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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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구이는 뭐든 맛있죠 ㅎㅎ | 26.01.07 16: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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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전복껍질이 달팽이 집이랑 같은거라더군요. 특히 전복 움직이는 거 보면 달팽이랑 똑 닮았어요. | 26.01.07 16: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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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고오급 레스토랑 분위기 내려면 전복 내장으로 소스 만들어서 전복 구이 찍어먹어도 좋지요 ㅎㅎ 근데 전복 손질하고 나면 귀찮아서 그냥 쪄먹게 되더라구요 | 26.01.07 17: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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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도깨비방망이로 곱게 갈아야 저 색깔이 납니다. 한 번은 귀찮다고 내장을 칼로 대충 다져서 만들었더니 완전 다른 색깔이 나와서 놀랐던 적이 있지요. | 26.01.07 17: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