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빨판, 팜 파탈의 기원
―뮤즈의 탄생
젖꼭지를 빨리며 아픈데 너무 좋아, 했을 때
이미 예쁜 빨판, 팜 파탈은
러브 마이너스 항원으로 내게 왔어요
그게 시작이었지
당신 사랑의 흡착력은 창백한 얼굴과 슬픈 표정에
서 나와요
아무나 그걸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죠
헤어짐의 선택을 강요받았던 DNA
당신은 나쁜 빨판
긴 팔다리로 외간 남자를 휘감아요
당신 날개 밑의 몰약이 아이 있는 남자를 홀려요
대신 당신의 남자는 바깥으로 돌죠
오 그러나 당신만이 사랑의 화신
부르주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소녀들은
사랑을 몰라요 오직 따스한 만족과 계산
권태만이 있을 뿐이죠
당신은 황홀한 바이러스
찾아 헤매도 헤매도 사랑은 가네
당신이 그들을 죽이는 걸 당신은 몰라요
당신 아빠가, 당신을 배반한 또 다른 아빠가
당신을 죽였듯 당신 누에고치에서
불혹의 남자와 미소년들이 메말라가네
당신과 함께 눈뜨고 싶고 놀고 싶고
자고 싶고 쉬고 싶고 벗고 싶고 씻고 싶고
당신 빨판과 내 입술이 닮아가요
새빨간 거짓말을 뚝뚝 흘리며
빈혈 증세를 느끼지만 당신의 오랄은 몰핀처럼
아픔을 가셔주죠
이걸 어째요
러브 마이너스
빨판에 빨린 아빠
파탄
폭탄
어떻게 이 황홀한 죽음의 상태를 헤쳐 나갈까
어렸을 때 처마 밑에서 본
황혼 녘 오색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풍뎅이 여름내 단물을 빨리고
가을 되니 낙엽처럼 대롱대롱
그렇게 되기 직전에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죽음을 이기는 칼은 오직 죽음의 칼뿐
나는 죽으러 당신 질 속으로 들어갔죠
거기에는 나 같은 순정파들이 우글거렸어요
아직 파리가 되지 못한 구더기도 있었고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도 있었죠
나는 용기를 냈어요 거기서 처용이 됐어요
진실과 순진과 구름 위에서의 춤 그리고 침묵
퍼붓는 빗속에서 당신에게 고백했죠
침묵을 준비하고 있다고
예쁜 빨판이 내 앞에서 드디어 작별을 고해요
당신은 목으로 꺼억꺼억 넘어오는 설움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참으며
침묵에 동참하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당신은 더 가녀린 실루엣과
한없이 밀려오는 슬픔을 담은
여리디 여린 표정으로
러브 마이너스 빨판 퀸 오브 하트가 되어가요
남자들이 당신의 호수에 줄을 서서
자1살을 준비해요
팜 파탈 분비물로 흥건한
기쁜 빨판 서식지
바로 그 호수죠
당신에 감염된 나는 참을 수 없어
아침 녘에 문밖으로 나가보지만 벌써 다른 풍뎅이의
스니커즈를 댓돌 위에 놓아둔 당신
러브 마이너스
당신은 팜 파탈
오직 당신만이 단물 뚝뚝 흐르는
시와 노래와 고통과 찬미의 진원지
팜 파탈 예쁜 나쁜 기쁜 빨판 오오 당신은
둘도 없는 나의 뮤즈
당신의 텍스트
성기완, 문학과지성 시인선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