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도둑놈처럼 준비해왔어
이 도망을
몰래 빨간 여행 가방을 끌고 나왔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어
길에서 옷을 갈아입었지
팬티 속에 여권을 넣었고
대1마초는 책갈피에 숨겼고
트렁크에서 당신의 비키니를 꺼냈어
차는 이 후미진 거리에 서 있을 거고
나는 떠날 거야
신호등 유턴 표시 따위
쓸데없는 약속 같은 건 무시할 거야
즉결심판 면허정지 모기지 이자
그 하찮은 것들은 팽개쳐버리고
초록의 야자수로 오두막을 지은
가난한 나라로 가버릴 거야
나쁜 놈처럼 흐드러졌어
이 사랑 속에 핀 꽃
두 번 생각하지 않을 거야
딸 거야
빨 거야
핥다
해초 우거진 바닷물 속에서
지나가는 물고기들과 인사하고
그들의 언어로 섹1스할 거야
서서 밥을 먹어도 좋아
뭐든 서슴지 않을 거야
트라이씨클을 타고 정글을 누빌 거야
갯벌 위에 지어진 식당에서 나와
긴 그림자가 구름까지 이어지는 걸
당신과 함께 볼 거야
그 낯선 기념품 판매소의
꿈 같은 계단을 밟을 거야
생리 중인 너를 업고 갈 거야
피가 뚝뚝 계단에 떨어져도
상관없어
상관없지
미안하지만 즉시 흥정꾼이 되겠어
당신이 미라처럼 누워 있을 때
나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릴 거야
당신의 텍스트
성기완, 문학과지성 시인선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