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게임 업계를 변하지 않는 것으로
살아남은 니혼팔콤의 굉장함은?
『드래곤 슬레이어』,『제나두』,『이스』 ── 과거 1980년대, 발군의 퀄리티의 작품을 연발,
근래에는『궤적』시리즈와『도쿄 제나두』,『이스 Ⅷ 』 등 시리즈의 파생 작품이나 넘버링 타이틀을 발표하며
세대를 넘어선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게임 업체인 니혼팔콤.
그런 이 회사는 스퀘어나 에닉스(현 스퀘어 에닉스), 영광[光栄](현 코에이 테크모 게임스)라는 컴퓨터 게임의 여명기에 창업한 오래된 회사 중 하나이다.
아시다시피, 게임은 그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중요한 산업 중의 하나인데, 그 역사는 바로 격동이었다.
그런 가운데,니혼팔콤은 어느 순간부터 회사 규모를 거의 바꾸지 않고 고품질의 게임을 발매한 드문 존재이다.
또 적은 직원수임에도 불구하고 대히트한 애니메이션 영화『너의 이름은』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씨와
많은 게임 음악을 다루는 작곡가·고시로 유조 씨,『제노블레이드』 시리즈를 제작한 모노리스 소프트 이사·다카하시 테츠야 씨 등
현재 활약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를 다수 배출한 회사라는 것도 " 신기하다" 라고 할 것이다.
왜 불과 50명 정도의 소수 체제에서 높은 품질의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는가?
왜 이렇게도 재능 넘치는 크리에이터가 이 회사에 모이는 것인가?
그리고 왜 35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니혼팔콤이 오늘날까지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는가?
이들의 의문을 밝힐 수 있도록 창업자인 현 회장의 카토 마사유키 씨,
2007년에 32세의 나이에 사장으로 취임한 콘도 토시히로 씨의 두 사람에게 인터뷰를 감행했다.
또한 청취자는 미디어 믹스 잡 『콤프티크 』초대 편집장 사토 오타츠오 씨(전 카도카와 이사 상담역. 2018년 6월부터 코에이 테크모 홀딩스 사외 이사)를 초빙.
『 콤프티크 』의 창간 초기부터 카토 회장과 친분이 있는 사토 씨에게 당시의 추억도 함께 크게 말하는 짙은 내용이 되었다.
청취자/사토 오타츠오, TAITAI
글/Ron나카J
사진/마스다 유우스케
왼쪽부터 사토 오타츠오 씨, 콘도 토시히로 씨, 가토 마사유키 씨
회사 규모를 확대하지 않고 아이디어로 승부 한다는 "역장리[逆張り]"의 발상
카토 마사유키 씨(이후 카토 씨): 저와 콘도가 함께 인터뷰 취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거절해왔거든요.
하지만 사토 씨가 청취자로 오신다는 것이니까…….
카도카와 이사 상담역·사토 오타츠오 씨(이하, 사토 씨): 그럼 이번이 처음이군요.
카토 씨 : 저는 나오고 싶어 하니까 괜찮지만 콘도 대표 이사는 혼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겸손함 "이랄까요?
콘도 토시히로 씨(이하, 콘도씨): (웃음)
카토 씨 :그렇지만, 독자분들은 내 이야기는 듣기 싫겠죠?(웃음)
사토 씨: 그런 일은 없습니다(웃음).
이번에는 "니혼팔콤은 어떤 회사인가"를 다시 여쭙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컴퓨터의 여명기에 창업한 회사인데 같은 컴퓨터 게임 업체로 출발한 코에이 씨(코에이・테크모 게임스)와
스퀘어 씨(현:스퀘어 에닉스)등과 비교해도 회사의 방향이 다르게 보입니다.
카토 씨 : 그러고 보니 전에도 어느 분이 "이상한 회사군요 "라고 했어요(웃음).
── 우리 언론의 눈으로 보고 있어도, 역시 니혼 팔콤 같은 "이상한 회사" 는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게임을 만드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해야할까요?
예를 들어 전 세가 전·캡콤에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 업체가 어떻게 만드는지는 어쩐지 알고 있지만...
카토 씨 : 저희·팔콤의 사람은 "조금밖에 없으니까"이죠(웃음).
콘도씨 : "너무 팔콤의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웃음).
── 사원 수가 거의 계속 변하지 않고 언제나 인재를 모집하고 있는데,
안정되고 고품질의 게임을 만든다는 것도 수수께끼라면 수수께끼로....
귀사가 그렇게 하고 있거나 혹은 되어 있던 "비밀"은 무엇인가요?.
카토 씨 : "보이지 않는다","망할 것 같다"라거나 "팔콤은 아직 남아 있는가" 라는 소문도 있거나 하는 것 같은데(웃음).
우리 회사는 ── 매출은 별로지만 ──, 이익률은 일본 제일이에요.굳이 반박하고 싶지도 않은데요.
── 제법 신랄하네요
카토 씨 : 게다가 적자를 낸 타이틀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어요. 아담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담한?이라고 하면?
카토 씨 : 하드가 진화하면서 어느 시기부터 규모를 확대해 가지 않으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없는 시대"가 왔군요.
지금도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현저한 예로는 스퀘어 씨처럼 CG에 주력했던 시절, 저희도 그것과 똑같은 일을 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CG에 힘을 넣기위해 "인원을 늘린다"와 같은 게임 만들기 이외의 고생스럽기는 딱 질색" 이라는 마음이 있어요(웃음).
고용 사람을 늘리면 여러가지 큰일이고 ──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하니까요.
그래서 규모를 확대하지 않아도 회사를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 "이야기를 충실한 게임을 만들자"입니다.
예를 들어 소설은 100명이 모여서 만들어도 제대로 된 것이 되지 않는 방면(웃음). 작가는 혼자서 충분하거든요.
이 방침이 잘 되면 수천명이 작용할 만한 대형 회사에도 대항할 수 있잖아요.
그 결과 생긴 묘한 게임이, 예를 들어『 영웅전설 III 하얀 마녀 』.
이 게임은 몹시 대사가 많아 문자 수가 많아요.
영웅 전설 III 하얀 마녀
1994년에 니혼팔콤에서 발매된 RPG『드래곤 슬레이어 영웅전설』 시리즈의 3번째 작품.
티라스이루[ティラスイール]의 세계를 무대로 주인공 소년, 쥬리오와 히로인 크리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본작과『영웅전설IV 주홍 물방울』『영웅전설V 바다의 함가』3탄은『영웅전설 』 시리즈의 2기인,
가가브 트롤로지라고도 불리며.가가브는 3편의 무대에 있는 거대한 대지의 균열로 세계가 3개로 나뉘어 있다.
콘도씨 : 여러 캐릭터들에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요 .당시 이런 게임은 달리 없었거든요.
카토 씨 : 이야기 위주의 방향이라면, 호기심이 대단한 오타쿠가 1명 있으면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생각도 있어서, 회사를 물량 승부의 확대 노선이 아니라 아이디어 승부로 간 것입니다.
── 역장리[逆張り]의 발상이군요.
카토 씨 : "사람을 늘리지 않으니까 회사가 늘지 않는다"라고 하면, 그것도 확실한건데요(웃음).
교제도 그렇네요. 저는 불리지 않으면 안 가거든요.
아이를 위해 게임을 만들던 팔콤 창립 전야
사토 씨: 그"역장리" 니혼팔콤은 원래 카토 회장은 어떤 경위로 창업했을까요? 거기서부터 풀어 가고 싶네요.
카토 씨 : 저는 원래 자동차 회사(히노 자동차)시스템 엔지니어였으므로 처음에는 게임보다도 기계의 기능 자체에 끌리고 있었거든요.
대체로 옛날 컴퓨터는 비싼대 비해서 디스플레이도 붙지 않았으니까요. 있어도 겨우 키보드.
나머지는 옛 SF영화에 나오는 컴퓨터처럼 늘어선 작은 전구가 계산에 맞추어 반짝반짝 빛나는 정도.
제가 직장인이었던 시절의 컴퓨터는 그런 기계였었죠.
사토 씨: 꽤 옛날 이야기군요. 1970년대 후반이었죠?
카토 씨 : 그것이 태국에 주재하던 때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방콕의 전시회에서 Apple II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것이 개인용 컴퓨터였던 데다 Apple II는 기능과 값이 그동안의 컴퓨터와 치열한 괴리가 있었죠.
당시 일에 쓰던 컴퓨터는 임대료만 매달 5,000만엔이나 내고 있었거든요.
Apple II...1977년에 미국에서 발매된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사운드 기능을 표준으로 탑재하고 있었고 별도 판매의 전용 모니터에 6~15색 컬러 표시가 가능하며 본체를 컬러 TV에 접속할 수도 있었다.
본체의 기능을 확장하지 않고 컬러가 표시가 된 것이나 컨트롤러(조이스틱)을 쉽게 접속하면서 게임 용도로도 인기가 폭발.
후에『위저드리』,『울티마』을 비롯한 수많은 명작 게임이 태어난 토양이 된 혁명적인 컴퓨터.
화상은 두대의 플로피 드라이브와 모니터를 올린 Apple II (화상은 Wikipedia에서)
사토 씨: 꽤 비싸네요.
카토 씨 : 그렇죠?"이 대여료로 Apple II를 여러대 살수 있나?"라고 생각했어요.
세속적인 이야기이지만(웃음).그 체험에서 "지금까지 수십년간 다루어 온 컴퓨터는 무엇이었나?"라고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긴 그때에는 "퍼스널 컴퓨터"라는 말은 없었지만요.
사토 씨: Apple II는 여러가지 획기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귀사의 원점에 대해서 물어 본 것은
"당시 카토 씨는『위저드리 』나『울티마 』라든지, 그러한 게임에 꼭 빠졌던 거겠지"라는 예상 때문인 겁니다만...
설마 그것 이전의 이야기가 나올줄이야(웃음).
위저드리....1981년에 Sir-tech사에서 발매된 AppleII용 RPG.
제작자는 로버트 우드헤드 씨와 앤드루 그린버그 씨.
3D던전, 명령식 전투 등 컴퓨터 RPG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스터 피스의 1작.
울티마……리처드 게리엇 씨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게임『Akalabeth』을 시조로 한 RPG시리즈.
1979년에는 이 제품판도 발매되어 다음 1980년에는 시리즈 1탄『 Ultima』가 발매.
2D필드를 채용한 첫 RPG로『위저드리 』과 함께 컴퓨터용 RPG의 창시 작품.(화상은 Wikipedia에서)
카토 씨 : 게다가 오래 전의 이야기네요(웃음).
뭐, Apple II와의 충격의 만남 이후 "개인용 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래도 회사를 독립할 줄은 몰랐습니다.
취미로 컴퓨터를 시작하니 "할 수 있는 것은 게임 정도밖에 없네"와 같아서(웃음).
실용적인 스프레드 시트가 나오기 오래 전 이었으니까요.
사토 씨: 이제 잠시 후네요.
카토 씨 : 뭐, 결국 12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었는데.계속 함께 일을 하던 이치카와 마사카즈 씨라는 남자가 있습니다만,
그에게 제가 회사를 그만둘 때 "기업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죠?"라고 물었더니"자금 사정이잖아?"라고.
저는 그 교환[やりとりを]을 계속 기억하고 있던 탓인지 지금까지 돈으로 고생했던 적은 없었어요. 우리는 무차입이니까요.
자금 조달에 고생하지 않는 방법은 " 없는 돈은 쓰지 않는다". 이것이지요(웃음).
그리고 이치카와는 이것이 대단한 인물로, 콘도처럼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히노 자동차[*]의 회장까지 된 남자입니다.
※히노 자동차
트럭 버스 제조 판매를 다루는 일본 자동차 제조 회사.
1942년 종합 차량 제조 업체였던 디젤 자동차 공업에서 특수 차량 제조 부문의 히노 제조소가 분리 독립하고 히노 중공업을 설립.
이것이 히노 자동차의 전이다. 그 후 몇번의 개칭을 거쳐서 1959년에 히노 자동차 공업 주식 회사가 되어 본사는 현재도 도쿄도 히노 시에 있다.
콘도씨 : 사장이 되었을 때에 "넌 자금 조달에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웃음).
카토 씨 : 태국 방콕 주재에서 귀국한 뒤 AppleⅡ을 사서 서투르면서도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컴퓨터 잡지『아스키』간 창간한 때는 프로그램 목록이 지면에 실리고 있어. 그것을 찾아 자신이 개조 하며 놀고, 같은 것을 하고 있었군요.
당시 5세의 아이에게 놀게 해보거나. 그러면 아이가 "아빠, 총알이 금방 없어지니까, 더 나오도록"이라거나
"이쪽에서 적이 많이 오니까, 별로 오지 않도록 해줘!"라거나 "더 저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줘!"라든가, 여러가지 주문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날 밤은 철야로 고치지(웃음).
사토 씨: 친근한 아버지네요(웃음).
카토 씨 : 그래서 다음날 "어떻게됬어?"라고 아들이 물어봅니다(웃음). 그 반복이 처음에 게임을 만든 추억이네요.
사토 씨: 언제쯤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게되었나요?
카토 씨 : 독립한 뒤에도 시스템 엔지니어의 일이 괜찮은 돈이 되었어요. 당시는 기술자가 아주 적었기 때문이죠.
사토 씨: 그대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이어지는 길도 있었겠네요?
카토 씨 : 아니, 그래도 "그럼 재미 없다"라고. 일의 내용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니까요.
그래도 일하고 얻은 자금을 바탕으로 숙원이었던 Apple Computer의 판매 대리점을 연 것입니다.
그런데 비싼 Apple제품은 하루 1대 팔릴까말까여서 가게 보는 사람이 한가로울 따름이었습니다.
한가해서 시험적으로 Apple용 게임을 수입하고, 그것을 인터넷에서 팔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게임을 파는 가게들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게가 한가할 때는 게임을 마음대로 꺼내서 스스로 놀거나요(웃음).
사토 씨: 심한 점원이다(웃음).
카토 씨 : 그 중 "이런 게임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가게에 출입하던 사람들에게
"함께 만들지 않을래?"라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본격적인 게임 만드는 계기죠.
예를 들어『 드래곤 슬레이어 』는 당시 놀던 Apple의 RPG 같은 내용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RPG은 아니지만 그런 게임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당시 하고 있고 재미 있다고 생각한 게임은 "먼저 자신의 홈(집)이 있는데 그곳에 돌아오면 체력이 회복하는 구조"였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적과 싸우고 또 집에 와서 회복된다.
그렇게 되면, 멀리 외출할 때마다 위험한 것 아닌가?그것이 꽤 재미 있고, 그런 게임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1984년에 컴퓨터용으로 발매된 액션 RPG의 선구자적인 작품
게임의 목적은 적과 싸우면서 필드를 탐색하고, 어딘가에 있는 4개의 왕관을 탈환하기.
적을 타도하자고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필드상의 집에 돌아오면 레벨이 올라간다.
필드의 벽을 뚫어 길을 만들거나 벽을 이동시키고 적이 발생하는 무덤을 둘러싸 버리거나, 퍼즐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특징.
사토 씨: 당시는 어드벤처 게임 속에도 액션 요소가 있는 것도 있었고, RPG에도 이미 여러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군요.
카토 씨 : 니혼팔콤이 최초로 주목 받은 것은『데몬즈링』으로 이는 당시 유행했던 그림 연극 같은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올 머신어로 쓴 첫 게임이었죠. 그 전까지는 베이직으로 충분했어요.
특히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나 모두가 깜짝 놀랄 기믹을 쓰고 싶을 때는 그곳만 머신어로 썼습니다.
데몬즈 링……1984년에 니혼팔콤에서 발매된 AVG.
마왕인 론에게 파괴된 엘미어국의 왕자·쿠로우리가 주인공.
명사+동사를 키보드에서 입력하면(예"테가미 토르") 게임의 세계에 간섭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마왕인 론의 타도가 게임의 최종 목적.
사토 씨: 개발에는 카토 씨 자신도 상당히 관련되었나요?
카토 씨 : 개입했다고 해도 그때는 이제 놀고 있는 것으로 모두 와이와이 놀면서 만들던거라.
도중에 "슬슬 게임 센터에 갈게"라거나 "이 게임을 참고하자" 같은.(웃음).
예를 들어……당시 세가 씨의『펭고』를 좋아했어요.
"그거 얼음 블록을 띄우지?"
"이거 재미 있어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에서도 블록을 띄우도록 할께".
펭고……1982년에 세가(현재의 세가 게임스)에서 발매된 아케이드용 ACT.
펭귄 펭고을 조종하며 적의 눈,비에 얼음 블록(아이스 큐브)를 부딪쳐서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
각 라운드에는 아이스 큐브 외에 3개를 일자로 나열하면 보너스 점수를 주는 다이아몬드 블록도 있다.
사토 씨: 그 때 직원은 몇 명 정도 있었습니까?
카토 씨 : 전형적인 가족 상점이라 직원은 없었어요. 우리 아내가 경리를하고 있고 (웃음).
나머지는 모두 아르바이트입니다. 프로그래머의 키야 요시오군도 아르바이트.
그는 자동차 정비사를하고 있고, 언제나 일 후에 기름으로 새까맣게 된 손 그대로 가게에 와서 있었습니다.
그가 너무 열중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직장에서 매일 할 수있을거야"라고 스카우트했습니다 (웃음).
사토 씨: 그렇게 와글 와글 과잉하면서 만들고 있었다,라는 거군요.
카토 씨 : 초대 「제나두」를 만들 때, 제가 만든 7면이 보로쿠소[ボロクソ] 말했다던가 (웃음).
제나두……1985년에 니혼팔콤에서 발매된 액션 RPG.
플레이어는 모험자가 되어 사이드 뷰에서 전개하는 전 10스테이지를 탐색.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킹 드래곤 가르시스를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
당시는 주인공의 몇배의 크기가 있는 캐릭터는 데카 캐릭터로 불리며 본작에서도 8비트 컴퓨터에서
데카 캐릭터의 보스를 움직인다는 사실에 많은 플레이어가 놀랐다.
콘도씨 : 그랬습니까.(웃음). 처음 들었습니다.
카토 씨 : 『제나두』의 컨셉은 "만들고 있는 인간이" 놀면서 "게임을 만들자" 라는 비교적 독특하게 생각하고 있어.
"놀면서 만들고 있으면 실력에 관계 없이 어차피 재미 있는 것이 있잖아요 "라는 자신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콘도씨 : 그건 저도 갓 입사한 젊은 시절에 들었습니다. 그런 조언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 시스템으로 할지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었지요.
카토 씨 : 시나리오가 확고한 게임은 만들고 있는 측은 꽤 즐기지 못하거든요.
『 이스 』는 시나리오가 있어 내용을 알지만 "만드는 측"은 즐길 수 없습니다.
이스……1987년에 니혼팔콤에서 발매된 액션 RPG.
빨간 머리의 모험가 아돌·크리스틴의 모험을 그리는 시리즈의 1탄. 1탄, 2탄은 전후 편의 같은 구성으로
아돌의 모험을 통하여 고대 왕국 이스의 수수께끼에 다가선다.
당시 어려운 게임이 되고 있던 컴퓨터용 RPG에 " 상냥함"이라는 컨셉을 도입하여
누구든지 놀 수 있도록 한 것에서 대히트.현재 진행형의 인기 RPG시리즈.
콘도씨 : 그래서『이스』의 신작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시나리오를 생각하지 않고 놀자"라고 언제나 말하죠.
그건 아마 회장의 영향입니다.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액션을 주체로 게임을 진행되어 그것이 재미있으면 되잖아"라고.
거기에 스토리가 끼어 있다면 더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좋은 액션 게임이 될 것 같은데 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이스』는 "시나리오 선행" 이 아니고"액션이 중심" 그래서 "게임 플레이를 먼저 생각하는 "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게임 업계에서는 드문 IP전략
── 카토 씨와 사토 씨, 두분의 교제는 상당히 긴 것 같지만 원래 처음 만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토 씨: 처음에는 물론『 콤프티크』의 취재엿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콤프티크 』는 팔콤 타이틀을 표지에 쓸때가 많았습니다.
편집 회의는 표지의 로고를 넣은 켄트지를 벽에 붙이고, 표지에 부르는 문자를 넣어 가는 것으로.
"잡지는 표지가 생명이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표지의 카피를 보는 것이 편집 회의였습니다.
그때『드래곤 슬레이어 』나『제나두 』라고 써 있어도 팔릴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콤프티크……1983년『 더 텔레비전 』의 별책으로 창간, 제3호부터 격월간이 된 미디어 믹스 잡지.
잡지명은 컴퓨터와 부티크를 더해 명명되었다.
초대 편집장은 잡지의 기획 제안자인 사토 오타츠오 씨. 이 잡지에서는 코믹 잡지『코믹 콤프』도 나와
『이스』,『소사리안』 등 니혼팔콤 작품의 대부분이 만화화되고 있었다.
KADOKAWA계 컴퓨터 게임 잡지의 시조인, 동사의 게임·애니메이션 계 미디어 믹스 전략의 시작이기도 하다.
카토 씨 : 그 때부터 정말 사토 씨에게는 많이 신세를 지고있습니다(웃음). 독자의 인기 랭킹에 우리 게임을 꼭 넣어주었죠.
사토 씨: "넣어 주고" 라고 말하면 좀 어폐가 있잖아요(웃음). 당시부터 팔콤 게임은 인기가 좋았어요.
카토 씨 : 제가 기억하는 것은 사토 씨에게 상담을 제의했던가? 저는 옛날부터 캐릭터를 기르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어『헬로우 키티』 같은 것을 말이죠.그때는『키티』도 없었지만요?
사토 씨: 캐릭터 비즈니스를 의식한 계기는?
카토 씨 : 처음에는 그냥 막연히 생각했는데,『울티마』가 나왔을 때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이런 녀석이다"라면서도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사토 씨는 옛날 장난감 업계 신문 기자를 해서,"장난감 업계에서 캐릭터 비즈니스에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줘"라고 상담했거든요.
사토 씨: 제가 소개 했지요?
카토 씨 : 그렇죠.
사토 씨: 산리오 씨라던가?
카토 씨 : 산리오 씨는 사토 씨의 부하로 소개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사토 씨에게 소개 받은 것은 인형을 만드는 곳에서…….
사토 씨: 하사 상품 연구소네요. 하사 히로아키[葉佐弘明] 씨라는 캐릭터 머천다이징의 권위가 있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 료고쿠 역 앞 롯데리아에서 약속했었지요. 기억 났습니다(웃음).
──"게임의 캐릭터를 IP비즈니스에 도움"주겠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드무네요.
사토 씨: 당시는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머천다이징 ── 우리들의 장사로 하면『제나두』 등의 "만화"를 함께 받았습니다.
카토 씨 : 그 당시의 RPG라면, 캐릭터가 좀처럼 없었요. 자신이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라 어떻게도 안 되는거였죠(웃음).
사토 씨: 그렇게 생각하면 니혼팔콤은 게임 관련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선례 일지도요?
카토 씨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 후, 산리오 씨의 캐릭터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거든요. 그때 그 분이 말한 것이 몹시 인상적이고, 지금까지 그것을 지켰습니다.
즉."캐릭터를 키우는 요령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 하고 있는 측이 질리지 않는 것"이라고.
참으로 간단한 말이지만, 그것이 심하게 이해가 떨어졌거든요. 실제로 오래하다 보면 질릴 것이지요 게임에서도 뭐든지 그러니까요.
그 말을 듣고부터 여러가지로 둘러보면, 확실히 중요한 캐릭터는 그런 궁리를 하면서 키우고 있는 것을 알겠어요
가장 쉬운 예는 『미키 마우스』라고하면 90년 『피터 래빗』은 100년 이상 하는 것이지만(웃음).
『 키티 』도 40년 이상은 계속되고 있죠?
사토 씨: 1975년부터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카토 씨 : 그 분의 말을 좌우명처럼 만들어 지금까지 완고하게 해온 것은 제 성격 탓도 있네요.
사토 씨: "캐릭터를 키우는 데는 만드는 측이 지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다"라는 격언을 얻은 카토 씨가 RPG를 만들어 간 이유는?
카토 씨 : 자사의 콘텐츠를 여러 회사에게 "라이센서"로 제공하는 ── 그런 타사의 방식을 보고
어느덧"나도 그러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어 다녔는데 그것보다 우선하고 싶었던 것은 RPG제작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처음부터 타이틀 로고도 캐릭터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즉, 로고 부터 우리가 라이센서로서 타사에게 제공할 수 있는 IP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제나두』를 만들었을 때는 로고에 심취했습니다. 단지 게임의 이름이 아니라 그런 디자인의 엠블럼과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당시는 디자이너가 없었기 때문 외주로 부탁하지만 좋지 못해서 결국 휴일에 출근 해서 직접 그린 겁니다.(웃음)
그것을 랜더링 한 거죠.
『제나두』 타이틀 화면
사토 씨: 그 로고는 카토 씨가 직접 디자인했어요.
카토 씨 : 캐릭터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니까요.
콘도씨 : 저희들에게 자사 타이틀을 다른 플랫폼에 이식하다면
그것보다는 "신작을 만들어"라고 가토씨에게 소리도 들었어요.
신작은 폐사의 스태프에게 밖에 못 만들니 거기에 주력하는 게 낫다고.
이식을 우리들이 하면 꼭이라고 할 정도로 추가 요소를 넣거든요,
그것에 대해서도 당시 많이 혼 났어요(웃음). 이식에 1년 하면, 그만큼 신작 개발도 1년 늦으니까요.
타이틀을 이식으로 수평 전개할 경우에는, 여러 회사와 짜며 "다른 곳의 노하우를 살린다 "라는 장점이 있고요.
『파자나두』라는 타이틀 이름을 듣고"엣!?"이라고(웃음)
사토 씨: 그것까지 있던 컴퓨터 게임 시장에 새로 게임 전용기 시장이 생길 때가 비즈니스의 전기이였죠.
당시 팔콤은 패밀리 컴퓨터 시장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패미컴 소프트를 내려면, 컴퓨터 게임과 달리 "발매 전에 상당액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카토 씨의 자금 사정의 사고 방식으로 보면 참여하지 않는 것도 수긍이 갑니다.
카토 씨 : 지금은 "스마트 폰 게임을 내지 않으면 게임 회사가 아니다"라고 이야기되거나 하지만요(웃음),
패미컴이 나온 때는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할까"라고 생각한 적은 있네요.
그 무렵에 같이 창업한 헹크 씨[*](전 BPS를 설립한 헹크·브라우아 로저스 씨) 비롯한
경영자끼리 친하고, 정보 교환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자금적인 면에서도 우리에게 안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패미컴의 카세트는 롬 기판이었기 때문에 제조까지 3개월 정도 걸리거든요.
그러면 어느 정도 예상 생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000개밖에 짓지 않은 카세트는 절대 1,000개밖에 팔리지 않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제조 대금은 모두 선불로 초기 투자에 5억엔 정도는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게다가 이익률이 매우 낮았다니까요. 롬은 비용이 들고 닌텐도 씨의 몫이 많았는데…….
컴퓨터용 게임에서 사용하는 플로피 디스크의 원가도 당시에는 나름대로 비싸지만,"
높다"라고 해도 뻔하니까요. 처음에는 미디어도 카세트 테이프였고요(웃음).
※ 헹크 브라우아 로저스[ヘンク・ブラウアー・ロジャース]
1953년생의 네덜란드인 게임 제작자, 기업가. 1983년에 일본에서 주식 회사 BPS(Bullet Proof Software)을 설립하고
컴퓨터용 RPG『 더 블랙 오닉스 』을 발매하고 대히트가 된다.
그 후속편의『더 파이어 크리스털』, 컴퓨터용『 테트리스 』 등을 발표.
1996년에는 테트리스의 작가 알렉세이 파지토노후 씨와 함께 테트리스 홀딩스와 자회사의 테트리스 컴퍼니를 설립.
이 회사는『 테트리스 』의 판권 라이선스를 관리하고 있다.
사토 씨: 확실히 패미컴의 사업은 그런 면에서는 리스크가 컸지요.
카토 씨 : 그래서"아직 진입하지 않아도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참가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발하고 1회 실패하면 회사가 기울어버려요.
플랫폼의 사정으로 발매일을 늦추고 할 것도 있어서, 저 같은 회사가 만약 그것을 당하면 한번에 망해버리죠.그런 게 무서웠어요.
저는 신중한 인간이라 큰 리스크 있는 주제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가 크게 늘지 않았죠(웃음).
사토 씨: 그당시에도 허드슨은 초강수를 두고 그야말로 매출이 300~400억까지 한꺼번에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러한 타사의 동향을 보면서 서두르지 않았나요?"시대에 뒤질지도 모른다"라고.
카토 씨 : " 큰 도박에 나서고 싶어!"라고 할 정도로 급해진 기억은 없어요. 그들은 그들의 방식이 있으니까.
라고 해도, 억지 같은 것도 몇퍼센트인지는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넘어지면 안좋죠(웃음).
사토 씨: 그런 가운데 1987년 허드슨부터『파자나두』[*]가 나옵니다.
※파자나두……패밀리 컴퓨터용으로 1987년에 발매된 액션 RPG.
세계 수에 운석이 떨어진 것을 계기로 괴물들이 나타게 된 세계에서 평화를 되찾고자 싸우는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다.
컴퓨터용『제나두』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지만, 이야기나 게임 시스템은 크게 다른 액션 요소가 강해지고 있다.
카토 씨 : 왜 그런 형태로 되었는지는 저도 잘 기억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나 항상"수동적"이라서요.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랄까요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고 온 사람하고만 교재하고 같은(웃음).
그 때는 허드슨에서 창업주의 쿠도 유지 씨의 동생 히로시 씨가 더블 정장을 입고 왔거든요. 큰 "목각 곰"을 안고요.
사토 씨: 바로 홋카이도 선물(웃음).
카토 씨 :테이블 위에 그 목각의 곰을 사이에 두고 "실은『 제나두』을 하고 싶은데"라고.
그때는 이미 힘이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도 유명한 프로듀서가 와서 "우리는, 오리지날리티 제로입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웃음)
허드슨은 그런 재미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사토 씨: 마찬가지로 패미컴 소프트로서, 1987년에 남코 씨부터『드래곤 슬레이어Ⅳ 드래슬리 패밀리 』가 발매되었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IV 드래슬리 패밀리……1987년에 패밀리 컴퓨터 MSX용으로 발매된 액션 RPG.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의 4탄에 해당하는 주인공은 나무꾼의 워게 일가.
애완 동물의 포치를 포함 5명의 캐릭터 중 한명을 뽑아 사이드 뷰 화면의 필드와 던전 등을 탐색.
어디에 있는 4개의 크라운을 발견하여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화상은 MSX2판의 것
카토 씨 :그것도 여러가지 사연이 있어서『제나두』 가 히트하기 전 제가 게임을 판매하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판매하러 갔다"라고 말해도 지금까지 37년의 역사에서 4번 정도밖에 없는데.
어느 사람으로부터 남코를 소개 받고, 남코의 담당자 분에게 "프리젠테이션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어느 겨울 날에 찾아갔어요……라고 콘도는 여러번 듣고 지겹잖아?(웃음).
콘도씨 : 처음이거든요.
카토 씨 :처음인가? 그것은 평생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남코의 본사가 오타구의 야구치노 와타시에 있었을 때 ── 눈폭풍이..
역에서 본사까지 필사적으로 눈을 헤치고 갔어요. 그래서 실컷 기다린 끝에 프리젠테이션을을 했더니
그의 심금에는 걸리지 않은 것 같아 쌀쌀했습니다."억울하다"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간 것인데, 그리고 1년 또는 반년 후, 그분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그때쯤『제나두』가 대히트 했기에 그것을 알고 "카토 씨 전에 가져 『제나두』 를 우리들이 하고 싶은데"라고.
"네!?좀 더 일찍 말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허드슨에게 팔았어요 "라고(웃음).
일동: (웃음).
카토 씨 :허드슨이『제나두』를 하게 된 거지만 그때는 타이틀의 상표 등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말이죠.
당시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회사는 대기업 이외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계약한 뒤 허드슨이 상표를 조사하면 간사이 쪽에 자낙스라는 회사가 있고,"그 상표가 등록되었기 때문에, 바꾸기로 했다"라고.
그 때는 "제나두"라는 이름의 영화나 베스트 셀러 책이 있었던 거지만 허드슨은 상표를 신경을 쓰기 시작한 무렵으로,
"패미컴 제나두"그러니까『파자나두』로 바꿉니다란 말에 "뭐에요 그게!?" 라고.(웃음).
뭐, 그것은 좋은데 내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그럭저럭 재미 있는 게임이라
『제나두』의 이름이 없어도 좋았잖아?라고 지금도 생각하지만요.
사토 씨: 하지만 많이 팔린 거죠?
카토 씨 :완매였어요. 일본에서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닌텐도가 해외에 판것 그것이 100만개 가까이 팔렸나?
그렇지만"닌텐도 판매, 허드슨 개발"그래서, 저에게 들어오는 돈은 매우 적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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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대생 프라이빗 얘기는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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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콤의 저력은 진짜 영웅전설 가가브시리즈부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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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더있을거같은데 감질맛 나네요 ㅎ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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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봣어요 팔콤은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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