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스트 리메이크 | 출시일 | 2021년 08월 27일 |
개발사 | 사이언 월드 | 장르 | VR, 퍼즐 |
기종 | PC, XBO, XSX | 등급 | 등급 미분류 |
언어 | 한국어 지원 | 작성자 | PforP |
세바스찬: 그는 성벽 뿐만 아니라 집들도 지어놓았소
안토니오: 다음에는 그가 또 어떤 불가능한 일을 쉽게 만들어 놓을까?
세바스찬: 나는 그가 이 섬을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귀국하여 그것을 아들에게 사과 하나 주듯 선물할 것이라 생각하오
안토니오: 그리고 그 씨들은 바다에 뿌려서 더 많은 섬들을 만들어낼 거요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2막 1장 중
"수수께끼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제 의심할 수 없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사건들을 보았고, 이제는 에어턴도 그 사건들을 모두 알아야 할 때가 됐네. 여러 장면에 등장하여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그 친절한 인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무슨 속셈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우리를 도와준 뒤에도 모습을 감추고 있을까?"
-쥘 베른, '신비의 섬' 3권 중
*본 리뷰 중 VR 파트는 오큘러스 리프트로 진행했습니다.
"선생님, 멀티미디어와 하이퍼링크를 위한 어드벤처 섬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랜드 밀러 (왼쪽)과 로빈 밀러 (오른쪽). 하이퍼카드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개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언 월드 게임을 이해하려면 매킨토시의 하이퍼카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커트 코베인이 막 너바나를 결성한 1987년, 코베인 고향인 워싱턴 주에는 랜드 밀러와 로빈 밀러라는 형제가 살았다. 형 랜드 밀러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한 뒤 은행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동생 로빈 밀러는 음악을 배운 예술학도였다. 두 사람은 집 지하실에서 (훗날 사이언 월드로 이름을 바꿀) 사이언 프로덕션이라는 가내수공업 개발사를 차렸다. 사실 두 사람은 게임 매니아나 전문적인 개발자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로빈은 창립 당시만 하더라도 자기 컴퓨터가 없는 순수한 예술가에 가까웠고, 그림을 그리거나 스토리를 짜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들의 초기작 역시 본격적인 게임보다는 아동용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대신 이들은 던전 앤 드래곤과 고전 텍스트 어드벤처인 조크 시리즈의 팬이었는데, 두 작품 모두 미스트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업계에 뛰어든 1980년대 후반, 컴퓨터 그래픽은 '킹스 퀘스트'나 '울티마' 초기작에서 볼 수 있던 도트에서 벗어나 섬세한 2D 그래픽을 뽑아낼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 밀러 형제가 초창기에 애용했던 애플 매킨토시 계열은, 그래픽에 특화되어 있는데다 하이퍼카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하이퍼카드는 하이퍼링크와 간단한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제공해 복잡한 컴퓨터 언어를 배울 필요 없이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였다. 요새로 말하자면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렸지만) 플래시 같은 멀티미디어 애플리케이션 제작 프로그램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초창기 사이언 프로덕션 게임들은 이런 하이퍼카드로 만든 아동 대상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이었고, '하이퍼링크'라는 개념은 '미스트'를 비롯해 이들이 만들 게임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미스트 시리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쥘 베른의 '신비의 섬'
게임 중에서는 조크 시리즈가 큰 영향을 미쳤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나 콜드 워를 한 사람이라면 봤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트'는 그들에게도 새로운 모험이었다. 우선 이 게임은 그 동안 아동용 게임을 만들었던 형제의 첫 '성인' 대상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책을 열었다가 미스트라는 섬에 떨어지게 되고, 미스트 섬과 책으로 연결된 다양한 섬들을 여행하면서 퍼즐을 풀어야 한다. 사실 '미스트'를 만들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형제가 처음에 만들려고 했던 게임은 'The Gray Summons'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을 받으러 찾아간 액티비전은 형제에게 그냥 하던 대로 아동용 게임을 만들라고 말했다. 이렇게 프로젝트 투자를 받지 못하는 동안 한동안 가난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내 일본 선소프트 (블래스터 마스터, 와쿠와쿠7 제작사기도 하다.)에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 밀러 형제는 본격적으로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밀러 형제는 만들어야 할 게임이 '미스터리'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밀러 형제가 언급한 '미스터리'는 본작의 게임 디자인을 설명해주는 단어기도 한다.
개발 도중 밀러 형제는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는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스타워즈', 상술한 '조크 시리즈', 그리고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이었다고 한다. '나니아 연대기'와 '스타워즈'가 향후 시리즈가 구축할 거대한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면, '조크 시리즈'와 쥘 베른은 게임의 서사적 방향성과 분위기 설정에 영향을 미쳤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인 드니D'ni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스팀펑크와 마법 간의 결합이 두드러진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스팀 펑크 장르의 선조이자 예스러운 모험담의 달인이었던 쥘 베른과 마법과 지하 던전, 스팀 펑크, 현대 문명이 뒤섞인 '조크 시리즈'의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은 제목에도 영향을 미쳤다. 멀리 갈 것 없이 '신비의 섬' 영제인 The Mysterious Island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스트'가 나오던 1993년은 CD-ROM의 등장으로 그래픽 어드벤처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사진은 '7번째 손님'
그렇게 완성된 '미스트'는 멀티미디어를 내세운 1인칭 어드벤처 게임이 되었다. 사실 이런 멀티미디어를 무기로 내세운 1인칭 어드벤처 게임은, '미스트'말고도 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형제가 좋아했던 조크 시리즈가 액티비전으로 넘어가서, '미스트'보다 9일 앞서 '리턴 투 조크'라는 1인칭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을 발매했다. 여기다 '미스트'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7번째 손님'도 밀러 형제가 한창 개발하던 와중 시연 데모가 공개되었다. 심지어 상술한 선소프트에서도 밀러 형제에게 '7번째 손님' 같은 걸 만들어볼 수 있겠냐는 제안을 했으니 간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기술적인 면모에서 비교해보면 제한적인 애니메이션이 포함된 슬라이드 쇼에 가까웠던 '미스트'보다는 프리렌더링을 쓰긴 했지만, 부드럽게 유영하면서 이동하는 '7번째 손님'이 좀 더 인상적이기도 했다.
다만 세부적인 디자인에서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먼저 '리턴 투 조크'는 시점만 1인칭이지 고전적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에 가까웠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명령 아이콘이나 인벤토리, 대화 시스템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리턴 투 조크'는 어쩌다가 '미스트'와 얽혔을 뿐, 기존 1인칭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웠다. 한편 '7번째 손님'는 캐릭터를 최소화하고 인벤토리나 대화 시스템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미스트'랑 공통점이 있긴 하나, 퍼즐 디자인이나 공간 연출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많다. '7번째 손님'의 퍼즐 디자인은 전통적인 장난감-퍼즐 모음집에 가깝고, 실제 진행 역시 개별 퍼즐을 연속해서 풀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게임 내 공간 역시 퍼즐이라기 보다는 퍼즐을 모아둔 보관소에 가까웠다.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부분은 '관습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밀러 형제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게임 '맨홀'. '미스트'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매킨토시는 마우스 보급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킨토시 사용자였던 밀러 형제가 마우스 중심 게임을 만드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공간과 퍼즐 디자인의 유기적인 결합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미스트'의 기본 디자인 대다수는 '맨홀'에서 출발한다. 밀러 형제는 '맨홀'에서 무수한 1인칭 장면-카드들을 하이퍼링크 개념으로 엮은 뒤 클릭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만들었다. '미스트' 역시 이런 디자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2500프레임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하이퍼링크에 기반한 게임 디자인은 상술한 하이퍼카드의 공이 크다. 실제로 '맨홀'과 '미스트' 모두 하이퍼카드를 개발 엔진으로 삼아 만든 게임이다. 두 사람 모두 전문 프로그래머라 보기 힘들었으니 (랜드는 은행 프로그래머였고, 로빈은 창업 초기엔 아예 개인 컴퓨터도 없었다고 한다.), 주요 툴로 쓴 하이퍼카드의 방법론이 게임 디자인에 짙게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스트' 서사에서도 '연결'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두 형제가 서사를 짜면서 의식적으로 반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스트'로 넘어오면 밀러 형제는 발전한 그래픽과 함께, 하이퍼링크 디자인을 활용해 즉물적인 상호작용 요소를 강화했다. 그리고 이런 액션을, 기술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마우스 조작과 일치하려고 했다. 오리지널 '맨홀'에서는 없었던 버튼을 누른다던가 다이얼이나 핸들을 돌린다든가, 문을 닫는 액션이 대폭 추가되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아이템/인벤토리 개념을 비롯해 인터페이스 디자인 역시 최소화되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미스트'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직관적이고 즉물적인 게임이 되었다. 플레이어가 행동 아이콘을 눌러 지시하던 기존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들과 달리, 게임 속 공간과 상호작용을 플레이어가 직접 '접촉'해 퍼즐을 푸는 디자인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번째 손님'과 달리 3D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부드러운 이동을 포기한 이유도, 이런 즉물적인 상호작용/조작 디자인을 당시 기술에 맞춰 구현하기 위한 방법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각 에이지가 로딩을 기점으로 분리된 이유도 세가 새턴 메모리 버퍼가 적어서 선택했다는 기록이 있다.
퍼즐 디자인 역시 확연히 달랐다. 물론 미로 찾기라던가, 주어진 실마리에 따라 답을 도출하는 정통적인 어드벤처 스러운 퍼즐도 있었지만, '미스트'는 퍼즐을 입체적인 스테이지 디자인에 반영하려는 게임이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채널우드 에이지에 있는 수도관 퍼즐이 있다. 이 수도관은 섬 동쪽 끝에 있는 풍차에서 물을 끌어온다. 그리고 이 수도관에 있는 물을 기계가 있는 지점까지 보내야, 기계가 작동한다. 그렇기에 엘리베이터나 다리를 열기 위해서는 각 지점마다 있는 수도관 밸브를 돌려 원하는 방향으로 물을 보내게 만들어야 한다.
즉 밀러 형제는 입체적인 공간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공간 그 자체를 퍼즐로 만들고 있다. 여러 인터뷰를 찾아보면 밀러 형제가 퍼즐과 공간 설계 간의 결합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랜드 밀러는 2013년 20주년 회고 인터뷰에서 "우리는 공간 설계자였다. 지도가 서사를 만들었다."라고 발언했으며 2016년 인터뷰에서는 시리즈 개발에 있어서 퍼즐과 환경, 서사 간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다 퍼즐 설계에 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퍼즐을 좋아하지 않으며, 좋은 퍼즐은 세상의 일부이며 관찰과 상식을 통해 풀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조크' 시리즈 팬이었다고 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리턴 투 조크'가 '미스트'랑 디자인의 유사성을 지적 받은 걸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이전에도 1인칭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미스트'는 '울펜슈타인 3D'와 더불어 1990년대 초반 이후 1인칭 게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최소화된 설명으로 서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게임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비화가 있다. '미스트'는 실제 제작에 들어가기 전, 던전 앤 드래곤 TRPG로 게임 디자인을 재현해 테스트 플레이했다고 한다. 이 비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먼저 '미스트'는 롤플레잉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니다. 애시당초 미스트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는 유령에 가까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당연히 능력치나 전투도 없다.) 그렇다면 이 게임 디자인을 왜 굳이 TRPG로 재현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면, TRPG의 큰 전제 중 하나를 밀러 형제가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바로 '마스터가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플레이어가 탐색하고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밀러 형제는 노련한 TRPG 마스터가 만들어내는 '암시'와 '분위기' 그리고 '단서'를 쫓아 플레이어가 추리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매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형제가 조크 시리즈 팬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턴 투 조크' 이전 조크 시리즈는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를 이어받아 그래픽이 없는 텍스트 어드벤처 (정확히는 인터랙티브 픽션)의 정체성이 강했다. 중후기부터 제한적으로 그래픽이 도입되었지만, '조크'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이미지를 배제하고 1인칭 텍스트로 공간과 상황을 묘사하는 게임이었다. 이 텍스트를 읽고 플레이어는 주어진 상황에 맞는 명령어를 입력해 진행해야 한다. '조크' 시리즈의 이런 특성은 어드벤처 게임이 어느정도 TRPG에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후 과도기를 거쳐 킹스 퀘스트 1에 이르러 어드벤처 게임은 본격적으로 그래픽 공간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킹스 퀘스트 1'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어드벤처는 3인칭 시점 그래픽으로,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분리되어 있었다. '미스트'는 그 점에서 1인칭으로 진행되는 인터랙티브 픽션에서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을 다시 생각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 끝에 형제가 내놓은 답은, 텍스트에 기반한 설명을 최소화하고 즉물적인 조작과 시청각적 언어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스트'의 서사는 지도가 서사를 만들었다는 얘기에 걸맞게 생각보다 단출하다. 모험에 비해 실제로 일어나는 '액션'이 적은 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설명도 적은 편이라 설정에 대한 설명 역시 도서관에 있는 아트러스의 일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그나마 게임의 첫 힌트라 할 수 있는 아트러스가 캐서린에게 남긴 쪽지도, 지나치게 설명이 없어 헤맸다는 테스트 플레이 의견에 따라 추가되었다고 한다. 밀러 형제가 설명적인 서사 전개를 얼마나 피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설명의 최소화가 마냥 성공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제법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랑 내내 소통하는 캐릭터는 아트러스가 아니라 문제 있는 두 아들이다. 아트러스는 마지막에나 등장하고 플레이어는 도서관에 두 아들을 만나게 된다. 두 아들은 책에 갇혀 플레이어에게 페이지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책에 갇힌 아들들 명령을 들으면서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아들들이 남긴 흔적들을 접하게 된다. 이런 흔적에 대한 플레이어의 판단이 게임의 멀티 엔딩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서사에 대한 밀러 형제의 방향성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밀러 형제와 휘하 제작진은 비주얼 아티스트라는 자격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는 제작자긴 하다. 지금 봐도 아름다울 정도.
게임플레이에서 음향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게임이기도 한데, 특히 배경 음향과 게임 간의 연계가 인상적이다. 음악도 좋다.
최종적으로 '미스트'는 텍스트가 아닌 시청각적 언어가 '서사'를 들려주고, 그것이 큰 매력인 게임이 되었다. '미스트'를 싫어하는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 팬이라도, '미스트'가 환상적인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러 형제는 쥘 베른과 스팀펑크을 인용하면서도 상당히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톱니바퀴와 물에 잠긴 배, 지하의 기계 장치들, 물 한 가운데 서서 시계 바늘을 맞추면 길을 내주는 시계탑, 나무 위에 매달린 방갈로들과 다리, 기계를 조작하는 방향에 맞춰 돌아가는 거대한 건물, 시루스와 아셰나가 각자 남긴 폭정의 흔적들... '미스트'의 세계는 신비롭고도 초현실주의적인 폐허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비주얼이 CD-ROM 혁명과 만났으니 당시 처음 이 게임을 접한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 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주얼만큼이나 주목받아야 할 또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음향'이다. 핵심 제작자 중 하나인 로빈 밀러가 음악가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스트'는 루카스아츠가 1990년 발매한 걸작 어드벤처 '룸Loom'에 이어 음향과 연계된 게임 플레이 디자인을 내세우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룸Loom'은 음표를 퍼즐 풀이의 도구로 만들면서, 초창기 유성 게임으로써 음향과 퍼즐 디자인을 결합하는데 성공한 게임이었다. '미스트'는 거기서 더 나아가 진행과 무관하게 쉼없이 흐르는 배경 음향과 효과음을 퍼즐 디자인의 일부로 포함했다. 그렇기에 '미스트'의 몇몇 퍼즐은 배경에 흐르는 소리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셀레니틱 에이지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에이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책에 적힌 피아노 연주 순서를 맞춰 기계를 조작해야 한다. 에이지에 도착해 제일 먼저 풀어야 할 퍼즐 역시 스테이지 곳곳에 배치된 음향 포인트를 파악하고 순서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미스트'는 그 점에서 게임 디자인에서 음향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본작의 음향 디자인을 담당한 크리스 브랜드캠프는 게임의 비주얼이 배치된 후에야 확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고, 심지어 (로빈이 작곡한) 음악도 아예 안 넣을 생각이었다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접한 뒤 넣기로 결정했다는 비화도 있다. 이들이 게임 제작에서 음향과 이미지, 게임 플레이 간의 관계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공간과 퍼즐 설계가 우선시되다 보니, 서사와 퍼즐의 결합에서는 다소 작위적인 구성을 보이는게 아쉽다. 의도한 것 이상으로 공백이 많은 것도 흠.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전작을 뛰어넘어버린 후속작, '리븐'. 팬 리메이크가 진행되다가, 공식화된 상태다.
하지만 대다수의 '미스트' 클론들은 작위적인 구성을 답습하는 함정에 빠져 망해버렸다. 그런 함정에서 벗어났지만 불운하게 묻혀버린 '옵시디언'.
발매 당시엔 사회 현상에 가까울 정도라 이런 패러디 게임도 나올 정도였다. 무려 존 굿맨이 나온다.
'미스트'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만만치 않은 비판을 받았던 게임이기도 했다. 어드벤처 게임 팬덤에서도 '미스트'의 게임 디자인은 항상 논쟁거리였다. 특히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와 루카스아츠가 만든 서사와 퍼즐이 절묘하게 배합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을 좋아했던 기존 어드벤처 게임 매니아 사이에서, '미스트'는 지나치게 텅 빈 게임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설명하지 않고 상상하라는 것은 시적인 접근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공허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미스트' 역시 시적인 감수성과 공허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고 있는 게임이다.
지금 플레이하면 의도한 것 이상으로 '공백'이 많고, 몇몇 퍼즐이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장치로써 역할이 부족하지 않나 싶은 부분이 있다. 곧장 말해 지도와 퍼즐을 만들고 서사를 덧붙이려다가 생긴 작위적인 요소가 종종 보인다. 아트러스의 일지에 설명을 의존하려는 연출 역시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시행착오가 필요했다는 걸 보여준다. 셀레니틱 에이지 후반부에 등장하는, 지하 철도 미로처럼 제작진조차 실패했다고 인정한 퍼즐도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밀러 형제는 그 2%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미스트'가 대성공을 거두고 서두르지 않고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 후속작 '리븐'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밀러 형제의 진정한 걸작은 '미스트'가 아니라 후속편 '리븐'일 것이다. 형제는 '미스트'에서 뭐가 부족했는지 파악한 뒤 부단히 메꾸려고 노력했고, 높아진 업계 인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윌로우'나 '이너스페이스' 같은 대작 영화들에 참여한 1급 시각 아티스트 리처드 밴더 웬드를 기용했다. 그 다음 형제는 작위성을 최대한 줄이고, 서사와 퍼즐, 세계관의 유기적인 조합에 공을 들였다. 결과물은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편이었다. 심지어 형제 중 로빈은 '리븐'으로 모든 걸 다 이뤘다고 생각했는지 새로운 개발사를 만들어 독립했고 그렇게 1기 사이언 월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진정으로 리메이크를 기다리는 게임은 '미스트'가 아니라 '리븐'이다. (실제로 팬 리메이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 지면에서 길게 얘기할 기회가 왔으면 좋을 정도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는 게임이다.
이렇게 밀러 형제는 '리븐'으로 지적 받았던 '미스트'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애썼다. 문제는 '미스트' 추종자들이었다. '미스트' 추종자들은 '미스트'가 왜 성공적이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서사의 축소를 서사에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비주얼의 매력을 독창성이 아닌 화려함에 맞춰버렸고, 퍼즐 디자인은 안이하게 답습했다. 그 결과는 지루한 데다 빈약함과 공허함만 돋보이는 게임들 뿐이었다. 차라리 고전적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은 스토리라도 따라가기도 했지, 스토리조차 별볼일 없이 시작해 끝난 사례도 있었다. '미스트'처럼 성공하고 싶었던 '미스트' 추종자들은 미스트 클론이라 경멸 당했고 1990년대 말이 되면 대다수 잊혔다. 분명 독창적으로 잘 만들었음에도 불운하게 묻혔던 로켓 사이언스 게임즈의 '옵시디언'을 비롯한 몇몇 성공작들이 어드벤처 게임 역사가들에게 언급되는 정도다.
비디오 게임 내 퍼즐 디자인이나 조작에 있어서 혁신적인 게임이긴 했다.
19.직접적으로는 비디오 게임에서 '분위기' 연출에 큰 족적을 남겼다. 본격적인 후계자로 꼽히는 '더 위트니스'
또한 워킹 시뮬레이터라던가 캐주얼 게임은 미스트'의 영향력이 크다. 워킹 시뮬레이터 화제작이었던 '에디스 핀치의 유산'
'미스트'는 어찌 보면 의도에 비해 무거운 멍에를 짊어진 게임일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의미의 어드벤처 게임은 '미스트' 발매 당시가 정점이었고 점점 액션 게임 장르에 편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스트'는 게임업계에 큰 유산들을 남겼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우선 '미스트'가 만들어 낸 입체적인 공간과 하이퍼링크 바탕의 즉물적인 상호 작용에 기반한 퍼즐 디자인은 큰 영향을 남겼다. 현재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직접적인 조상은 '어둠 속에 나 홀로'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로 꼽히지만, (간소화되었지만) 입체적인 공간 설계에 반영된 퍼즐 디자인이라던가 즉물적인 상호작용 조작에 있어서는, '미스트'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미스트 시리즈가 자신의 성취를 3D 폴리곤 공간에 도입한 것은 후배들의 성취가 등장한 후였지만 말이다. 이 지점은 미스트가 왜 다시 리메이크되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미스트'는 또한 비언어적인 비주얼이나 음향이 게임 플레이랑 결합하고, '분위기'로 서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임이기도 했다. 특히 게임 내 '배경 음향'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미스트'는 분명 혁신적인 구석이 있었다. '미스트'는 음향을 분위기 조성부터 시작해 퍼즐의 실마리이자 도구로 폭넓게 활용했고, 이는 CD-ROM 혁명이라는 당시 기술적 변화와 제대로 맞물려 들어갔다.
'미스트'는 그 점에서 2000년대부터 등장하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게임들의 교범이 되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2000년대부터 등장한 '워킹 시뮬레이터' 게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장르는 그저 걸어 다니면서 비언어적인 요소들과 상호작용 포인트 간의 조합으로 '분위기'와 '서사'를 제시하려고 했다. 그 중 제일 직접적인 후계자라면 '더 위트니스'가 있다. 처음부터 '미스트' 오마주를 선언한 이 게임은 아예 '미스트'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자를 초빙하기까지 했다. 간접적으로는 우에다 후미토 게임들도 '미스트'의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완다와 거상'에서 배경으로 제시되는 폐허들은 '미스트'에 등장하는 아무도 살지 않고 건축물만 남은 에이지 풍경들이 어른거린다.
또한 전통적 어드벤처 게임 팬덤에서는 질색했지만, 죽음도 없고, 민첩한 플레이도 요구하지 않는 느긋한 디자인은 '캐주얼 게임'의 가능성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미스트'의 대중적 성공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빌 게이츠의 상찬이나 월 스트리트 변호사가 출근도 빼먹고 몰입했다는 잘 알려진 일화부터, 밀러 형제를 갭 패션 광고에 출연하게 만든 데다 '심슨 가족'이 인용했다.
맷 데이먼은 '본 얼티메이텀' 게임판이 '미스트'처럼 만들어지기 기대했다가 슈터 게임이 되자 실망했다고 한다. 아예 존 굿맨이 나오는 패러디 게임 '피스트'까지 나왔으니 문화적 아이콘 수준에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은 한국에서도 그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플래시 게임 '크림슨 룸'을 기반으로 삼는 방탈출 게임이다. 대학가에 널려있는 방탈출 카페도 넓게 보자면 '미스트'의 후예인 것이다. 그 점에서 '미스트'는 분명 후속작 '리븐'보다 뛰어나거나 정교한 게임은 아니지만, 아직도 계속 호명되는 이유가 있는 게임이다. 때로 걸작보다 개척자가 역사에 남는 경우가 많은데, '미스트'도 그런 게임이다.
'미스트'가 위대한 게임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무시 못 할 상징으로 남을 만한 게임이긴 하다.
"VR이 여기 있소. 그것을 만나주시오!"
프로스페로: 그들의 이해력이 밀물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곧 만조가 되어서 지금은 진흙투성이인 이성의 해안을 완전히 덮게 될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5막 1장 중
첫번째 리메이크라 할 수 있는 '리얼미스트'. 어느 정도는 3편 홍보용이기도 했다.
이후 '마스터피스 에디션'라는 제목을 달고 2014년 개선판이 출시되었다.
'미스트'는 발매 후 개보수가 제법 이뤄진 게임이기도 하다. 대대적인 리메이크는 총 두 번 이뤄졌고 다시 두 번 '마스터피스 에디션'이라는 제목으로 개보수를 거쳤다. (참고로 사이언 월드는 개선판에 이 타이틀을 붙여 두고 있다.), 본 리뷰는 두번째 리메이크를 다루고 있다. '미스트'의 첫번째 리메이크는 2000년 '리얼 미스트: 인터랙티브 3D 에디션' (이하 '리얼 미스트')로 이뤄졌다. 사실 오리지널 '미스트'의 "슬라이드 쇼"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이상적인 디자인은 아니었다.
사이언 월드 수장인 랜드 밀러 역시 '리븐' 이후 이어진 풀 폴리곤 혁명을 보면서 내심 안타깝게 생각했을 것이다. '미스트: 마스터피스 에디션'와 오래간만에 나오는 시리즈 신작 '미스트 3: 엑자일'을 준비하면서 (실제작은 프레스토 스튜디오에서 딴 제작진이 했다.) 당시 미스트 판권을 쥐고 있던 유비소프트와 선소프트랑 이런저런 계획이 오갔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 로빈은 사이언 월드를 떠난 지 오래된 상태라 '리얼미스트' 프로젝트는 로빈 대신 형제의 다른 동생인 라이언 밀러가 랜드 밀러와 함께 이끌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오리지널의 단순한 그래픽/사운드 개선판이었던 '미스트: 마스터피스 에디션'랑 달리, 뒤이어 나온 '리얼 미스트'는 풀 폴리곤 시대의 '미스트'를 선보이려고 했다. 우선 미스트 세계가 풀 폴리곤으로 구현되었으며 일반적인 FPS 게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변했다. 이에 맞춰 상호작용 디자인도 어느정도 수정되었다. 좀 더 마우스 조작을 파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추가되었다고 보면 좋다. 이외 기후 효과나 속편 '리븐'과 연계한 내용들이 대폭 추가되었으며, 라임 에이지라는 새로운 월드가 추가되었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평을 받기도 했으나, 로빈 밀러처럼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팔아먹기 상품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당시 기준으로 사양을 많이 타서, 이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던 편이다. '리얼 미스트'는 2014년 유니티 엔진으로 이식되어 '리얼 미스트: 마스터피스 에디션'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판본은 '리얼 미스트'을 기반으로 그래픽을 대폭 향상한 것 외에는 큰 변화는 없다. 다만 '리얼미스트'에서 FPS식 자유 이동만 있는 게 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원작 '미스트'의 하이퍼링크를 떠올리게 하되 3D 공간에 맞춰 이동하는 구간별 이동이 추가되었다.
'리얼미스트 마스터피스 에디션'은 2020년에도 스위치로 이식되었기에, 이번 리메이크가 갑작스럽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번 리메이크 역시 게임 플레이 자체는 그렇게까지 '리얼미스트'에서 확립한 디자인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다. 얼핏 보면 뭐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리메이크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2번째 리메이크 첫 발매가 오큘러스 VR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경력을 보면 랜드 밀러는 얼리 어댑터 기질이 보이는 수장이다. '리븐' 이후 이어진 2기 사이언 월드는 오랫동안 멀티플레이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신 장르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우루'는 대실패로 끝났고, 재정적 타격을 입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3기 사이언 월드는 공백기 이후 '오브덕션'이라는 게임을 발매하면서 시작했다. '오브덕션' 발매 1년 뒤 VR 플랫폼으로 발매하면서, 사이언 월드는 본격적인 VR 게임 제작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사이언 월드는 VR 기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멀미 문제라던가 조작 문제 같은 플랫폼 적응기를 가졌고, 향후 미스트 VR 버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대답을 남기기도 했다.
2번째 리메이크인 본작은 VR 게임으로써 정체성을 도입했다.
사실상 2회차 모드인 랜덤 퍼즐 모드. 미스트 클리어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신선할지도 모르겠다.
'오브덕션'에서 도입된 사진촬영 모드도 본 리메이크에 도입되었다.
사이언 월드가 VR에 매료된 이유는, 오리지널 '미스트'가 구축했던 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상술했듯이 '미스트'는 입체적인 공간 인식과 분위기 연출과 더불어, 상호작용 디자인에 있어서 직관성과 즉물성을 추구하려고 했던 게임이다. 플레이어의 시야를 게임 속 세계와 일치시키고, 모션 센서 조작으로 생동감 있는 상호작용과 액션을 추구하는 VR은 사이언 월드에게는 최고의 기회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여기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등장한 이후로, VR 게임이 구체적인 실현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도 한 몫 한다. '오브덕션'과 '미스트' 리메이크 사이 발매된 '하프 라이프: 알릭스'은 VR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대대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새로 출발한 사이언 월드가 VR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다. 적어도 '멀티플레이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다소 아리송하고 무모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덜 위험하고 회사 정체성과 잘 어울리는 목표기도 하다.
이번 '미스트' 리메이크 역시 3기 사이언 월드가 추구하는 방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임이다. VR 관련 변화는 후술하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로는 '랜덤 퍼즐 모드'가 있다. 게임 시작할 때마다 퍼즐 답이 달리지는 모드인데, 초반부 아트러스의 편지가 사라지는 등 원작을 해본 사람 기준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2회차 요소에 가깝다. '미스트'를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이라면 제작진 메시지처럼 1994년 오리지널 모드를 먼저 하는 걸 추천한다. 그래픽도 그렇고 전반적인 구성 자체는 '오브덕션' 기반인데, 때문에 퍼즐 풀이로 쓰는 사진 촬영 기능도 있다. '오브덕션'때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메모 기능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리얼미스트'에 추가된 라임 에이지는 아직 없는 상태인데, 업데이트로 추가할 것이라는 제작진의 언급이 있어서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그래픽이나 인터페이스 모두 전반적으로 '오브덕션'에 기반한 리메이크에 가깝다.
게임패드 플레이 역시 대폭 개선되서, 세부 상호작용이 훨씬 편해졌다.
한국어화는 나쁘지 않지만 책/문서 현지화 같은 부분은 좀 성의 없게 처리되서 아쉽다.
그래픽은 언리얼 엔진으로 변경해 '오브덕션' 풍으로 다듬어졌다. 때문에 '오브덕션'을 한 사람이라면 묘한 기시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배경 그래픽은 좋은 편이다. 요새 추세에 따라 레이트레이싱을 지원한다. 다만 날씨나 시간대 변화 연출이 삭제되어 '리얼미스트'로 입문한 사람이라면 아쉬울 수도 있다. 이 여파로 과하게 어두운 조명 연출도 사라져서 손전등도 삭제되었다. 참고로 '오브덕션'도 그렇고 3기 사이언 게임은 의외로 사양을 타는 편이기 때문에 PC로 한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이점으로 '리얼미스트'랑 달리 인물 그래픽도 카툰풍 3D 폴리곤으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미스트'는 일부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벤트에서 밀러 형제를 비롯해 제작진이 실사로 연기했고 이는 5를 제외한 시리즈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연기력이 그다지 좋지 않고, 2021년 시점에서 출연진 대다수가 나이 들어버려 새로 제작하지 않고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발매 후 기존 팬을 염두에 뒀는지 예전에 만들어 둔 FMV 리소스를 활용해 실사 영상 설정이 추가되었다. 다만 이 설정을 켜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은 실사 그래픽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향후 나올 사이언 월드 신작이나 리메이크도 이런 풀 폴리곤 인물 그래픽 노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게임패드 유저를 고려한 변화가 돋보인다. 간단한 버튼이나 조작 같은 경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세부적인 조작이 필요한 퍼즐/상호작용은 패드 스틱과 버튼으로도 상호작용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패드 플레이에 대한 고려 없이 커서를 스틱으로 조작해야 하는 기존 콘솔 이식작들과 비교하면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향은 손을 거의 대지 않았고 사운드트랙도 어레인지 없이 오리지널판을 그대로 쓰고 있다. 대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 기능을 키면 음향이 중요한 퍼즐에서는 음향 설명 자막이 뜨기 때문에 퍼즐 풀기가 한층 용이 해졌다. 한편 이번 리메이크는 세가 새턴용으로 우영소프트가 한국어화한 이후 두번째로 공식 한국어화를 지원한다. 번역은 텍스트만 보고 새로 번역했는지 간혹 어색한 단어 선택이 보이나 (아트러스의 편지에 등장하는 마커 스위치 설명이 대표적이다. '숫자'보다는 '개수'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책이나 문서 텍스트 현지화 같은 경우 원본 그래픽을 수정하지 않고 검게 칠한 후 번역문을 붙여버려 상당히 성의 없는 편이다. 이건 번역자가 아닌 사이언 월드를 탓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본작에서는 원하는 위치까지 텔레포트할 수 있는 이동이 VR 모드에 추가되었다.
전반적으로 원작의 상호작용 지점을 VR 플레이의 즉물성에 걸맞게 변경된 흔적을 보인다.
오리지널 '미스트', '리얼 미스트' 와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이동과 상호작용 디자인이다. 우선 '리얼 미스트: 마스터피스 에디션'에서 추가된 구간별 이동이 텔레포트 이동으로 변경되었다. VR 한정으로 텔레포트 이동을 선택하면 왼쪽 스틱을 쭉 밀면, 바닥에 노란 이동 아이콘이 뜨는데 이를 조작하면 원하는 자리까지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오리지널의 장면 별 이동이나 리얼 미스트 마스터피스 에디션의 구간별 이동과 같다고 보긴 힘들긴 하나, 분절적 이동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계승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리얼미스트 시절 구현해둔 일반적인 게임처럼 자유 이동도 가능하다. 여기다 버튼이나 레버, 손잡이 같은 상호작용 디자인이 훨씬 VR 컨트롤러를 의식해 즉물적으로 변했다. 일반적인 VR 게임처럼 모션 센서 컨트롤러가 손으로 인식되며 이 손을 이용해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다. 상호작용 자체는 잡거나 돌리거나 꾹 누르는 직관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상호작용 같은 경우 손이 노랗게 변하기 때문에 파악하기 쉽다.
사실 VR 플레이에 대한 설명은, 실제로 VR로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잘 체감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이런 디자인에 맞춰 변경한 부분이 의외로 눈에 띄는 편이다. 원작이나 '리얼 미스트'랑 비교해보면 상호작용이나 퍼즐의 세부 묘사가 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좋은 예로는 미스트 내 채널우드 에이지로 가는 퍼즐이 있다. 원작에서는 금고를 열어 성냥불을 킨 뒤, 보일러 밑에다 넣어서 키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금고 안에 있는 손잡이를 돌려 보일러 불을 키도록 변경되었다. VR의 즉물적인 조작과 기존 퍼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때문에 퍼즐이 조금 더 쉬워졌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다 엘리베이터 문 같은 경우 일반적인 플레이에서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거나 닫혔으나, VR 플레이에서는 직접 손잡이를 잡고 열거나 닫아야 한다.
VR 게임으로써 '미스트'는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옛날식 어드벤처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느낌이었다.
다만 책이나 문서 같은 텍스트 읽기는 VR 조작이 생각보다 불편해 개선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VR 모드는 만족스럽게 뽑힌 편이다. 물론 '하프 라이프 알릭스'처럼 VR에 맞춘 충격적인 게임 디자인을 선보이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니터로 보면서 상상해왔던 '미스트'의 세계를 만져보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VR 멀미 같은 울렁거림도 최대한 자제하려는 편이다. 사양만 받쳐준다면 VR 그래픽도 깔끔하게 나와서 사이언 월드의 최대 강점인 수준 높은 비주얼 설계가 잘 드러나는 편이다. 인터페이스가 두드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작하고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오리지널 제작 당시 포부를 잊지 않은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다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의외겠지만 '책'을 읽는 게 개선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본작에서 책 읽기는 말그대로 책을 잡고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넘기는 감각을 주는 건 좋았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다. 마지막에 보게 될 벽난로 퍼즐에 대한 답이 들어있는 책은 무려 150쪽이 넘어가기 때문에 지루하게 넘기고 있어야 한다. 만약 '리븐' 리메이크도 VR로 만들 생각이라면 고쳐야 할 부분이라 본다. 사소한 점이지만 모션 컨트롤러의 손이 손가락 하나 하나에 반응하는 점도 조금 단점이긴 하다. 발전기 버튼 누르는 퍼즐 같은 경우, 버튼을 잘못 눌러 과전압이 흘러 리셋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미스트' 리메이크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게임이 만들어 놓은 디자인은 의외로 많은 게임들이 배워갔기 때문에 지금 해보면 명성과 다르게 소박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상술했지만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는 본작보다는 후속작 '리븐' 쪽이 훨씬 할말이 많은 게임이기도 하다. 그래도 깔끔한 리메이크와 더불어 VR로 '미스트'만의 개성적이고 일관된 미적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기에 생각보다 불필요한 리메이크는 아니다.
'미스트'를 모르는 사람들 중 워킹 시뮬레이터나 어드벤처 게임을 좋아한다면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VR 게임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다던가, 어드벤처 게임 팬덤의 큰 논쟁 거리 중 하나인 "'미스트'가 어드벤처 게임을 망가트렸는가?"라는 답을 스스로 판단하기에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차후 나올 사이언 월드의 신작 '퍼머먼트'나 '리븐' 리메이크가 과연 VR 게임으로써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겠지만 말이다.
"이 섬의 환상적인 묘한 영향을 당신들이 아직도 맛보고 있기에 확실한 일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오. 나의 친구들이여, 모두들 환영하오."
작성 PforP / 편집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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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미스트라니. 뭐 평가야 개개인이 알아서 하는거고 과거의 이런 게임들이 다시 리메이크 되어나오는건 좋네요. 리메이크를 바라지만 회사자체가 사라지거나 하는경우도 많아서 8,90 년대 게임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주는것 만으로도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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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때 이모들이랑 어머니가 했던거 구경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서 울고 그랬던 기억.. 어머니는 지금도 방탈출같은 추리 퍼즐게임 마니아신데 미스트 만한 게임 없다고 하심 vr로 계승받겠습니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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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가 인생겜이라 부르는 게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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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미스트 이전의 어드벤처 게임은 텍스트가 많은 시나리오 중시형에 게임오버도 많았던 장르인데 미스트는 탐험 중심의 퍼즐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스트가 대박나니까 우후죽순으로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퍼즐만 풀어대는 게임들이 범람하게 되어서 미스트가 어드벤처를 망가뜨렸다는 말이 나온 거고요. 물론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는 다 옛날 이야기가 되어서 스토리가 많은 퍼즐 어드벤처 게임도 많이 나오고 미스트하고는 정반대로 같은 탐험 중심 어드벤처임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전무하고 스토리만 보는 '워킹 시뮬레이터' 계통의 게임도 나오고 말이죠. 최근 유사한 사례로는 Braid와 The Witness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Braid는 시나리오가 중요하고 횡스크롤 플랫폼 요소도 채용해서 긴박감도 있는 게임이었습니다만 개발진의 후속작인 The Witness는 스토리가 증발했고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퍼즐을 주구장창 풀어대는 게임이 되었죠.
(IP보기클릭)124.54.***.***
이분 게임리뷰는 설명이 참 풍부해서 좋아합니다. 메인 게임평가 말고도 주변 백그라운드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이번에도 재밌게 읽었네요^^
(IP보기클릭)2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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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오산에살지
그 당신 칭찬 뿐인데, 지금 와서 보면 흐흐흫 | 21.10.01 19: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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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이 미분 적분 하면 오오오 개쩐다 하지 지금 나이든 아재가 하면 누가 쩐다고 해주겠음 당연한 이치임 | 21.10.17 1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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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미스트라니. 뭐 평가야 개개인이 알아서 하는거고 과거의 이런 게임들이 다시 리메이크 되어나오는건 좋네요. 리메이크를 바라지만 회사자체가 사라지거나 하는경우도 많아서 8,90 년대 게임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주는것 만으로도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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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가 인생겜이라 부르는 게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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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때 이모들이랑 어머니가 했던거 구경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서 울고 그랬던 기억.. 어머니는 지금도 방탈출같은 추리 퍼즐게임 마니아신데 미스트 만한 게임 없다고 하심 vr로 계승받겠습니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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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 엄마랑 이모들이 같이 미스트를 했다고? ㅋㅋㅋㅋㅋㅋ | 21.10.07 08: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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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님
뭐,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미스트 이전의 어드벤처 게임은 텍스트가 많은 시나리오 중시형에 게임오버도 많았던 장르인데 미스트는 탐험 중심의 퍼즐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스트가 대박나니까 우후죽순으로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퍼즐만 풀어대는 게임들이 범람하게 되어서 미스트가 어드벤처를 망가뜨렸다는 말이 나온 거고요. 물론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는 다 옛날 이야기가 되어서 스토리가 많은 퍼즐 어드벤처 게임도 많이 나오고 미스트하고는 정반대로 같은 탐험 중심 어드벤처임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전무하고 스토리만 보는 '워킹 시뮬레이터' 계통의 게임도 나오고 말이죠. 최근 유사한 사례로는 Braid와 The Witness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Braid는 시나리오가 중요하고 횡스크롤 플랫폼 요소도 채용해서 긴박감도 있는 게임이었습니다만 개발진의 후속작인 The Witness는 스토리가 증발했고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퍼즐을 주구장창 풀어대는 게임이 되었죠. | 21.10.02 13: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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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게임리뷰는 설명이 참 풍부해서 좋아합니다. 메인 게임평가 말고도 주변 백그라운드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이번에도 재밌게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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