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클레르 옵스퀴르 재밌게 하셨나요?
저는 약 20시간 정도 2회차 플레이를 마무리짓고, 스샷과 녹화본을 죽 정리해놓은다음 소감을 차분히 정리하다가,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이 아래는 보시는 분이 클리어했다는 전제로 이야기하는지라, 무지막지한 스포일러가 가득하니 이점 양해해해주세요.
자, 일단 33원정대가 대명작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서정적이고 가슴 울리는 스토리(엔딩만 빼면), 예쁘고 귀여운 루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미술, 예쁘고 귀여운 루네, 그야말로 심금의 현을 울리는 음악, 예쁘고 귀여운 루네, 턴제전투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발전된 전투시스템, 중반까지만 예쁘고 기특한 마엘이까지 게임으로서의 만듦새 자체는 정말 온갖 장점으로 가득차있죠. 솔직히 더 훌륭한 찬사를 받는다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고, 당연히 고티겜이라고 생각하구요.
장점은 위의 말만으로도 충분히 설명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 가능하죠. '명작'. 다만 명작이고 재밌었다는 소감이야 워낙 많고, 또 저는 직업적으로도 그렇고 성격적으로도 비판/비평 쪽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게임하신 분들이 생각해보실만한, 비판 쪽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물론 비판점이 있다 해도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요.
자, 시작합니다.
1. 서론
33원정대 자체가, 거의 클리셰만으로 재조합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클리셰를 강하게 차용하는 작품인 것은 이 글 보는 모든 분들이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기본적인 시스템과 스토리의 얼개, 그림 속으로 다이브하거나 캔버스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습, 한 인물의 내/외면의 두 가지 모습(페르소나)를 강조하는 골조, 약점 속성의 강조 등은 페르소나5를 거의 그대로 빼다박았고, '절망적인 외압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인류가 병단을 조직해서 생존을 건 원정을 떠난다'라는 기본 플롯과 원정대 복장, 경례 등은 진격의 거인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수준이죠.
이외에도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낡아빠지고 빛바랜 느낌의 미술 기조, 그림 속 세계의 등장, 패링/특수패링/점프로 반격하는 전투 구조 등은 다크소울(+세키로+엘든링) 시리즈에서, 가족간의 문제가 세계를 들었다놨다하는 스케일 점핑과 심약한 외톨이 청소년 주인공의 고뇌, 믿을 수 있는 애어른의 장렬한 희생, 생존싸움의 이면에 숨겨진 창조신화적인 진실, 꽉 막히고 음산한 개꼰대 아버지 캐릭터 등에서는 에반게리온의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납니다.
또 화면 연출 부분에서는 데빌메이크라이 느낌이 아주 강하게 묻어나는데요. 비틀린 화면을 잡는 구도라든가, 중력이 역전된 것처럼 이런저런 것들이 허공에 정처없이 떠다니는 풍경 등은 본가 데메크 시리즈보다 외전 DMC 쪽의 냄새가 좀더 진합니다. 베르소의 스타일 시스템도 그렇고.
이런 것들을 잘 조합해서 느낌있게 잘 만들었다는 점 자체는 정말 칭찬할만한, 대단한 일입니다. 저도 참으로 즐겁게 플레이했고요. 그렇지만 이런 클리셰의 사용 때문에 생기는 큰 문제점이 세 가지 정도 보입니다.
각각 -1. 작은 문제인 '클리셰적인 캐릭터' -2. 좀더 큰 문제인 '뭔가 뒤틀린 복선들' -3. 심각한 문제인 '엔딩'이 그것인데, 각각 하나씩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1. 클리셰적인 캐릭터
미리 말해두자면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뻔한게 많아요. 대표적으로 구스타브가 그렇습니다. 초반에 마엘이 합류하는 시점에서 스킬트리를 열어보면 누구나 구스타브가 멀지 않은 미래에 희생될거라 생각할수밖에 없습니다. 딱 봐도 구스타브만 굉장히 성의없이 구성된 스킬트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혹은 '딱 봤을때 누구나 제일 먼저 희생될걸 알 수 있는 캐릭터'를 문자 그대로 형상화한듯한 루시앙도 있죠. 흑인/수다스럽고 능글맞은 유쾌한 성격/주인공의 절친/여친있음(카트린, 물론 아닐수도 있는데 어쨌든 화면에서 페어로 잡히죠) 등등 딱 봐도 초반에 희생되어 극의 배경 분위기를 우울하고 비극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의 캐릭터고, 실제로도 전투 한번 참여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희생되죠.
게임 자체가 '혹시 눈치 못채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이거 복선이에요! 여러분, 이런게 바로 복선이란겁니다! 복선!'하면서 외치고 있는 수준이라, 솔직히 눈치빠른 분들은 적어도 1막 진행중에 3막 중반까지 스토리의 흐름이나 각 캐릭터의 구성에 대해서 알아차리셨을거라 봅니다. 그리고 아마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졌을거고요. 저도 그랬고.
이런 클리셰적인 부분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꼽기도 어려울 정도인데, 대표적으로 원정대가 에스키에와 처음에 만나는 장면에서는 시엘한테 '오, 수영못하는 친구, 또 만나네?'하면서 복선을 까는데, 여기에 더해 시엘이 '?', '??', '???' 하면서 재차삼차 복선을 깔아버리니까, '과거에 물에 빠진 시엘을 에스키에가 구해줬다(그리고 여기 관련된 스토리가 이후에 풀릴 것이다)'라는 사실은 진짜 그 장면만 딱 잘라서 봐도 알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관 상 아주 중요한 숨겨진 진실인 '알리시아'는 딱 등장하는 순간 '저거저거, 가면 벗기면 마엘이 나오는 거 아니여?'라고 누구나 알수밖에 없죠. 흑백이지만 명확하게 채도가 낮은 눈동자가 똑같이 생긴 것이 보이는데다, 체구도 똑같고, '가면을 쓰고 말을 하지 않아서 (플레이어에게) 스스로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이유로 나올 것은 마엘이랑 동일인물이라는 점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알리시아 처음 나오는 순간 아...하면서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쁜 맛이라는 건 아닙니다. 아주 익숙한 맛이고, 맛깔나게 잘 풀기도 했어요. 맛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막 욕나오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근데, 그래도 스토리를 죽 보다보면 '아-이거는...이거는 좀 더 재밌게 풀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여럿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속된 말로 '좀 짜치는' 느낌이죠.
이 느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생애 처음으로 고급 프랑스 식당 파인다이닝 만찬을 예약하게 되어, 여친과 드레스 갖춰입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입장하여 마침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은쟁반에 담겨져 나온 메뉴가 된장국이었다.'라는 느낌입니다. 된장국 맛있죠. 맛있는데, 미각적으로 신선한 즐거움과 충격을 줄만한 맛은 아니죠. 33원정대의 클리셰 사용이 딱 이런 느낌입니다. 뭐 이건 작은 문제니까 이정도쯤 하고.
-2. 뭔가 뒤틀린 복선들
복선을 많이, 그리고 잘 쓰긴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복선의 사용이 애매하거나 비틀린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억측입니다만, 전체 스토리의 얼개에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고, 이것들이 부분부분의 뒤틀린 복선들을 낳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33원정대 전체 장면 중 가장 뽕이 차는 장면이라면 누구라도 3막 중반에 각성 마엘이가 부활원정대 쫙 깔아놓고, 정면으로 검을 겨누면서 '내일은 온다.'라고 비장하게 읊조리는 장면일 것입니다. 최종전의 서막으로 딱 들어맞는, 게임 최대 명장면 중 하나죠.
다만 이 장면을 냉정하게 음미해보면 이상한 부분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인게임에서 뤼미에르로 들어가는 부분은 무조건 낮에 가게 되어있는데, 그 직후 나오는 영상은 한밤중입니다. 일단 여기서 '???'하는 느낌 드신 분들 좀 있을 겁니다. 전반적으로 컨티뉴어스 문제가 좀 있어요.
예컨대 최종전 직전에 온 맵이 어둡고 기괴한 느낌으로 변하고, 이게 주인공 파티의 돌격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컨티뉴어스를 가진 창작물은 진짜 차고 넘치거든요. 앞 문장 보시면서 '아, 그거가 그랬지?'하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을거고, 그분들 각각이 생각하는 창작물들도 전부 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단순히 기술력이나 정성의 부족에서 유래된 거라 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무리봐도 이 사이에 뭔가 짤린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들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로, 이렇게 뤼미에르로 돌격하면 기존에 등장했던 보스들이 잡몹으로 등장해서 이것들을 해치우며 전진하는, 그야말로 최종전다운 구성이 진행되는데, 여기서만 갑툭튀하는 새로운 종류의 네뷰론들이 있습니다. 마엘이가 되살려낸 과거의 원정대와 비슷한 느낌인데, 몸에 황금빛이 도는 구 원정대원들과는 다르게 몸에 붉은 빛이 돌고 있죠. 근데 이 몹들,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일반몹으로 나와서 개털리고 아무 설명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심지어 잘 보면 그중에 마엘이랑 똑같이 펜싱 자세를 취하는 녀석도 있어요. 광장에서 만나는 삼인조 중 가장 왼쪽의 바게트모자입니다. 킹오파의 폭시에서 유래한 듯한, 좌우로 칼날을 크게 휘젓는 모션도 마엘이랑 비슷하고요. 근데 얘도 그냥 일반 잡몹으로 나왔다 잡몹으로 사라져버리죠.
물론, 이들이 당연히 마엘이처럼 페인터 능력이 있는 큐레이터(진 루느아르)가 되살려낸 과거의 인물이라는 사실 자체는 보면 알 수 있죠. 그렇지만 이들이 과거에 정확히 누구였는지, 왜 원정대 측이 아니라 르누아르 측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왜 최종전에만 등장하는지 등등 아무 개연성도 없이 툭 튀어나왔다가 툭 사라지는 것이 '뭔가 중간에 스토리가 있었는데 짤려나갔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부분이 걸리는 것이, 맨 처음 돌격하는 장면에서 우리편은 대충 30명 정도의(컷신 영상 보면 컷마다 인물 숫자가 다르게 나와서 정확하게 셀수가 없습니다. 마엘이네까지 포함해서 대략 30명 정도 되죠) 대인원이 칼을 뽑아들고 돌진하는데, 정작 상대편에서는 계단 위 다섯 마리의 일탈자가 맞돌격합니다.<-요 부분이 뭔가 좀 짜치지 않나요? 이쪽이 대부대로 돌진하는 만큼, 상대측도 그정도, 혹은 더 많이, 혹은 더 거대한 적들이 나와야 그림이 좋은 장면이었는데요. 그렇다고 일탈자가 막 엄청나게 센 몹인 것도 아니고.
셋째로, 이 돌격장면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이해하기 힘든 엔딩 구성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아래 엔딩 파트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뤼미에르 돌격신 이외에도, 소소하게 뒤틀려서 거슬리는 부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블루 첫 만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소피의 환영이 스쳐가고, 소피에게 주었던 꽃이 딱 등장하는 장면에서, 고블루가 뛰쳐나와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고블루를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죠. 그러면서 루네가 '꽃만 안 건드리면 공격하지 않는 것 같다.'라거나 마엘이가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라고 언급하는 등등 복선을 팍팍 뿌립니다.
창작물 좀 즐긴다하는 분이시라면, 이 장면에서 '저 고블루가 소피와 뭔가 연관이 있구나', 혹은 '소피가 고마주된 후 저 고블루로 변이한 것은 아닐까?(+고마주된 사람들이 사실은 죽지 않고 네뷰론으로 변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는 광경입니다. 근데 이 복선, 그대로 사라져버리죠.
하나 더 예를 들자면 게임 맨처음에 소피와 구스타브가 항구로 향하는 장면에서, 루네가 광장 동상 밑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소피가 '루네...불쌍한 아이'하면서 복선도 깔아주죠.
그런데 여기서 플레이적으로 1시간 남짓 지난 다음, 섬에 도달해서 고립된 구스타브가 루네를 만나서 마엘이랑 재회하고 처음 야영할 때, 루네가 기타치는 것을 보면서 구스타브가 '오랜만에 연주하는 모습을 보네.'하면서 운을 띄웁니다. 게임 내 시간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계측할 수는 없더라도, 소피의 고마주-> 원정대 출발-> 첫날 야영-> 다음날 마엘과 재회-> 그날 야영에 연주하는 것이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것이 확실한데도요.
이 기간을 아주 짧게 잡으면 이틀입니다. 소피의 고마주날 아침에 마엘이가 구스타브한테 '축제 준비를 도와달라'라고 하는데, 이 축제가 원정대 출발 축제거든요.(테이블 세개 이상 운운하는 언급으로 알 수 있죠. 실제로 나중에 카트린이 '우리 원정대 출발 축제의 테이블은 무려 다섯개'라면서 복선 회수합니다.) 즉 오전에 소피 고마주-> 오후에 원정대 출발-> 저녁에 원정대 도착-> 르누아르 습격 후 구스타브 고립-> 기절했던 구스타브가 아침에 깨어남-> 루네와 재회-> 그날 밤 야영-> 다음날 마엘이 재회-> 그날 밤 루네 연주니까, 이틀 전에 봤던 루네의 연주를 '오랜만에 봤다'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뭐, 사실 '(내 눈앞에서)연주하는 모습은 오랜만이다'라고 해석할수도 있긴 합니다만은... 좀 어색한 장면인 것은 사실이죠.
정리하자면, 제가 전체 스토리를 보면서 느끼는 약간의 불편감 중 좀 큰 문제는, 스토리 줄기가 급하게 변경되었고, 변경된 스토리가 이전 스토리의 잔재들과 충돌해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르누아르가 그냥 절대악 개꼰대였고, 마엘이가 뤼미에르 돌격신으로 쳐들어가서 르누아르 처단하고 깔끔하게 끝나는 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활한 악의 원정대원들을 보면, (원정대원들이니까)자발적으로 르누아르에게 협력할 것 같지는 않고, 르누아르가 지배하거나 통제해서 사용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거든요. 실제로 이것과 아주 비슷한 장면이 여러 창작물에서 많이 나오죠. 예를 들자면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 거대한 악당에게 세뇌당한 우리편들이 온 몸에 붉은 빛 번쩍번쩍 도는 상태로 공격해오는 장면 같이요.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위의 고블루 몹 문제나(르누아르가 고마주된 사람들을 변이시켜 몹으로 재활용했고, 소피가 변이된게 그 고블루였다는 식으로->더해서 르누아르 진짜 나쁜놈이었네...로 이어지는) 여러 복선들이 그대로 들어맞거든요.
특히, 이건 진짜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은, 1-2막에서 이어지는 몹들의 난이도는 정말 조절이 절묘해서, 성장 전에는 긴장이 가득하고, 성장 후에는 뽕이 가득한 구간이 교대로 엇갈리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3막은 진짜 몹들 난이도가 들쑥날쑥해요. 툭 치면 억 하고 죽는 놈들도 있고, 반대로 이게 맞아? 싶을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센 놈들도 있죠. 대표적으로 크로마틱 일탈자. 3막에서 갑자기 이상해지는 난이도 곡선도 제가 전체 스토리가 크게 변경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 물론 이것은 전부 100퍼센트 제 억측이고, 타당한 근거가 있진 않습니다. 원래 그런게 있었을지는 개발사에서 발표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르고, 실제로 있었다 해도 제가 생각한 것과 달랐을 수도 있어요.
제가 이 파트에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중간에 뒤틀린 느낌이 좀 강하게 든다, 스토리적으로 뭔가 큰 변경이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정도의 소프트한 것입니다. 진지하게 '그런 것이 확실히 있었다'는 음모론을 펴는 건 아니에요.
-3. 엔딩
게임을 호평하고, 사랑하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엔딩은 맘에 들지 않아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이 사실이죠. 물론 그 중에는 저도 들어가고요. 이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과연 뭘까요? 크게 보자면 각 엔딩에 하나씩, 두 가지의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엔딩의 가장 중대한 문제는, 어느 쪽 엔딩이든 '행복한 결말'이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전체 스토리적으로는 최후반인 3막 중반, 뤼미에르 돌격신까지만 해도 33원정대의 스토리적 분위기는 명백히 '인간 찬가'의 분위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도 신념을 지키며 굳건히 전진하는 인간, 선두가 희생되어도 그 다음 선두가 다시 깃발을 들어올리는 인간,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인간, 사금을 그러모아 황금을 빚어내는 의지의 표상 인간, 공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공포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용기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 인간, 인간이라는 측면을 끊임없이 보여주죠. 67번의 원정 실패 후 출발한 33원정대가 실패에 직면하자 고려하는 것은 69번째 32원정대를 위한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33원정대의 큰 모티프가 된 페르소나, 진격의 거인에서도 비슷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죠.
그런데 진 르누아르 격파 이후, 갑자기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여기서는 현실, 꿈, 이기적, 이타적, 가족적, 세계적이라는 인간 개인 내부의 욕망이라는 테마로 주제가 변해버리죠. 일단 여기에서 뭔가 어어어? 하시는 느낌 드신 분들 많았을 겁니다. 33원정대가-길게는 0원정대부터 모든 원정대와 모든 뤼미에르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원정이 성공했는데, 그 결말이 겨우 이거야? 하는 허탈한 느낌 말입니다.
내가 근 20시간동안 죽자고 패링하고, 죽자고 빌드깎고, 죽자고 뺑뺑이 돌았던 이유는, 물론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그 고생으로 얻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결말을. 그 결말이 아주 완전한 행복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을.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게임의 캐릭터, 게임의 주인공이란 결국 나 자신의 페르소나, 혹은 아바타이기 때문이죠. 내가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33원정대의 엔딩은 납득할 수도, 공감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허탈해지죠.
그럼 과연 33원정대의 엔딩은 어째서 납득할 수 없는가? 어째서 공감할 수 없는가? 어째서 행복할 수 없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각 분야를 담당한 인물들의 주장과 그 주장의 결론을 따져봐야 합니다. 이것을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 딸과 딸, 아들과 딸
엔딩 부분의 가장 큰 문제는 서두에서 짚었듯 인간 찬가였던 분위기가 갑자기 가족간의 다툼으로 변경되면서 오는 급속한 허탈감입니다. 그 가장 큰 핵심에는 르누아르와 마엘이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가족의 반목이 있습니다.
원래 창작물의 깊이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설득력을 가진 주장들이 대립하면서 얽히는 과정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주 대표적으로 최근의 예시를 들자면 어벤저스의 타노스가 있죠. 그 주장 자체에 어느 정도 명백한 한계가 있더라도, '아, 저렇게 생각할 만하다. 이해는 간다.'라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노스가 그렇게 생각할만 하지만, 우리는 또 우리 입장이 있다.'라는 어벤저스 역시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첨예한 입장차이가 진지한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근래의 창작물에서 '단순히 지배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악당'의 씨가 마른 것도 이 때문이죠.
여기서 르누아르의 주장을 봅시다. 이 사람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아내하고 딸이, 고인이 된 아들이 생전 즐겨했던, 아들의 캐릭터가 살아있는 VR게임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폐인이 되어가니까, 그 꼴을 도저히 볼수가 없다 이거죠. 그래서 이 VR게임기를 때려부숴야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냥 딱 봐도 이 주장의 헛점은 명백하지 않습니까? 먼저 아내와 딸을 잘 설득해서 타협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 마엘아, 게임은 하루에 두시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충실하게 현실을 살자꾸나. 아무리 재밌어도 게임에 과몰입하면 좋지 않아요.' 정도로요. 사실, 이렇게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르누아르를 이해하고 르누아르에게 찬성표 던질 분이 아주 많았을걸요.
근데 여기서 다짜고짜 '언제까지 게임할거야! 이놈의 게임기, 때려부숴주겠어!'라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뭐야 이 개꼰대는?'하면서 깜짝놀라는거죠. 이 지나친 통제의식, 극단적이고 과격한 행동방식은 당연히 납득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감만 키울 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주장은, 그 논리의 기반은 이해하더라도 납득할수가 없습니다. '게임을 줄여야 한다'는 좋아도, '게임기를 때려부숴서 완전히 못하게 해야 한다'까지 해야 하는 당위가 없어요. 심지어 아내하고 딸에게 그 게임기는 아들의 손때가 가득 묻은 추억의 물건이고, 저렇게 푹 빠져서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마엘이의 입장을 봅시다. 마엘이의 주장은 '현실의 나는 눈알도 없고 말도 못하는데, 여기서 나는 완전 매력 터지며 싸움도 깡패인 섹시걸이니까, 이 세계 못잃어.'입니다. 앞선 르누아르의 경우, 논리 자체는 맞는데 결론이 과격해서 납득할수가 없다면, 마엘이는 논리 자체에 이미 문제가 있는 거죠.
뭐라고 꾸며서 말해도 뤼미에르의 마엘이는 현실 마엘이, 알리시아의 게임 아바타일 뿐입니다. 거기 과몰입하면 당연히 안좋죠. 심지어 주변 환경이 그렇게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자빠져 있어도 될만큼 넉넉한 것도 아니고. 현실에선 알리시아가 먹고 싸고 자는 것으로 돈이 나가고, 알리시아가 게임하는 동안은 돌처럼 굳어서 먹고 싸지 않는다고 해도, 그 캔버스 있는 공간인 집은 유지해야 할거 아니에요. 저택이 좀 큰 것도 아닌데. 저택이야 자가라고 쳐도, 관리비하고 수도비는 나갈 거잖아요. 거기다 당장 작가네란 놈들이 집에 불을 지르는 등 전쟁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걔네들이 쳐들어와서 이번엔 진짜로 가족들 목을 다 따기 전까지 게임만 하겠다는 마엘이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을 게임으로서 즐길 수 있다면, 뤼미에르는 환상적인 취미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지금의 마엘이에게, 뤼미에르는 그저 가출한 청소년이 찾는 피시방같은 단순한 쾌락형 도피처일 뿐입니다. 거기다 그 뤼미에르는 마엘이 자신의 것도 아니고 오빠 베르소의 것인데, 그걸 자기 맘대로 쓰고 있는거잖아요. 그 안에 담긴 베르소의 영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귀엽고 이쁜 루네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을 혹사시켜가면서. 심지어 그 르누아르조차, 그림세계속 인물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사죄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마엘이는 슈퍼섹시걸인 자신을 유지하고 싶어서 계속 그 고통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니까요.
아 물론 마엘이 엔딩에서 마엘이는 죽은 인물들 되살리고, 고마주 없애고 하면서 '르누아르(+엘린)으로 인한 고통'은 줄여줬지만, 근본적으로 그 안의 인물들은 삶의 고통, 거짓된 인생의 고통을 반복해야 하며, 베르소나 루네, 시엘 같은 애들은 그 거짓된 인생의 얄팍함과, 근본적으로 그 거짓된 인생이라는 것이 '마엘이에게 쾌락을 주기 위한 연극'임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플레이어 입장에선, 이 두 의견의 대립이 굉장히 이상하게(그러니까, '짜치게') 보일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의 의견에도 납득할수가 없기 때문에, '쟤네는 대체 뭐가 문제인가? 대체 몇대 전부터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건가?'라는 생각이 들수밖에요.
이 엔딩에서 주목할 인물이 둘 더 있는데, 하나는 엘린입니다. 이분은 뤼미에르의 마엘이, 현실의 알리시아가 동시에 도달할 최악의 결말을 한발 앞서 몸으로 체험하신 분이죠. 즉, 마엘이의 결말은 엘린입니다. 게임폐인이 되어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치다 단명하는 거죠.
또 하나는 클레아입니다. 말투가 좀 싸가지없긴 해도, 클레아야말로 게임을 게임으로 바라보고, 아버지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너무 과격한 결론에는 반대하면서 현실 세계를 살아가며 집을 꾸리는, 그야말로 이 가족 중에는 유일한 정상인이죠. 즉, 게임에서는-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명백한 빌런인 (네뷰론을 만들어내고, 르누아르에게 동조해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고, 그림속 클레아를 덧칠해 죽게 이용하거나 죽게 만들고 등등) 클레아가, 사실은 유일하게 납득할수 있는 정상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되는 것이죠. 이게 참 뭐랄까... 참... 그래요. 느낌이 아주 그렇습니다. 맛있는 빵에 잼을 얹어 한입 가득 베어문 순간, 입안에서 우드득! 하면서 불길한 소리가 났을 때 드는 당혹스러운 느낌과 아주 흡사한 느낌이 들어요.
두번째, 현실과 가상
엔딩에서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마엘이와 베르소의 입장 차이는, 근본적으로는 이 둘이 현실의 인물/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에 있죠. 앞서도 말했지만, 마엘이에게 뤼미에르는 마엘이를 위한 한편의 연극 무대입니다. 말 그대로 마엘이를 위한 세상이죠. 그러니 마엘이가 이 세상에 집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마엘이의 극단적인 이기심, 마엘이의 집착적인 욕망은 사실 우리 모두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누구나 슈퍼파워를 가진 짱짱쎅시녀(혹은 남)이 되어서 파워인싸의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대리체험하게 해주는 게임, 영화, 인스타 등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고.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이것들은 취미로서 즐길 때 빛을 발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는 순간 그 종말이 과히 좋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이든, 영화든, 인스타든 그 뒤편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허가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니까요. 인간은, 결국 현실을 살아야 하니까요. 르누아르가 말했듯이. 그렇기에 마엘이의 주장은 처음부터 올바를 수가 없습니다. 여기까진 누구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베르소의 입장에서 '올바른 일', 즉 뤼미에르가 그려진 캔버스의 소멸은 과연 어땠을까요? 마엘이를 빼놓고 보면, 베르소에게 있어 캔버스의 소멸은 말 그대로 세상의 종말입니다. 심지어 시엘, 루네처럼 연인이거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람들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선택이죠. 즉, 베르소의 선택은 '마엘이에게는 올바른' 선택이지만, 반대로 베르소 자신과 자신이 포함된 세계에는 '잘못된' 선택입니다. 시엘과 루네도 그렇지만, 에스키에나 모노코 역시 세계가 멸망하길 바라진 않거든요. 그런 선택을 한 베르소를 이해할 뿐이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르소가 왜 그런 '올바르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가? 입니다. 베르소가 선택하게 되는 계기는 두 가지, 첫째는 알린으로 대표되는 마엘이의 종말, 두번째는 베르소의 영혼인 소년이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절규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모두, '캔버스를 통째로 날린다'라는 결론에 이르기엔 너무 부족해요.
마엘이의 문제를 봅시다. 냉정하게 말해, 마엘이의 게임폐인 히키코모리 증후군은 뤼미에르 캔버스가 사라진다고 낫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마엘이가 게임폐인이 된 이유가 현실의 자신은 눈이 없고, 목소리도 갔는데 게임에 들어가면 슈퍼 짱짱걸이 되기 때문이니까요. 베르소는 마엘이에게 자신만의 캔버스를 그려라, 라고 말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마엘이가 진짜로 자신만의 캔버스를 그리면 마엘이는 거기서 또 게임폐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히 그 캔버스에서도 마엘이는 슈퍼섹시걸일테니까. 여기에 뤼미에르의 멸망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마엘이한테 충격요법 쓴답시고 세계 하나를 날린 셈이 되는거죠.
베르소 영혼의 문제를 봅시다. 얘가 그림을 그만 그리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뭡니까? 가족들이 자기 그림에 들어와서 온 깽판을 쳐대니까 애가 지친 거잖아요. 그럼 가족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준 후에 다시 물어봐야죠. '자, 이래도 그림 그리기 싫어?'하면서요. 물론 그 방법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가능하냐의 문제는 따져봐야겠지만, 적어도 세계 하나를 날리고 그 안의 인물을 싸그리 다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훨씬 건설적인 해결책이 분명히 있는데, 다 죽여서 없애버리자는 극단적인 종말론이 과연 어떤 설득력을 가질까요. 거기다 소년이 그림그리는 것을 멈추고 쉰다고 해서 무슨 다른 문제가 생길까요? 아무리봐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에 베르소가 마지막 순간 소년, 그러니까 원본 베르소의 영혼과 동화되어 '너무 지쳤다, 이제 쉬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쳐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창작물에서는 이런 스토리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죠. 지친 창조주가 세계를 싸그리 멸망시키려 하는 스토리. 이런 창조주들은 당연히 피조물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멸종시키려는 악당일수밖에 없고, 그래서 베르소의 선택 역시 악한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베르소가 선택한 뤼미에르의 멸망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그냥 지쳤다 이거에요. 이거, 살기 팍팍하니까 세상과 같이 멸망하겠다는 멸망론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논리입니다. 아 물론 그 안의 복잡한 사정 있는거 다 알지만, 사정으로 말하자면 고마주당해서 가루가 되었다가 이제야 다시 살아나 희망을 가지게 되었던 루네나 시엘은 사정이 없었나요. 걔네들 다 죽이는 게 베르소 선택이니, 당연히 올바를 수가 없죠.
세번째, 그리고 현실
결국 마엘 엔딩과, 베르소 엔딩에서 일관되게 보여지는(그렇게 느껴지는) 메시지라는 건 굉장히 교조적인 메시지입니다. '게임 좀 그만해, 이 게임 폐인들아.'정도의 메시지죠.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이 엔딩을 보고 불편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엘이의 선택을 지지할경우, 현실의 나(플레이어)가 게임폐인/히키코모리가 된 듯한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마엘이가 즐기는 뤼미에르 세상, 거기서 고통받는 베르소의 모습,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시들어 죽어가는 마엘이의 모습이야말로 현실의 게임폐인 그 자체니까요. 그러니, 굉장히 불쾌하죠. 플레이어가 게임 폐인이라면 마치 '너는 이 꼴이 될거야, 근데 계속 게임할거야?'처럼 느껴질 것이고, 취미로 게임을 하는 정도라도 '니가 게임 계속하면 저렇게 된단다'하는 꼰대질로 느껴질 테니까.
베르소의 선택을 지지할 경우, 나(플레이어)는 현실에 충실하자는 일반적인, 올바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세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고 내가 애정을 가졌던 모든 인물이 끔살당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니 굉장히 속이 불편하죠. 내가 게임 클리어를 위해 들였던 그 수많은 시간들, 노력들, 그 안에서 울고웃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사라진 거니까요. 귀엽고 이쁜 루네를 비롯해, 애정을 줬던 그 수많은 인물들이 전부 다 한순간에 죽어버렸으니 '이게 맞나? 내가 잘못한 거 아닌가?'하는 더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죠.
아, 물론 저는 33원정대의 제작자가 아니고, 그래서 실제로 제작자가 무슨 의도,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엔딩을 짰는지는 모릅니다. 대화를 나눠본 것도 아니고. 제가 말하는 건, 플레이어 입장에서 저렇게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구조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엔딩에 기분이 상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사태와 아주 흡사한 창작물을 두 개 댈수 있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라스트오브어스 파트2입니다. 여기서도 보면, 게임 제작자가 예술병에 걸렸을 때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를 알수 있고, 이 사태는 33원정대의 결말과 유사한 지점이 있어요. 물론 33원정대가 라오어2급의 망작이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나(플레이어)가 고른 올바르고,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의 결과가 애정어린 등장인물의 끔찍한 최후로 이어진다'는 줄기는 분명 비슷하죠.
두번째는 앞서도 몇번 말했던 에반게리온, 그중에서도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에반게리온 리피트입니다. 여기서도 보면, 제작자가 관객들에게 '애니 그만보고 현실을 좀 살아라, 이 씹덕들아'라는 교조적인 태도가 작품 전체에 물씬 풍기죠. 구극장판 엔드오브에반게리온도 사실 이 기조 자체는 비슷했고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33원정대는 분명 명작이지만, 그 엔딩만큼은 정말 별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슨 생각과 의도로 엔딩을 저렇게 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느 쪽 엔딩이든, 불쾌하고 찝찝할 뿐.
+.기타 눈에 밟히는 소소한 단점들
+1. 시엘, 과다한 캐릭터성
시엘이 캐릭터적 특성을 원체 많이 가지고 있긴 한데, 하나하나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예컨대 이사람, 임신까지 했던 유부녀인데다 사별한 전남편 피에르를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거든요? 근데 구스타브하고도 음담패설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베르소는 실제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기까지 해요. 그것도 자기가 먼저 유혹해서! 그것도 두 번이나! 사별한 남편과 잃어버린 아이를 그리는 우울한 내면 위에 명랑한 가면을 뒤짚어 쓴 유부녀라는 캐릭터 특성이, 누군가에게 성적 매력으로 어필될 수도 있다는 점에는 아주 약간 동의하지만, 그래도 이 두 가지가 섞여있으니 굉장히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솔직히 저는 시엘이 사별의 고통으로 정신이 나가서 님포마니아가 된건가? 하고 진지하게 캐릭터성을 고찰해봤을 정도입니다. 아니면 프랑스 문화에서는 원래 그런가요? 역으로 제가 꼰대 유교탈레반이라 그런것일 수도 있긴 합니다. 어쨌든간에 사별한 전남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유부녀가 대놓고 성적으로 유혹한다는 상황 자체가, 제게는 솔직히 매우 부도덕적인, 배덕과 타락의 향미가 강한 느낌이라 굉장히 께름칙했습니다.
또 시엘의 캐릭터 특성 중 강력한 투사라는 점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제스트랄 투기장에서도 언급되고, 마엘이가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력한 투사'라면서 배움을 요청하기도 하죠. 근데 정작 이 강력함이 돋보이는 장면은 하나도 없어요. 시엘이 그 전투 능력으로 뭔가 유의미한 활약을 하는 일 자체가 없습니다.
심지어 인게임에선 낫을 들고 카드를 던지는, 그러니까 강력한 전사 계열보다는 마법사나 도적, 트릭스터 계열의(소위 '얍삽한' 계열의) 전투방식으로 싸우죠. 카드를 던지고, 스킬은 (암흑 계열이 포함된) 주술을 쓰는 강력한 투사라...? 이 특성이 뭔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거기다 '주술'이나 '투사'라는 특성이라면 모노코와의 연관성도 생각해볼만한데, 정작 모노코와는 게임 내내 제대로 대화하지 않아요. 에스키에와는 아주 대조적이죠.
하나 더 꼽자면, 게임 중반쯤에 시엘이 무기로 낫을 사용하는 이유가 과거에 농부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스스로 밝히고, 그 농부 시절 구스타브쪽 팀이었다는 이야기도 초반에 하죠. 이 부분이 어떤 복선처럼 의미심장하게 나오는데, 실제론 이 두개가 전부에요. 그렇다고 이 농부라는 특성이 다른 캐릭터 특성과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시엘이 연인이어도, 루네가 연인이어도 말이 되는 장면'이 여럿 나옵니다. 근데 이 대부분에서, 루네보다는 시엘이 먼저 나오고, 좀 더 깊은 관계인 것처럼 나옵니다. 심지어 시엘을 거절하고 루네와 연인관계라도, 항상 시엘이 먼저 베르소와 상호작용한 후 루네가 나옵니다. 이게 느낌이 영 별로에요. 아 물론, '시엘이 연인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가까워서'라고 변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조잡하죠. 전체적으로 시엘이라는 캐릭터가 캐릭터성이나 활용 측면에서 좀... 난잡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2. 루네, 항상 뒷전인
루네는 시엘과 달리 캐릭터 특성은 잘 맞아떨어집니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가 정한 길을 따라가면서도 내심 불만을 가진 우등생'이라는 것은 굉장히 클래식한 특성이죠. 내면의 반항끼를 음악(기타)라는 건전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좋았고. 얼굴도 이쁘고.
입으로는 부모를 썩 마뜩찮아하는 것마냥 매번 툴툴대지만, 루네 자신이 딱 그 부모의 기대처럼, 그리고 그 부모처럼 목적의식에 투철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시렌전에서 루네가 진정으로 바라고 그리는 것이 부모라는 사실도 드러나죠. 종합적으로 아주 기특하고 예쁜 캐릭터입니다. 애착하기 좋은 캐릭터죠. 얼굴도 이쁘고.
심지어 중간에 베르소가 르누아르와의 부자 관계를 숨긴 것이 드러나 관계가 험악해졌을 때도, '당신을 믿었는데!'하면서 귀엽게 앙탈부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장면의 루네는 '왜 나만 바라봐주지 않는거에요!'라는 대사를 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귀엽죠. 냉정하게 말하자면, 거기서 살인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오히려 그렇게 앙탈을 부리면서 '개인적인 문제'로 문제를 격하시킨 덕분에, 분위기가 '개인적인 사실을 숨겨서 신뢰를 잃었다'정도로 마무리된 감도 있어요. 루네가 그런 배려를 일부러 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응이 좋았습니다. 얼굴도 이쁘고.
거기다 실제로도 유능해요. 초반에 구스타브를 자살에서 구원해주는 것부터, 루네가 하는 말들은 틀린 것들이 없습니다. 마엘이가 악몽 때문에 놀랐을 때, 루네가 잘 기억해서 설명해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만 잘 들었어도 구스타브가 그렇게 어이없이 객사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확률은 굉장히 줄어들었겠죠. 거기다 명백히 리더인 구스타브가 객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는 전진한다'라 외치는 당찬 면모도 좋고, 현실적으로 원정 실패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32원정대를 위해 기반을 다지려는 모습도 훌륭합니다. 얼굴도 이쁘고.
그러나 루네의 좋은 점은 딱 거기까지. 루네의 유능함은 항상 구스타브, 마엘이, 베르소의 독단 때문에 빛이 바래고, 취급도 '깐깐한 소리하는 젊은 꼰대'정도입니다. 아무도 루네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요. 심지어 마엘이는 시엘에게는 쩔쩔매고 가르침을 부탁하는 것과 달리, 루네한테 신경질을 팩팩 부리기도 하죠. 나중에 사과하긴 합니다만은.
캐릭터로서 루네의 핵심 갈등요소인 부모자녀 관계 문제는 '진짜로 세계관 멸망급인 데상드르 가족들의 괴상망측한 부모자녀 관계 문제'에 가려져 임팩트가 거의 없어요. 그냥 루네가 부모한테 개인적으로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그걸 잘 해소했다, 정도로 끝나죠. 이 부분, 잘 보면 루네가 부모한테 서운한 마음이 있던 것은 '자신을 예비 계획으로 보고 있던 점'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확인되는 진실은 '그게 진짜였다'입니다. 그러니까 뭐 다른 복잡한 사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루네의 부모는 진짜로 루네를 예비 계획으로 보고 있었어요. 근데 작중 내내 그 부분에 괴로워하던 루네는, 그 잔인한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도 그냥 씩 웃고 넘겨버립니다. 마치 해탈한 것처럼. 그러니 임팩트가 있을 수가 없죠.
앞서 시엘 파트에서 짚었듯, 루네는 히로인으로서의 무게감도 시엘에게 확연히 밀립니다. 대표적으로 베르소 엔딩에서 보면, 시엘은 '베르소를 이해하지만, 납득하지는 못하는 시엘의 복잡한 감정'과 '이렇게 할수밖에 없어 미안하지만, 그런 자신을 납득해주길 바라는 베르소의 복잡한 감정'이 잘 버무려 표현되는데, 루네는(루네를 연인으로 선택했더라도) 심퉁난 표정으로 철푸덕 주저앉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거든요.
결국 극 내에서 루네는 '얼굴 이쁘고 항상 정론만 말하는 눈요기형 꽃놀이패' 이상의 유의미한 역할을 하질 못해요. 33원정대의 모티프 중 하나인 페르소나5에서도 '타츠마키 안'이라는 캐릭터가 완전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설마 이걸 일부러 따라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캐릭터 활용이 아쉬웠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 이렇게 이쁜 캐릭터인데 수영복 디자인이...참...이게 참...이걸 욕을 할수도 없고 안하자니 속은 터지고 참... 장사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참...
+3. 기술적인 문제
미술적인 아름다움이야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물들의 3D 모델링은 솔직히 그걸 따라가지 못합니다. 특히 머리와 목이 연결된 부분이 굉장히 어색해요. 캐릭터가 고개를 젖혀서 돌아보는 모션은 솔직히 기괴합니다. 마엘이 같은 경우, 각도에 따라서 얼굴이 굉장히 일그러지게 보입니다. 거기다 마엘이가 후반 스킬인 '검의 발레'를 쓸 때, 중간에 크게 뛰어올라 찌르는 장면에서 대사가 출력되는데 정작 입은 움직이지 않고 꾹 다물고 있는 등, 구현이 불완전한 부분도 있죠.
거기다 기술적인 버그도 꽤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원거리에서 잡을 때 머리가 백발로 보이는 장면은 꽤 흔하게 등장하죠. 이외에도 손 부분 모델링이 겹침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데, 컷신에서도 손이 다른 오브젝트를 뚫고 나가는 모습이 몇번 나옵니다.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죠.
그리고 이건 구현의 문제라기보단 패링을 기본으로 하는 게임 시스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겠지만, 너무 억지스런 엇박이 많아요. 엇박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멀기트 '때릴까 말까 때릴까 말까'처럼, 간보기 엇박놀이를 하는 몹이 너무 많습니다. 엇박을 쳐도 멋있게 칠수도 있을텐데, 힘차게 들어올리고->내리칠것처럼 하다가 살짝 자세잡으며 눈치보고->간잰다음->갑자기 내리치는 패턴이 너무 많습니다. 이 간잽이 놈들.
아 물론 정박 패링만 반복되면 지루하니, 변주를 주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재미없는 엇박이 너무 많은 것은 확실히 게임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입니다. 오히려 더 정석적인 변주인 특수패링이나 점프공격을 더 많이 활용해도 괜찮았을텐데, 이쪽은 오히려 좀 부족할 정도로 적거든요. 점프공격 섞인 패턴이 여러개 있는 몹이 거의 없어요. 많아야 두개, 보통은 한개 가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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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원래 일기장에 가볍게 쓰고 넘어가려 했는데, 막 이것저것 생각나는대로 쓰다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이 글을 보신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 생각에 동의하실 수도 있고, 반대하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저는 전문 평론을 할 생각으로 위의 글을 쓴 것도 아니고, 진지하게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쓴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죽 타이핑한 것이기 때문에 오류나 틀린 부분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 이런 점들이 있었다는 거죠. 부디, 글 보시는 분들이 재밌게 생각하실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댓글로 이야기해주시면 더 좋겠구요.
그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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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강력스포+장문) 클리어 소감 및 평론, 내용 비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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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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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출시] 2025.04.24 (PC)[출시] 2025.04.24 (PS5) [출시] 2025.04.24 (XS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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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정성추 드립니다. 하지만 다 못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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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정성추 드립니다. 하지만 다 못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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