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토리가 하도 산으로 가다보니 한 3번은 엎었습니다.
있는 스토리 가져오는 것은 쉽지만, 납득의 과정은 험난합니다.
제 글은 오직 루리웹에서만 연재중 입니다.
원작 활협전의 이야기와는 관련성만 따왔을 뿐,
엄연히 다른, 제 사심가득한 글임을 말씀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지났다고?"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동굴 안. 청의를 살짝 덮은 메마른 몸의 늙은 남성과 귀공자같은 용모의 청년이 마치 오랜만에 다시 만난 듯 바위를 의자삼아 앉아 횃불이 살살 주변을 밝히는 자리에서 간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년이 답했다."이년하고 오개월 쯤 지났습니다."늙은 남성은 힘 없이 바닥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는 온 몸이 떨리고 있었고 옆에서는 의사로 보이는 여성이 그의 시중을 들며 진맥을 짚고 있었다. 맥의 떨림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 성치않은 몸의 의중이 걱정되었다."깨어나신지 이제 이틀 되셨습니다. 어제부터 겨우 식음을 시작하셨으니 아직 일어나시기에는 힘에 부치실 겁니다. 다시 누우시지 않으시겠습니까?"늙은 남성은 손으로 입을 가려 나오는 기침을 세어번 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소저는 내 모습이 많이 안 좋아보이시오?"고개를 끄덕였다."의사의 입장에서 보건데, 비록 그의 시심단의 벌레로 겨우 목숨을 보전하셨으나, 지나간 세월이 거의 이년하고도 반년정도 되셨습니다. 다행히 제가 사용하는 외과술로 그것을 겨우 제거하고 일어나셨으니 당연히 기력과 양기가 이전보다 많이 떨어져 조금만 숨을 쉬어도 나오는 날숨은 얼음장처럼 차가우실 뿐입니다. 내력도 느끼셨겠지만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과거와 같은 모습은 지금으로선 서있는 것도 고작일 것입니다. 목숨이라도 온전히 되찾으셨으니 지금은 아직 따뜻하게 신체를 보온하시고 내력을 보충하심이 옳습니다."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천천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깊은 잠에서 겨우 깨어나 일어나보니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차가운 동굴 속. 사경을 헤매다 남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더니 생각 이상으로 전혀 예상 못 한 곳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전해들은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한숨만 땅이 꺼져라 내쉬어질 뿐이었다. 남성은 여성에게 덤덤히 말했다."내 비록 죽을 목숨이었으나, 그대의 의술로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어 감사하오. 그러나 아직 누워있기에는 내 고집이 세서 말이지. 조금은 더 괜찮겠나?"여성은 그의 고집에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맙군."그렇게 그녀에게 예를 표해 이야기하고는 청년과의 이야기를 이어갔다."사실 그날 모든 것을 포기했으나 덕분에 목숨은 건졌구나.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는 않군."청년은 그저 냉정한 눈빛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그날 그냥 죽게 놔두어선 안됐습니다. 결국 제가 내린 최선이었으니 결례를 용서하십시오."청년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엎드려 절을 청하니 남성은 나오는 헛기침을 손으로 가리고 두어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쓰러져 갈 적에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결례는 아니니 신경쓰지마라. 단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구나. 지금 무림의 상황은 어떻더냐?""당문은 새로 결성된 무림맹에 의해 멸문되었고, 여타 다른 문파들도 그들의 파죽지세와도 같은 기세에 멸문되었습니다. 특히 당문은 타격이 많이 컸습니다. 당포의가 습격을 받아 죽었고, 조활은 마지막까지 결사항쟁했지만 결국 시체마저 회수 못했습니다. 무슨 작당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시체를 무림맹이 옮겼다고하니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삼사제와 사사제 역시 행방불명입니다."남성은 땅이 꺼지도록 크게 한숨쉬었다. 한숨과 함께 계속해서 마른기침을 하니 옆에 있던 여성은 새하얀 천을 공손히 전해주었고 그것을 사용하여 입을 닦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년 오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잠만 잤어야만 했던 늙은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어찌하랴. 아마 자신이 있었어도 멸문은 막을 수 없었으리라. 멸문의 끝까지 결사했을 그들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미어졌다."포의, 승 형, 유원, 그리고 조활까지...""저는 당신의 신체를 유지했어야 했습니다. 들키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그들을 도울 수 없었고, 그곳에서 당신을 옮겨오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무림맹에 대한 대항력이 약했으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었지요. 추풍낙엽, 풍전등화였습니다.""그렇군..."그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을 하더니 다른 질문을 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확인이었다."령아는 어찌되었느냐?""소사매는 조활 덕분에 살아 도망쳤습니다.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으나 조만간 정보원이 당도할 것이니 상황을 알 수 있을 겁니다."남성은 여전히 땅바닥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전해들은 내용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였으니 엉킨 실타래를 풀 듯 차근차근히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내가 상황이 좋지 않으면 령아의 혼인을 미리 보내놓으라 부탁했건만... 승 형은 결국 시집보내지 못 한 건가."청년은 냉정한 얼굴에서 그 순간만큼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아뇨. 삼사제는 소사매를 시집보내기 위해 전국의 손꼽히는 남성들을 받아 그들을 부군으로서 삼을 심사를 치뤘습니다. 굉장히 꼼꼼하고 세심하게 치뤘지요. 어설픈 자는 엄격히 타이르고, 오만한 자는 내쫓았으며, 오로지 분별력있게 엄히 고르고 선별했습니다. 이후에 가려진 자들도 하나같이 괜찮은 인물 됨을 보였지만, 단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소사매 스스로가 선택한 혼인상대가 당문 내에 있었다는 것이었으니, 다들 아연실색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요."남성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놀랐지만,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는지 눈을 감고 슬쩍 미소지었다."그렇군. 그 아이가... 그제서야 스스로 선택했다는 건가.""네. 그다지 놀라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상대가 누군지 알고 계셨습니까?"......."모를 수가 있겠느냐. 그 아이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억지로 포의와 혼인 시키려고 했었던 것은 주변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문인의 딸이란 자리는 결코 가볍지가 않아. 나 조차도 그 아이의 부군을 아무나 고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늘 포의와 연결시켜주려 공석에서도 항상 이야기했으나 포의는 언제나 령아를 친동생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이는 결코 이어질수 없는 인연이라 여겼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둘을 이어주는 것이 당문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혼사라고도 생각했으나 그 둘의 생각은 당췌 맞지를 않았으니, 결국 선택의 영역이었다. 이전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령아가 직접 선택한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령아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었지."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과거 딸의 모습을 되새겼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언제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변함이 없었다. 안타까웠다. 천지무성세를 괜히 전수해준 것일까 반신반의 했었지만 이는 혹시 모를 당문의 운명과 딸의 안위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천지무성세는 극도의 감정배제가 필요한 무공이다. 당문인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의도와 기척을 알려서는 안되는 암살 무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습득하면서도 신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변화로 인한 소리와 기척을 극도로 지워야 했고, 그것의 반동으로 감정폭발을 쉽사리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인내심이란 가면 속에 망설임이 내재되어 있기 쉬웠으리라. 어려서부터 감정이 배제된 것이 문제였는지 도통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게 성장한 것 같아 항상 마음에 걸려 두고두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정반대로 딸의 시선은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오로지 천지무성세가 가르쳐준 감정감옥을 벗어난 그녀만의 솔직함의 시선이었다."내가 본 령아의 눈빛은 늘 한 곳에만 머물러 있었다. 언제나 누군가가 하지않으면 직접 나섰고, 온갖 패악질이란 패악질은 다 당하면서 꿋꿋이 자기자신 하나 만을 바라보는 그 남자의 등, 하나 만을 바라만 보았지. 지붕 위, 회의 중, 식탁 위 등등. 그 눈길을 내가 모를리가 없지 않느냐. 단지 령아가 사랑이란 감정을 스스로가 알아차리기를 바랬건만, 내가 쓰러지던 날까지 그 소중한 감정을 알아채지를 못 하더구나. 그래서 그 날이 오기 전, 불안함에 승 형에게 미리 부탁했다. 포의가 아니라면 령아가 원하는 사람에게 시집보내라고. 결국 그때도 령아가 선택을 못 한 것인지 시집보내려고 승 형이 신경써서 전국의 인물들을 모았었구나. 그래도 결국 원하는 사람과 이어진 것을 보아하니 뒤늦게라도 깨달은 것이 맞겠지. 참으로 다행이구나... 다행이지만..."남성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조활은... 정말 죽은 것이냐."청년은 다시 냉정한 얼굴로 돌아갔다."정확히는... ' 서있는 모습이 마치 송장과도 같았다. ' 라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결사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을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 하여 잘 모르겠으나 무림맹이 그의 시체를 회수했다는 식으로 정보가 들어오니, 당췌 무슨 이유로 그를 거둬간 것인지 예상이 가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그런가... 쿨럭 쿨럭! 쿨럭! 하아아...."여성은 기침을 끊임없이 하며 힘 없이 쓰러져가는 남성을 부축하여 눕혔고, 주변을 따뜻하게 하기 시작했다. 달여진 탕약의 약재 내음이 은은하게 퍼져 기분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드니 그제서야 기침이 멎었다. 그녀가 달여놓은 약을 정성스레 그의 입에 떠 넣었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차리니 겨우 입을 뗐다."고맙소. 소저의 이름이 궁금하오만."여성은 자리에서 가볍게 예를 차리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본녀, 금나라 양유시라 합니다.""금나라라... 어찌하여 이곳에 당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와줘서 고맙소."양유시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부군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이는 당연한 것이지요.""부군이라면... 쟁아인가?"그 이야기를 들은 양유시는 당쟁을 슬쩍 떠보았고 그는 그저 눈을 감고 모른척 시치미떼는, 알아서 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한숨이 나왔다."아닙니다. 저는 일단 저 날수공자에 의해 납치되어온 몸입니다. 제 목숨을 담보로 말이죠. 부군과는 지금은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저와는 다르게 같이 있을 상황이 아니라서."여전히 당쟁은 두눈을 감고 있었으니 그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그런가... 쟁아가 여간 음흉한 놈이 아니긴 하지. 그런 놈이 혼인이라니. 나도 영문 모를 일이 될 뻔했군. 내 대신 사과하지. 허나 악의는 없었을 것이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소저의 부군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잘 아는 자이오? 대충 느끼건데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아보이오만"양유시는 미소를 지으며 부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결코 웃기지 않는 그런 이야기."그가 조활 공 덕에 가족과 자신의 목숨 줄을 연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은인이라고 고막이 터지도록 들었지요. 함부로해서는 안되는 사람임을 뼛 속 깊이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살려주신 은인 중 한 명에 장문인도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저 날수공자의 협박이 아니었어도 장문인을 발 벗고 도울 것임에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없지요."당중령은 그녀의 이야기에 경청하였고 과거에 누군가가 있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떠오른 청년의 얼굴이 스쳐지나가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그렇군. 그렇구만... 후후. 그는 잘 지내는가?"양유시는 그의 맥을 조심스레 짚으면서 답했다."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부군은 강합니다. 단지 바쁠 뿐입니다.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이 아쉽군요.""후후... 그렇군."눈을 감고 감탄하더니 조용히 청년을 불렀다."쟁아야."당쟁이 긴 침묵을 깨고 오로지 장문인을 향해 예를 다하며 답했다."말씀하시지요. 장문인."당중령은 크게 들숨하고 내쉬고는 말했다."시심단 해독방안에 대해 알아보았느냐?""최대한 알아보려 했습니다만, 아직까지 크게 진전이 없습니다.""그렇다면 내 심장에서 꺼낸 그것은 어떻더냐?""안그래도 장문인 몸 상태부터 확인한 뒤에 보려고 했습니다만. 어찌..."당중령은 현재 새롭게 결성된 무림맹 무리의 좋지않은 행적을 과거의 기억을 따라 비슷한 사례를 떠올렸다. 좋지않은 기억이 떠오르니 피비린내 나는 냄새마저 그날처럼 콧등을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아무래도 좋지 않구나. 만에 하나이니 서둘러 연구해보거라. 느낌이 좋지 않구나. 언젠가 마주했던 기분이 든다. 무림맹이 풍기는 냄새가 그리 좋지않아. 조활을 회수한 것도 그렇고..."당쟁은 그의 의도를 파악한 듯 조금 놀랐으나 자신이 잠시 속해있던 무리들이라면 이라는 불안한 생각이 의도치않게 머리 속에 새겨졌다. 덕분에 한시가 급하단 것을 알아버렸으니 더는 지체해선 안되는 상황이 란 것을 깨닫고는 장문인에게 고했다."장문인의 의도를 알겠습니다. 조속히 연구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그래. 아마... 좋지않은 재회가 이루어질 것 같구나. 이젠 나도 내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부디 서둘러야겠지. 부탁하마."당쟁은 크게 예를 표하고는 자리를 나섰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폐허가 되어버린 참상에 그녀는 입을 쉽게 닫을 수 없었다. 건물이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참상이라 그 누구도 멸문이후 이곳을 둘러보지 않았다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발자국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니 이곳이 정녕 자신이 알고있던 외성이 맞나 싶었다."으아... 여기가 외성이에요? 정말 심각하네. 그래도 건물은 잘 있으니 몸을 위탁할 만은 한 것 같은데 주변에 널부러진 이것들을 치우긴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러다간 돌부리에 걸려넘어지기 쉽겠어요.""......"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고는 재빨리 경공을 사용해 건물지붕 위로 올라서서 상황을 낱낱히 살피는 묵령. 한 지붕아래 사람들이 살던, 그 이전의 외성은 상처만 가득한 몰골로 그녀를 반겼다. 반가웠지만 이정도로 부수고 갔을 줄은 몰랐다. 주변의 부랑배의 흔적이나, 갈 곳 잃은 사람들의 흔적이 있긴 했지만 얼마나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 오래있지 못 하고 떠나간 흔적도 많이 보였다."당 언니! 사람들은 어찌할까요!?"밑에서 조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가 사람들을 줄줄이 데려와 일단 지친 몸들을 주변에 뉘였다. 묵령은 지금 당장 외성바닥을 치우기에는 무엇하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대문으로 갔고 활짝 열려있는 나무 문은 그다지 파손되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닫으려 몸을 움직였다. 외성 문의 망루로 넘어가 바깥상황을 살펴보니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듯,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은 확실치않으니 외성 방어를 위해 성문을 닫는게 나아보였다. 묵령은 밑으로 내려가 열려있던 외성 문을 닫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쇠로 옆에 널부러져 있던 자물쇠를 걸고 잠궜다."열쇠를 가지고 계신거 보니 확실히 당가의 딸이 맞긴 한가보네요. 뭐, 사용하는 무공을 보더라도 의심할 이유는 딱히 없지만 확실하게 각인하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성문을 걸어잠그고 나니 그제서야 주변에서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랑배나 무뢰배, 도적잡배는 없는 모습이었고 주변 마을에서 도망쳐온 난민들인 것 같았다. 그때 묵령의 얼굴을 알아 본 듯한 인물이 다가왔다."너, 너는...""아... 의원님!"이전 당가와 친분이 깊었고, 이사형과도 각별한 사이었던 마을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령은 그와 많이 본 사이는 아니었으나 장문인이나 이사형과의 동행으로 몇번 면식이 있는 사이었기에 그를 알아보고는 천천히 다가갔다."살아 있었구나. 당문이 이리되고도 다들 얼굴하나 보기 힘들었는데, 네가 이렇게 살아돌아오다니... 다행이야. 다행이야...""의원님. 어째서 여기에...?""따라오거라. 보여줄 것이 있다."의원은 일단 묵령을 데리고 그가 나온 방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바닥이었지만 누군가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방안에 들어오니 갑작스러운 어둠으로 초점을 찾기 어려웠으나 금방 눈이 적응하여 곧바로 상황을 알아볼 수 있었다. 누워있는 누군가. 나이가 있어보이는 사람이 누워서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니 묵령은 그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사, 삼 사형??"당문 삼사형이자 장문대리인이었던 당승이 누워있었다. 묵령은 그 모습을 보고는 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얼굴을 만지며 그의 의중을 살펴보았고 숨은 미약하게나마 쉬고 있었으나 아무리 그를 흔들고 불러보아도 일어나질 않는 상태였다."의, 의원님. 사형이 왜 이렇게...?"의원이 한숨섞인 어투로 답했다."뭐, 장문대리인으로서 멸문 마지막까지 싸웠다네. 덕분에 왼팔을 잃긴 했지만... 싸움 중에 머리를 다친 것 같은데 목숨에는 문제가 없으나 도무지 깨어나질 않는구나. 무림맹의 당문죽이기가 끝이난 이후, 유원이가 장문대리인을 데리고 와서 나에게 맡겼지. 지금은 매우 호전되었으나 아직도 의식을 못 찾고 이 모양이다.""사, 사 사형도 살아있어요?""그래. 길을 떠난지는 얼마 안됐지만, 장문대리인의 약을 가지러 간 것이니 돌아온다쳐도 열흘은 걸리겠지. 그나저나..."의원은 뒤따라 들어온 조운의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그쪽 아가씨는 어떤 분이시오? 이곳에서는 처음보는 용모네만."조운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서둘러 예를 갖춰 인사했다."소녀, 성도 현의 조가 운이라고 합니다. 당 언니께서는 오늘 제 목숨을 구원해주신 은인이기도하고 갈곳이 없어 언니를 따라다리던 참이에요.""조씨라... 그러고보니 당문 외성제자 놈도 조씨였는데... 기이하군. 그렇다면 소저는 촉나라 조운 공 계보의 먼 친인척인가?"....' 외성제자 조...씨?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어... 같은 조씨는 맞아요. 부모님에게 직계라는 이야기는 들어본적 없으니 아마 먼 친인척이 맞을 거에요. 게다가 우리 집은 가난을 겨우 벗어났거든요. 그쪽 조가와는 많이 멀거에요.""그런가... 흐음..."의원은 조운의 용모를 스윽 쳐다보았다. 어딘가 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당 소저. 바깥에 데리고 온 분들은...""당문이 멸문된 후에 주변이 어수선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은 그 어수선함을 틈타 세력을 키우고 있던 무뢰배집단 중 하나를 처단하고 구해온 분들입니다. 갈곳이 없다는데 일단 외성 규모가 괜찮다보니 잠시 머물게 하려고 합니다."의원은 바람결에 찰랑이는 수염을 어루만지고는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묵령에게 말했다."뭐, 당문 관리인이 부재이니 당문의 핏줄인 당 소저가 맡는게 일단 맞겠지. 자. 이걸 받으시오.""이건..."의원이 묵령에게 넘겨준 것은 살짝 파손된, 나무로 된 명패였으니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들었고 곧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단숨에 알 수 있었다."이건.. 장문대리인 명패... 설마...?""유원이가 잠시 나에게 맡긴 거라오. 대리인이 저리 되었으니 나에게 맡기고 길을 떠났지. 도저히 받기는 어려웠으나 주변에 나만큼 살아온 사람이 없었으니 인망을 믿고 넘겨준 것이지만, 이제 집 주인이 돌아왔으니 돌려주는 것이오. 이것은 당 소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소. 그러니 이제부터는 당문에 대한 결정은 직접 맡으시오. 지금 당장 큰일은 없으니 직접 결정하는 쪽이 좀 더 편할 거요. 게다가 그것은 내가 지니기엔 말도 안되는 물건이니 유원이만 욕 할 수 밖에..."묵령은 명패를 들고는 무언가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이런 막중한 자리를 가지자니 머리 속이 복잡해져갔다. 세상은 잔인했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당의 이름을 이은 자로서 숙명이기도 했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갑자기 주인 행세를 하려니 두려웠다. 하지만 묵령은 알고 있었다. 이제 더는 멈춰서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감사합니다 의원님. 그간 맡아주셔서 고생하셨어요."그저 공손히 대리장문인 명패를 받아드는 묵령을 보고는 자신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는지 이제 갓 성인이 된 그녀에게 커다란 짐을 짊어지게 한 듯 해서 한숨만 쉬어졌다."부끄럽구만. 이것을 넘겨주기만 하면 나는 좀 더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당 소저에게 이런 무거운 중임을 내 손으로 직접 넘겨야 한다니... 세상도 참으로 야속하군. 그래도 부족하지만 당 형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보필해 드리리다. 당 소저들이 데려온 난민들도 내 힘 닿는데까지 도와드리겠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돈은 받지 않겠소. 나중에 당문이 다시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자한다는 셈 치겠으니 걱정마시구려.""가, 감사합니다!"씁쓸했지만 그녀를 돕는게 그나마 나을 것이라 여겼고 이렇게 이야기 한들 걱정, 근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활짝 웃는 손녀뻘 아가씨의 얼굴을 보니 한결 나아진 의원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 난민들에게 다가갔고 성치않은 사람을 위주로 진료일을 보기 시작했다."당 언니. 이제부터는 어쩌실 거에요?"묵령은 조운의 말에 누워있는 삼 사형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입술을 굳게 깨물고 앞으로의 일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해둔 것을 새로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다시한번 정리하기 시작했다."열흘 뒤면 사 사형이 올 것이고, 보름 뒤면 공동파 언니들이 올 거야. 그때까지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인원이 없으니까. 대신에 주변을 좀 돌아보면서 청소도 좀 하고... 일단 그때까지 버티고 그 이후에 인원분배를 해야겠어. 혹시 모르니 난민 분들 중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선별해서 정비를 해야할 것 같아. 그전에 삼 사형께서 깨어나시면 좋겠지만 의원님도 모른다고 하시니 내가 어떻게든 해야겠어.""호, 혼자서 괜찮겠어요?"그저 묵령은 미소지을 뿐이었다. 힘들다. 그것을 따질 시기가 아니었으니 최대한 뿌리칠 것은 뿌리쳐야만 했다."조운은 집으로 안 돌아가?"조운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토라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엄마가 하는 일은 마음에 안들어요. 아빠는 입은 있는데 말하기를 꺼리고. 오빠, 언니들은 죄다 이골나서 독립했는데, 저는 아직 어리니까 집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자랄수 밖에 없었어요. 그와중에 아빠가 하도 당가, 당가 노래를 부르시니 촉중당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보려 가출 겸, 온 것이었는데 저는 나라 상황을 잘 몰랐으니 언니를 만나서 겨우 구원 받은 거에요. 덕분에 당가의 위대함도 알았고... 언니를 보아하니 아빠가 당가노래를 부른게 이유가 있긴했네요. 나도 강해지고 싶은데... 혹시 나도 언니를 사사할 수 있어요?"묵령은 조운의 이야기를 듣고는 황당했는지 그 냉정해 보이던 얼굴표정이 순식간에 놀란표정이 되자 킥킥 웃어넘기는 조운이었다."히히. 반은 진심이었어요. 지금 당장 그럴 겨를도 없는데 어떻게 언니께 이런거까지 맡기겠어요. 괜찮아요. 언젠가 괜찮다면 부탁드려도 되죠? 아, 그리고 집에는 안돌아가니까 여기 있는 동안은 밥값이라도 할 겸, 일을 도와드릴게요!"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바깥으로 서둘러 휙 나가버렸고, 묵령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곤 어렴풋이 지나간 누군가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얼굴은 모르겠다. 때마침 자신이 그냥 넘겨 들었던 의원의 이야기도 그렇고, 조운의 익숙한 뒷 모습을 보고는 잊을 수가 없는 그림자가 보여 눈이 흔들렸지만 이내 착각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대리장문인의 명패를 쥐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아니겠지... 그래. 딴 생각하지말고 버티는 거야. 일단 수습부터 하자. 당의 이름을 먹칠 할 순 없어..."
월영전(月鍈傳) (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