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없데이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반인입니다.
어느덧 5화입니다.
꾸준함을 목표로 쓰고 있으니 힘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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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팬픽은 오직 루리웹 활협전 게시판에서만 연재중입니다.
원작 활협전 스토리와는 일절 관계없는 2차창작임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들은 당문으로 향한다. 평소와 같이 이동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무언가 무겁고 공기가 탁한 듯한 답답함. 그녀 주위를 가득메운 공기는 우소매를 난처하게 만들었으니 빨리 타파하고자 그녀의 의중을 조심스레 떠보았다.
"령아. 괜찮아?"
"......"
"나참..."
묵령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번소천의 말이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꿈자리가 좋지 않았나? 이리저리 생각해봤지만 딱히 확실한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령아."
"...미안해요."
다시 한번 묵령을 부르니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이 건너왔다.
"미안해? 뭐가?"
"그저 도움만 받고 자라서... 아직도 전..."
침울해져 소매보다도 느려진 묵령을 뒤에두고 멈춰서는 소매였으니 그 모습을 보고는 당황해하며 묵령도 같이 멈춰섰다. 소매는 오른쪽 발 만을 동동 구르며 묵령을 향해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가 대충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가 눈에 훤하니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매, 매 언니..."
"잠깐!"
소매는 묵령의 목소리를 듣고는 손을 뻗어 말을 멈춰세웠다. 고민 속에서 답을 찾으려니 여간 머리 아픈 것이 아니었고 더이상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 않기로 했다. 길을 잃었을 때는 그대로 정방향으로 가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으리라.
"손!"
"...?"
"어허, 손!"
"...!"
그녀의 호통에 묵령은 그저 손을 내밀 수 밖에 없었다.
짝!!
짤랑짤랑.
우소매는 묵령의 내민 손을 자신의 손으로 내려쳤고 묵령의 손은 그간 울리지도 않던 방울소리를 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오? 방울소리는 이렇게 나기도 하는구나?"
"매, 매 언니??"
그녀는 묵령의 두 눈을 지긋이 쳐다보았고, 그녀가 처음보는 부끄럽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니 비로소 입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르니 당황해서 차마 소매의 눈을 쳐다보질 못했다.
"뭘 그리 부끄러워해? 어깨펴."
"어, 언니..."
소매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토닥토닥."
"...!"
소사매의 당문 절기.
"이전엔 말이야..."
소매는 묵령의 손을 잡고 살살 어깨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이 손이 굉장히 힘이 됐어."
"......"
.
.
.
"킥킥. 설마 내가 너한테 토닥토닥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어때?"
묵령은 그녀의 손이 이리도 편할 줄은 몰랐다. 비록 뒤늦게 당문에 들어온 그녀였지만, 그녀 특유의 붙임성이 당문 사형, 사매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는 묵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던 소매는 어느샌가 묵령의 가슴 속 한 구석에 자리잡았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유롭게 돌아다닌 다는 것은 우소매같은 모습이 아닐까? 그런 그녀에게 부러움을 가진적이 있었다. 본인도 따라해보려 했지만 언제나 생각뿐이었으니, 그녀의 행동력을 바라만 보게 되었다. 하지만 묵령은 우소매가 아니었으니 유일한 그녀의 상징. 토닥토닥으로 언제나 힘을 불어 넣어 줬다. 그리고 자신도 토닥토닥을 받아보니 정말 잘 모를 힘이 불어넣어지는 경험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짐을 느꼈다.
"편안해지고 속에서 모를 힘이 생겨요. 어떻게 한거에요?"
소매는 그저 묵령의 등을 토닥였다.
"령아가 늘 하던대로 하면돼. 그동안 어떻게 했어?"
묵령은 곰곰히 생각했다.
"히, 힘이 나길 바랬어요."
소매가 미소 지었다.
"힘이 나길 바랬어."
소매는 깍지를 껴고 머리를 받쳐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바람은 시원하고, 지금있는 이곳이 무림맹의 영역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풍경이 주변에 가득했다. 새들이 지저귀고 나비가 훨훨 날개짓을 하니 이곳이 자연이었다.
소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무림인일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어. 평화의 시대에 줄곧 살아가길 바랬지. 너는 줄곧 수련에만 임했지만, 실전이 없는 무림인은 무림인이 아니야. 무림인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추구하고, 휘두르는 사람들이지.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도 무림인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져. 무협을 추구할 것이냐, 무뢰를 추구할 것이냐. 당문이 이유도없이 사람을 해하니? 물론 이유를 불문하고 그러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당문이 뿌리부터 무뢰한 문파는 아니잖아? 그건 나 말고도 령아가 더 잘알거야. 그리고 당문은 독과 암기, 암습에 능하지. 남들은 비겁하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않아.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는데 그런게 뭐가 비겁하니? 그것은 오히려 무림인으로서의 본문이지. 단지 힘만 가진 무림인은 결국,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진정한 의미의 무림인이 되어야해. 그렇지 않으면 논이나 밭으로 가서 농부나 되거나 나무베는 나무꾼이나 되야지, 안그래?"
소매는 묵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묵령. 너는 좋든싫든 장문인께 당문무공과 천지무성세를 사사했어. 힘을 지녔지. 하지만 모든 사형, 사매들이 네가 무림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어. 그래서 기꺼이 방패벽이 되어 준거야. 나도, 조활도."
이어서 두손으로 묵령의 어깨를 잡았다.
"당시에는 분명 네가 그러지 않아도 당문을 지킬 수 있었고, 너를 지킬 사람들은 충분했어. 하지만 그들은 이제 없어. 그러니 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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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좋지 않아. 이제는 그 힘을 쓸때가 온 거야. 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아마 어려울 거야. 사람의 목숨을 취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 첫 살인은 나도 겪어 봤지만 격앙된 기분이 온몸을 집어삼켜 숨을 쉬지를 못했었지. 머리속이 백지장이 되어버렸어.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 했어. 그런데 왜 죽였냐고? 그래야되는 상황이 와버렸으니까. 나는 힘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살아남길 바래. 번 소저가 말했듯, 너에게 실전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필요하진 않아. 필요한 상황이 오길 바라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무림은 힘을 사용해야하는 상황이야. 단지 령아, 그 상황이 닥쳤을 때는 네가 마음을 다잡아야해.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누군가를 지킬 수가 있어. 나도, 국 언니도, 소죽도, 조활도 이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랬지만, 이제는 안돼. 그러니..."
소매는 묵령의 손을 꼬옥 잡았다.
"부디 살아남는 길을 택하자. 도망이 답이 되지 않는 다면, 누군가를 지켜야만 한다면, 살아남아야만 된다면... 비로소 그때, 무림인이 되어야 해. 알았지?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묵령에게는 가혹한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우소매의 말도 맞았고, 번소천의 말도 맞다. 단지 그녀들과 자신의 차이점은 한 끗 차이였다. 자신이 가진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으니, 자신에게는 그것이 결여되어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있었다. 알고있었지만 매번 자신을 향해 되묻게 되었으니, 과연 남을 해 할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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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각오를 다잡아야 했다.
묵령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본 우소매는 한결 나아진 표정의 그녀를 보고는 반은 안도하였고, 반은 걱정했다. 단지 묵령만큼은 살아남길 바랬으니 이제는 전진 뿐이다. 몇겹을 쌓았는지 모를 매우 단단한 번데기에서 우화 할 시간이 그녀에게도 도래했으니, 부디 멋지고 강고한 나비가 되기를 바랬다. 단지... 부디 악에만 물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소매는 뒤돌았고 묵령에게 말했다.
"이제 당문은 금방이야. 마음 단단히 먹자.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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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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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깡! 깡! 깡!
욱죽이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가 숲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망치질에 두들겨진 철덩이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빨갛고 뜨겁게 달궈진 그것을 물속에 넣으니 수증기를 뿜어내며 빠르게 식어간다. 식은 철덩이를 꺼내어 얼굴 위로 들고는 균열이 있는지 없는 지를, 안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여러번 확인하더니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활활 타오르는 가마 안으로 넣는다.
"이번 철은 맛있구만. 착착 감기는게... 옳다옳아."
땀을 닦으며 하늘을 향해 시선을 옮기니 태양마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밭일을 빠르게 끝낸 위국이 집 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책을 보고 있었다.
"안 덥니 소죽?"
욱죽은 콧대가 높아졌다.
"이정도는 아무렇지 않습죠."
"그... 그래?"
그러자 욱죽이 골똘히 생각하는 듯 고개를 까딱이더니 달궈진 철덩이를 모양을 잡기위해 두들기기 시작했다.
깡! 깡!
"소매들이 나간지 얼마나 됐죠?"
위국이 손가락을 세어본다.
"한 사일? 슬슬 도착했을 날짜인거 같은데. 괜찮을까?"
"당문의 영역은 곧, 무림맹의 영역이니 조심은 해야할 것이고... 문제는 당문을 누가 지키고 있느냐인데요."
위국이 손으로 턱을 대고는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당문과 딱히 접점이 부족한 그녀였기에 그 생각은 헛되었음이다. 한숨을 가볍게 쉬고 책 한장을 넘긴다.
"분심화인이라... 뭐가 문제일까..."
술자는 불에 타 죽었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인 저주는 술자가 직접 풀거나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만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어 있는데 도무지 예상이 가지 않는 것이었으니 여간 머리아픈 것이 아니었다. 사방팔방 관련 저주에 관해서 돌아다녀 수소문했지만 여전히 방법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있긴했지만, 그쪽의 소식을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그저 발벗고 뛰어다니기만 급급했으니 위국은 한숨쉬며 탄식했다.
"하아... 공주... 대체 어디로 가버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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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소릴 하는구나. 국."
"......?"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위국과 욱죽의 귀에 들려왔다. 비록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걸걸한 음색이었지만 언뜻,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라 동시에 그곳을 바라보니 백의, 백발의 여인이 지팡이를 짚고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어디서 봤지? 누구지? 아무리 떠올려봐도 알 수 없으니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누구...십니까?"
"쯧..."
위국이 조심스레 묻자 한숨을 쉬는 여인이었으니 힘없이 목만 남은 그루터기에 잠시 쉬고자 앉은 그녀였다. 위국과 욱죽은 그녀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그녀를 알고 있던 것일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녀와 비슷한... 어... 비슷...한...?
"어??"
위국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자리를 박차고 백발의 여성에게 뛰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백발이 바람에 휘날려 아름다운 얼굴과 하얗고 차가워보이는 그녀의 얼굴 빛을 수초간 바라보니 언뜻 그녀의 기억 속과 비슷한 누군가가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보지 못한 얼굴이 서서히 위국의 눈에 겹쳐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놀라서 두손으로 입을 막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욱죽도 뛰어나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보니 외모보다는 몸짓에 초점을 두어 관찰하기 시작했고, 오로지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으로만 파악을 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몸가짐을 단 몇 초만 보아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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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이구나. 소국. 소죽. 내가 많이 변한건 알고 있었지만, 너희들은 변한게 크게없어서 보기 좋구나. 잘 지냈느냐?"
위국과 욱죽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고 마지못해 그녀들의 달려듦에 그루터기 뒤에 쌓인 낙엽들을 방석삼아 쓰러졌고 위국과 욱죽은 그녀를 껴앉은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들의 품에서 쌓여 누운 여성은,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소식을 알 수 없어 걱정에 걱정을 하던 둘이었으니 간만의 재회는 뜨거운 눈물만을 보일 수 밖에 없었고 이 상황은 마치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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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란 언니...!"
"언니! 언니! 언...언니!"
비로소 그 이름을 들으니 감정이 안정이 되어갔다. 그 누가 그녀를 언니라 불렀던가. 그 누가 그녀에게 안겼던가. 하후란은 눈을 감고 그녀들의 체온을 느끼니, 비로소 난국죽 자매가 모이게 되었다. 간만에 보는 얼굴과 우렁찬 울음소리에 당황함도 잠시, 이제는 슬슬 그녀들의 무게가 버티기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무겁구나. 이제그만 일어나주련?"
"앗, 아."
자신들의 상황을 뒤늦게 알았는지 허둥지둥 일어서서는 누워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는 옷가지를 정돈하지도 않고 도로 안았으니 그녀는 그저 그럴만하다 여겼다. 어느 날 갑자기 공동파에서 사라졌고, 어느 날 갑자기 소매가 같이 당문에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어느 날 갑자기 당문과 함께 사라졌으니, 그녀들은 걱정과 온갖 상상에 덮쳐 지난 시간들을 괴롭게 지냈다.
"죽은 줄... 알았어요. 정말."
"어디갔던거에요... 한참 찾았잖아..."
하후란은 그녀들이 이야기한 것들을 곰곰히 되돌아보니, 죽으려고 하긴 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내 살아있었으니, 이렇게 재회하는 것도 좋구나 싶었다. 자신의 제자가 다시금 고마운 순간이다.
위국이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뭐에요? 어디서, 어떻게 온거죠?"
힘이 없어보이는 하후란이 겨우 입을 열었다.
"공동파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국, 너라면 어디를 갈까 싶어서 떠오른 곳이 이곳이었다. 네가 언젠가 말했지 않았더냐. 공동파를 나간다면 언젠가 머물던 집으로 갈 것이라고. 그래서 설산에서부터 마차를 빌려타고 여기까지 왔단다. 다행히 너희들이 있어줘서 헛걸음은 안했으니 참으로 고맙구나."
위국과 욱죽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전히 눈물 뚝뚝 이었으니 서둘러 화재전환을 하기위해 말꼬리를 돌렸다.
"뭐... 이렇게 다시 보니 이젠 괜찮지 않겠느냐. 자. 눈물의 재회는 그만하고, 먹을거나 주련? 출출하구나."
"으, 응!"
욱죽이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에 위국도 도와주려 했으나 하후란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 그녀를 부축해 마루에 앉혔고, 찬찬히 그녀의 모습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후란은 더 이상 이전의 그 여마두의 모습이 아니었다. 백발, 백의, 창백한 피부, 무언가 이전보다 좀 더 마른 인상이 위국을 불안케 했고, 서둘러 그녀의 맥을 짚으니 가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란 언니... 설마..."
"후후... 그런 것이야."
그녀에게서 더 이상 내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모든 혈맥이 무너진 산송장과도 같은 모습이라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위국이 잡은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이는 내력이 온존히 존재하지 못하여 나오는 떨림이었으니, 거의 탈진 직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탈백유란은 없다. 뭐, 탈백유란의 재림... 정도는 남겨 놓았으니 그걸로 된건가."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지금 언니 상태는..."
하후란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워 입술에 가져가 조용히하라고 손짓 했고, 나지막히 미소지으니 위국은 도저히 그녀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괜찮다. 죽지 않아. 죽지도 않을 것이고. 살아남겠다 맹세했다. 제자가 준 목숨이다. 허투루 쓰지 않아. 다만 무공을 못쓰는 일반인으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힘들구나."
"란 언니. 이래도 되는 거에요? 너무 갑작스러워..."
하후란은 위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은 안하고 그저 미소짓기만 하니 동생은 살짝 토라질 것 같았다. 하후란은 그녀가 더 이상 장문인이 아님을 확인하고는 괜히 말장난이 하고 싶어졌다.
"장문인의 가면을 벗더니 어째 옛날로 돌아간 것 같구나. 그 지조있고 품격넘치는 현공문 장문인은 어디로 갔지?"
"어, 언니도 참!!"
티격태격. 이 말이 오니 저 말이 가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가족이었다. 멀리서 욱죽이 먹을 것을 가지고와 상을 차리고 따뜻하게 데워진 약초향이 첨가된 미음을 천천히 먹으니 생각보다 괜찮았는지 조심히 양껏 먹기 시작했다.
"언니, 좀 어때요?"
"생각보다 놀랍구나. 산 속 일지언데 간이 다 맞다니?"
"이 주변이 암염이 있는 일대라 음식 맛은 괜찮을거에요. 그것마저 없었다면 진짜 살아가기 고달프겠지만..."
"하하하! 암염이라니. 축복받은 땅이구나."
욱죽이 준비해온 식용 풀이며 줄기, 뿌리, 작물에도 간이 맞으니 하후란의 없던 식욕이 절로 생겨 덕분에 순식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좋구나. 설산에서는 음식들이 한결같아서... 제자덕분에 멧돼지고기를 말려 어찌 먹기는 하지만, 염질이 어렵다보니 비린게 어찌나 거슬리던지... 나중에 제자를 시켜 암염좀 가져가야겠구나."
"갈아놓은 소금이 있으니 가져가시면 되요."
"후후, 고맙구나 소죽."
아무렇지도 않은 주제를 꺼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그녀들. 현재의 정세, 우소매와 당묵령의 당문행을 이야기했고 그 소식을 들은 하후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제일제자의 사망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그나마 당문 소사매의 생존 소식과 그녀의 기지를 듣고나니 안타깝기도, 다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이 묵령을 보고 당문살이를 했던 하후란마저도 그녀의 무림행을 원하지는 않았으니, 그녀조차 이런 상황이 되리라 깊이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긴 하구나. 무림맹은 남궁가가 맹주가 아니라 다른 곳이라고?"
"남궁가의 맹주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다음으로 고운산파를 칭하는 청년이 있었으나 주변 여론의 공격이 거세지자 스스로가 무림맹을 탈퇴. 청성에서 뒤늦게 사람이 나왔고, 그 이후로는 꽤나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하후란은 턱에 손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냄새가 나는구나. 마치 행보가 아예 과거 무림맹과는 정반대가 아니더냐."
"정도와 정반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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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와 유사하구나."
마교. 과거 구 무림맹이 힘을 합쳐 와해시킨 무리들. 서하의 뿌리. 극락마존 이인우의 극락교가 그것.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나 이렇다할 증거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말고는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일단 제자한테 일러둔 것이 있으니 그것만 확인만 된다면 어찌 갈피는 잡을 수 있겠구나."
위국이 물었다.
"헌데 제자라고 하시니, 조공 말고도 제자가 있었습니까?"
하후란이 답했다.
"좀 나중에 거둔 아이인데, 이유가 있어서 활아를 남겨두고 그 아이를 데려왔다. 결국 설산파의 모든 것은 그아이에게 물려주었으니 탈백유란의 재림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보면 놀랄것이니라."
위국은 놀란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한숨 쉬었다.
"세상에는 놀랄 것 투성이군요. 요즘은 한달하고 보름을 넘겨도 아직도 놀랄 일들만 즐비하니..."
"인생이란 언제나 놀랍지. 일단, 지금 당장 설산에 돌아가기는 내가 버거우니 여기서 신세 좀 질까 하는데 괜찮겠느냐?"
"당연하죠! 같이 이야기 할 것들이 산더미입니다. 새벽밤을 각오하셔야 할 것입니다!"
"후후... 쉴틈을 안주는구나. 일단 전서구를 제자에게 보내야겠구나. 설산은 지금 비어있어 그쪽으로 가면 안될 것이니... 종이와 붓 좀 빌려주겠니?"
그 말을 들은 위국은 그녀에게 전서구를 보낼 준비를 도와주었고, 전서구를 보내고 나서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서두르니 오늘 밤은 길고 깊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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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 우와... 이, 이게 다 무슨... 시체 투성이잖아?? 강호쾌보에 적힌 내용만 보고 유추하건데, 보통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이정도라니..."
당문을 오르는 계단앞부터 시체가 즐비하니, 당문을 지키는 사람은 필시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도대체 이 위에는 무엇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았다. 피가 낭자하고, 구더기가 들끓고, 파리가 날아다니며 곳곳이 짐승이 파먹기라도 한듯한 참상이 그녀들을 반겨주니 그나마 우소매는 괜찮았지만 묵령은 그 참상이 익숙하지 않아 충격에 휩싸였다. 숨을 고르기가 힘들어보이니 우소매가 묵령의 등을 토닥여 숨을 그나마 틔게 해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눈에띄게 효과는 없었다.
"헉... 헉... 허억..."
"묵령. 괜찮아?"
묵령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집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당최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무언가 올라올 것 같았지만 저것들과 뒤섞이는 것을 생각하니 억지로라도 참게 되었고 그 반작용으로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우소매는 그런 묵령의 손을 잡아주었고 안정될 때까지 잠시 그 자리에서 있어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떨림이 서서히 멎어짐을 느끼고는 천천히 심호흡을 시켰다. 식은 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은 묵령이지만 툭하고 건들면 자칫 낭떠러지에라도 떨어질 것같은 모양새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소매는 두손으로 묵령의 두뺨을 살짝살짝 치면서 정신차리게 도와주었다.
"이제 시작이야. 마음 단단히 먹어. 다행히 아직까지도 들키지 않아서 망정이지. 나도 슬슬 긴장해야겠다."
우소매는 허리춤의 단도를 꺼내들었고 묵령의 손을 잡은채 서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매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운기를 할뻔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가슴 속이 불타오를 것만 같이 두근거리니 조절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한발짝, 한발짝 계단을 오르니 공기가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차있었고 비가 곧 올것처럼 공기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아직까진 크게 문제가 없으니 괜찮지만, 이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가 미지수다. 그녀들은 최대한 움직임을 제한했다.
"꼭 이럴 때 뭔가 만나게 되던데...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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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몰래 가는 두 여협들에게 고합니다. 정지. 정지."
"윽...!"
그녀들의 위쪽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지고 호쾌한 목소리가 그녀들을 대하니 우소매의 손에 든 단도가 긴장감에 살살 떨려왔다. 사내가 그녀들의 앞으로 다가왔고 소매와 묵령의 긴장감이 한층 더 고조되어버렸다. 이 사내는 외형으로 보건데 무슨 거지꼴을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은근 알 수 없는 기운을 풀풀 풍기니 예사롭지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사내가 먼저 입을 뗏다.
"더 들어가면 몸이 성치 않을건데 괜찮겠소? 여긴 말그대로 수라의 영역이오. 문 앞부터 강고한 검기가 당신들을 덮칠텐데 죽음이 두렵지 않소?"
우소매가 단도를 잡은 떨리는 손으로 그를 겨누곤 말했다.
"다, 당신. 누구야,"
세상 귀찮은 표정을 짓더니 자기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고 팅겨내 귓밥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며 곰곰히 그녀들을 관찰했다. 자신들의 온몸을 훑는 행동은 가히 불쾌했지만 사내가 뿜어내는 기운이 소름끼칠 정도로 좋지않으니 그런것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음. 복장이며, 외모하며 어디선가 본 적 있는거 같은데..."
우소매는 겨눴던 단도를 더 내미니 그의 얼굴을 의도치않게 슬쩍 찔렀으나 사내는 별일도 아닌듯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둘을 살펴보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우소매에 의해 얼굴에는 자상을 입어 피가 흘렀으나 눈하나 깜짝안하니 순간 섬뜩함을 느낀 것인지 단도를 자신에게로 가져오고는 방어의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사내는 그렇게 행동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으니 여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도는 것이 아니었다.
씨익
사내는 섬뜩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 어때. 당신네들도 죽으러 오셨소?"
"무,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이곳은 우리들 집이라고!"
"엉?"
우소매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그녀를 보다가 뒤에 있는 묵령에게 눈길이 갔고 찬찬히 그녀를 살펴보니 묵령도 그의 눈빛에 주춤하며 식은 땀을 흘렸다.
"아.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알겠다. 당문 장문인 눈을 닮으셨군? 어? 당문의 핏줄은 전멸... 된게 아니던가? 이상하네."
묵령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 아버지를 알아?"
"아! 그래. 당신이 홀로 그 난리통 속에서 도망쳤다는 당묵령 소저인가? 그때부터 시간이 꽤 흘렀는데 용케 안죽었네?"
순간 묵령은 그의 말에 오한을 느끼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으니 사형으로 부터 도망치라는 기억이 머리속에서 튀어나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묵령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사내는 무슨 일인가 싶어 우소매에게 이야기했다.
"이보시오. 당 소저가 왜 저러오?"
"...앗! 무, 묵령!"
우소매는 너무 경계를 한 탓에 묵령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 했다.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는 정신을 차리고 묵령을 달래니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는 그녀였으니, 사내가 보기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뭐, 여기가 당 소저의 집이었으니. 이 모양꼴을 봐버리곤 정신나가기 어렵진 않겠네. 사방이 이모양인 것은, 당문을 지키고 있는 부동명왕때문이니 참고만 하시구려. 그나저나 부동명왕이 당문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아. 그렇겠구만. 당 소저를 기다리는게 아닐까 싶은데?"
우소매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물었다.
"묵령을 기다린다고요? 당문 문지기가?"
사내는 이어서 답했다.
"부동명왕이 당문을 지킬 이유는 딱히 없소. 당문인도 아니니까. 그러나 당문의 외동딸이 살아있고, 마침 이곳에 당도했으니 소저가 그녀에게 간다면... 어쩌면 이 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요. 그녀는 당문에 대한 애착이 강한 모양이니. 그래서 무림맹 떨거지든 여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도전자든 당문을 지키기 위해서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죄다 문답무용으로 반갈라 죽이는거지. 대충 내 생각은 이렇다오."
"......대체, 저 위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는거야...?"
사내는 씨익 웃으며 뒤돌아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으니 우소매는 이상함을 느끼고 재빨리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누구길래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가시는 거요!? 우릴 해하려는 것 아니었소?"
사내가 답했다.
"나는 아귀도 법왕 유악이라오. 우리는 당신들을 해할 생각도, 주변인들을 해할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소. 사실 우리 아귀도는 빈집잡아서 터를 마련하려 했소만, 이미 이곳을 지키는 문지기도 있고, 이제 집 주인이 당도했으니 그 의미가 퇴색되었소. 문지기가 체력이 다하면 취하려 했지만 아직인것 같고... 우리는 이만 물러날테니 뒷처리는 알아서들 하시구려. 다들 들었지? 해산이다 해산! 육도협으로 돌아가자!"
"니, 니교라고?? 어? 어??"
주변 숲에 매복되었던 사람무리들이 나오더니 일사분란하게 당문의 영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 수가 무려 오백에 달했다. 남는 인원 없이 모두가 간 것을 확인한 유악은 뒤를 돌아서 그녀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는 이만 가볼테니 알아서들 처리하시오. 문제없다면 좋겠지만 집을 비우신다면 다시 우리들이 올 것이니 간수 잘하시고."
우소매가 외쳤다.
"니, 니교가 어떻게 그냥 간단말이오? 이, 이상하지 않소?"
사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쉬며 말했다.
"당신네들이 니교를 어찌 보는지는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마교가 아니오. 당신네들이 먼저 편협한 시선으로보니 답답하긴 하지만 어쩌겠소. 우리끼리 만든 세력이니 눈초리는 당연히 받을 수 밖에. 참고로 우린 부동명왕에게 몇 명 죽어나갔으나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없소. 죽은 놈들은 자기들 멋대로 들어가 죽어나간 것이니까. 스스로 뿌리고 거둔거니 원망도 안하오. 우리는 단지 우리만의 평화를 원하오. 그러니 조금은 생각을 달리해주기를 청하오."
그말을 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갔으니 그녀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망부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정적이 흐른 뒤, 정신을 차리고 묵령과 우소매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당문 앞에 당도했다. 피와 시체로 낭자한 당문을 보자니 괴로웠지만 묵령은 간만에 보는, 바닥에 넝그러니 떨어져있는 문패를 보고는 그저 말이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두 여협은 그것을 뒤로한채 한걸음 내딛었으니 마침내 한걸음이 남았다.
월영전(月鍈傳) (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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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니교에 대한 평이 나쁘지 않더라구요? 온갖 억까의 집합체라던데 자세한건 여기에 쓰기는 그렇고, 그래서 뒤늦게 조사를 하고보니까 스토리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 25.03.15 20:0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