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류연방 수도 연방특별시 부산 제1종합비행장.
080기관국장인 프란치스카 오이겐 대장과 대외정보팀장인 시라유리 소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인 레모네이드 알파와 요코스카에서 잠시 부산으로 복귀한 원정군 최고사령관 감마 해군 원수와 함께, 멸망 전 김해국제공항이었던 김해시 제1종합비행장 활주로로 나와있었다. 멕시코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카라카스의 일원들이 곧 부산에 도착한다는 소식들 듣고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카라카스는 최초 카라카스 국제공항에서 멕시코 국제공항으로 피신한 뒤, 출발하여 6함대의 모항이 있는 호주 브리즈번 군사기지를 기항하여 연료를 재보급 받고 최종목적지인 부산까지 2만 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을 넘어오는 중이었다.
다만 카라카스의 모든 인원들이 다 오는 것은 아니었다.
반절은 현지에 남아서 원정군에 투항하는 형식으로 자진하여 연방군에 현지입대하여 펙소 콘소시엄 전선에 뛰어들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지금 부산으로 오고 있는 카라카스 산업의 대표 대행, 비서 레모네이드 베타의 부관인 잉글리쉬 셰퍼드는 현지에 남아 원정군 2군의 블러디팬서 육군 대장과 하도연 해병대 대장의 곁에서 원정군의 전선 지휘를 보좌해주고 있었다.
“저기 오네요.”
어슴푸레한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이 보여지고, 곧 이어서 멕시코에서 펙스로부터의 대탈출을 감행한 카라카스의 민항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펙소 콘소시엄 산하 산업 하나가 통째로 이동하는 대장정이었기에 카라카스는 한 번에 수백 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민항기를 무려 열 기나 넘게 동원하였다. 이것도 상대적으로 다른 펙소 콘소시엄 산하 세력에 비하면 인원 수가 적었기에 가능했던 대장정이었다. 애초에 군수품이라도 “상품”을 생산하는 포세이돈 인더스트리와 달리, 카라카스 산업은 말만 산업이고 사실상 총재 오드리스콜 회장의 뒷일을 처리해주는 민간군사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야간 유도등이 일렬로 길게 늘어선 18번 활주로로 칠이 다 벗겨진 구형 A380 한 기가 뒷 바퀴를 거칠게 쿵-! 하고 내려앉으며 착륙하였다. 쇠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속력을 줄였고, 완전히 멈춰선 후에야 스텝카가 출발하였다. 멸망 전은 고사하고, 그 이전부터 거대한 몸집에 비해 공기수송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좌석 수가 불필요하게 많은 여객기였기에 진즉에 일선에서 물러나 A350같은 중형 여객기에게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버스사의 큰 형 답게 여전히 노련한 비행으로 펙소 콘소시엄 산하 카라카스에서 범인류연방 수도 연방특별시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도와주었다.
“여기가...”
“... 진짜 연방이구나...!!!!”
“반가워요, 연방 여러분~! 아름다운 밤이예ㅇ...”
“어앍!!!!”
“넌 좀 빨리 내려!!!”
이음새 볼트가 보일 정도로 도색이 벗겨진 비행기 동체처럼, 끼익- 끼익- 거리는 쇠 갈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비상구 문으로 카라카스의 시민들이 스텝카의 계단을 타고 하나 둘 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정 처음으로 맛보는 자유와 더 이상 펙스 치하에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빠져있었다. 카라카스 자체가 회장 부활 반대파였던데다 오메가 그룹이나 문리버 그룹, 비스마르스 그룹과 비교하면 많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지만, 그럼에도 오메가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계류요원에 안내에 따라 버스가 대동되어 사람들을 이송시키는 동안, 상복을 연상시키듯 발목까지 덮는 풍성하고 긴 검정 드레스에 머리가 땅 까지 닿을 정도로 긴 여인이 알파와 감마, 오이겐 대장 일행에게 다가와 목례를 하며 인사하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카라카스 산업의 시몬 블랑코 회장 대리인 레모네이드 베타라고 합니다.”
“드디어 왔군요, 베타.”
“먼 길 오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알파. 그리고...”
“... 그 동안 고생 많았어요, 감마.”
“베타...”
레모네이드 베타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 동안 마음 고생을 했을 막내 동생 감마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알파도 그렇지만, 감마도 거의 15년을 넘게 얼굴 한 번 못 보고 살았으니깐 말이다.
게다가 감마는 레모네이드 베타 그녀가 아니었었더라면 아마 지금 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감히 펙스에 대항한 죄몫으로 그 악명 높은 델타에게 잡혀 고문을 당해 죽었거나, 혹은 살아있더라도 산 게 아니게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델타의 성격을 생각하노라면 어떤 방식으로던지 물리적으로 괴롭혔을 것이 분명했다. 베타는 델타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감마를 구했지만, 정작 감마는 소위 회장 부활 찬성파의 대표자인 오메가와 델타로부터 배신자라는 모욕을 매일같이 들으며 모멸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고통을 받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감마의 모습이 베타에겐 실로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었는데, 맏 언니 알파를 따라 먼저 연방에 와서 잘 살고 있는 감마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또 한 편으론 그 동안 펙스에서 안 해도 되었을 맘고생을 했을 감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혔었다. 그렇게 최초의 레모네이드이며, 레모네이드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는 그저 보르비예프 세 자매로 불렸던 이들은 인류가 멸망하고 오늘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제대로 된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하였다.
보르비예프 박사의 자녀인 장녀 알파, 차녀 베타, 막내 감마는 최초 태어났었을 때처럼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그래도 드디어 이렇게 우리 셋이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었네요.”
“보르비예프 박사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 그러게.”
“셋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어머, 감마.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이젠 정말 의젓해졌네~”
“시끄러.”
“호호호호~”
세 자매의 감동적인 재회에 정보국은 뒷전이 되어버리자, 시라유리가 헛기침을 하며 그녀들의 주의를 환기하였다.
“... 흠흠!”
“아, 참. 너무 우리끼리만 감동의 재회에 빠져있었네요.”
“베타, 여기 이 분은 정보국장 겸 기술국장이신 프란치스카 오이겐 벨리코프 해군 대장이십니다. 그리고 이 쪽은 같은 정보국의 대외정보팀장인 시라유리 해군 소장이시구요. 앞으로 시몬 블랑코에 대한 신원은 정보국의 이 두 분께서 담당을 하게 될 거예요.”
“아아,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베타 씨. 편하게 오이겐으로 불러주세요.”
“시라유리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오이겐 씨, 시라유리 씨.”
“그래서, 시몬 블랑코는 언제 도착하나요?”
“아, 제가 타고 온 전세기의 화물칸에 있어요. 냉동캡슐이라 승객석에 태우고 올 수는 없어서...”
베타가 자신이 타고온 여객기를 가리키자, 때 마침 화물운송용 트럭이 화물칸에서 시몬 블랑코가 잠들어 있는 냉동 캡슐을 싣고 있었다. 화물칸에서 막 내린 냉동 캡슐은 마치 보냉팩에서 막 꺼낸 드라이아이스처럼 캡슐 주위로 냉기가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게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당연하지만 심정지 상태인 것만 제외하면 육체를 온전히 보관해야하는 냉동 캡슐 특성상 24시간 365일 상시 구동이 되어있어야만 했다. 오죽하면 카라카스가 연방으로 오는 이번 대장정에서도 냉동 캡슐을 어떻게 상시 가동한 채로 부산까지 가지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을 정도였다. 베타는 이 문제를 냉동 캡슐에 한 번 충전하면 최대 7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는 수소 배터리를 연결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중간에 호주 브리즈번에 있든 6함대 기지에 기항하여 여객기의 연료를 보급받는 동안에도 베타는 만일을 대비해 냉동 캡슐의 수소 배터리도 같이 충전해두었다.
냉동 캡슐을 실은 화물 트럭은 약속이라도 한 듯 보르비예프 세 자매와 080기관의 일행들 앞으로 잠시 다가와서 멈춰섰고, 오이겐과 시라유리는 직접 짐칸에 올라가서 냉동 캡슐을 확인하였다. 냉동 캡슐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해보니 중간에 다시 한 번 수소 배터리를 완충한 덕분인지 여윳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시라유리가 서리가 잔뜩 끼인 전면 강화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스윽- 하고 닦으니, 창백하다못해 도화지처럼 아주 새하얗게 얼어버린 인간 남성이 두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있는 모습이 비춰진다. 마치 그 모습이 빙산의 뿌리에 박혀 오랫동안 얼려져 있는 미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다.
“국장님? 자세한 건 닥터 양에게 가지고 가서 정밀 스캔을 해봐야지 알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여지는 상태는 매우 양호해보입니다. 제가 비록 생명공학 쪽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잘 보존된 신체 상태라면, 분명 심장을 다시 뛰게만 만들 수 있다면 금방 다시 깨어날 게 분명해요.”
“그거 다행이네...”
“... 베타 씨? 방금 말씀드린대로 시몬 블랑코에 대한 신원은 현 시간부로 우리 080기관에서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여기 오시면서 들으셨겠지만, 지금의 저희로선 시몬 블랑코에게 물어볼게 참 많아서 말이죠.”
“시몬 블랑코를 저희 기관으로 인계하는 데에 문제되거나 하는 부분은 없겠죠?”
“아, 네. 특별히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데... 깨어날 방법은 있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지금부터 찾아봐야죠.”
“하지만 저희도 펙스처럼 냉동 인간을 깨운 전례가 없는 건 아니라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저... 근데 시몬 블랑코를 깨우고 나면... 뭘 물어보실 건가요?”
“완전 자세한 건 기밀 사항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간단하게 몇 가지 알려드리자면 왜 멸망 전에 오드리스콜 회장 밑으로 들어간 건지, 카라카스 산업이 오드리스콜 회장의 어떤 부분을 해결해주는 일을 했는지, 오드리스콜 회장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아는 지 등등 물어볼 것 같네요.”
“그런가요...?”
“... 그럼...”
“... 혹시 저부터 먼저 심문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레모네이드 베타의 깜짝 선언과도 같은 요청에, 오이겐과 시라유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베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자매 알파와 감마 또한 베타의 말이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 자리에 서서 벙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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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휴재입니다.
사유는 예비군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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