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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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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미래는 장편입니다. 전편을 보고 오시는 편이 이해가 쉽습니다.
해당 스토리는 리리스 편의 후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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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응?”
얼마 뒤.
아직 병원에 있는 사령관이, 라비아타가 친절하게도 가져와 준 서류더미의 산에 짓눌려서 낑낑대는 걸 지켜보던 리리스가 조금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저, 임신한 것 같아요.”
사령관이 그 말에 반응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 그 말을 바로 옆에서 들은 콘스탄챠가 닥터에게 전화를 걸고, 다프네와 닥터가 경사 소식에 허둥지둥 달려와 초음파며 이런저런 검사를 해 보고, 이윽고 다프네가 “어머나, 리리스 씨, 축하드려요!” 하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 낼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 임신이라고?”
“네.”
“... 누가?”
“제가요.”
“......누구의, 아이를?”
“당연히 주인님의 아이를.”
다시 침묵.
오빠, 정신 차려- 하는 닥터의 말도 들리지 않는 듯, 사령관은 멍하니 리리스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우...”
“?”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진짜?! 진짜로?! 진짜?!!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아들이야?! 딸이야?! 아아아, 몰라도 돼, 어느 쪽이건 상관없어, 세상에, 임신이라고?! 언제?! 여, 역시 그날인가? 그날 생긴 건가? 우와아아!!”
“주, 주인님?”
“그, 그럼 4주차지? 그날이 한 달 전이었으니까! 아홉 달이면 자식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네?! 어떡해에에...! 벌써 막 몸이 떨려! 초음파 사진 나도 보여주라, 아아, 4주차밖에 안 돼서 아직 확인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어떡해...! 드디어 아이가!”
사령관의 심상치 않은 텐션에, 주위의 가족들이,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양 이마에 손을 탁 짚고, 누군가는 경사다~ 하며 리리스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그런 와중에, 사령관은 리리스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한껏 들떠 주체하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그 꿈 태몽이었다니까! 너도 꿨다고 했잖아! 늑대 나오는 꿈!”
“그러게요. 정말로 태몽이었나 봐요... 주, 주인님, 너무 들뜨셨어요.”
“그치만! 아이인걸! 그것도 나하고 너의!”
사령관에게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드물게 보여주는 만면의 활짝 피어난 웃음.
그리고 마찬가지로 웬만해선 들려주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나쁘게 말하면 나잇값 못하고 방방 뛰는 듯한 목소리.
그야말로 행복이 흘러넘쳐 과다 상태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그 앞에서, 리리스는 피식 웃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제가 주인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버릴 텐데, 너무 기뻐하시는 것 아니예요?”
“...... 아.”
잠깐, 사령관의 몸이 굳었다.
뻣뻣해져버린 그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오가고 있는지 -‘분명 리리스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 테니까 아들은. 아니, 아니, 아들이어도 좋지만, 그래도 딸이 좋을까. 첫째도 아들이고‘- 전부 보이는 듯 했다.
...아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정확할 것이다.
“...역시 레이도 있으니까, 딸이 좋을지도.”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사령관을 보고,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으음, 아마, 딸일 거예요.”
“...? 아직 4주차라서 제대로 모르지 않아?”
“아니, 그야, 꿈 속에서 나온 늑대, 그 아이는 암컷이었거든요.”
“그, 그래?”
흐음- 하며, 사령관이 생각에 잠긴다. 이번에도 무슨 생각일지 눈에 선하다. 딸이라면 아빠인 자신을 잘 따라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럼 리리스가 질투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리리스는 조금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정말 딸이라면...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저를 닮은 여자아이가 주인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으면, 조금은 질투할지도.”
“...으, 으음.”
... 다루기 쉽다고 생각해 버릴 정도로 생각대로 표정을 바꾸어준다. 키득 하고 참지 못하고 새어나온 웃음에 그가 뺨을 살짝 붉혔다.
“... 뭐, 딸이건 아들이건 상관없지. 아아~ 9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어떻게 기다린담.”
“후후후. 참을성도 없으셔라.”
그치만 리리스 역시, 9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건, 조금은 기다리기 어렵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래도 어머니인 리리스는 아이의 심장박동이라거나 느낄 수 있겠지만, 사령관은 그럴 수도 없으니까 더 기다리기 어려울지도.
“그... 주인님. 그런데.”
잠시 동안 웃었던 리리스는, 그러곤 조금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이 상태로는, 역시 경호는...”
“당연히 쉬어야지.”
즉답이었다.
...뭐, 리리스 역시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 설마 이번에도 탈주하게?”
“아, 아니예요!”
사령관의 농담 섞인 말에, 리리스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2연속으로 탈주를 시도할 만큼 리리스는 생각이 짧지 않다.
농담이라며 빙긋 웃은 사령관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어깨에서 힘을 빼고 중얼거렸다.
“... 이제 좀 더 열심히 일해야겠구만. 애가 셋이야.”
“더 늘어날 예정이고 말이죠.”
“...... 그렇... 네....”
최고지도자 자리를 물려주게 되면 사령관의 직무는 반토막 이상 줄어들 테니... 아마, 지금까지 미뤘던 가족계획도 절찬리에 진행될 것이다.
... 벌써부터 그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건 둘째치고.
“... 뭐,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나도 역시 한 명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으니 계획은 세워둬야겠지- 하고 살짝 표정을 푼 리리스에게, 사령관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 잘 키워내자!”
“... 후후, 네, 주인님.”
차분한 웃음을 지은 채, 아이가 있는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왼손에서 작은 백금색이, 반짝 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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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티아멧의 쓴웃음 섞인 말이었다. 살짝 얼굴이 미묘하게-그렇다곤 해도 내가 아니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붉어진 리리스에게 티아멧은 말했다.
“그럼 에델도 역시 그 시기에 태어난 거였군요... 언니, 몸에 무리 안 갔어요?”
“전혀요. 라고 말하고는 싶지만... 역시 부상 직후라서 좀 무리가 왔는지, 한동안 컨디션이 돌아오질 않아서 말이예요.”
“기억 안 나? 천하의 리리스가 나한테 업혀 다니고 안겨 다녔다니까.”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참 감회가 깊단 말이지. 다른 누구도 아닌 리리스가 나에게 안겨서 업혀서 다니는 모습이라니, 살면서 두 번 다시 못 볼 만한 귀한 모습 아닌가.
“그건 그랬지만... 아, 그러고 보니.”
문득 티아멧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 유리라는 사람은, 그 동생은... 그 뒤에...”
어떻게 됬나요. 그 끝말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리리스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곤,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뭐야, 불쌍하게 여기는 거야? 날, 리리스를 죽이려고 한 녀석인데?”
“그, 그건 그렇지만...”
조금 망설이듯이, 티아멧은 내심 측은하게 보듯 중얼거렸다.
“동생을 위해서라니, 조금은. 어딘가 안타까워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요.“
“흐음... 그렇지, 그렇기도 하겠지.”
그런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하긴, 그렇겠지. 리리스도 사정을 듣고서는 측은하게 생각했으니까... 티아멧에게는 더 불쌍해 보일지도 모른다.
“...뭐, 아무리 불쌍했다고는 해도. 법이라는 건 절대적인 거라서 말이야...”
아무리 내가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해도, 법이라는 녀석은 절대적이다. 게다가, 유리를 구해주게 된다면- 나머지는?
나머지 협력자들도 나름의 사정이, 나름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무시하고, 나와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유리만을 구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용납하기 어렵지.
“그럼, 그 사람은...”
“...유리의... 살인미수 및 상관살해미수, 내란목적살인미수 외 6개 항목으로 기소된 중범죄자 유리 카날리나의 공식적 기록은 20년 전이 끝이야. ... 옥중■■. 이라는 보고였지.”
옥중■■- 그 말에, 티아멧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서글프게 내려앉았다.
무기징역.
그것이 유리에게- 최고지도자를 암살하려 하고, 중상을 입히고, 현행범으로 체포된 국가반역자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자산 몰수. 연금 박탈, 직무 제한.
사면령이 내려온다 해도 원래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고, 동생을 고치는 것도 불가능할 나락에 빠져버린 그녀는... 옥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랬. 군요...”
마음씨 착한 티아멧은, 역시 날 죽이려 한 녀석이라도 안쓰러운 사정이 있었던 유리가 안타까운 모양이다. 그늘진 표정으로 살레살레 고개를 젓는다.
“... 어딘가 서글프네요.”
티아멧에게는 여러 감상이 섞인 말이었던 것 같다. 자남색 눈동자에 섞인 복잡한 감정에 무심코 쓴웃음지은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가슴 아픈 일이긴 했어. 유리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그러게요.”
나는 사진을... 이 이야기를 떠올린 계기가 된, 유리와 나, 필리안, 그리고 리리스가 함께 찍은 사진을 내려다보며 살짝, 추억을 떠올리듯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장난거리를 생각해 낸 어린아이처럼. 키득. 소리 내어 웃는다.
“티아멧.”
“네?”
“돌발퀴즈. 이거, 사진을 잘 봐.”
나는 슬쩍,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사진을 들어 티아멧에게 보여주었다.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를 듯한 동작으로 고개를 갸웃한 티아멧은, 사진을 받아들곤,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 사진,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없어?”
“...이상한 부분, 말인가요?”
내 말에, 티아멧은 눈살을 찌푸리면서ㅏ도 유심히 사진을 살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본다.
“...잘 모르겠는데요. 어디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진인데요...”
“그래? 의외인걸. 티아멧이라면 바로 찾아낼 줄 알았는데.”
“... 어디가 이상한 거지...?”
그러곤 계속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살핀다. 그런 그녀를 보고, 리리스가 키득 웃으며 손짓했다.
“티아멧.”
“?”
“힌트를 줄게요. 그 사진에는, 4명이 찍혀 있어요.”
“...?그건 당연히. 저도 아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이상한 부분은 어디일까요?”
이제는 온몸으로 물음표를 띄우는 듯한 티아멧을 지켜보며, 내가 쓴웃음지었다.
“...너무 큰 힌트 아니야?”
“그치만 전혀 감을 못 잡으니까.”
빙그레 웃는 리리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아직도 뭐가 뭔지 감을 못 잡는 듯한 티아멧을 보고 ‘...그건 그렇네.’ 하고 중얼거렸다. 하긴, 티아멧은 관련되지 않았던 일이니 모를 수밖에 없겠지- 하고 내가 정답을 알려주려던 찰나,
“...어라?”
하고, 티아멧이 문득 의문 섞인 목소릴 냈다.
그리고는, 어...? 하며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더니, 조금 혼란스러워하듯 말한다.
“..저기, 사령관님.”
“응?”
“...방금 생각해 봤는데요... 네 분은, 한자리에 모인 적도 없고... 그 뒤에도, 모일 수 없었을 텐데...?”
모양 좋은 눈썹을 시옷자로 만든 채 고개를 갸웃하는 티아멧.
나는 ‘봐, 너무 큰 힌트였다니까.’ 하며 리리스에게 농담을 던지곤, 빙그레 웃었다.
그런 날 보며, 맞죠? 하고. 티아멧은 말을 이었다.
“그야, 유리? 이 사람이 온 건 리리스 언니의 부상 이후고... 그게 사령관님과의 초면이었다고 했으니까 사건 이전에 찍은 건 당연히 말이 안 돼고, 그럼 그 이후밖에 시간이 없는데... 네 분이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시간은, 그 뒤에는 없었을 테고...”
“그리고?”
“게다가 이 유리라는 사람은 곧장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어라아~?”
시옷자가 되었던 눈썹이 일자로 돌아왔다가 동그랗게 구부러진다.
“...합성...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이건 대체 어떻게 찍은 건가요...?”
“깜짝퀴즈 성공이네.”
탈론페더 언니의 고급 기술인가...? 하며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티아멧에게,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곧장 두 번째 퀴즈. 그 사진은 합성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찍은 걸까? 아, 이번에는 힌트 첨부해 줄게.
-유리 카날리나의 공식 사망 기록은 23년 전 옥중■■, 동시기, 필리안 카날리나의 마지막 진료기록 작성... 병세 악화로. 사망. ...자, 맞춰봐. 어떻게 찍은 사진일까?“
말하면서도, 나는 힌트는 필요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티아멧은, 힌트가 다 끝나기도 전에 설마,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였다.
“...저기, 사령관님.”
“응?”
“...제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죠?”
“티아멧이 뭘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거 맞을걸.”
경악. 일까. 티아멧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 듯이 나를 보았다가도, 아니, 이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라고 생각하듯 한숨처럼 내뱉었다.
“...‘공식적’으로는, 옥중■■한 걸로 기록되었겠지만.”
빙글빙글 웃고 있는 나를, 그럼 그렇지, 라고 말하듯 바라보며.
“실은... 살려두셨군요? 그 사람은 물론이고 동생까지.”
조금 기운 빠진다는 듯한 어조에 내가 웃건 말건, 티아멧은 말을 이었다.
“...보나마나, 무기징역 선고 이후 이 사람을 감옥에서 빼돌렸겠죠. 그리고 대역으로 어느 중범죄자의 시신이라도 던져놓고 옥중■■로 처리... 그렇게 하면, 암살을 지시한 사람도 ‘유리’에게는...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명령할 수 없으니까.”
“흐음.”
“동시기에 동생도 사망했다는 건 즉 그런 뜻이겠죠? 그 동생도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림으로서, 혹시라도 있을 보복으로부터 지킨다... 그렇게. 두 명을 죽임으로서- 역으로 그 둘을 살린 거죠?”
“...후후, 글쎄?”
“...그 뒤의 거취 정도는 뭐, 사령관님 정도라면 문제없이 준비할 수 있을 거고요. ...아마 이름을 바꾼다거나 해서 근처에 두고 보호하고 계신 거 아니예요?”
티아멧의 제 말 맞죠, 라는 듯한 눈빛에, 나는 여전히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말을 아꼈다.
뭐, 티아멧의 예상은 어느 정도는 맞다.
내가 말한 대로, 아무리 나라도 법 위에 설 수는 없다. 보란 듯이 개무시하고 다닐 수는 없는 거다.
그래- 보란 듯이. 그럴 수는 없다고.
약간의 눈속임과 조금의 편법,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 방법이다.
우선 유리를 비롯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이들 5명을, 옥중■■, 혹은 사형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정작 그들 본인은 형이 집행되기 이전에, 혹은 수감지로 호송되는 도중에 바꿔치기되고- 바꿔치기된 이들은, 실제로 답이 없는 전과 8범 이상의 중법죄자들.
그 결과, 실제로 사형 또는 ‘■■당하는‘ 이들은- 유리와 같은 이들이 아닌, 어차피 죽을 쓰레기들 뿐이다.
그 뒤에는 시신은 화장되도록 되어 있으므로, 시신의 확인 절차에 내 입김이 닿은 이들을 배치하기만 하면 끝.
그리고 그들이 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 역시, 사망 혹은 실종 처리한 뒤- 내가 빼돌린다.
그렇게 빼돌린 이들에게 새 이름을, 새 얼굴을... 새 인생을 주는 것도, 나에게는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그들을 모두 죽임으로서 그들을 모두 살린 것이다.
“...몇 명이나 살려주셨나요.”
“그러고 보니 신시아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5명이군요.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칼립소 생일이 며칠이지?”
“... 12명이라.”
쏙쏙 이해하는 티아멧이 기특하군. 그나저나 왜 수수께끼 풀듯이 말씀하시나요. 라는 질문에는, 그편이 멋지니까. 라고 말했다. 뭐. 다들 동의하잖아.
아무튼.
“...뭐, 어이없고 허무하고 김빠지는 결말이긴 하지만... 사령관님다운 결말이긴 하네요.”
“나답다니?”
무슨 뜻이야. 라고 묻는 나에게 티아멧은 흥 하고 흘겨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쓸데없이 정 많고 냉정하지 못해서, 그렇게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자비를 베풀고 다니시는 거 말이예요.”
“바, 바보 같다니...”
나도 물러터졌다는 자각은 있지만! 그래도 선을 그을 때는 확실하게 긋는다고!
여러모로 너무한 말에 삐질 뻔 했지만, 그 전에 티아멧은 “그치만.” 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번에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쓸데없이 다정한 사령관님이라서. ... 정말로 그 사람들이 죽어버렸다거나 했다면, 더 씁쓸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편이 났다고. 티아멧은 입꼬리를 완만하게 구부렸다. 어딘가 칸이 연상되는 따듯한 미소였다. ... 나도 리리스도, 그 웃음에 따라가듯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너도 그렇게 말했었다. 쓸데없이 정 많은 게 당신의 단점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슴까. 라고. 나에게까지 옮아버린 그 특유의 쓴웃음과 함께.
너는 뭐라고 했을까. 그 일을 들으면. “또오오오 버림받은 개 줍듯이 여자 주워 왔슴까?!!” 하고 날 혼냈을까. 아니면, 티아멧처럼... 이번에는 다행이네요. 라고, 넘어가 주었을까.
이제는, 알 수 없겠지.
그때 그 순간에 나를 잡아 준 너도, 아마 내가 만들어 낸 환각일 뿐, 너는 이제 볼 수 없을 테니까-
잠깐의 상념을, 티아멧이 던진 말이 지워버렸다.
“필리안이라는 아이는... 꿈을, 이뤘나요?”
필리안의 꿈- 야구선수로서, 당당하게 그라운드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
그러고 보니 티아멧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긴 당연한 거겠지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년의 당찬 웃음을 떠올리며 먈했다.
“... 글쎄. 아마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런가요. ...야구선수,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는데.”
하여간 티아멧은 너무 상냥해서 탈이다. 지금도,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소년의 소식에 약간이긴 해도 기분이 가라앉았잖아.
뭐, 그런 면모가 장점이긴 하지만.
그런데. 흐음... 이번 말은, 좀 고쳐 줄 필요가 있겠는걸.
그런 내 장난기 어린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리리스가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티아멧. 그 말에는 어폐가 있네요.”
“...?”
“엄밀히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 아이의 꿈은- ‘그라운드에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알리는 것’. 이었으니까.”
이 정도쯤 했으면, 티아멧도 알아차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티아멧은 “... 으으응?!” 하고, 동그래진 눈을 한 채 말했다.
“...잠깐, 잠깐, 그 이야기는.”
“후후후.”
리리스의 어딘가 뿌듯해하는 듯한 웃음소리를 따라- 나는, 힐끗 시선을 옮겨 눈에 띄는 위치에 놓인 배트를- 글러브를 가리켰다.
“난 당연히 이쯤 오면 앗! 설마 저게! 하고 알아차릴 줄 알았지.”
“그, 그럼 저게.... 그럼, 그 애는. 설마..."
티아멧은 끝말을 흐렸지만, 그 눈동자는 제대로 보고 있을 것이다.
배트 옆에 놓인 사진.
그 사진 속에서- 나와 어깨동무한 채,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환한 함박미소를 지은, 어느 야구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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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 만루, 타자는 최근 타격감이 최고조인 ---- 선수입니다. 현재까지 양팀 모두 득점 없는 상황, 과연 이 상황을 ----선수가 돌파할 수 있을지, 9회말입니다. 한 점만이라도 뽑으면 끝내기로 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캐스터의 말이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흘러나왔다.
내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건장한 체구의 청년.
스물둘의 나이로 팀의 4번타자 자리를 꿰차고, 신인왕은 물론 mvp도 휩쓸고 다니는 스타 플레이어.
호타준족- 4번타자는 보통 파워가 강하고 주루가 느리다는 생각을 뒤엎는, 30개 이상의 홈런과 30개 이상의 도루를 동시 성공시킨다는 기록을 세운 사나이.
아마 올해 가장 유명할 선수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말씀드리는 순간에 타격! 제대로 맞았습니다!
-좌중간!
-좌익수, 달립니다! 달립니다! 그러나 너무 높습니다, 펜스를! 펜스를! 펜스를!!
-넘깁니다!! 끝내기 홈런! 끝내기 만루홈런!! ----! ---- 선수의 끝내기 홈런이 작렬합니다!
-시리즈 통합우승! 팀의 10년만의 우승을 ----선수가 만들어냅니다!!
정말이지,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정경인가.
-와아아아아!!
----! ----!
선수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는 관중들,
우승의 감격에 달려나오는 선수들,
출신 팀의 우승에 감동한 듯 목소리가 떨리는 해설위원.
그리고, 그 한가운데, 그라운드 한가운데에서, 양팔을 드높이 펼치고 포효하는, 우승의 주역.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주인님.”
“... 뭐, 그러는 너도 말이지.”
내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리리스가 빙그레 웃으며 건넨 말에, 나도 똑같이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둘 다 냉정한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도 나도 아까 전까지만 해도 격렬한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취미를 즐기자는 핑게로, 아들달들을 데리고 가족들과 야구장에 온 날이다. 좀 고삐가 풀려도 좋지 않은가.
주위의 몇몇이 내가 최고지도자임을 알아차린 것도 같지만 알 게 뭐람. 이런 날에는, 근처 관객의 이야깃거리 한둘 정도는 되어줘도 되겠지.
“... 아필라나. 라.”
저 선수의. 이름.
여자의 이름 같다고 잠깐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 이름이- 실은, 어느 소년의 이름을 비튼 것이라는 걸 아는 이는, 셋뿐이다.
“기분이 어때? 레밀리나.”
하고. 내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물었다.
그녀는 나의 직속 경호실 소속의 엘리트로- 저 선수의 이름의 유래를 아는 셋 중 한 명이다.
어딘가 감동한 듯- 아니면, 일생의 꿈을 이뤄낸 듯. 웃으면서도 눈물을 펑펑 흘리는 그녀에게, 나는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는 건 좋지만, 이따가 만날 때 눈 부어 있으면 아필라나에게 걱정 살 거야.”
“하, 하지마안, 이, 이런 상, 황에서어, 어떻게, 훌쩍, 안 울어요오오오.”
뭐, 나도 사실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걸 참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나는 여전히 울보에, 여전히 소극적이고, 여전히, 경호원 주제에 싸우기 싫어하는 여성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오늘은 봐주자.
그녀가 자신의 몸을 바쳐가며 이루게 해 주고 싶어 했던,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아닌가.
“초대님.”
“음? 무슨 일인가?”
“그것이... 트로피 수여식을, 해야 하는데.”
“아~ 그렇지, 참. 미안하네. 어디로 가면 되나?”
“저를 따라오십시오.”
“음음. 고맙네. 아, 한 가지 부탁이 있네만...”
“?”
나는 안내해주려는 경비원에게, 여전히 눈물을 펑펑 쏟는 레밀리나와 뿌듯해하는 리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도 함께 가도 되겠나? 내 경호원들이네만, 뭐랄까, 관계자라서.”
“가족분이십니까?”
“한 명은 내 아내고 한 명은... 으음, 내 아이의 이모라네.”
“아아, 알겠습니다.”
다행히 순순히 들여보내주는 모양이다. 행가래를 받는 아필리나를 보고 또 흐어엉 하고 울음을 쏟는 레밀리나를 일으켜세우는 리리스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나는, 경비를 따라 내려갔다.
“귀빈 입장하십니다!”
이것참.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귀빈 대접이 익숙치 않은 나는, 조금 뻣뻣한 걸음걸이로, 방금 아이스박스 속 물을 뒤집어쓴 아필리나와, 우승의 감격에 젖어 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초대(初代)인 내 입장에는 원래 관객도 정숙하고 일어서서 예를 표해야 하지만- 뭐, 이번에는 내가 그런 거 생략해 달라고 했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우승을 축하하고 싶다고.
관객의 열광을 굳이 진정시키고 싶지 않다고.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주장과도 인사를 나눈다. 사실 이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내 말에 선수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이번 우승의 주역과- 아필리나와 내 눈이 마주친 순간에,
“초대님--!”
“어이쿠.”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하이텐션의 목소리와 함께, 아필리나가 달려와, 그 덩치로 내게 포옹을 선사했다.. 거의 펜리르가 달려드는 것과 비슷한 충격량에 넘어질 뻔 했지만, 간신히 버텼다.
“야, 야, 소년. 여기 바깥이야!”
“보셨죠?! 끝내기 홈런! 아아, 정말이지 꿈만 같아! 10년만에 우승인데, 그것도 제 끝내기 홈런으로 결정타를 날리다니!”
조금은 진정하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것도 몇 년이 지나도 똑같다. 평소에는 예의 바르고 공손하면서, 흥분하면 자기 자신도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격.
그 사실에 조금은, 안도했다.
“소년.”
내가 아필리나의 어깨를 턱 붙잡자, 그는 네! 하며, 늘 그랬듯 웃었다.
나는 풀어진 입가를 자각하며, 내 뒤에서 울고 있는 레밀리나를 가리켰다.
“이따가 제대로 달래 줘야 된다. 아까부터 울고 있어.”
“... 큭큭, 여전히 울보라니까.”
“너도 잘 울잖냐.”
나도 모르게 딴죽을 걸었지만, 아필리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나는 큭큭 웃으며, “저기~ 슬슬 사진을 찍어야~” 하며 난처하게 말하는 사진사에게 아아, 미안하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는 레밀리나와 나를 양옆에 세우고, 사이에 아필리나가 선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내 왼편에는 나와 팔짱을 낀 리리스가.
원래는 팀 전원이 찍어야 하지만, 이것도, 내가 조금은 부탁했다.
꿈이 이뤄진 날의 추억으로 남기고 싶으니까.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하는 소리는 함성소리에 묻혔지만.
함박웃음을 지은 채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리는, 어느 청년과, 울면서도 어떻게든 환하게 웃는 어느 여성, 그리고 청년과 어깨동무한 채 호탕하게 웃는 나와, 부드럽게 미소지은 리리스의 사진은, 확실하게 남겨졌다.
이루어진 꿈, 그리고, 지켜진 약속의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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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후기
대충 예상하시겠지만 아필리나와 레밀리나는 각각 필리안과 유리입니다. 둘 다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등장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볍게 짚고 넘어가자면
레밀리나(유리)는 사령관의 직속 경호실에서 일하며 사령관의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갖가지 사적인 일을 처리해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불신을 샀고 여러모로 비난의 눈초리도 받았습니다만,
사령관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열심히 일하는 그녀에게, 가족들도 지금은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필리나(필리안)는 현재 사령관이 응원하는 야구 구단의 스타 플레이어로, 종종 사령관에게 티켓을 보내거나 합니다. 사령관에게 거두어졌던 만큼 사령관의 자식들과도 면식이 있습니다. 티아멧이 몰라보았던 이유는 단순히, 당시의 티아멧과는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둘의 신체나이는 현재 시점 기준(신시아 입양 기준) 레밀리나 26, 아필리나 24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체를 숨겨야 하기도 했고- 사령관이 둘을 어려지게 했습니다.
사실 작가의 사정으로 어려지게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23년 전의 이야기다 보니 어려지게 해야만 했습니다. 딱히 손해될 건 없으니 괜찮죠?(뻔뻔함)
아무튼 그런고로 끝입니다. 다음 편은 아마 라미엘이 등장할 예정인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다른 캐릭터로 급선회할수도 있다 보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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