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들으면 좋은 BGM - 악토 (드라마 추노 OST)
그 갑옷은 마치 흑요석과도 같은 검은색이었다. 매끈하게 손질되어서 달빛이 반사될 정도로 빛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긁힌 듯한 자국들이 갑옷 곳곳에 남아 있어서 수많은 전투를 겪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칼을 세워두고 양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에서는 강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본래 본인은 그대들끼리 교전하는 것은 개의치 않소. 허나 이곳은 본인의 영역. 일부러 본인의 기척을 강하게 발산하면서까지 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경고를 주고 있었건만, 굳이 이 영역에 들어와서 교전을 한다는 것은 본인을 시험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설마했던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세이버의 영역에 들어온 순간부터 세이버와의 교전을 아예 상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빨리 세이버가 난입할 줄은 에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보아하니 그쪽의 클래스는 아처로군. 본인 입장에서는 낯선 무기를 다루고 있소이다만, 미리 말해두건대 본인을 꿰뚫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은 지금 우리와 싸우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오?"
아처는 여차하면 곧장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손가락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본인은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 성미지만, 그대들이 교전을 원한다면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대로 물러난다면 교전도 없다, 라는 것이오?"
"뭐, 그렇긴 하오만. 그 이전에 저 자들의 싸움을 멈추는 것은 가능하오?"
유감스럽게도 세이버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라이더야 정 급하다면 영주라도 사용해서 퇴각을 명령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버서커였다. 애초에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다고 버서커 쪽에서 선언한 만큼 저쪽에서 먼저 발을 빼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패퇴시켜 물러나도록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이버에게 공투를 요청하기에는 지금으로는 그의 태도가 완전히 중립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공투 성사 이전에 버서커의 편을 들기라도 했다간 지금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만다.
"미안하지만 그건 또 어렵겠군."
"거 보오, 그렇지 않소. 게다가 본인은 지금 이 구역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그 댓가를 받아내고 오라는 주군의 명을 받고 와서 말이지."
"이봐, 그 말은 어떻게든 우리랑 싸우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윤아가 기가 막히다는 투로 물었다.
"그럴 리가. 본인은 실제로 그대들이 저 자들의 싸움을 멈출 수 있다면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었소만."
"아무튼 지금으로써는 그대와 싸우는 것 외엔 선택지는 없다는 얘기로군."
아처는 금방이라도 발포할 태세로 잠시 세이버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총을 거두더니 칼을 뽑아들었다.
"아처?"
"...호오? 분명 그대는 아처일텐데, 그대의 장기를 포기하고 검으로 맞서겠다는 것이오?"
"이쪽은 아처 클래스이긴 해도 다루는 것은 총포이지 활이 아니라서 말이오. 이런 개방된 곳에서 사격을 했다간 주위의 시선을 끌기 쉬워지겠지."
버서커와 교전했던 폐공장은 입구를 제외하면 창문으로 막혀 있어 총성이 들려도 외부로 크게 새어나지 않았기에 사람이 밀집된 곳과는 떨어진 위치인만큼 들킬 염려도 적었다. 하지만 지금 세이버와 대치하는 곳은 사방이 트인 곳인만큼 총포를 발사하면 나게 되는 소음이 사람이 있는 곳까지 들릴 위험성이 높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세이버 클래스를 상대로 검으로 맞서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라 생각하지 않소?"
상대는 애초에 검이 주력인 세이버 서번트. 검을 다룰 줄 안다고 해도 아처 클래스로 소환되었다는 것은 검보다는 총포가 주력이라는 의미인만큼 세이버를 상대로 검을 들고 근접전을 시도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위일 것이었다. 그러나 아처는 문제 없다는 듯 말했다.
"그걸 그쪽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오만?"
아처의 반박에 세이버는 씨익 웃더니 검을 뽑아들고 자세를 취했다. 아처의 검과는 달리 직선형의 외날검이었다.
"정답이구만. 좋소, 한 번 와 보시오."
세이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처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 * *
공방이 지속된 건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그 공방을 본다면 상당한 시간동안 공방을 펼치는 중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서번트의 쉼없는 공방의 여파는 엄청났다.
라이더가 휘두르는 칼을 버서커는 단검과 장검으로 교차하여 막고, 그대로 칼날을 타고 파고들어 역공을 가한다. 그 공격을 칼 자체를 비틀어 무위로 만들고 역으로 돌려차기로 반격을 가하면 양팔로 다리를 위아래로 감싸 크게 돌린다. 하지만 라이더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지지 않고 공중으로 크게 돌면서 칼을 휘두른다. 칼을 휘둘러 공격을 막는 버서커는 라이더가 착지하는 빈틈을 노려 장검으로 찌르기를 가한다. 그것마저 간파한 것인지 라이더는 몸을 굴려 찌르기를 피하면서 다리로 버서커의 다리를 노리고, 버서커는 몸을 뒤로 빼며 그 공격을 회피한다.
그야말로 용호상박. 어느 쪽이 우위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두 서번트의 싸움은 격렬했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충격파가 폐공장 안을 뒤흔들었고 두 사람이 발에 땅을 디디면 그곳에는 파인 자국이 생겨났다. 두 사람의 싸움의 여파로 폐공장 바닥은 곳곳이 움푹 파이고 갈라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정식으로 무예를 배우지 못했는데도 그 정도라니, 여간내기가 아니군. 역시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일한 짬은 어디 안 간다는 말인가?"
두 서번트의 거리가 벌어졌을 때, 라이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나, 대단하셔라. 그 짧은 시간동안 거기까지 간파하셨나?"
"이쪽도 저자의 풍문은 들은 건 있어서 말이오. 뭐, 자네는 일단 나보다는 후대의 인물이겠지만."
"헤에, 그러니까 댁은 벌써 이쪽의 진명도 간파했다 이 말인가?"
"글쎄. 그건 어떨런지."
"핫, 하여간 능글능글하기 짝이 없는 양반이구만 그래. 어차피 댁이 나만큼 저승사자 양반이랑 몇 번 인사치레한 적은 없었을 거 아니오?"
"누가 더 저승사자 양반이랑 만났을 지는 모르는 일이지."
라이더는 버서커를 향해 칼을 던지고 달려들었다. 버서커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칼에 살짝 놀라면서도 여유롭게 단검을 휘둘러 칼을 막아내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단검을 허리춤에 넣은 다음 막아낸 칼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뒤이어 달려온 라이더의 발이 그의 손을 차냈다. 이어진 라이더의 연속 발차기에 버서커는 뒤로 조금 밀려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이더는 자신의 검을 다시 잡아 버서커의 머리 위로 일격을 날렸다. 버서커는 빠르게 허리춤에서 단검을 다시 뽑아들어 두 칼을 교차하여 라이더의 공격을 막아냈다. 검이 부딪치는 충격으로 버서커의 발 아래에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동시에 발생한 충격파의 영향으로 폐공장의 창문이 모조리 박살났다.
"흐아아아앗!!"
버서커는 기합과 함께 라이더를 밀어냈다. 라이더는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검을 고쳐잡고 그대로 다시 달려들어 버서커의 오른쪽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무게가 있는 갑옷을 입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버서커도 그 찰나의 순간을 간파하고 아슬아슬할 타이밍에 맞춰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슬슬... 끝내자고."
버서커는 발차기로 라이더를 밀어내며 뒤로 도약하여 물러났다. 착지하자마자 균형을 바로잡고 빠르게 태세를 정비한 라이더가 버서커 쪽을 보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버서커의 모습이었다. 활시위에 걸려있는 것은 일반 화살이 아닌, 그보다 짧은 화살과 그것이 들어 있는 덧살. 편전이었다.
라이더가 그것을 인식했을 때 편전은 이미 활시위를 떠나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일반 화살보다 속도와 관통력이 훨씬 뛰어난 편전이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날아온다. 제 아무리 서번트라도 피하거나 막아내긴 어려울 것이다... 라고 버서커는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고 놀라움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라이더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움직인 것은 그의 몸 전체가 아니라, 그가 들고 있는 칼이었다. 날아오는 편전을 향해 칼을 휘둘러 그대로 편전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었다. 동시에 칼을 살짝 비틀어 편전의 궤적을 어긋나게 만들어 갈라진 편전은 그의 얼굴 옆을 지나가 뒤쪽으로 날아갔다.
"설마 편전까지 다룰 줄 알고 있을 줄이야. 자네가 정식으로 무관이 되었다면 나라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쉽군."
치명상을 입을 뻔한 상황이었는데도 라이더는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버서커는 잠시 멍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큭... 크흐흐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버서커는 폭소를 터트렸다. 그것은 예상 외의 상황에 대면하여 정신이 붕괴한 것에서 온 웃음이 아닌, 마치 기대했던 상황을 마주한 것 같은 상쾌한 웃음이었다.
"이야, 설마 여기까지 재밌게 해줄 줄은 몰랐어. 설마 그걸 거기서 반으로 갈라버리다니."
한참을 웃은 버서커는 활을 한 쪽 구석으로 던져놓고 다시 태세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보쇼, 군관 나리. 여기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뭣하긴 하지만 말이야. 원래 내가 마스터 나리한테 받은 임무는 댁들이랑 교전만 하는 거였단 말이지. 그런데 댁이 이렇게 나와 준다면 아무래도 임무는 글러먹은 것 같아."
다시 양손에 칼을 쥔 버서커는 자세를 취하며 얼굴의 웃음기를 걷어냈다.
"이 정도나 되는 상대는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어디 한 번 작정하고 어느 한 쪽 뒈질 때까지 싸워보자고."
"개인적인 호승심에 편승해달라 이 말인가? 글쎄..."
라이더도 다시 칼을 쥐고 태세를 갖췄다.
"확실히 이쪽도 자네와 싸우고 있자니 그 날이 생각나는군. 죽음을 눈 앞에 둔 떨림 말일세. 그런 것도, 나쁘진 않겠지. 허나 그대의 호승심에 과연 내가 편승해줄거라 생각하는가?"
"크핫, 하여간 능글능글하기 짝이 없는 양반이라니깐!"
버서커는 다시 라이더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방금 그거, 창문 깨진 소리 맞죠?"
"어. 도대체 저 안에서 얼마나 격하게 싸우고 있는 거지..."
충돌의 여파로 창문이 깨지는 소리는 밖에 있던 두 사람의 귀에도 선명하게 꽂혔다. 내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 그들의 눈 앞에서 또 하나의 격돌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일방적으로 유리해보이는 쪽은 세이버였다. 아처의 공격이 여러 번 시도되었지만 세이버는 자신의 위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아처의 검격을 막아내며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처의 공격이 상당히 빠르고 빈틈없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세이버를 상대로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세이버가 아처의 검격을 빈틈없이 막아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 뿐. 빠르고 날카로운 아처의 공격은 한방 한방에 힘이 실려있었기에 어설픈 방어로는 막아낼 수 없는 수준이라 역으로 세이버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원거리 무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아처 클래스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접전에서 최강의 클래스라는세이버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대, 정말 아처 맞소? 왜인 출신인 듯 해서 근접전에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세이버 클래스인 본인에게 반격의 여지를 내주지 않을 정도로 몰아붙일 줄은."
잠시 두 서번트의 충돌이 중단되고 거리가 벌려졌을 때, 세이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쪽도 희한하기는 매한가지라고 생각되오만. 그대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시피 하니 말이오."
"아예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오만?"
"그렇지. 허나 이쪽의 공격에 밀려나서 움직이는 일은 없었을 뿐. 그대가 움직인 경우는 그 아래 지면이 받은 부담이 커졌을 때 뿐이었지."
아처의 말대로 세이버는 지면의 손상이 커졌을 때에만 자리를 움직였다. 마치 그 이상 공격을 받아냈다간 방어가 힘들 정도로 지면이 불안정해지는 걸 피하려는 것처럼.
"이쪽에서 역으로 물어보겠소. 그대는 반격의 여지를 내주지 않고 이쪽이 몰아붙이고 있다고 했는데, 반격을 못하는 것이오, 안하는 것이오?"
"흠,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이쪽이 공격이 빈틈없이 몰아쳤다고는 하지만 공격 사이사이에 분명 틈이 있었지. 만약 그쪽이 반격을 할 수 있었다면 그 순간을 노릴 수 있었을 것이오. 허나 그러지 않지 않았소?"
"글쎄올시다. 그대의 공격이 너무 매서워서 본인은 방어태세를 갖추기에도 급급했소이다만."
"...그렇게 나오시겠단 말이군."
아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세이버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서번트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치며 발생한 충격파 때문에 성민과 윤아는 잠시 팔로 얼굴을 가리고 충격파에 대비했다. 한동안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세이버는 아처의 검격에 밀리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어디, 그렇다면 이것도 한번 받아보시구려."
아처는 나지막히 말하면서 거리를 벌렸다가 오른손에 칼을 쥐고 다시 세이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금 전까지의 돌격과는 조금 달랐다. 세이버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아처는 자신이 입고 있던 갑옷을 해제하고 돌진 속도를 상승시켰다. 아처의 검이 노리는 것은 세이버의 목. 예상 궤적이 눈에 보이는 횡베기였지만 이 정도 속도로 들어오는 공격이라면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이 공격은 먹힌다! 성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처의 칼이 그대로 직격함과 동시에 탕! 하는 총성이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성이 울리고 바로 뒤이어 아처의 칼이 세이버의 목을 노리고 들어갔다.
"...총성?"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성민도 윤아도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어있던 아처의 왼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조총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상황을 파악하고 놀란 것은 예고 없는 총성도, 순간적으로 기습적인 공격을 시행한 아처의 민첩성도 아니었다.
"이거야 원. 위험할 뻔했구려."
세이버는 멀쩡했다. 아처의 검격을 막은 것은 그가 들고 있던 칼이 아니라 그의 오른팔이었다. 서번트라고 해도 팔이 날아갈 정도의 위력이었을텐데도 오른팔에 장착된 보호구만으로 검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역시.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군."
아처는 자신의 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이버의 왼팔에 쥐어진 칼은 그의 왼쪽 옆구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처의 조총에 막혀 그의 옆구리를 완전히 관통하진 못했지만 약간의 생채기가 나 있었다. 아처는 재빨리 자신의 몸을 뒤로 빼면서 간격을 벌리고 갑옷을 다시 착용했다.
"아처!"
"괜찮습니다, 주군. 살짝 긁힌 것 뿐이니. 그보다, 이걸로 확실히 파악한 것이 있습니다."
"...호오?"
아처의 말에 세이버는 흥미로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주군께 사죄드립니다. 조총은 될 수 있으면 봉인하려고 했으나, 이걸 파악하기 위해 딱 한 발 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아니야. 그건 괜찮은데, 방금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저는 세이버에게 달려들면서 왼손으로 조총을 쏘고 오른손으로 그의 목을 노렸습니다. 갑옷을 해제하고 마력을 부스트했기에 일반적이라면 검격을 막기 위해 검을 준비하느라 총격은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맞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막혔잖아."
윤아의 질문에 아처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 자는 자신의 검으로 총격을 막아내고 제 검격은 팔로 막아냈습니다. 동시에 검의 방향을 제 쪽으로 향하게 하여 자신의 검에 저 스스로 달려드는 상황을 유도했죠."
"그랬소. 그대가 한 손에 검을 쥘 때부터 뭔가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세이버가 끼어들었다.
"허나 그대는 본인의 검을 막아내지 않았소?"
"그랬지. 그대의 대처를 예상했으니까. 오히려 난 그대의 얼굴에서 총격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걸 봤소이다만."
"...엥?"
"그 말은..."
아처의 말에 성민과 윤아는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아처는 다시 총포를 꺼내들었다.
"주군, 윤아 공. 여기서는 부득이하지만 상황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고 아뢰는 바입니다."
아처는 방금 전처럼 그의 등 뒤 허공에서도 총포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버서커와 싸울 때처럼 세 정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 이윽고 엄청난 수의 조총이 그의 등 뒤에 생겨났다. 얼픽 보아도 거의 3천 정은 되어보이는 수였다.
"저 자의 특기는 아마도 공격이 아닌 방어. 따라서 지금 상황을 지속한다면 끝이 나지 않습니다. 고로, 여기서 보구를 사용하고 상황을 강제타개하겠습니다."
보구 개방. 아처는 지금 그것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아처!"
"아처, 아직은...!"
두 사람 모두 그것을 말리려고 하는 순간...
* * *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 그렇게 말해도 이상할 것 없는 소리였다. 그 엄청난 소리와 함께 라이더와 버서커가 전투를 벌이고 있던 폐공장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대치하고 있던 세이버와 아처 사이로 무언가가 날아와 박히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설마..."
윤아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라이더 쪽을 바라보았다. 라이더의 옆에는 푸른색 파문 한가운데에 나온 대포가 보였고, 버서커는 방금 전 거기에서 발사된 무언가가 날아간 방향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머나, 대단하셔라. 설마 그걸 피할 줄은 몰랐는데 말일세."
흙먼지가 잦아들고 라이더가 발사한 무언가의 모습이 아처와 세이버에게도 드러났다.
"...이건...!"
"어쩌면 아처 공은 그걸 직접 본 적은 없어도 풍문으로는 들었을 것이오. 버서커, 그대도 마찬가지겠지."
"...어이, 이봐. 설마 이런 걸 쏘고 다녔단 말이야...?"
성인 남성의 키만한 길이. 지면에 박혀있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거의 다른 사람의 허리 정도까지 오는 길이의 물건. 현대에서 그것과 비슷한 생김새의 물건을 얘기한다면 미사일이 있을 것이다. 성민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를 알아채고 놀랐다.
"대장군전...!"
자신을 향해 날아왔던 그 거대한 물건을 한참동안 보던 버서커는 다시 라이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의 여유로운 웃음은 남아있지 않았다. 편전을 갈랐을 때보다도 놀라고 경외심이 섞여 있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당신... 설마, 성웅(聖雄)이야?!"
"......훗."
"야, 너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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