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삼국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글임
그렇기에 너무 까다로운 삼국지고증은 하지않아도될듯...;;;
설명글이 많은 이유는 이 때문임
2.글을 쓴다음에 전혀 수정을 거치지않은 원본임
부족한점이 많은건 감안해주시길
너님들의 의견을 듣고 바꿀거라능
3.쓰다보니 정사 연의 짬뽕인듯
4.내 삼국지 지식이 깊지않다는건 너님들이 더 잘 알거임
지적부탁드림
다만 위에도 말했듯이 삼국지를 잘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쓴거기때문에
너무 깊은 지적은..;;;;
5.빠는글이기에 비판의 기운따윈 없다능
삼국지 잘 모르는사람들앞에서 삼국지 인물 까서 되겠냐능
6.솔직히 글 잘쓰는 사람 많고 삼국지 고수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글 보이기 부끄럽다 ㅠㅠ
7.글의 짜임새는 어떤지
흡입력은있는지 봐달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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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중국의 문학으로는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를 꼽을수있다
전쟁,정치,문학 모든 부분에서 탁월한 재능과 냉철한 카리스마를 가진 조조의 위
돗자리 장수, 밑바닥에서 시작해 한나라의 황제가 되는 드라마틱한 인덕의 군주 유비의 촉
뜨거운 패기의 아버지와 형의 기반을 이어받아 또 다른 매력의 나라를 탄생시킨 손권의 오
후한 말을 배경으로 이러한 삼국이 생겨나고 통일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우리나라 고대사에도 빼놓을수 없는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이하 '정사')를 바탕으로 소설다운 극적인 요소를 더해 만들어졌다
진수는 서진, 즉 위나라를 이은 나라의 인물로서
역사서 삼국지는 위나라 중심의 관점으로 지어졌지만
명나라 시절에 지어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인덕의 군주 유비의 촉나라 중심으로 서술되어있다
이러한 삼국지연의 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제갈량,관우,조조,유비 등을 꼽을수있는데
특히 관우와 제갈량은 지금까지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들로서 모범으로 삼으며 관우는 신으로까지 섬기기도 한다
제갈량은 중국의 4대재상으로 뽑히는 인물로서 뛰어난 군략과 완벽한 내정
눈물을 머금게 하는 깊은 충성심의 소유자였고 그리고 심지어 청렴결백한 인물이기에
삼국지연의가 쓰여지기도 전에 당 태종이 직접 존경 한다 말할정도 였고 우리나라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범으로 삼은 인물이다
관우는 이와 반대로 무인들과 민중들의 신과 같은 존재인데 실제로 중국과 우리나라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을 찾을수 있다
역사서에서 조차도 '만인지적(만인을 대적할수 있는 장수)'라 표현하는 뛰어난 무예와 군략 그리고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충성심의 소유자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관중은 촉한 정통론, 즉 촉나라 중심으로 삼국지연의를 작성했는데 그렇기에 촉의 대표인물인 제갈량과 관우는
나관중의 깊은 사랑을 받아 본래에도 훌륭한 인물이지만 그 행동이나 장점들이 더욱더 강조되고 일부 과장된 면도 있다
심지어 관우의 사망에 관여한 인물은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이가 관우의 절친이기도 하며 위나라의 무패장군인 서황과 괄목상대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오나라의 여몽이다
촉과 관우를 사랑한 나관중은 이러한 장치까지 이용해 관우의 위대함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은 삼국지는 이보다 더욱더 관우나 제갈량의 위대함을 묘사하여 우리가 본받아야하는 인물로 강조하는데
완역본과 정사를 읽다보면 관우도 관우지만 어쩌면 우리가 더욱더 본 받아야할지도 모르는 인물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바로 관우를 죽음으로 몰고 가 삼국지연의 에서 마치 악당처럼 묘사되며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오나라의 여몽이다
오나라의 역사는 유비와 조조의 동세대이자 뛰어난 무예와 패기를 지녔으나 안타깝게도 짧은 생을 마감한 손견으로 시작 한다 손견이 죽은 후 그의 첫째아들이며 그 무예와 젊은 패기, 카리스마가 중국역사상 최강의 무장 패왕 항우를 떠올린다하여 '강동의 소패왕'이라 불리우는 손책이 19살이라는 어린나이에 강동지역을 제패하기 시작해 5년 만에 강동을 모두 차지하면서 그 기반을 쌓았다 그러나 손책이 26살에 안타깝게 요절하자 손책의 동생인 손권이 기틀을 다져 만든 국가가 바로 오나라로 장강 아래의 남쪽을 차지했던 국가이다 (오나라를 기점으로 중국의 남쪽이 발전했다는 말도 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황건적 토벌 때부터 본인의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수하들의 도움으로
황제를 손에 넣어 최고의 명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난적 여포와 최대의 라이벌 원소를 쳐부수고 북쪽과 중원을 차지한 조조에 비해
그의 일생일대의 라이벌인 유비는 백성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나 자신은 자신의 땅도 없어 여러 군주들에게 차례로 의탁하는 신세였다
그러던 도중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맞아들이고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따라 조조의 추격을 장판교를 거쳐 피해 손권과 손을 잡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의 시작이며 본격적인 오나라의 등장과 유비의 독립 즉 삼국정립의 시작이었다
결국 적벽에서 주유의 뛰어난 계책과 오 장수들의 분투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고
유비는 풍요의 땅이자 후에 전란의 땅이 되는 형주의 4군을 손에 얻게 되고 그 후 서쪽으로 가 익주를 손에 넣고 촉나라를 세우게 되며
오나라 역시 본격적으로 삼국지 무대의 메인으로 뛰어들게 된다
여몽은 이러한 오나라의 장수중 한명으로써 자는 자명이다
손책 시절부터 오나라를 섬겨온 여몽은 뛰어난 무예를 가진 인물로서
손책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손권이 군주가 된 이후
손권의 아버지 손견의 원수인 황조토벌에서 적장 진취를 잡는 가장 커다란 공을 올렸을뿐만 아니라 적벽대전과 주유와 위나라 조인의 형주공방전에서도 공을 올려 오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무장이 되었다
그러나 여몽은 무예는 뛰어났으나 행동이 단순하고 무식하여 그의 별명'오하의 아몽'은 무식한 사람을 부르는 대명사가 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점을 그가 존경했던 오나라의 천재 총사령관 주유와 군주 손권도 안타까워하여 여몽에게 독서를 하여 교양을 쌓으라고 말할정도였다
여몽은 이러한 손권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후 매일 밤낮으로 독서를 하고 병법을 암송하였다 얼마 후 주유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총사령관이 된 노숙과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짦지 않은 대화 후 노숙은 여몽의 학식과 계책에 감탄하여 "내가 알던 오하의 아몽이 아닐세!"라고 말했고
여몽은 이에 "자고로 사내를 사흘 후에 다시 본다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고사성어 '괄목상대'의 어원이다
이러한 여몽의 학문적 발전에 손권도 크게 기뻐하였고
후에 여몽을 노숙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총사령관 자리에 앉히게 된다
총사령관이 된 여몽은 오나라와 위나라의 전투 중 가장 유명한 합비 전투에서
위나라의 맹장 장료의 800의 병사로 10만의 병사를 막아내는 엄청난 활약에 타격을 입은 오나라의 군대를 훌륭하게 수습해냈고 몸을 날려 손권의 목숨을 구해내기도 했다
그에 이어 오의 맹장 감녕 이 100기로 위나라의 본진을 습격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유수구 전투에서는 뛰어난 전략으로 위나라를 당황케 하여 점차 군략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게된다
합비 전투 와 유수구 전투가 끝난 후 위나라와 오나라는 잠시 동맹을 맺었고
최대의 적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잠시 한숨 돌릴수있게 된 손권과 여몽은 이제 관우가 지키고 있는 촉의 형주를 노리게 된다
여기서 잠깐 노숙 사후 여몽이 총사령관이 된 후 오나라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이해하기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천하이분지계와 천하삼분지계이다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명하며 유비에게 세력을 주고 위나라의 끝없는 전진을 막아낸 천하삼분지계는 북쪽과 중원의 위 서쪽의 촉 남쪽의 오로 세력을 나눈 후 촉 과오 가 힘을 합쳐
위나라를 격파해야한다는 계책이다 다양한 요인들을 떠나서 적벽대전이후 유비가 서쪽을 점령한 후에 단순 국력으로서의 판도는 위가 6 촉이 1 오가 3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고 오와 촉은 오로지 지형적 유리함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제갈량과 오나라의 노숙은 천하삼분지계를 주장하며 조조의 위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단순히 오와 촉 당장의 생존뿐만 아니라 더 먼 곳까지 바라보는 계책으로서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계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반대되는 천하 이분지계는 가장 유명한 오나라의 총사령관이자 손책과 둘도 없는 절친임과 동시에 최고의 군사로서 강동을 재패하고 적벽대전에서 조조에게 패배를 안긴 천재 군략가이자 삼국지계의 완벽남 주유가 주장한 계책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을 띄우기위해 주유가 제갈량을 질투하고 결국 화병으로 사망했다고 적었지만 역사적으로서는 사실이 아니다) 미주랑 이라 불리며 삼국지계 최고의 미남이기도 했던 주유의 천하이분지계는
오나라가 형주를 손에 넣고(본래 형주는 오나라와 주유가 가장 간절히 원하던 땅으로서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훗날 큰 사건의 씨앗이 된다) 서쪽의 익주(유비의 촉의 땅)까지 손에 넣어 훗날 촉의 맹장이 되는 서량의 마초와 손을 잡고 동,서,남에서 협공, 조조의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오나라가 천하를 통일한다는 계책이다
안타깝게도 주유는 이 계책을 시행에 옮기기 직전에 그의 친구이자 오나라의 영웅 손책과 같이 병으로써 36살의 나이에 요절한다 이것은 분명 천하삼분지계에 비해 그 과정이 무척이나 어렵고 터무니없이 허황된 계책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지만 주유 정도 되는 사내가 주장했기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고 오나라 입장에서는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계책이라
손권 역시 주유가 주장하는 이 천하이분지계 쪽을 좀 더 맘에 들어 했다
그래서 손권은 노숙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노숙이 주장하는 천하삼분지계는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거기다 억울하게 주유와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땅 형주를 유비에게 뺏겼으니 그 분노를 억지로 참아오고있는 형편이었다
노숙의 뒤를 이어 총사령관이 된 여몽 역시 천하이분지계에 마음을 두고 있었고 손권을 위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 비할수없는 충신이었기에
손권의 마음속의 뜻을 이어받아 노숙이 노력하여 얻어낸 지금까지의 촉 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관우가 지키고 있는 형주를 되찾아오기를 결심했다
마침 관우는 형주를 지키며 공격을 감행해온 위나라와 싸워 명장 우금을 항복시키고
번성에서 위나라의 명장 조인과 서황 두 장수와 함께 싸움을 계속하는 중 이었다
여기서부터 괄목상대한 여몽의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계책이 시작 된다
관우는 오나라를 견제하면서도 동맹을 믿고 위나라와의 싸움에 집중했고
여몽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때마침 병에 걸린 여몽은 자신은 병에 걸려 더 이상 자리를 유지 할수 없다며
자신의 자리를 후에 삼국지를 대표하는 전략가가 되지만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젊은 육손에게 맡기고 육손에게 지시하여 관우와 동맹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도록 했다
완전히 오나라를 믿게 된 관우는 위나라에 싸움에 집중하게 되고
이를 틈타 여몽의 뒷 공작이 시작되었다
여몽은 관우군 이 국경의 오나라 군량미를 약탈한 것을 핑계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관우군의 거점인 공안을 지키고 있던 부사인을 항복시키고 공안을 차지
육손은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자신은 형주의 남쪽으로 내려가
관우군 주요 거점인 강릉의 미방을 항복시켜 강릉까지 손에 넣는다
공안과 강릉은 둘 다 난공불락의 요새지만 미방과 부사인이 평소에 관우의 엄격한 다스림에 불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접근, 심리작전을 펼쳐 결국 항복시키고 무혈입성 한 것이다
순식간에 거점을 빼앗긴 관우는 맹달의 반대로 인해 유봉이 보내려던 원군조차 받지 못하고
심지어 서황군 에게 패배 ,전투를 중단하여 몇 안남은 군대를 이끌고 급히 맥성으로 가 머물게 된다
그러나 아직 여몽의 계책은 끝나지 않았다
관우의 모든 행동을 예측이라도 하듯이 먼저 장강을 거슬러 올려 보낸 육손의 군대와
반장,장흠 등 의 오의 맹장들의 군대를 미리 배치시켜놔 관우의 맥성을 완전히 포위시킨 것이다 그리고 여몽까지 합세한 포위망에 관우의 몇 안남은 군대는 맥성을 떠나 강릉으로 향하던 도중 오나라 포위망에 잡히게 되고
결국 삼국시대 최고의 명장이자 '무신'관우는 여몽이 만들어놓은 계책과 포위망에 그 용맹을 제대로 떨치지도 못하고 결국 사로잡히게 된다
오직 기세만으로도 함부로 풍요의 땅 형주를 위나라와 오나라가 넘보지 못하게 했던 '무신'관우를 사로잡은 여몽의 계책은
명예를 중시했던 삼국시대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때로는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명예와 명분을 따지지 않는다
오나라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깎아내려 지는것이 아무렇지 않았던 여몽은
자신의 이름을 육손에게 대신 하게 한 뒤 자신이 걸린 병마저 계책으로 이용
볼품없어진 자신을 강조하여 관우의 견제를 풀고 동맹을 믿게 만들었고
천하, 특히 촉과 위의 비난에 전혀 아랑곳 하지않고 촉과의 동맹을 파기 관우의 뒤를 노렸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를 아무렇지 않게 무혈입성 하였으며
결국 미리 만들어놓은 포위망을 통해 관우를 사로잡는다
자신의 뛰어난 군략을 오직 자신을 이끌어준 손권과 오나라를 위해 바칠것임을 맹세한 여몽은 손권과 오나라가 그토록 염원하던 땅 형주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여몽의 방식을 위나 촉에 입장에서는 비겁하다고 욕할수 있지만
오나라, 주군 손권의 입장에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충신의 천재적인 전략일 것이다
결국 사로잡힌 관우는 손권과의 대화에서 천하의 명장답게 오히려 손권을 욕하며 유비에 대한 충성심을 맹세, 충의를 지키고 처형 당한다
합비 전투와 유수구 전투로 천하에 이름을 알리고 천하의 명장 관우를 사로잡은 여몽은
난세의 판도를 바꿀만한 새로운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그저 무식한 칼잡이였던 여몽은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제 더 이상 '오하의 아몽'이 아닌
관우를 사로잡고 오에게 형주를 되찾아온 오나라의 '총사령관' 여몽으로서 천하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손책도, 주유도, 그리고 여몽마저도..어찌하여 오나라의 영웅들은 하늘이 그토록 유복한 천명을 부여하는가..
여몽은 관우를 사로잡아 처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계책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던 지병 때문에 41살 사망.
단 몇 번의 날개짓으로 누구보다 높이 날아오른 후 안타깝게도 떨어지고 만다
촉과 관우를 사랑했던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여몽의 사망을
관우의 혼백에 씌여 "내가 누구인줄 알겠느냐 나는 관운장이다"라고 외치다가 피를 토하다가 죽은 걸로 묘사 한다
참으로 나관중답고 참으로 극적인 최후다
이후 여몽의 총사령관 직책은 육손 에게 넘어가게 되고
관우의 죽음에 분노한 유비는 손오와의 전쟁을 선포, 이후 삼국의 판도는 크게 바뀌게 되어
삼국지의 1세대 인물들(유비,조조,관우,장비 등등)은 하나하나 퇴장하게 된다
육손은 여몽 못지않은 뛰어난 인물로 관우의 죽음에 분노하여 대군을 이끌고 온 유비를 이릉 전투에서 격파해 이름을 날려 후에 군략에서 제갈량에 비견되는 인물이 되지만
그 성격상 지방호족출신이라 공격적 이기보단 수비적이어서
(실제로 육손이 대승을 거두었던 이릉전,석정전 모두 수비전 이었다)
어쩌면 능력은 육손이 더 뛰어날지 몰라도
오나라 천하통일의 발걸음에 있어서는 여몽에 비해 부족함이 있었다
이것이 여몽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자주적인 천하통일을 위해 대세인 천하삼분지계를 깨트리고 형주를 차지해 중요한 촉과의 동맹을 잃은 만큼 오나라는 독립해 도전하는 입장으로서 위험을 무릎 쓰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세차게 나아가야만 했다
육손은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좀 더 수비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인물이라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았고 결국 오나라는 천하삼분지계를 부시고 나서 얻은 것 이라곤 염원의 땅 형주뿐이었다
이와 반대로 여몽은 무모하지만 천하통일에 도전하는 나라로서의 오나라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끄는데 제격인 인물이었으나 고삐를 잡기 전에 사망했다
물론 대세를 깨트린 여몽의 계책이 칭찬만 받을 수 있는 계책이라고는 할 수 없고
실제로 그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우선 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습격을 하는 등 그 행위가 비겁함이 있었고
게다가 단순히 앞을 볼 때 손오에게는 그토록 염원하던 형주가 필요했지만
더 먼 곳을 바라보면 촉과 손을 잡아 위를 쓰러트리는 것이 가장 먼저여야할 상황에서
동맹을 파기했다는 점 ,즉 천하삼분지계를 깨트렸다는 점에서
여몽은 뛰어난 지략가임은 인정받지만 시대의 큰 흐름을 읽지 못 했다는
한계를 지녔다는 비평을 받기도 한다
이것을 단순한 여몽 능력의 한계로 지적할수도 있지만 손권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나 강하여
시대를 보기보다는 주군이 바라는 것 밖에 보지 못해 가지게 된 한계일수도 있다
실제로 가장 형주를 되찾고 싶어했던 건 손권이었으니 말이다
삼국지연의 중후반부 최고의 사건인 관우의 죽음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여몽은
이후 영웅 관우의 죽음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수많은 창작물에서 악역으로 묘사되는 불운을 겪는다
하지만 오직 노력만으로 무식의 대명사에서 관우를 사로잡은 오의 영웅이 된 여몽을 악역으로 치부되기엔 너무 안타깝다
만약 천하를 통일한 것이 오나라였다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촉한정통론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른 해석의 여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새로운 해석의 삼국지에서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장수로서의 여몽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여몽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관우를 사로잡기위해 비열하다 싶을 정도의 책략을 사용했으니 무척이나 비열한 인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반장이나 감녕 등 유난히 무뢰배나 잡인 출신이 많은 오나라의 장수들은
그 충성심과 뛰어난 실력과는 다르게 잔인한 성품을 지닌 장수들이 많았는데
여몽은 밑바닥에서 시작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성품이 정직하였고 온화하였다
평소 여몽은 전장에서 우두머리를 밴 후에는 그의 병사들을 평민들로 돌려보냈다
한번은 손권이 죽은 3명의 장수의 자제와 군대를 여몽에게 보낸 적이 있었는데
여몽은 그 군대를 모두 돌려보내고 아버지를 잃은 자제들에게는 뛰어난 스승을 붙여주었다
온화하고 이타적인 여몽은 청렴결백한 사람이기도 했다
관우를 생포한 후에 손권이 엄청난 양의 비단 과 금을 하사 했을때도
여몽은 계속 거절하였다
이토록 정직했던 여몽은 모든 오나라 장수들의 존경을 받아 때로는 중재역할도하였다
뛰어난 충성심과 온화한 성품 그리고 뛰어난 무예로 손권이 가장 아끼기도 했던 오나라의 장수인 능통은 잔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장에서는 따를자가 없던 명장 감녕 에게 과거 전투에서 아버지 능조가 죽는 것을 봐야했다 그 후 손권이 적군이지만 감녕의 총명함과 용맹함에 반해 오나라의 무장으로 등용했는데 능통 역시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손권군의 장수가 되었다 아버지를 죽인 놈이 자신과 함께 있는것을 참을수 없었던 능통은 손권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살인을 계획, 연회장에서 검무를 추어 감녕의 목을 노렸다 감녕 역시 이것을 알아채고 큰 싸움이 날 뻔 했으나
이 싸움을 말린 것 은 바로 여몽이었다
감녕 에게도, 능통 에게도 커다란 신뢰를 받고 있던 여몽은 그 둘을 설득하여
이 둘이 다시는 싸우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물론 이후에도 능통과 감녕의 애증관계를 다룬 일화는 몇 개 더 찾을 수 있는데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살인을 좋아했던 감녕 마저도 여몽의 그 온화함과 정직함을 존경하여 따랐으니 여몽의 성품은 말할 것도 없다
젼혀 다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아꼈던
감녕 과 여몽의 일화는 이 말고도 또 찾을수 있다
하루는 감녕 이 그 잔인한 성품을 어떻게 하지 못해
실수를 저지른 주방의 어린시종을 화살로 쏘아 죽이려고 하자
여몽은 도망쳐온 시종을 숨겨주었다
감녕은 죽이지 않을것을 약속하고 여몽에게서 시종을 데려와서 결국 죽였는데
여몽은 순간 도를 넘은 감녕의 행동에 참지 못해 감녕을 죽이려 들었다
그러자 여몽의 어머니가 "네 마음은 알겠지만 나라의 일인데 어찌 같은 나라의 장수를 죽이려드는게냐" 라고 맨발로 뛰쳐나와 말했다
극진한 효자이기도 했던 여몽은 잠시 마음을 다스린 후 감녕을 불러 술을 권했다
감녕은 그것에 감동하여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여몽을 깊이 존경하게 된다
이렇게 여몽은 극진한 효자임과 동시에 불의의 일에는 분노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오에서 쫓겨날 뻔한 감녕을 구해준 것 역시 여몽이었다
자신이 그 용맹함과 총명함에 반해 데려온 감녕 이지만 그 잔인한 성격에 결국 손권 역시 감녕을 쫓아내야겠단 생각을 하자
여몽은 감녕의 용맹함을 다시 얻기는 힘들거라며 손권을 말렸고 결국 감녕은 후에 오나라 최고 명장이 되었다
만약 여몽이 말리지 않았다면 감녕의 그 눈부신 활약은 볼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몽을 손권은 크게 아껴
여몽이 병에 들자 전국의 명의를 부르고 여몽의 병을 낫게한 자에게 큰 포상을 약속하는등 신경을 썼으며
여몽의 병이 깊어지자 옆방에 머물면서 구멍을 뚫어 매일 여몽의 상태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아마 능통,주태,주유와 함께 손권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무식한 칼잡이에서 오직 노력만으로 뛰어난 군략가가 되어
관우를 사로잡은 총사령관이 된 남자
자신의 주군인 손권과 오나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명예가 깎아내려짐을 아무렇지않아한 충신
청렴결백했으며 이타적이고 정직한 성격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남자
비록 관우를 죽인 이유 때문에,
오나라가 비교적 변방 혹은 제3세력에 가까운 나라였기 때문에
저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지금 우리 살아감에 있어서
여몽은 삼국지에서 제갈량과 함께 가장 본받아야할 인물이지도 모른다
여몽(呂蒙, 178년 ~ 219년)
자는 자명(子明)
여남군 부피현 출생
용맹하면서도 지략이 뛰어나니 장수로서 이만한 인물이 없다
-진수-(역사서 '삼국지'의 저자)
자고로 사내를 사흘 후에 다시 본다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합니다
-여몽-
괄목상대 刮目相對
지식이나 재능이 부쩍 진보하였음을 이르는 말
여몽의 일화에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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