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죽음과 형주의 손실에 대한 복수를 위해 유비가 조운과 제갈량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를 공격한 끝에 벌어진 이릉 대전.
아시다시피 이 싸움에서 유비는 육손의 화계에 의해 그동안의 연전연승을 거둔 성과를 날려버리고 상당한 병력 및 인재들을 잃습니다.
왕보 - 유비를 수행해 오나라 정벌에 참가했다가 전사.
풍습 - 오나라 정벌전에서 대독으로 군을 지휘. 오장 이이 등을 격파하는 공을 세웠지만 이릉에서 전사.
장남 - 촉군의 선봉장. 풍습과 함께 전사.
정기 - 강인하고 용맹한 장수로 이릉에서 패하자 장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물러나다가 오군에게 따라잡혔고, 주변에서 도망치라고 권유하는 것도 뿌리치고 끝까지 싸우다 전사.
부융 - 유비가 후퇴할 때 후방에 남아 적을 막다가 휘하 장졸들을 모두 잃고 고립되자 "오나라의 개들아! 어찌 한(漢)의 장수가 항복하겠느냐!"라면서 싸우다 전사.
사마가 - 무릉만이의 수령으로 도중에 유비군에게 합류. 풍습, 장남 등이 전사할 때 전사.
두로, 유녕 - 유비의 부장으로 패전으로 궁지에 몰리자 오에 투항.
마량 - 정사 마량전에 '마량 역시 살해되었다'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습니다.
마량은 무릉만이와 촉군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유비와 떨어져 있다가 살해당한 듯.
황권, 방림(방통의 동생) - 이 둘은 유비의 명으로 장강 북쪽에 주둔하고 있다가 유비군이 패하자 돌아갈 길이 끊겨서 할 수 없이 위에 투항.
오 정벌이 시작되기 직전에 황권은 유비에게 "촉의 수군은 물을 따라 이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우나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필 테니, 폐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라고 간언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황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황권에게 강북의 군대를 이끌고 위를 견제하게 하고, 자신이 직접 장강 이남으로 갔습니다. 결과야 뭐...
거기다 황권의 부대에는 부장급이 100명 이상이었고, 그 규모로 봐서 병력도 1만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위나라로...
형주가 함락된 시기부터 해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법정, 엄안, 손건, 미축, 곽준, 간옹, 이적, 허정, 유파, 등방, 맹달, 조루, 관평, 미방, 반준, 유봉 등등 촉이 자랑하던 막강한 장수, 모사진, 중신들 대부분이 병사, 전사 혹은 타국에 투항하면서 사라집니다.
이 상태에서 그들의 뒤를 이어 촉을 이끌어 나가야 할 차세대 인물 대부분이 이릉 전투에서 죽거나 위, 오로 투항해버리면서 촉은 심각한 인재난을 겪게 됩니다.
제갈량이 괜히 인재에 대해 탄식한 게 아닙니다.
이릉에서 무사히 돌아온 장수들이 요화, 오반, 진식, 상총 등인데 이 중 앞의 3명이 부족한 기록에서나마 북벌에 출전해서 제몫을 잘해주었고, 상총도 제갈량의 출사표에 언급될 정도로 유능한 인물(자귀에서 유비군이 괴멸할 때 상총의 진영만이 온전했다는 기록이 정사 상총전에 있습니다.)인 걸 감안하면 이릉 전투에서 잃어버린 인재들이 정말 아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형주라는 요충지를 영원히 잃어버린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덤 : 정작 온갖 억지 생떼를 쓰면서 형주 일부를 촉에게서 넘겨받았고, 관우에게 뒷치기를 해서 형주를 얻어낸 오였습니다만 정작 형주를 잘 활용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손권이 위를 공격할 때 주로 공격했던 곳은 합비였군요. 그것도 만총, 문빙 등에 의해 깨지기만 했지만.
아시다시피 이 싸움에서 유비는 육손의 화계에 의해 그동안의 연전연승을 거둔 성과를 날려버리고 상당한 병력 및 인재들을 잃습니다.
왕보 - 유비를 수행해 오나라 정벌에 참가했다가 전사.
풍습 - 오나라 정벌전에서 대독으로 군을 지휘. 오장 이이 등을 격파하는 공을 세웠지만 이릉에서 전사.
장남 - 촉군의 선봉장. 풍습과 함께 전사.
정기 - 강인하고 용맹한 장수로 이릉에서 패하자 장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물러나다가 오군에게 따라잡혔고, 주변에서 도망치라고 권유하는 것도 뿌리치고 끝까지 싸우다 전사.
부융 - 유비가 후퇴할 때 후방에 남아 적을 막다가 휘하 장졸들을 모두 잃고 고립되자 "오나라의 개들아! 어찌 한(漢)의 장수가 항복하겠느냐!"라면서 싸우다 전사.
사마가 - 무릉만이의 수령으로 도중에 유비군에게 합류. 풍습, 장남 등이 전사할 때 전사.
두로, 유녕 - 유비의 부장으로 패전으로 궁지에 몰리자 오에 투항.
마량 - 정사 마량전에 '마량 역시 살해되었다'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습니다.
마량은 무릉만이와 촉군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유비와 떨어져 있다가 살해당한 듯.
황권, 방림(방통의 동생) - 이 둘은 유비의 명으로 장강 북쪽에 주둔하고 있다가 유비군이 패하자 돌아갈 길이 끊겨서 할 수 없이 위에 투항.
오 정벌이 시작되기 직전에 황권은 유비에게 "촉의 수군은 물을 따라 이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우나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필 테니, 폐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라고 간언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황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황권에게 강북의 군대를 이끌고 위를 견제하게 하고, 자신이 직접 장강 이남으로 갔습니다. 결과야 뭐...
거기다 황권의 부대에는 부장급이 100명 이상이었고, 그 규모로 봐서 병력도 1만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위나라로...
형주가 함락된 시기부터 해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법정, 엄안, 손건, 미축, 곽준, 간옹, 이적, 허정, 유파, 등방, 맹달, 조루, 관평, 미방, 반준, 유봉 등등 촉이 자랑하던 막강한 장수, 모사진, 중신들 대부분이 병사, 전사 혹은 타국에 투항하면서 사라집니다.
이 상태에서 그들의 뒤를 이어 촉을 이끌어 나가야 할 차세대 인물 대부분이 이릉 전투에서 죽거나 위, 오로 투항해버리면서 촉은 심각한 인재난을 겪게 됩니다.
제갈량이 괜히 인재에 대해 탄식한 게 아닙니다.
이릉에서 무사히 돌아온 장수들이 요화, 오반, 진식, 상총 등인데 이 중 앞의 3명이 부족한 기록에서나마 북벌에 출전해서 제몫을 잘해주었고, 상총도 제갈량의 출사표에 언급될 정도로 유능한 인물(자귀에서 유비군이 괴멸할 때 상총의 진영만이 온전했다는 기록이 정사 상총전에 있습니다.)인 걸 감안하면 이릉 전투에서 잃어버린 인재들이 정말 아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형주라는 요충지를 영원히 잃어버린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덤 : 정작 온갖 억지 생떼를 쓰면서 형주 일부를 촉에게서 넘겨받았고, 관우에게 뒷치기를 해서 형주를 얻어낸 오였습니다만 정작 형주를 잘 활용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손권이 위를 공격할 때 주로 공격했던 곳은 합비였군요. 그것도 만총, 문빙 등에 의해 깨지기만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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