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적응 1
“제기랄...”
조사 거점에서 아스테라인의 신분을 포기한 또 다른 인간종들이 모두 이주하고 나서 나지막히 뱉어진 첫 마디였다.
공방지대의 난간에 서서 수많은 연구원과 헌터, 거주민 무리가 떼지어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보던 수 많은 클랜원 중 쓰레기 클랜원이자 큰누님의 왼팔. 하둘이 다이앤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흐르는검까 누님?”
“왜. 너희들도 마음껏 사냥하고 날뛰고 싶냐? 리멘 따라 가고싶어?”
다이앤은 뭔가 신경질적이었다.
“꼭 그렇진 않지만 아니라고도 못하죠.”
오른팔 랍둘이 대신 대답했다.
“뭐?”
“생각해 보십쇼. 리멘이랑 홀덤 말중에 틀린 것 있었습니까?”
“맞슴다. 우리 대접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안일하고 뭔가 이상한 대처들이 많기는 했슴다. 저라도 이해가 감다.”
“그럼 니들도 가지 그러냐?”
“우리가 왜 감까? 누님두고”
하둘은 늘 누님 다이앤의 편이었다. 자신의 왼쪽 다리를 고룡에게 빼앗기는 순간 까지도 누님 다이앤을 구하기 위해 주저없이 나서던 든든한 클랜원 말이다.
하지만 랍둘은 달랐다. 쓰레기 하면 생각나는 광분한 전투 광전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랍둘은 몬스터의 약점 육질만을 집요하게 노려 숨통을 끊는 헌터였다. 그 성격처럼 그는 모든 일처리가 확실하길 바랬고, 그래서 다이앤을 선택해 따라온 것이었다.
“지금 가봤자 다를 게 뭐가 있나요? 이런 상황을 봤으면 여기도 변하겠죠. 그것도 아니면...”
그것도 아니면?
이라는 눈빛으로 다이앤과 하둘이 고개를 돌려 랍둘을 바라보자, 그는 능청스럽게 두 손을 들었다.
“우리도 뭐 하나 만들죠 뭐 하하.”
“너 이...”
“그냥 한 말이에요 한 말.”
유리창의 한 조각이 깨어질 때, 완벽하게 한 덩어리만 깨지는 것을 본 적 있는가? 분열이라는 것은 랍둘의 말처럼 여러 가지 파편을 남기는 법이다. 다이앤은 그것을 누구보다 느끼기에 예민해져 있었던 것이고.
“내가 그래서 짜증나는 거야. 홀덤이나 리멘이나... 저렇게 나가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다들 마음속에 갖고있던 사사로운 감정들이 크게 느껴진다고. 그럼 나도 나가볼까? 나도 만들어 볼까? 이런 생각이 박히게 된다고. 부족이 무슨 클랜도 아니고 그런 꼴이 나면 절대 안되는데...”
“누님 걱정은 그럼 뭠까?”
“단장들이고 대단장이고.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어. 이러다 정말 모두 분열날 것만 같아.”
다이앤의 말처럼 로켓 클랜도, 전건협도, 쓰레기도, 수렵적의 클랜장들을 포함한 여러 대형 클랜의 클랜장들은 심란할 것이었다.
저마다의 목적을 실현 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렇게 찝찝한 감정들을 남기고, 아스테라 거점은 천천히 사고 현장 이후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
*
*
3년 후.
“으아...제발 잠 좀 자자!”
한 연구원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축양장에 남은 어제의 잔재가 두통과 함께 어제의 일을 상기시켰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는 오크 술통만한 분유통에는 저마다의 라벨이 붙어 있었다. 소 젖, 말 젖, 인간의 젖을 넘어 하다못해 라피노스의 체액부터 볼가노스의 즙까지.
“아무것도 먹지를 않으니.. 너 죽으면 나도 죽는거 알아 몰라? 왜그래 대체!”
아직 이빨조차 제대로 돋아나지 않아 고기를 줘도 씹지를 못한다. 본능인지 어떤 것인지 마구 고기를 물고 늘어지다가 화가 났는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빼액거리며 울 뿐이었다.
“으으... 그나마 성체 울음소리는 멋있기라도 하지. 무슨 유리창 긁는 소리가 나냐!”
“끼에에에엑!!”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리오레우스는 더 크게 울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연구일지를 들어 다른 리스트를 추가하려 할 때 뒤에서 웬 손이 불쑥 튀어나와 그 리스트를 빼앗았다.
“엇?”
“임마. 연구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애를 키운다고 생각해라. 어? 사랑이 없잖냐 사랑이.”
지긋하게 나이가 들어보이는 한 노인. 백발의 머리가 길게 허리춤까지 늘어트러진 노인은 조사거점에서도 유명한 애꾸 노인이었다.
“아...형님!?!??!?!?”
사실상 전투와 연구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들이 다른 거점으로 이주한 상태에서, 왜 이런 노인과 어린 아이가 남아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불만이 많은 젊은 헌터들이 태반인데, 이 연구원은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며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형님? 형님? 어쭈 이제 아주 맞먹으려고 하네?”
노인은 허리를 굽힌 연구원의 머리에 그대로 팔을 감싸 헤드락을 걸고 꿀밤을 먹였다.
“악! 그때 분명 술자리에서 사석에서는 형님동생 하자고...꾸엑!”
“쌔갸 지금이 사석이야? 너 지금 아주 중대한 업무를 하고 있는거야. 이 리오레우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 이게 그만큼 큰 이득이 되게끔 만들어야 하는게 너라고 임마. 근데 사석? 사석? 죽을 자리 만들어 줘? 사석할래?”
노인이 놓아주자, 연구원의 목덜미가 씨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적어도 노인대접 해주느라고 아픈 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우...죽다 살았습니다. 근데 진짜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심심해서 왔지.”
“네? 아니 천하의 학살..악!”
연구원은 뭔가 미심쩍은 대사를 채 뱉지 못하고 노인의 꿀밤을 맞았다.
“떠오르는 신성들이 보기에 늙은 노친네랑 애새끼가 달가워봤자 얼마나 달갑겠나. 게다가 3년 전 그 일이 있고 몇몇 클랜들이 더 빠져 나갔다며. 다들 예민해 진거지.”
노인이 팔짱을 끼고 혀를 찼다.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가요...신기하긴 해요. 다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 하더니, 이제는 서로 죽이려고 아득바득 이 갈면서...진짜 순식간에 다른 종족 됐다니깐요.”
연구원의 말에는 지난 시간의 흐름이 모두 녹아들어 있었다. 3년 전 다이앤의 걱정대로 사람들은 저마다 부족을 만들어 떠나기도 하고,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간 부족원을 증오 하기도 하고, 상대 부족에서 의도적으로 공격이나 침입이 자행되기도 했었다.
말 그대로 인간들끼리의 영역 다툼이 시작 된 것이었다.
“그게 인간이야. 적응하는 동물. 아무튼 나는 어디서도 반기질 않으니 이렇게 옛 후배나 찾아온 거야. 내가 좀 외롭잖나.”
“아 예예. 그나저나 뭐라도 도와주세요. 그래도 용에 대해서는 해박하시잖아요”
“니가 알아서 해야지 왜 나한테 물어봐? 그러나 도움을 줄 순 있다.”
“어떻게요?! 제발 좀 알려주세요 저 죽을 것 같아서 그래요!”
“오호...그렇게까지 궁금하다 이건가?”
“네! 뭐든 할게요 형...아니 대장님!”
“그래! 그럼 내 너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기 위해 특별히 데려온 선물이 있지! 자! 가라 루안!”
대장은 두 팔을 벌려 누군가를 소개했다.
“루안...?루안!?”
대장 뒤에서 슬그머니 나온 거뭇한 실루엣은 조사단 내에서도 차라리 고룡을 잡으러 갔으면 갔지 루안을 맡을 순 없다는 말을 만들어낸 유명한 존재. 루안이었다.
“허...허...! 대장님!!!!대장님!!!!!!어디가세요!!!!!!!!!!!”
홀로 남아 루안을 맡게 된 연구원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얼굴이 하얗게 백지가 되어 두 손을 벌벌 떨었다.
무슨 아이 하나가지고 이렇게 유난이냐고 타지의 사람들은 묻겠지만...
오죽하면 그를 돌봐주던 연구원들이 ‘고룡종 포악룡 루안’이라는 몬스터식 네이밍까지 지어준 아이였다.
‘제발 리오레우스만큼은 아직 안봤기를...! 제발!’
연구원은 포악룡 루안이 리오레우스를 보지 않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리오레우스를 굶겨 죽여서 좌천을 당하는 것이 차라리 루안이 리오레우스를 발겨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니까.
“아저씨? 나가서 놀까요?”
오. 연구원은 쾌재를 불렀다. 정말 못본걸까. 내 좁디좁은 등에 가려져서 리오레우스의 존재를 보지 못한 걸까. 그럼 얼른 나가야 한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지우기 위해.
“그럴ㄲ...”
“근데 저거 뭐에요?”
응 아니었다.
“어...? 저 통? 저거 젖 모아두는건데.”
“아니 그 뒤에 있는거요. 저거 리오레우스 아니에여? 근데 왤케 작아여? 새끼에여? 저랑 나이 비슷해여? 놀아도 돼여?”
“어...? 어? 안돼. 저거 사실 아저씨가 되게 중요한 일을 하느라고 잠시 데리고 있는 거거든..”
“무슨 중요한 일이여? 리오레우스 해체해여? 죽여여? 불쌍하지도 않아여? 아저씨 인간말종이에여? 나 쟤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봐도 돼여? 만지면 물어여?”
바로 이것이 루안의 궁극적인 두려움. 끊임없는 질문과 거침없는 돌진.
루안은 그 졸망한 다리로 거침없이 전진했다. 연구원이 한차례 막아섰으나, 아이에게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이 없는 법. 루안은 연구원의 다리 사이를 기어 연구원을 통과한 뒤 리오레우스에게 향했다.
“키에엑!”
리오레우스는 난생 처음보는 시끄러운 동물을 보며 거칠게 포효했다. 아무리 그래봤자 유리창 긁는 소리밖에 안났지만.
그리고 마침내 루안이 리오레우스의 콧잔등에 손을 얹어갈 때 쯤이었다.
“불 뿜어여?”
“맞다! 불! 안돼 루안!!”
연구원이 루안을 향해 다이빙하고, 루안의 손이 리오레우스의 콧잔등에 닿고, 리오레우스가 고개를 한껏 빼들어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토해내려 준비하는 그 찰나의 시간.
한 이름모를 연구원은 포악룡 루안 덕분에. 아주 중대한 연구결과 하나를 얻어내고 만다.
“꾸에에엑!”
리오레우스는 불길을 토하려다가 자기가 먹었던 즙과 우유를 모두 쏟아내버렸다.
“으아아악! 이게 머야! 더러워! 냄새나! 뜨거워!! 엄므아악!!!”
그리고 조사거점에서 난생 처음으로 루안에게 멘붕의 상태를 경험시키기도 했다.
“불...불을 못써? 리오레우스가 불을 못 쓴다고! 루안 고맙다!!!”
연구원은 드디어 뭔가 하나를 알아냈다며 좋아했다. 그런 연구원을 보며 루안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이내 자신의 상황을 짐작케 해주는 찐득한 액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어..어! 그래! 그럼 나 이것 좀 떼줘! 너무 냄새난단말야!”
그러나 한번 스위치가 켜진 연구원들은 루안과는 급이 다른 고집을 가진다. 두 귀는 막고, 눈은 오직 연구일지에 사로잡혀서는 소위 ‘빡블죠’처럼 리오레우스를 향해 달려들어 입을 벌려보고 날개를 들어보고를 반복했다.
“불이 생성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배출할 기관이 상해있다. 기형아로 추정... 이빨이 나는 기관은 상하지 않아 보임. 아직 어린 해츨링이라 이빨이 덜 자란 것으로 추정. 연구결과 부족.”
루안은 반쯤 맛이 가버린 연구원의 눈을 보면서 저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란 생각이 안 들었는지, 털레털레 끈적한 몸으로 밖을 향했다.
“에잇... 나쁜 연구원! 나쁜 비룡!”
그리고 그 때.
쿠당탕-!
따로 신설된 리오레우스 축양장 겸 연구실이 와르르 무너지고, 루안의 눈은 태양이 내리쬐는 하늘을 향했다.
“읏!”
눈부신 태양빛을 어떤 물체가 검게 가렸다.
이내 안정된 시야 틈으로 그림자는 실체가 되어 루안을 덮쳤다.
“우왁!”
설마 죽는건가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은 루안은, 몸을 마구 흔들어 빠져나가려 했지만 큼직한 리오레우스의 뒷발에 온 몸통이 눌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끄윽...! 살려..!”
그러다가 문득, 뭔가 모르게 따듯하고 비릿한 냄새에 눈을 떴다.
“으어? 너...너 뭐해?”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사거점의 수많은 헌터들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리오레우스가 자신이 토해낸 구토물(?)로 범벅이 된 루안을 붙잡고 매우 정성스럽게 그의 온 몸을 핥고 있었다.
인간들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적의가 없는 어린 리오레우스의 눈이 맑게 빛났다.
“적응을 하는건 인간만이 아니군.”
노인이 연구원을 보면서 웃었다.
*댓글을 달아주시는 여러분, 읽어주시는 여러분 모든 헌터 여러분. 드디어 불의 용은 하늘의 꼭대기에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거의다 등장했습니다.
곧 인물 관계도를 포함한 설정 자료들이 올라올 예정이며, 아직 보여드리고자 하는 스토리의 프롤로그도 끝나지 못했습니다. 저의 전개력을 질타해주시고 몬스터 헌터 월드를 기반으로 하지만 전혀 새로운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하고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