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소복히 쌓였던, 어느 겨울날이라고 기억한다.
한 소녀가 찾아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빼빼마른 소녀였지만
그날의 타오르던 눈동자 만큼은 잊지 않고 있다.
소녀는 우리 유파의 무술은 배울 수 없었다.
선천적인것인지, 오랜 고생으로 맥이 끊어진 것인지
그 아이는 넨을 끌어낼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말해줘도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던 소녀는 잡일을 시켜달라고 자처했다.
백명도 넘는 수련생들의 식사와 빨래는 모두 소녀의 일이었고,
오직, 수련시간에만 수련장 한 구석에서 곁눈질로 수련을 훔쳐보았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소녀는 넨의 끝자락도 뽑아 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련생들은 소녀를 등한시했고
나 또한 그 아이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방치해뒀다.
또 몇번인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소녀가 찾아왔던 그 날처럼 눈이 많이 와서였을까
수련장 뒷편 나무 한 그루가 밑둥부터 부러져 버렸다.
다행히 다친 수련생들은 없었지만 수련장 쪽으로 쓰러져 버리는 바람에
곤란하게 되어버렸다.
수련장 한 켠을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던 소녀는
어느새 나무로 다가와 치우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느 누구도 그녀를 도우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비쩍 마른 체구의 소녀가 나무를 끌고 가고 있음에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시 봄이 왔다.
매해 수련생들의 성취를 살피기 위해 여는 무투대회.
그 아이가 참가를 표명했다.
다른 수련생들은 그 어떤 야유도, 멸시도 표현 하지 않았다.
완벽한 무시.
첫 경기에서 그 아이는 승리했다.
악전 고투였지만 넨으로 무장한 무투가를 평범한 아이가 쓰러트린 것이다.
모두가 놀라워 하면서도 금새 우연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런것은 불가능하다.
두번째 경기에서도.
세번째 경기에서도,
소녀는 계속 이겨냈다.
경기가 거듭 될수록 상처 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어떤 사내들 보다도 당당히 연무장 위에 서서 승리를 손에 쥐었다.
타고난 재능도, 누군가 가르쳐준 기교도 없었다.
아이의 격투는 단순했다.
빠르게 내지르는 원투, 그리고 로킥.
정말로 단순하기 그지 없는,
싸움을 모르는 자라도 그 자리에서 흉내낼 수 있는 동작 뿐이었다.
하지만, 유파의 그 어떤 수련자도 그 아이를 이기지 못했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다리가 부러져 실려 나오는 수련생을 보며
나는 지난 겨울 쓰러진 나무를 떠올렸다.
그것은 어떤 결의였을까.
어떤 고집이었을까.
모두가 무시하고 등을 돌려버린 곳에서
누구의 조언도 격려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단련을 묵묵히 해온 나날들.
그것은 어떤 나날들이었을까
무투회가 끝나고 상처투성이가 된 아이는 나를 찾아왔다.
몇 번의 겨울은 소녀를 어엿한 아가씨로 만들었지만
그 타오르는 눈동자만은 여전히 그 겨울날의 그대로였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노라고,
더 강한 적들과 싸우겠노라고 했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배경으로 소녀는 떠나갔다.
모든 수련생들이 그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누구도 그 아이만큼 커다란 뒷모습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그 아이의 등은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을 따라 올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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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다른 사이트에서 옛날에 썼던(2008년. 히익, 벌써 7년) 단편인데 뜬금없이 그쪽 게시판 역주행 하다 보여서 퍼와봅니다.
당시에 이걸 썼던 이유는 그래플러의 경갑 마스터리 이름이 '근성'의 경갑 마스터리라서.
개인적으로 스커의 컨셉이 근성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아니, 왜 스커가 근성이 아닌데? 하며 썼던 글입니다.
지금 봐도 참...
손발의 영압이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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