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세계관에 대한 글을 좀 검색하다 보니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제 나름대로 좀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문맥이 앞뒤가 안 맞거나 해도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게임이 발매됐을때, 월드 디자인(레벨 디자인 말구요)에 관해서 말이 좀 많았던 것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흙의 탑 뒤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용암 속으로 가라앉은 성?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이 좀 안 되죠. 또 다른 사례로는 매듀라에서 보이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는 다른 지역과의 거리에 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극초반부터 바로 진입할 수 있는 두 지역인 하이데의 큰 불탑과 부패한 거인의 숲. 이 두 지역은 매듀라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지역에서 매듀라를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너무 멀다는 생각이 가끔 들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여태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만...
(루리웹에 사진 올려본 적이 없어서 그냥 원문 링크로 대체할게요. http://fextralife.com/iron-keep-a-castle-in-the-clouds/ 세번째하고 네번째 사진입니다.)
하이데에서 매듀라를 볼 때(세번째 사진)은 좀 긴가민가하긴 한데, 매듀라에서 하이데를 바라볼 때(네번째)는 확실히 좀 멀다는게 느껴지죠. 얼마나 먼지는 몰라도, 우리가 진입했던 길의 길이보다는 먼게 확실합니다. 이 글을 작성한 이가 주장하는 건 바로 흙의 탑에서 철성으로 넘어가는 어색한 지역 전환이 의도된 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좀 더 자세히 짚고 넘어가보죠.
- 공간이 왜곡되었다?
게임 내외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지도"는 참 많습니다. 게임 안에서 육안으로 각 지역들의 랜드마크 간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케일의 집 지하에 있는 지도가 있죠. 그리고 콜렉터스 에디션에 포함된 천으로 된 지도가 있습니다. 이 세 지도들끼리는 얼추 잘 맞아들어가는데, 우리가 실제로 걷는 거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첫번째 가설은 바로 드랭글레이그의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는 겁니다. 일단 소울 시리즈에서 확실한 한가지 사실은 시간의 흐름이 꼬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배배 꼬인 시간선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게 바로 멀티플레이라고 볼 수도 있죠. 여기서 비슷한 식으로 공간도 꼬여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요?
무슨 말이냐면, 흙의 탑에서 철성 사이의 공간이 나선으로 뱅뱅 꼬여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탑의 엘리베이터는 마치 웜홀처럼, 나선형으로 꼬인 공간을 가로질러서 두 지점 사이를 일직선으로 이어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분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작 십수초 이동했을 뿐인데 어느새 흙의 탑과 녹아내린 철성 사이의 구간을 다 건너뛰어버리고 철성에 도착한 거죠. 매듀라에서 하이데의 큰 불 탑으로 향하는 "해저"터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바다 밑으로 해서 하이데의 폐허에 도착했죠? 그런데 우리가 계단을 얼마나 오르락 내리락 했던가요?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우리는 매듀라와 하이데 사이를 바다 밑으로 건너서 지나온 겁니다. 상식적으로 너무 짧은 시간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크게 잘못 되어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 됩니다. 즉, 매듀라에서 하이데로 오는 사이에 구부러진 공간을 일직선으로 가로질러서 왔다고 할 수 있는거죠.
이 영상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다크 소울 2의 맵 전체를 연결해서 3D로 본 건데, 맵 간에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게임 외 적인 부분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면 답은 간단하죠. 디자인 단계에서 뭔가가 잘못 된겁니다. 다만 우리는 게임 내 적인 해답을 찾고자 이러고 있는거니까 넘기도록 합시다. 제 생각에 다크 소울 1편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2편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리가 서로 가로질러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미궁같은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드랭글레이그 전체를 하나의 열린 세계, 즉 진정한 의미의 오픈 월드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맵 크기는 못해도 스카이림 이상이었을거고, 그렇게 만들기도 불가능했을겁니다. 무엇보다도 지루했겠죠. 산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초저밀도의 세계를 처음에 화톳불도 없는 채로 돌아다니려면...
- 시간이 왜곡되었다?
원문의 작성자가 세운 두번째 가설은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었다는겁니다. 사실 이 부분은 다크 소울 1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거고, 당장 흰 납석의 아이템 설명에서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 시간의 흐름이 정체된 (영문판에서는 distorted) 이곳에서 ...'라고 나오죠. 그 부분을 좀 더 새로운 수준으로 확장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간이 뒤틀려 있었기 때문에, 흙의 탑에서 철성에 닿기 까지의 시간대를 중간에 그냥 뛰어 넘어버렸고 우리는 그걸 느끼지 못 한 거죠. 탑 중턱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 꼭대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철성에 도착합니다. 어떻게요? 모르죠. 그 사이의 시간대를 건너뛰어 버렸으니까요. 우리도, 주인공도 건너 뛰어버린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 실제로 벌어졌음에도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한거죠. 원 작성자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지역 사이의 통로는 영화에서의 장면 전환 같은 겁니다. 만약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뉴욕에서 파리로 건너간다고 합시다. 뉴욕에서 파리로 가는 사이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죠. 그런데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파리로 가자' 하면 잠시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여주고, 바로 파리에 와 있는 겁니다. 주인공이 뉴욕에서 파리로 순간이동한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가 그 사이의 일들을 보지 못한 것 뿐입니다. 다크 소울 2에서 지역과 지역간의 연결 문제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죠.
- 기억상실?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인공은 불사의 저주를 받았다는 거죠. 불사의 저주에 걸리면 점차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미쳐갑니다. 다크 소울 2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NPC가 바로 '루카티엘'입니다. 스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루카티엘은 점점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을 잃어갑니다. 자신이 드랭글레이그에 왜 왔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인간조각상을 보고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주인공에게 흔쾌히 넘겨버릴 정도로 망자화가 심각하죠. 원문 작성자는 이를 '루카티엘 가설'로 칭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죠.
이 가설의 출발점은 사실 위의 시간 왜곡 가설과 비슷합니다. 다만 차이점은 주인공이 지역과 지역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다 지나왔을 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경험"했지만 결국엔 다 잊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애초에 시간을 뛰어넘어서 경험하지 못한게 아니라요. 이 추측에서 주인공은 드랭글레이그에서 수백 리의 거리를 여러번 왔다갔다 했지만, 우리가 게임에서 플레이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기억을 잃어버린겁니다. 예를 들자면, 미다를 무사히 처치하고 흙의 탑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철성에 도착하기까지의 일에 대해서 전부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기억 상실 때문에 지역간 연결이 끊김없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거죠. 불사의 저주로 인한 증상과 충분히 일치하기도 합니다. 곳곳에서 만나는 NPC들도 다 불사의 저주로 인한 증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흘린은 부자가 돼서 집에 안 돌아가도 되겠다며 기뻐하지만 정작 집이 어딘지는 모릅니다. 클로아나는 아버지를 코 앞에 두고도 그 사람이 아버지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드넓은 드랭글레이그 땅 수백 리를 맨 발로 걸어서 여행했지만 정작 세세한 부분은 기억하지 못 합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가셨으면 좋겠네요. 너무 두서없이 주절거리느라...
게임 안에서 꼼꼼히 따져봤을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부분들이 주인공이 그 부분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하면 그 범위를 더 크게 확장해서, 게임 전체가 불사의 저주에 걸린 주인공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죠,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가정하면 지역마다 시간대가 다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시공간의 흐름 외에 다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그 지역을 방문했던 때가 밤 혹은 낮이었거나, 기억 속에 각인된 그 지역의 이미지가 그랬던거죠. 예를 들어서 그림자의 숲은 좀 흐리긴 해도 분명 밝은 낮이지만 겨울의 사당에서 짧은 터널을 지나 드랭글레이그 왕성에 도착하면 항상 비가 내리고 칠흑같은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이 처음 왕도 드랭글레이그에 도착했을 때 그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이미지가 깊게 각인되어서 '드랭글레이그 성에 갔을 때는 항상 비가 내리고 있었다'라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겁니다.
- 스토리텔링
위에 설명한 세가지 이론 모두 스토리텔링이라는 범주 안에서 보면 목적은 똑같습니다. 스토리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스카이림은 각종 모드들을 가지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려고 시도하는 분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요지는, 어떤 이야기든 주인공이 화장실도 가고 길가다 넘어지기도 하고 밥도 먹고 하겠죠. 주인공이 사람인 이상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스토리에서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면 안 됩니다. 좀 극단적으로 성경에서 예수님이 볼 일보는 이야기가 안 나온다고 해서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서 생리적 욕구도 다 초월하신건가요'라고 따지면 좀 곤란하다는 얘기죠.
말하자면, 흙의 탑과 철성 사이에 벌어진 일들도 그렇게 불필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쳐냈다 이겁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은 점점 병들어가고, 사람들은 기억을 잃어가고, 인구는 점점 줄어가고 있죠. 어쩌면 흙의 탑에서 녹아내린 철성으로 향하는 여정이 정말 먼지만 날리는 무미건조한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의 가설들에서 설명한 것들 덕에 쓸모 없는 부분은 다 잘라내고 재미있는 부분만 이을 수 있는 겁니다. 독가스가 자욱한 구덩이 직후에 타오르는 용암지대를 경험할 수 있는 건 게임 안에 저런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인거죠.
쓰다보니까 진짜 앞뒤도 안 맞고 이리저리 잡소리가 많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저 스스로는 지역간 연결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짜여진 부분을 불사의 저주와 연관지어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게 저주 때문일 거라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다른 NPC들은 저주때문에 기억하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주인공만 예외라기엔 좀 껄끄러운게 사실이죠.
물론 디자인 웍스 책에 나온 개발자 인터뷰를 보고 나면 저런게 다 프롬뇌 돌린 망상에 불과하다는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꽤 흥미롭고 재밌었습니다. 영어 되는 분들을 위해서 원문 링크도 남겨드립니다. 두 편 짜리 글입니다.
http://fextralife.com/iron-keep-a-castle-in-the-clouds/ 1편
http://fextralife.com/iron-keep-a-castle-in-the-right-spot/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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