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배후
십년 묵이 낡은 책장을 열다가 그만
목구멍이 싸아하니 아파왔네
아침이슬 1, 어머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수염이 텁수룩한 도이치 사내를 펼쳐 보다가
그만 재채기를 했네
자본론, 실천론, 클라라 체트킨,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묘지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던
네루다 시집 속엔
오래 삭힌 멍처럼 빛바랜 쑥이파리 한점
매캐한 이 콧물과 재채기는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다만 먼지 때문에
바람이 꽃가루를 날려보내듯
먼지가 울컥, 눈물을 불러일으켰나
청소할 때면 으레 나오던 재채기도
재채기 뒤에 오는 피로도
피로 뒤에 오는 무기력함도
무기력함으로 인한 단절과 해체도
그 쓸쓸함도, 그 황폐함도 다만
먼지 때문이라고 해두자
먼지보다 소심한 눈물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 사소한 콧물과 눈물과 재채기 뒤에
저토록 수상한 배후가 있었다니
꽃도 십자가도 없는
해묵은 먼지의 무덤을 열어보다가
그만 눈물이 나왔네
최루가스 마신 듯 매캐한 눈물이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김태정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창비시선 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