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머리칼을 통해서, 네 숨결을 타고
개나리꽃이 울타리를 이루며 피어 있었다. 마당에는 힘
겨우리만큼 꽃을 단 살구나무가 두그루 서 있었다. 두 노인
이 하얗게 비질이 된 마당에서 감자씨를 고르고 있었다. 뉘
엿뉘엿 해가 지고 있어 들어가보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
는데, 다시 찾았을 때 그 집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시 찾아보고 싶다. 나이 서른으로 돌아가, 너와
함께.
네 눈을 통해서, 네 입술을 통해서, 네 머리칼을 통해서.
초등학교 오학년 때 별을 좋아하는 여선생이 담임이었
다. 하루에 한두번은 꼭 꿈을 꾸는 눈으로 별 얘기를 했다.
카시오페이아, 페르세우스, 그리고 작은곰자리, 큰곰자리.
노래하는 것 같은 감미로운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별
나라에 사는 나 같은 어린이는 무슨 놀이를 하며 놀까 궁금
해 견딜 수 없었다.
그 별나라들을 두루 돌고 싶다, 네 숨결을 타고.
열살로 돌아가 네 부드러운 등에 업혀서.
강언덕에 위태롭게 앉은 집이 사공이 사는 오두막이었
다. 다리를 저는 사공이 기우뚱대며 배를 미는 동안, 그의
딸은 이마를 덮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빈대떡을 부쳤다.
종일 그 집 툇마루에 앉아 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강물을 구
경하고 싶다는 내 생각은 한번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
그 툇마루에 가 앉아 있고 싶다, 네 등 뒤에 숨어.
네 가슴팍 사이에 숨어, 너로 해서 비로소 스무살이 되어.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