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장 1
연안 통발 어선들
다닥다닥 붙은 선창 길
눈이 나려 배들의 얼굴이 하얗다
눈송이 참 곱누나
뱃사람들 떠들썩하게 웃으며
다찌노미집 연탄 화덕 곁으로 모이고
술청 아낙은 다시마 초고추장에 청어 과메기를 굽는다
사이다 컵에 소주 한잔 마시고
선창 오르막길 오르다
낡은 도장집 하나를 만났다
첫눈 오는 날 목도장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서럽고 안쓰
러운 일
도장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얼굴 발그레한 아낙이
아기 젖을 물리다 나를 보았다
나는 조금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도장 하나 팝세,라고 말했는데
아낙 또한 북관 사투리로
나그네 이름이 뭐쑤까? 묻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농담으로
이용악이라 말했는데
아낙이 내게
시를 쓰는가? 묻는 것이었다
이용악을 아는가? 물으니
「하나씩의 별」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눈송이들 아기 울음 들으려 가게 안 서성이고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고깃배들
원족 가는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줄을 서 있는데
백두산 자락 산골 마을 만보에서 왔다는
볼 붉은 아낙과 아기를 보며 가슴이 하염없이 설레었다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시선 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