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의 아버지
저 불쌍한 아비를 꼭 죽여야만 합니까?
대답하는 자는 없고 그는
자신이 아비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죄를 모르는 죄인처럼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허위 보고 하고 받은 특별 휴가의 아침
병장 계급장이 있으니 거짓말에도
에너지가 네 칸 꽉 찬다
뭐? 아비를 죽이려는 아들
그런 지겹고 유치한 이야기냐고?
아니다 아버지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죽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지난달에는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갔다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는데 내가
아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고기국숫집에서 꿍얼꿍얼대는 딸에게
화는 나는데 화를 못 내고
끙끙 앓았다 괜히
음식을 많이 시키고 많이
먹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괜히 애월 바다에
가서 물을 겁낸다고 혀를
차고 괜히 중문 어디 호텔을
잡고 어서 잠들라 재촉한다
4인 가구의 가장 계급장에는
괜한 에너지가 있고 그때
아비를 제대로 처리했어야
했는데 죄를 모르는 죄인처럼
아이들은 손을 빨며 잠들었다
저 불쌍한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뭐? 나는 못 들은 척
되묻는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서효인, 문학동네시인선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