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침묵*
―개성공단 폐쇄 및 UN 결의 뉴스를 지켜보던 어느 풍산
개의 한숨
남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남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개구멍 길
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처럼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
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남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남의 얼굴
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개들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
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핵이 되
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미국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남은 갔지만 나는 남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남(南)의 침묵을 휩
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변용.
음시
함기석, 문학동네시인선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