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제 글에서 떠든대로, Q가 나온 것을 핑계삼아 에바 리뷰를 올려봅니다.ㅎ
제목에 쓴대로, 이것은 신극장판 리뷰가 아니라 95년의 TV판에서부터 97년의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겔리온에 이르는 구 시리즈의 리뷰입니다. 당연히 스포일러 투성이 이므로 구 시리즈를 안보신 분은 가급적 작품 감상 후에 본 리뷰를 봐주셨으면 합니다(그때까지도 이 리뷰가 기억이 나신다면 말이죠.ㅎ)
우습게도 원래 이 글의 원본은 06년에 애갤에다 썼던 '리플'입니다. 뭣때문이었는지 쓸데없이 길어진 리플을 그대로 버리기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리플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그 후 그 리뷰를 방치상태인 블로그와 두개의 커뮤니티에 올렸고 몇번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이곳 루피동에까지 또 한번의 수정/첨삭을 거쳐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 중 일부는 97년 경 영화잡지 'KINO', '씨네21' 에 실렸던 기사를 인용하였습니다. 제법 긴 글이지만 단 몇분이라도 정독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거라 믿으며, 리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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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와 에바의 경우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서로 흡사한 부분이 여럿 있을 뿐만 아니라, 뭣보다 이 세작품들은 가이낙스의 작품제작노선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부분 때문에 왕립우주군-나디아-에바-톱을 노려라! 의 순으로 연표구성이 가능한 근거를 여럿 제시하며 이 작품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재밌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이것은 가이낙스 멤버들의 취향상 몇몇 설정들이 반복 사용된 결과일 뿐 세계관이 같은건 아니지요).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오타쿠들이 모인 프로급 아마츄어집단으로 결성됐던 가이낙스가 크리에이터로서의 꿈을 내보이며 당시의 주류아니메와는 차별화된 스타일로 순수하게 작품성을 추구하며 만든 극장용 아니메 '왕립우주군' - 이 작품의 미적지근한 흥행결과는, 안노 히데야키라는 속좁은 남자의 정신에 큰 강박관념을 심어놓았습니다. 바로 '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아니메팬이라는 넘들은 미소녀나 로봇이 나오는 아니메가 아니면 호응을 하지 않는구나'라는 관념이죠. 그래서 왕립우주군 이후 제작비 회수압박에 시달리며 갈피를 못잡고 있던 가이낙스의 차기진로를 재빨리 휘어잡고 '톱을 노려라!'를 만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소녀와 로봇이 보란듯이 화면을 휘젖고 다니는 작품이죠. 그리고 성공을 했습니다. 안노감독 입장에선 사악한 웃음이 나오는 성공이었을 겁니다. '그것봐, 너네들의 그 뻔한 취향을 잡고 흔드는것 따윈 식은죽 먹기나 마찬가지야'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후 다음 단계로서 꽤나 처절한 설정으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라는 작품을 기획하며 그 작품을 통해 기존의 폐쇄적인 틀에 길들여진 일본내의 아니메팬들에게 충격요법을 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물론 빚 갚는게 급선무였지만.ㅎ;). 그러나, NHK라는 스폰서를 만난것이 가이낙스에게는 악재였죠(당시 안노의 나이는 불과 30세). 어린이용의 보기 무난한 아니메를 원했던 NHK는 나디아의 처절한 스토리라인과 설정을 끝도 없이 물고늘어졌고, 그 결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꽤나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애니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감상한 나디아라는 작품은 가이낙스의 기획과 NHK의 입김이 반반씩 섞인, 즉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가이낙스 제작진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상당히 애매모호해져버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노틸러스호 침몰 에피소드를 보고 경악한 NHK측이 '애들 아니메에 대고 무슨 짓이냐!'고 펄쩍 뛰며 몇차례 경고 후 제작비제한이라는 초강수까지 뒀었다고 하니까요. 정작 오덕들은 그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한게 아이러니지만 말입니다.ㅎ; 어쨋든 그 상황에서도 가이낙스는 한국 인력을 비롯하여 최대한 저비용의 하청작업을 통해 어떻게든 에피소드를 메꿔나갔지만, 무인도/아프리카 에피소드에서의 심각한 작화붕괴는 피할 수 없었고 작품 분위기나 스토리 진행상의 밸런스도 NHK와의 줄다리기로 인해 갈팡질팡하는 뉘앙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됩니다. 그리고 급기야 나디아는 극장판에 이르러 안노 스스로의 손으로, 가이낙스가 아닌 다른 스튜디오에서 거의 작품파괴 수준으로 만들어지게 되고(ㅠㅠ), 그러한 흐름 속에서 민감한 남자인 안노는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실제로 나디아의 방영이 끝난후 안노는 4,5년 가까이를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고 밝혔죠.
톱을 노려라! - 건버스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극장판 일러스트
나오지 말았어야할 흑역사. ㅡㅡ^
그리고 그 4,5년후, 다시 나타난 안노는 자신이 당한 수모를 복수라도 하려는 듯한 작품을 들고나왔습니다. 바로 에바죠.
아시다시피 에바의 주인공 신지는 나디아의 성별을 바꾼 후, 거기에 중2병과 찌질함이란 요소를 더하여 폐쇄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을 더욱 심화시킨 나디아의 발전형 캐릭터였습니다. 신지만이 아니라, 나디아에 등장했던 주요 캐릭중 거의 대부분이 갖가지 형태로 비틀어지고 뒤틀린 인간상이 되어 에바에 재등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압권이었던 것은 나디아에서 에레크트라(일렉트라)가 네모선장에게 총을 겨누다 자기자신에게 총구를 돌린 순간 네모선장에게 자살을 저지 당했던 장면이, 에바에선 리츠코가 겐도에게 총을 겨누며 동반자살하려다 도리어 겐도의 총에 맞아죽는 장면으로 바뀐 부분이었죠.
'나디아'에서 에레크트라가 네모선장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 '에바'에서 리츠코가 겐도사령관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
여러가지 면에서 이 두장면은 매우 흡사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 두 작품의 비틀린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런 장면입니다.
좌측 : '나디아'에서 기계인간으로 되살아난 나디아의 오빠 '네오'의 모습. 등에 커다란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
우측 : '에바'에서 에바초호기의 등에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
둘다 미지의 '의지'를 담고서 전력이 끊긴 상태에서도 움직이는, 과학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인다.
'나디아'에서 네오가 전력이 끊긴 상태에서도 움직이는 장면은, 기계라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나디아를 구하려는 네오의 의지가 부각되는 매우 비장미있는 장면으로 연출되었습니다만, '에바'에서 에바가 전력이 끊긴 상태에서도 움직일때는 '폭주'라는 명칭이 주어지며 그 속에 어떤 의지가 담겨있는건지 알 수 없는 공포스런 괴물로서 묘사됩니다. 둘다 생명체의 내면에 담긴 과학을 넘어서는 어떤 '의지'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하나는 여동생을 구하는 감격적인 장면으로, 하나는 그것이 탑승자의 의지를 거역하고서라도 상대방을 철저히 파괴하고 먹어치우는(사춘기소년의 신체와 정신의 불일치를 은유하기도 하는) 전율스런 장면으로, 정반대의 관점으로 연출되어 있는 것이죠.
어쩌면 나디아의 원래 기획은 에바와 상당히 흡사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아담의 존재와 남극의 거대공동처럼 설정면에서 겹치는 부분도 있고, '나디아'에서 바벨의 빛으로 인해 멸망한 아틀란티스인들의 거대묘지와 '에바'에서 세컨드 임팩트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의 거대묘지 처럼 장면과 전체 맥락상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도 있는 등, 이 두 작품의 유사점을 찾아보는것 만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꽤나 있습니다.
'나디아'에서 바벨의 빛으로 죽은 사람들의 묘지. '에바'에서 세컨드임팩트로 죽은 사람들의 묘지.
에바의 경우,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와 캐릭터배치는 대단히 전통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묵시록적 세계관, 인류를 지켜야하는 역할을 맡은 거대로봇, 거기에 탑승해야 하는 운명의 소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적...그야말로 전형적인 로봇아니메의 구성요소들입니다. 캐릭터배치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속을 알수없어 신비한 병약한 이미지의 말없는 미소녀, 이후 츤데레로 이어진-천재적이고 기가 센 왈가닥 미소녀, 때때로 노출을 감행하는데다 덜렁이 기질도 있지만 든든한 누나같은 이미지의 여성, 때때로 안경을 쓰기도 하는 똑똑하지만 차가운 선생님같은 이미지의 여성 등... 일반적으로 '할렘물'이라고 불리는 장르로 진행 될수 있는 충분한 밑바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오타쿠들이 탐닉하는 '정형화된 비현실'에 대단히 충실하다는 거죠. 본디 캐릭들의 저런 전형성은 아니메 제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팬층사이의 '암묵적 약속'의 결과물이며, 기존의 상업작품이라면 그 '약속'안에서 저런 캐릭들이 갈수 있는 방향성이란 어차피 한계가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바 또한 그러한 기존 작품들의 성향을 포섭하려는 양, 아스카의 등장으로부터 중반까지는 전형적인 로봇아니메의 노선을 밟습니다. 주역 캐릭들간에 팀워크가 형성되고, 조연 캐릭들의 개그가 활성화되며, 학원연애물스런 전개도 펼쳐지죠.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일견 전형적으로 보였던 캐릭들의 숨겨진 뒷면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캐릭간의 보이지않았던 인과관계가 폭로되기 시작하고, 그 인간관계 중 몇은 티비시리즈 종반과 그에 이어지는 극장판에서 결국 처참하게 박살납니다. 그리고 주역 로봇인 에바는 적들보다 오히려 더욱 가공할 존재로 변모해가면서 우리편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통제불능의 야수가 되어 미쳐날뛰기 시작하고요. 전형적인 요소(약속)들을 배치시켜 놓고는 대단히 세심한 계산하에 그 약속들을 하나씩 박살내 버리는 전개, 그것이 에바라는 작품의 큰 노림수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만화스럽게 디자인된 2차원 캐릭들을 내세우고는 그 내면에다 처참한 설정을 때려박음으로서 야기된, 그림과 내용의 충돌효과가 큰 역할을 했죠. 에바 이전까지는 작품의 주제가 무거우면 그에따라 화풍도 무거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이러한 기대배반적 방법론은 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동시에, 전형적인 캐릭들을 살아있는 생생한 인간상으로 만들었습니다(요즘이야 육덕십덕스런 디자인의 캐릭이 나오면서도 대사나 연출에 뭔가 무게를 잡는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지 오래지만, 그러한 작품경향의 진원지에는 에바가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겉멋만 든 중2병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부작용이 많지만 말이죠;). 에바에 등장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스토리 중반까지의 전형적인 요소들은 'Dummy더미'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흔해빠진 설정 속에 어떤 식으로 Joker를 담아낼 수 있는지를, 에바는 여실히 보여줬지요.
여튼, 그렇게 처절한 설정으로 기획된 에바는 5년전 나디아의 기획이 방송국에게 처절히 유린당했던 때와는 달리 철저하게 의도된대로 밀고나가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을 말하는게 아니라, 안노가 꿈에도 바라마지 않던 '일본의 아니메팬들에게 충격을!'이라는 목표를 성공시켰다는 의미입니다. 뭐, 다들 아시는거지만 또다시 늘어놓자면 이런거죠.
- 모두가 목을 매도록 좋아하는 히로인을 만들어놓고는 그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조금 맘을 열려는 찰나 서슴없이 죽여버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히로인이 주인공의 엄마의 카피라는 설정을 까발렸습니다(그렇잖아도 히로인이 죽어서 정신이 멍한 마당에 그 히로인의 복제들이 더미시스템의 생산공장안에 떼지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에게 열광하는 오타쿠들에 대한 의도적인 일격이었습니다). 전투속에서 조금이나마 성장하던듯한 주인공은 카오루라는 친구를 죽여버리게된 뒤 자신의 내면속으로 도피해버렸습니다. 거기다 느닷없는 신지의 내면독백 에피소드로 인해, 모든 사도를 무찌르고 난후 뭔가 밝혀지려나 싶던 그때까지의 스토리상의 온갖 미스테리들은 깡그리 무시되고 신지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버립니다(이 부분에 대해선 제작비 배분실패로 인한 결과라고 알려진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제로는 제작비 문제보다는 안노감독의 의향때문이었음이 차후에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
아니메역사에 길이 남을 그녀, 아야나미 레이. 오덕들에게 충격을 주기위해 '의도된'캐릭이라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때문에
더더욱 애절하고 잊을 수 없는 캐릭이 되어버렸다. '카피'라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붕어빵 만들듯 미소녀캐릭들을 양산해 내야하는 오덕 크리에이터들의 자기모순적인 미학과 허무의 심리가 깊이 반영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안노는 일부러 에바라는 작품속에 정신분석학과 종교떡밥을 비롯한 폭발할 정도의 온갖 정보와 7,80년대 특촬물 및 아니메의 패러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기존 아니메의 법칙을 깨는 스토리라인을 넣는 것은 물론 일본의 갖가지 사회문제와 정치문제도 은유적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아버지와 갈등을 안고있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레이와 근친상간적 감정을 가지게 되는 오이디푸스적 설정은 레이라는 기념비적인 캐릭터의 설정과 맞물려 종국에는 아니메 사상 유례가 없었던 안티히로인으로 이어지고(온 세상이 레이로 뒤덮히던 그 장면), 그러한 주인공이 자궁의 은유인 에바의 엔트리플러그 속에서 또한 양수의 은유인 LCL용액에 잠긴채 어머니 뱃속의 태아처럼 외부의 세상과 악전고투를 벌이는 모습은 거대로봇물과 성장물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기가 막히게 섞어서 변주해 냅니다. 상업적 노림수임에 분명한 카발라 및 그노시즘(영지주의)같은 유대교 신비주의 설정을 깔아 미스테리/떡밥 요소를 극대화시키고, 흔한 로봇애니였다면 분위기 띄워주는 역할로 끝났을 터인 스즈하라 토우지 같은 양념 캐릭이 주인공으로 인해 불구가 되는 스토리등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어 기존 아니메의 진행법칙을 부수는 동시에 같은 반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기를 종용하는 일본의 성적중심 및 틀에 박힌 주입식교육("목표를 센터에 넣고 스위치")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자살(반대로 타인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 및 대인공포증 같은 현대 일본사회의 정신적 문제들을 잡탕믹스하여 넣었습니다(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에바는 시대의 비명이다'라고 평하기도 했죠). '높은 분'들이 독점하고 있던 비밀과 그 비밀들이 하나씩 폭로되는 스토리 과정들은 밀실정치와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현대 일본정치와 정치가들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 있으며(일본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향이긴 합니다만), 에바의 세계관에서 그려지는 국제정세와 미군의 묘사 및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함의 이름을 딴 캐릭들의 성姓(아야나미, 소류, 가츠라기, 아카기... 전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함의 이름)은 안노의 우파적 성향과 전함매니아인 그의 취향도 또한 여실히 드러냅니다. 너무나 뻔한 은유인지라 언급하기도 뭐하지만, 에바에 등장하는 소년소녀들은 전쟁을 겪은 윗세대와 세대단절 상태가 된 일본의 전후세대를 상징하기도 하며, 이것은 결국 윗세대의 유산을 탕진한채 평생을 키덜트로 사는 현재의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은유로 이어집니다. 하다못해 사도나 에바가 가진 AT필드조차 오덕들이 타인들로부터 자신의 불가침영역을 유지하기 위해 발산하는 굳은 폐쇄심리의 은유이며, 일정수준 이상의 폐쇄심리를 가진 중2병 소년소녀들만이 에바에 탑승했을때 정신이 빨려들어가거나 오염되지않고 자아를 유지하며 적당한 싱크로상태로 에바의 AT필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은 그 심리적 은유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폭주하는 에바가 상대의 절대불가침영역 'AT필드'를 찢어발기는 모습은 곧 제작진들이 오덕들의 폐쇄심리를 찢어발기려는 의도가 광폭하게 표출된 장면에 다름아닙니다.
우측: 영화판 '솔라리스'의 한장면. 궁극진화의 결과물로서 수수께끼의 정신반응이 발생하는 미지의 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1972년작.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2003년 판도 있다)
따라서 에바라는 작품은 다음의 세가지 줄기가 섞여서 등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작품으로 봐도 될것입니다.
1.자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중2병 소년이 부모와 친구를 비롯한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독립된 가치를 찾아 성장하는 것.
2.각자 마음속의 근원적 공허를 어쩌지못하는 인류가 사도라는 이름의 타인을 물리치는 통과제의를 거쳐 신이라는 이름의 부모로부터(또는 지구라는 이름의 요람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3.독자성없이 각종 미디어와 픽션들의 조각으로 구성된 설정페티쉬스런 오덕작품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 못하는 그 바닥의 운명을 초월하여 독립된 작품가치를 획득하는 것.
...의 세가지 줄기 말이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한 소년의 성장통이 전 인류의 운명과 등가교환되는 전 지구적 스케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세계의 죽음이기도 하니까요. 바로 이것이 성장이란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라고, 작품을 보고있는 오덕들에게 윽박지르고 있는 안노 감독의 방법론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에바라는 이 작품은 그야말로 오타쿠갱생 프로젝트에 한몸바친 어느 크리에이터의 피눈물이 담긴 고귀한 결정체로 보아야 할것이냐? ...제작의도나 주제로 보건대는 그렇게 봐야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이 작품이 굴러가는 외적인 모양새를 보건데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없겠지요. 안노 자신이 구원(?)하고자 했던 오타쿠들에게 구원은 커녕 오히려 '사골게리온'이라 불릴 정도로 끝도없는 에바관련 상품을 울궈먹으며 더더욱 오타쿠들을 그 수렁속으로 쓸어넣고는 그들의 등을 쳐서 얻은 돈으로 가이낙스(또는 스튜디오 카라)의 배를 불리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오타쿠갱생 같은 건 첨부터 목표로 하지도 않았고, '저것들은 어차피 가능성 없는 족속들이니 쟤네들 등쳐서 뽕이나 뽑자'라는 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자신도 오덕인 동시에 스스로 그 바닥의 중추를 이루며 가장 오덕스런 작품을 만들면서도, 작품의 주제는 언제나 그 바닥을 벗어나려는 의지로 충천해있는 그에게 있어 오덕이란 애증의 대상 그 자체인듯 하니까요.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분야이면서도 그 이상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제약해버리는 아니메계라는 바닥에 대한 염증과 날선 투덜거림, 그것은 그의 일관된 목소리이자 딜레마입니다. 에바라는 작품을 통해 오덕들을 어른으로 좀 성장시켜보려 했더니만 도리어 그 작품자체가 오덕들의 경전이자 복음이 되어버리고, 그 자신은 교주가 되어버린 상황을 안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ㅎ
바라건데는, 이제 투덜거림은 그만 끝내고 슬슬 초심으로 돌아가서 왕립우주군 같은 사고뭉치(?)를 하나 터뜨려줬으면 한달까요. '러브 앤 팝'이나 실사판 '큐티 하니'의 작업을 통해 실사영화로는 자신의 파괴력을 발휘 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깨달았을테니, '에바 이상의 작품은 만들 수 없다'는 약한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똘끼를 좀 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남은 에바 신극장판의 작업 땜에 앞으로도 한 2년 이상은 바쁠테지만. 이제 스튜디오 카라 로서도 슬슬 오리지널작을 하나 내야할 때가 되었고 말이죠.
글이 삼천포로 좀 빠졌습니다만 뭐 어느 쪽이건 확실한건, 이 에바라는 작품은 가이낙스의 창립작인 왕립우주군과 첫TV시리즈인 나디아, 이 두작품으로 인해 안노가 크리에이터로서 경험한 좌절에 대한 복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복수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달콤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이말저말 떠들어봐야, 저 또한 에바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한마리 오타쿠에 불과하니까요.ㅎ;
가이낙스 캐릭 궐기대회(?)...라곤 해도 '프리크리'까지 뿐인 단체사진.
하늘을 날고있는 저 바니걸을 알아본다면 그대는 진정한 가이낙스의 팬.
'전차남'오프닝에 최초등장했던 월면토병기 미나의 어머니격 캐릭이라죠.ㅎ
잡설 ㄱ. 덧붙여서... 이런 글을 보면 '제멋대로 만든 작품일 뿐이건만 거기에 대고 이런 의미 없는 해석을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지요. 그런 글을 보면 솔직히 짜증이 뻗치기 때문에 애갤에도 올리기 싫은 상황입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영상물을 '읽는다'고 하는 행위자체를 이해못하는 사람들이지요. 책으로 지식을 습득하던 시대에서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로 넘어왔다는 것, 이 사실이 가지는 무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영도 작가의 말에 따르면, 독서라는 행위는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자신만의 책을 또하나 만드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읽어들인 지식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만큼 각자의 자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한편 사진의 경우는, 전장에서 군대가 걸어가는 사진 한장을 놓고도 그걸 어떤 주제하에 싣느냐에 따라 그 광경을 숭고한 희생의 걸음걸이로 부각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끔찍한 폭력행위로 부각시킬 수도 있기에, 이걸두고 브레히트는 활자가 거짓말을 할수 있는 것처럼 사진도 거짓말을 할수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시나리오와 활동사진으로 이루어진 영상물 역시 만든이의 주장이 반드시 담기게 마련입니다. 그런것을 그저 생각없이 보는게 자랑인양 말하는 건 쿨한 행동이 아니라 걍 게으른거고 생각하는 습관이나 훈련이 안되어있음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사람이란 성격이 제각각이라 생각이란 것을 별스런 취미활동 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평소 일상이 복잡하고 피곤한지라 영상물을 볼때는 그야말로 심신을 쉬게한다는 의미에서 머리 비우고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하긴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애시당초 에바같이 머리아픈 작품은 보지도 않죠. 하지만 이런 평론문에 대해선 과대해석이나 멋대로 하는 해석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반론을 펴는게 마땅하지,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으니 너도 그만 두어라'라는 식의 태클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영상물에 있어서 '읽는다'라고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생각없이 보는걸 자랑삼진 않지요.
에바는 정확히 얘기해서, 안노감독과 같이 60년대에 태어나 특촬물과 아니메의 전성기인 80년대에 20대 시절을 마니아로 보낸 일본 남성들(이른바 오타쿠 1세대)이 가장 잘 이해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에바는 그런 세대가 자라며 즐긴 '마징가Z', '우주전함 야마토'나 '건담(우주세기)', '고지라', '이데온', '마크로스', '나우시카'등등 무수히 많은 작품들의 짬뽕패러디이자 그 시대의 유행을 잔뜩 담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는 이해란 굳이 그런 자잘한 설정 하나하나를 얼마나 이해하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것들이 전체적으로 그리고있는 총체적인 의미에 대해 얼만큼 자신만의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죠. 작품을 보는데 있어 그런 부분에 충실한 사람이야말로 A급 감상자라고 생각합니다.
잡설 ㄴ. '파'는 왠지 지난날 자신의 어린양(;)들에 대한 안노의 사죄의 의미로 보이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낚이느라 고생 많았다. 이걸로 그만 후련해져라'라는...ㅎ 개인적으로는 '나이먹더니 나잇살 티내는것까지 토미노 영감(극장판 'Z건담'의 결말을 85년의 티비판과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음)을 따라하냐!'는 생각이 들었다죠.ㅎ 뭐, 결말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나이먹고 조금 둥글어지는게 나쁜건 아니겠죠. 과연 이번의 Q는 어떤 진행일지 궁금궁금입니다. 뭐, 똥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대감이 사그라들진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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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뭐랄까, 수정하면서 보니 지금 시점에선 너무 평이한 글이라는 감이 크군요. 에잉...ㅜㅜ
현재 애갤에는 엄디저트 라는 분이 에바 전 시리즈에 대한 연속 리뷰를 올리고 계시더군요. 그분이 그 리뷰를 쓰면서
기본 전제로 깔고있는 포인트가 저랑 겹치는 데가 있는지라(에바는 생각없이 볼 작품이 아니다!라는 것) 제법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작품내의 설정들에 관한 세부적인 해석은 그 분의 리뷰를 읽는 편이 훨씬 더 자세하고 재밌을거라 생각됩니다.
근데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ㄷㄷ 용자로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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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엇어요 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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