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90년대 초에 나온 중국제 프라모델입니다.
쳉더푸(正德福)라는 회사에서 나온 1/300 전함 첸유엔(鎭遠진원)과 1/250 순양함 치유엔(致遠치원)입니다.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북양수사 소속의 함선들입니다. 첸유엔은 전함인데 제품명에는 순양함이라고 잘못 나왔습니다.
같은 회사의 같은 시리즈인데도 스케일이 다른 건...박스 크기에 스케일을 맞춘 게 아닌가 싶습니다.(가끔씩 있습니다. 일단 만들어놓은 다음에 자로 재서 스케일 정하는 경우가.)
90년대 초는 중국 프라모델의 여명기로,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열심히 자본주의 국가를 흉내내던 중국이 그 즈음에 본격적으로 조립식 프라스틱 모형이라는 것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기 제품의 대부분은 외제의 카피였지만 그 와중에 이런 오리지널 제품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스 옆에는 붓글씨체로 함선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앞의 두 자는 못 읽겠고...각각 '해군 북양수사 진원호 기함'과 '해군 북양수사 치원호 순양함'입니다.(아마도...)
첸유엔부터 박스를 열어보겠습니다. 박스 왼쪽에는 모터와 기어, 튜브식 접착제와 그리스 등이 있습니다. 장식용 받침대도 그쪽에 있네요.
박스 재질은 재생지로, 비닐 밀봉이라도 하지 않은 다음에는 장기 보관은 많이 힘듭니다.
선체를 꺼내서 받침대 위에 올려봤습니다.
그 앞에 놓은 조그만 종이들은 왼쪽부터 합격필증, 함명 스티커, 국기 스티커, 명패(이건 플라스틱)입니다.
부품의 클로즈 업. 그러면 비닐 밖으로 꺼내보겠습니다.
선체를 제외하면 두 장의 런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퀄리티는...정밀모형이랑은 거리가 멀고, 조립식 작동 완구로 봐야겠지요. 대략 80년대 초 국산 자체개발 프라모델 수준입니다.
형태면에서도 실물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70~80년대틱한 설명서.
그래도 함선모형이라 제법 복잡합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조립할 듯.
그런데 부품들이 제대로 맞아줄지가 걱정되는군요.(만들 일은 없겠지만...)
다음은 치유엔의 박스를 열어보겠습니다. 치유엔의 박스에는 함장이었던 등세창이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애국장령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사람이지요.
내용물의 기본 구성은 첸유엔과 같습니다.
런너도 동일하게 두벌입니다.
이 고색창연한 손그림은...
그런데 왜 이게 애국심 고취용 프라모델인가, 하면...
이 키트가 청일전쟁 100주년 기념으로 나온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100주년 기념이 아니라 당 차원에서 벌어진 국가 행사와 연동해서 발매가 됐습니다.
1894년은 청일전쟁이 일어난 해이고, 1895년은 북양수사가 일본군에 항복한 해입니다. 그리고 100년 뒤인 1995년, 중국 국가체육위원회에서 "우리 중화 사랑"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 청소년 북양수사 군함 만들기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체육 관광부에 해당하는 기관이 전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모형 콘테스트를 연 것이지요.
거기에다 90년대에는 중국 공산당의 위세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했습니다. 저때까지만 해도 당의 지시는 천명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런 분위기에서 당이 청일전쟁 100주년 국가 기념 사업을 벌이고, 이 모형들도 거기에 발맞춰 나온 겁니다.
중국 전역의 청소년들이 저 북양수사 군함 모형을 사서 만든 것이니, 중국의 인구 수를 생각해보면 이 물건이 얼마나 팔렸을지 짐작도 안 갑니다.(물론 북양수사 군함 모형을 이 회사만 만든 건 아니겠지만, 당시에 중국에 모형 회사가 그리 많지도 않았으니 1/n이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립식 모형을 이용해 청소년 애국심 고취용 행사를 개최한 것이니, 독재국가의 관료 치고는 머리가 잘 돌아갔다고 해야겠네요.
두 키트의 명패, 그리고 동봉된 기념 배지입니다.
청나라의 깃발과 군함 문양, 그리고 '95 우리 중화 사랑'과 '전국 청소년 북양수사 함선 모형 대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첸유엔과 치유엔은 몇년 전에 둘 다 브롱코에서 1/350으로 제대로 된 키트가 발매됐으니 저 둘은 그냥 보존용 레어 아이템 역할 밖에는 못하겠지요. 모형적 가치보다는 중국의 청일전쟁 100주년 기념행사 관련 자료로서의 비중이 더 클 겁니다.
참고로, 영국에서 건조된 순양함 치유엔은 1894년 황해해전때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 일본 군함에 육탄돌격을 하다가 침몰했고, 독일에서 건조된 전함 첸유엔은 1895년 위해해전때 일본군에게 나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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