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재속도가 좀 늦습니다. 회사원이라서요...
대신에 분량으로 승부를 걸어봅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워낙에 구식 판타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요즘 소설들과는 맛이 다를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지어낼 것들이 많네요. 모험하는 기분이 오랜만이라 두근거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작품을 두개 씩이나 하고있으니 겁도 나고...
여튼 봐주시는 분들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만족입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모바일로 보셔야 좀 더 이쁘게 글이 보일겁니다. 가독성은 그런 것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PC화면은 개인적으론 불호입니다만 봐주신다면야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감사합니다.
** 괜찮으시다면 활협전 팬픽도 봐주세요~
https://bbs.ruliweb.com/game/86690?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574330 <<
새벽을 지나 어느덧 새가 기분좋게 지저귀는 아침이 왔다.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촉촉한 아침바람이 코를 조곤조곤 건드리니 굳게 닫힌 눈꺼풀을 겨우겨우 떴다."끄으아아아. 아침... 아...침... 으어... 피곤해... 응?"지난 날의 피곤함이 완벽히 가시지는 않은 듯, 깊은 하품이 집안을 가득채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바깥에서부터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려왔고, 헝크러진 옷가지를 정리도 하지 못한채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대체 무슨... 일...?"사내가 묵고 있던 허름한 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원을 그리고 서있었다. 마침내 그를 마주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말을 걸기 시작했다."어, 어디서 온 분이시오??""간밤에 류트소리가 너무 좋았어요!!""노래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게 치유되는 기분이었어요! 또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가뭄에 단비라고, 이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갑자기 느닷없는 칭찬일색에 사내는 어안이 벙벙해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 했다. 그도 그럴게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 밖에서부터 적대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연기아닌 연기를 해야했다. 자신은 이 마을을 밤 중에 침입한 이방인이었고 누가 보아도 수상해보였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상황이었다. 누가 주인이 떠난 집이라 하더라도 덥썩 자리를 잡겠는가?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 밤의 여신 ' 이라는 시를 노래부르고 나서는 적대적인 인기척이 어느샌가 싹 사라져 있었다. 그를 향한 악의는 어느새 수그러들었고, 정복전쟁의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목소리와 감미로운 류트의 절제된 선율에 감동받아 이미 굳어버린 마음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그저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살아오고 있을 마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력을 뽐내고 있던 이웃의 땅에서 군사 군집체를 일으켜 그들의 반대세력과 서로의 땅을 차지하고자 정복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평화로워야할 상황에 도리어 의도치 않게 재앙이 닥쳐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고, 그 아픔을 짊어진 채 삶을 겨우 살고 있었다. 그런 와중 아름다운 목소리와 류트 소리가 그들을 만년설이 스르르 녹 듯, 마음을 연 것이다. 사내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들리기로는 정복전쟁이 막바지리고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많이 힘드신가 봅니다. 부디 힘을 내셨으면 하지만..."그들의 촌장으로 보이는 백발의 중년남성이 사내에게 다가왔다."전쟁이 좋을 것이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소. 적어도 우리에겐 말이지. 하필 전쟁의 주축이 되는 세력이 우리와 이웃인데 반대세력이 와서 우리의 마을을 망쳐놓고 갔소. 지금은 이웃세력이 우리를 돕고 보호하겠다며 정복전쟁을 시작했지. 지금은 저멀리 동쪽지대까지 확장했다고 하오. 우리야 이정도지만,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오."사내는 손을 턱에 괴고 곰곰히 생각했다."저는 이방인이라 역시 크게 위로 될 것은 없겠군요. 제가 가진 것은 그저 목소리와 류트 뿐 입니다. 도움이 되고는 싶지만 저도 오래 있을 몸은 아니니..."그때 어떤 여성이 다가와 물었다."혹시 다른 곡은 없을까요? 배도 고프실텐데 아침 일찍부터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되지만, 저희도 힘을 받고 싶습니다. 대신에 연주를 끝내시면 저희가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안될까요?""그......"사내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으니, 이른 아침에 가혹하다고 생각했다간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인 양 느껴버릴 법했다.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아 류트를 겨우 붙잡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흠흠. 그럼 간단히 한 곡만..."사내는 류트의 선을 한 줄 한 줄 부드럽게 튕기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신의 강인함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노래를 하나 떠올려 부르기 시작했다.슬픔이여, 고독이여.응어리져 무거워진무책임한 욕심이여.너는 나에게 시련이라 달콤하게 입을 놀리지만,어딜 감히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등진 채 손을 뻗느냐.어두워진 네 얼굴을 바라보면어느새 숱한 거짓들이 나를 옥죄어 드는구나.하지만 아무리 태양을 등진대도진실을 담은 달그림자를 피할 수는 없구나.세게, 더 세게 나를 옥죄일수록,더욱 더 내안의 의지를 불태우리라.차갑게, 더 차갑게 바람이 불어닥칠 수록,더욱 더 내안의 불씨를 끌어 안으리라.그리고 조그만 불씨를 담은 나의 의지는칼바람이 불어오는 싸늘한 겨울을 이겨내고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아침을 맞이하리라.그러니슬픔이여, 고독이여.응어리져 무거워진무책임한 욕심이여.너희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니,우리를 옥죄려거든 그 조그만 몸짓으로광활한 하늘을 가려봤자 소용없도다.태양을 등져봤자달아오르는 뒷통수만 불타오를 것이니,우리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노을빛처럼 따뜻한 저녁을 남기고 힘없이 떠나거라.우리는 식어버린 밤의 햇빛이 되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아침을 밝히는 여명이 될 것이다.연주와 노래가 끝난 사내는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확인했다. 그들은 무언가 노래가사 안에서 불타오르는 의지의 의미를 읽은 듯, 눈에는 불씨를 잃어가던 자그마한 성냥개비에서 굳은 결심에 가득찬 횃불마냥 천천히 타오르는 것을 보고는 음유시인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한 미소와 한숨을 쉬었다.그때 마을의 촌장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이방인이여, 약속대로 음식을 제공하겠소. 이른 아침부터 연주와 노래를 부탁드려 미안하오. 그러나 그대의 노래로 우리들은 잃어버렸던 삶으로서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군. 마을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하오."사내는 고개를 숙여 촌장의 감사를 받았다."아닙니다. 이방인이 주제넘게 주인없는 집이라고 생각해 그것을 취한 것부터가 옳지 못한 짓이지요. 그래도 이리 환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후후. 그러면 음식이 마련되기전까지 집에서 쉬시오. 아, 참고로 그 집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서 빈집이라오. 그러니 안심하고 떠나간 이를 대신해서 사용하시오. 아예 이 땅에 자리잡아도 괜찮소. 그대만 괜찮다면 말이지. 그리고, 혹시 이름을 물어도 되겠소?"그제서야 깊게 눌러쓴 후드를 벗고 얼굴을 보였다. 은빛이지만 새싹의 색깔을 지닌 녹음 빛이 은은하게 깔린 장발이 찰랑거리며 부끄러운 모습을 뽐냈다. 눈동자 역시 녹색 빛을 뽐내며 한층 더 신비함을 드러냈으니, 그의 얼굴이 평범하다고해도 결코 그 신비함을 잃지 않는 외모였다."아일렌(Ahiren)이라고 합니다.""이 근방에서 듣기 어려운 이름을 가졌군.""하하. 다들 그리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나고 자라던 땅에서는 일반적인 이름이라 별 의미가 없지만요.""그런가. 그럼 쉬고 계시게. 아침부터 힘을 주어서 감사하네."아일렌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벗어나 아침준비를 하러 떠났다. 그제서야 조용해진 집주변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휴우...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나 싶었네. 그나저나 버려진 집이라... 마치 내가 여기에 있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것도 당신이 써내려가는 이야기인가요?"딱히 부정은 못 하겠다.아일렌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옷가지를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으로 들어가려했다. 그런데 그때 심상찮은 눈빛을 느꼈다. 주변을 돌아보며 인기척을 찾아보았고, 금방 그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거기서 뭐하니?""......"무언가 수줍은 모습의 어린 소녀가 자신이 들킨 것을 깨닫고는 주변을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안절부절하지 못 한 모습을 보고는 그 아이를 다시 불렀다."특이한 아이네. 무슨 일이니?""......"소녀는 조용히 아일렌에게 다가왔다.이제보니 이 아이도 은발이었다. 그것도 꽤나 순수한 색의 은발. 마치 둘은 부녀 혹은 오빠동생 사이라고 말해도 믿을 법한 은색을 뽐내고 있었으니 그것으로 인해 나름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지는 느낌을 받은 소녀였다. 아일렌이 재차 물었다."넌 누구니?"침묵을 지키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이름은 없어."첫 마디부터 반말이지만 그녀의 당당함에 무언가 뚜렷한 목적이 있어 자신에게 다가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당돌하구나. 너도 이곳 마을에서 사는 거니?""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이름도 없어.""그, 그래?"원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동행을 요구하는 것 같아보여서 조심스러워졌다."음... 이 마을 사람들은 다들 힘드니까. 그럼 잠깐 들어올래?"소녀가 말했다."가르쳐줘.""응? 뭘... 말이니?""그... 악기랑 노래."뜬금포로 들어온 그녀의 요구에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 것이었을까."가르쳐주면, 순순히 나갈거니?"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일렌은 당황했다. 아마 그녀는 혼자인 것을 어필해서 같이 살 것을 노리고 온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예상과는 많이 빗나가 당황한 것이다."뭐? 더 요구하려고 한거 아니었어?"소녀의 의지는 굳건했다."아저씨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바깥으로 나가서 나도 당신처럼 세상에 희망을 주고 싶어.""......아, 아저씨. 잠깐, 그럼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소녀는 또다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아일렌은 뒷통수를 긁적이며 난처함을 보였다. 결혼도 한 적도 없고 가족도 없는 자신에게 배움을 청하고 한편으로는 기특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음유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으면서도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져 복잡스러울 뿐이었다."나참... 처음 온 마을에서 별일을 다 겪어보겠네.""미안해. 그래도 받아줘.""너. 하아... 아니다. 일단 들어와. 다들 아침을 준비한다고 했으니 당장은 일 없을 것 아니야?"그리고 그녀에게서 거슬리는 것이 있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요구하기로 마음 먹었다."그리고 반말 좀 줄이자. 부탁하고 미안하다는 사람의 태도에 어긋나잖아? 누가 보면 예의없다고 손찌검 받겠네."소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다가가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ㅡㅡㅡㅡㅡㅡㅡ"그러니까 이름도 없고, 가족도 없고, 뭣도 없는데 이 마을에는 왜 있는거야?"대뜸 아일렌은 그녀가 당황하지 않게 물었지만 무언가 분한 듯,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뭐, 뭔데 그래.""아니야... 아니에요."별안간 특이한 애를 다 보겠다. 외형만으로 본다면 10살 정도의 모습인데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이러고만 있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후후.그러나 아일렌은 금방 머리를 식히고 소녀에게 물었다."자. 그럼 너에게 필요한 것은 이름과 악기술이려나. 그런데 너, 나이도 어린데 왜 갑자기 음유시인이 되겠다고 하는거야? 좀 더 거창한 꿈 같은거 없어?"소녀는 그저 쭈뼛쭈뼛 거릴 뿐이었다. 아일렌은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더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도통 모르겠군. 그래. 일단 하나부터 시작하자. 이름이라...""... 지어주는 거... 지어주는... 거에요?""그래. 어디보자......"소녀는 여전히 어색하게나마 존대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말을 잘 들으려하는 태도에 결국 가르치는 맛을 알아버려 나름 재미도 느끼고 있었다. 아일렌은 팔짱을 끼고 감질맛나는 표정을 잔뜩 지은채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자 문득 생각이 났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좋아. 네 이름은 베르드(Berd). 어때?"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는 무뚝뚝하게 짓던 표정이 어느샌가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가지는 이름에 대해 이리도 표정이 급변하는 모습을 보이니 나름 뿌듯해지기 시작했다."베르드?? 무슨 뜻이에요?""음... 나도 비슷한 처지이긴 하지만 너도 나와같이 한배를 타는 것이니까 뿌리는 비슷하게 가는게 좋을 것 같아. 참고로 베르드는 요정 언어야. 정확한 의미는 '은색'."소녀는 의미를 듣자 살짝 실망했는지 눈을 가냘프게 뜨고 아일렌을 쳐다보았다."너무 대충..."아일렌은 자신의 머리를 머슥하게 긁적였다."뭐, 네 이미지는 지금으로선 그게 전부잖아. 뜬금없이 와놓고는 다짜고짜 이름 지어달라고 하는데 이정도는 감당하라고?""......부우."입술이 쭈욱 튀어나와 불만을 토로한다."거참... 그렇게 궁금하면 나중에 한번 이름의 뜻을 찾아봐. 네 이름에는 그 뜻만 있는게 아니니까. 요정언어에는 겉의 의미 말고도 숨겨진 의미가 있는 단어가 많아. 베르드도 그 단어 중에 일부이고. 너에게 일생일대의 숙제를 줄게. 나중에 그 뜻을 알고나면 놀랄걸?"베르드는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아일렌을 바라봤지만, 그 역시 그냥 넘어가자는 듯 한 표정을 일관하니 그제서야 억지로 납득하고 넘어갔다."알았어요. 이상한 뜻이면 이름 바꿔야지.""좋으실대로. 그나저나 너도 꼴이 말이 아니구나. 옷이나 갈아입자. 여기 원래 주인도 너만한 애가 있었나본데 지금은... 부재중이니까. 괜찮겠지. 이층에 올라가서 쉬련다. 너도 적당히 좀 쉬어. 이른아침부터 일이 많구나. 하으으..."아일렌은 가볍게 하품하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고, 베르드 역시 1층의 작은 방에서 옷을 대충 갈아입고는 잠깐이지만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얼마 뒤, 코 속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맛깔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아일렌과 베르드가 같이 나란히 자신들도 모르게 이끌려나갔다."음. 좋은 냄새가 진동...""음. 나가지 않을 수가 없어..."집 밖을 나서는 순간 펼쳐진 사람들의 식사준비는 비록 전쟁상황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제법 크게 되고 있었다. 그들을 본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여성이 다가왔다."잘 오셨어요. 좀 쉬셨나요?"아일렌은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며 긍정했다."네. 덕분에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이러는 데에는 아일렌님의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그런데... 이 아이. 어째서 같이 나오시는 거죠?"베르드는 아일렌의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뜸 따라오더니 이것저것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대충 일러두고..."베르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내 이름. 베르드야. 이 아저씨가 지어줬어. 난 이 아저씨 따라서 음유시인이 될 거야.""아, 아저씨..."여성은 베르드의 뜬금없는 행동에 너무 놀랐다."뭐, 뭐야? 너, 말 할 줄 아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더니 입도 뻥긋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들러붙어서는...... 혹시 무슨 일 없었나요?"아일렌은 베르드의 얼굴을 보다가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턱에 손을 괴고는 입을 뗏다."무슨 일이라고 하셔도... 이름이 없다길래 지어준거... 뿐?""신기하네요. 그러고보니 머리칼 색도 두분이 비슷한거 보니 마치 딸......"다급히!"어허!! 거, 거기까지. 저도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은발은 그냥 자연입니다. 자연. 이 아이도 자연이구요"여성이 둘을 지긋이 쳐다보지만 비슷해 보이는 것은 그냥 착각일까 싶기도 하고, 당사자가 이를 부인하고 있으니 이 이상 캐묻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게다가 베르드도 아일렌을 믿고 따르는 것 같아 보여서, 마을 안을 홀로 떠돌아 다니던 아이에게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짐 하나 덜었다고 어물쩡 넘겼다.여성은 아일렌에게 손을 뻗었다."레이비나드(Reibynard). 레비(Reby)라고 해요. 마을 재단사입니다. 무례해서 미안해요. 간단히 안내만 하려했는데 의심만 했군요. 이방인이라는 것 포함해서 제가 사람 대하는 것이 익숙지 않으니 이해 바라요."아일렌은 그녀가 뻗어온 손에 잠시 망설였으나 곧바로 자신도 손을 뻗어 악수했다."아닙니다. 이방인으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켜야하는게 우선입니다. 당신들이 저를 어떤 시선으로 보든 스스로가 감내야 할 것이지요. 필요하면 노래나 시를 지어드리고 불러드리는 것이 음유시인의 자세이니, 필요하면 말씀해 주시길."레비는 멋쩍게 미소짓고는 악수하던 손을 떼고 얼른 베르드의 손을 잡았다."어? 어?""너는 일단 따라와. 아무리 주인없는 집에서 옷을 빌려입었다지만 꼴이 이게 뭐니? 자, 언니가 새옷 줄테니까. 너도 이렇게 된 이상 마을의 사람이야. 전쟁 중 이라지만 옷 만큼은 깔끔하게 입자. 따라와.""아니, 난..."베르드는 당황하여 아일렌을 쳐다보았고,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체념한 듯 레비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아일렌은 그렇게 그녀들을 보내고 식사가 차려지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가 맡은 냄새처럼 많고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통 치고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모습이 반겼다. 그때 촌장이 마침 눈 앞에 보이자 그를 찾아 걸어갔다."아아, 오셨군. 좀 쉬셨소?""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그나저나 전쟁통에 꽤나 호화스럽게 준비를 하시는 군요? 방금 전에 레비 씨에게 전해 듣기로는 본래 저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촌장은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아아. 물론 다른 이유가 있어서지만, 당신은 이방인이라 그 점은 함구하게 되었소. 딱히 다른 것은 아니고, 이전에 이야기했던, 정복전쟁의 중심세력의 인물이 사절단이 오기로 되어있었소. 그들은 에레모스(Eremos)라는 영토에서 일으킨 세력인데 이곳을 자신들의 점령지로서 사찰을 온다 연락이 왔소. 그래서 사찰에 대한 손님대접의 준비를 하는 것이오. 적어도 우리를 보호하는 세력을 위해서라는 것이지."아일렌은 무언가 석연찮았지만 정복전쟁의 점령지는 결국 그들의 소유가 되기에, 소유지에 대한 확인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종전 막바지라더니 점령지에 대한 민심잡기나 계약 혹은 완전한 점령인듯 하군요. 촌장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촌장은 고민이 있어보이는 눈빛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쳐다보았다."무조건적으로 그들을 따라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살짝 의구심이 있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세력이 거대하다는 것은 그냥 넘겨짚을 수는 없소.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니 그들이 지켜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긴 하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올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다스릴지는 우리도 궁리를 해야하는 것 아니겠소?"정복전쟁이라는 것이 마냥 좋을 수 만은 없다. 어지간히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착취당하기 쉬운 것이었다. 게다가 촌장이 이야기한 에레모스의 세력은 우호적일지, 적대적일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마을 촌장의 입장으로서도 조심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아일렌에게 있어서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될지도 미지수이니..."아일렌, 당신은 그저 이방인이니 잠시 머물다 가시거나, 이렇지 않을 거면 아예 정착하는 것이 어떤지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혼란한 정세 속에서 정착하는게 좋긴 할 거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라면 말이지. 만약에 에레모스에 종속이 된다면 말 그대로 이곳은 수도와 가장 인접한 곳이 될 터, 나쁜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오. 적어도 말이지."아일렌은 촌장의 이야기에 좀 더 거취를 생각해야 할 것을 느꼈다."흐음... 저도 하루빨리 선택을 해야겠군요.""그러시게나. 시작의 발걸음은 빠를수록 좋으니까. 그나저나 그들이 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늦는군."그때 마을의 입구부근 쪽에서부터 다급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쿵! 쿵! 쿵!"괴, 괴물이다!!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괴물?"아일렌은 서둘러서 도망가야하나 우물쭈물하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상황을 보기 위해 입구 방향으로 뛰어갔고, 저 멀리서부터 괴물의 추적에 다급하게 말을 타고 뛰어오는 세명의 사람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뒤로...쿵! 쿵! 쿵! 쿵!!거대한 괴물 하나가 뛰어달리는 말의 속도를 아슬아슬하게 따라잡을 것 같은 발걸음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다 그 모습에 놀라 패닉에 빠져 마을을 두고 고민에 빠져버렸다. 그 와중에 아일렌은 괴물을 보고는 손에 턱을 괴고 이상하다는 듯 쳐다만 보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설마 이걸... 우려했던건가. 정령조약의 발동의 이유가?"그때 마을의 모두가 도망을 치려고 정신이 없을 상황에서 거대한 괴물을 앞에두고 가만히 있는 아일렌을 부른 사람이 있었다."아일렌!! 거기서 혼자 뭐하는 거에요!! 어서 도망치지 않고!!""아일렌!!"집으로 들어갔던 레비와 베르드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다급히 불러세웠다. 하지만 아일렌은 그녀들의 목소리에 뒤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었고, 그저 멋쩍은 미소만 보였으니 순간 둘은 가슴이 철렁해졌다."아일렌!!! 뭐하는 거에요!!"아일렌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았고, 겁도 없이 그것을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무엇일까. 무너짐 없이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마치 익숙한 듯, 등에 지고 있던 류트를 꺼내 연주할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자이언트(Giant). 이스밀디르(Esmildir)의 거대괴물. 결국 이런 사고를 쳐버린 것인가. 그들을 그냥 이대로 풀어주려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인가."아일렌은 류트의 줄을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격정적으로 튕겨냈다.티리링!그가 줄을 튕겨내자 순간적으로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고, 입으로 노래를 하듯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거대괴물은 아일렌의 앞으로 다가왔고, 그가 류트로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소리로 딱 한번 튕기고는 무언가를 굳은 마음으로 영창하기 시작했다....티잉!!!
..."Diem dos Rodeus elem. De Neme. Fraura."(다이엠 도스 로데우스 엘렘. 데 네메 프라우라)(폭풍 의 정령 오너라. 그 이름. 프라우라.)일반 사람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류트의 연주와 함께 영창하더니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과 함께.{{ 쿠오오오오오오!!!! }}벼락같은 외침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고, 바람이 천천히 일렁이다 나무의 살갗을 찢어버리는 듯한 폭풍우가 갑자기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바닥에 흩뿌려진 바싹마른 모래바람이 아일렌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때 아일렌을 등지고 있던 모든 마을 사람들과 거대괴물에게서 겨우 피해 온 세명의 인원이 또 다른 거대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것에 대해 기겁했다.아일렌의 앞에는 거대괴물이 있었고, 아일렌의 머리 위로 더욱 거대한 반투명한 형체가 있었으니, 마치 그들을 해하려 온 거대괴물이 어린아이로 보일 정도로의 압도적인 크기의 큰 검을 든 괴생명체가 소환이 되어 있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그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모습이 마을을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몰랐다."마... 말도 안돼... 저게 무슨...??""도대체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거대괴물인 자이언트가 아일렌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내려치려 했지만 보이지않는 투명한 벽에 가로 막힌듯 허공에 그 주먹이 괴성과 함께 멈췄다. 자이언트는 바로 앞에 있는 그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람벽에 자이언트는 아무 것도 못하고 허공만 두드릴 뿐이었다.그때 류트의 싸늘한 선율이 들려왔고, 아일렌의 목소리도 따라서 울려퍼져 들려왔다."프라우라. 준비 되었습니까?"아일렌의 짧고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커다란 바람의 검을 든 괴생명체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 부디 짧고 굵게. }}아일렌이 답했다."그럼 분부대로!"아일렌은 또다시 류트의 줄을 날카롭게 튕겼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티리링!"Elos dio lemuosm!"(엘로스 디오 레무오슴)(자연 으로 돌아가라){{ 우오오오오오!!!! }}아일렌이 소환한 괴생명체가 귀를 찌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몰아치는 폭풍으로 만들어진 검의 형상을 그대로 자이언트에게 내리쳤다. 자이언트는 그 무겁고 날카로운 칼바람으로 인해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압력에 짓눌리고 갈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 말 표현 그대로, 거대한 폭풍의 칼바람에 의해 먼지조차 증발했을 정도로 남은 것이 없었다.아일렌에 의해 소환된 반투명한 괴생명체는 자기의 할 일을 끝낸 모양인지 폭풍우로 만들어진 검을 거두고 아일렌을 불렀다.{{ 이만하면 되었느냐 꼬마. }}아일렌이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 고마워요, 프라우라. 부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죠. 프라우라, 혹시 정령조약에 대해 전해 들은거 있어요?"{{ 정령조약은 내가 언급할 것이 아니야. 정령왕이 아니면 언급조차 안되게 되었지. 직접 만나보거라. }}"재미없기는... 알았어요. 이만 들어가세요."{{ 그래. 또 보지. 바닥 조심하거라. }}"아... 하하... 싫다. 아직 아침도 안먹었는데..."그리 대화가 끝나고는 휭!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거대한 반투명의 괴생명체가 사라졌다. 커다란 사건이 더욱 커다란 것에 의하여 끝을 맺었으니, 그것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었다. 그때 레비가 휘청이는 아일렌을 보고는 다급히 그를 불러세웠다."아, 아일렌!!"털썩.아일렌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버렸고, 그런 모습을 본 레비와 베르드가 헐레벌떡 그에게 달려가 상황을 살폈다. 아일렌은 눈에 초점이 없었고 그저 힘없이 숨만을 헐떡이며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도 그녀들의 모습은 알아보는 눈치였으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아일렌, 괜찮아요? 뭐에요 갑자기? 그 거대한 것은 또 뭐고, 뭐 때문에 또 쓰러지는거에요??""괘, 괜찮아?? 아, 아저씨?!"아일렌은 그저 풀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손짓을 슬쩍하고는 조그맣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줘"둘은 도저히 들을 수 없이 작은 목소리에 더욱 고개를 숙여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바...밥줘."(2) 음유시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