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의 혈액은 레드 포션을 만드는 핵심 재료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공급은 부족한 실정이다.몬스터 토벌을 나간 영주는 레드 포션을 오직 자신 혹은 기사를 위해 사용할망정 사병이나 용병을 위해 쓰진 않았다.
그건 무척이나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이브라면 트롤의 피 정도야 손쉽게 살 수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물량이다.사고 싶어도 매물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짐 가방 가득 혈액이 담긴 유리병을 채운 이브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운 그런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이브의 무표정에 숨은 진정한 감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반쯤 풀린 눈과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 거기에 한결같은 무표정에 적응된 모양이다.
혈액 채취를 끝낸 이브는 가죽을 도려내서 가방에 담았고 그 다음으로는 심장을 잘라내 자루에 담았다.도저히 저 작업만큼은 도울 수 없었다.
그렇게 수 시간에 걸쳐 트롤 해체 작업을 마친 이브는 몬스터를 또 때려잡거든 연락 달라는 말과 함께 연구실로 돌아가 버렸다.
친구끼리 고맙다는 말이나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나?있지 그럼.. 이브로부터 문자가 왔다.
@조금은 네가 연장자로 보이긴 해.. 작업 도와준 거 고마워..
@오빠 대접 받기 힘들군..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줘
@응 *^^*
헐?!마지막에 웃음 이모티콘.. 이브도 이제 스마트 폰 유저가 다 되었네..
난 이브에게 이모티콘 입문자가 된 것을 축하해 줬고 그 답장을 받은 이브는 발그레한 변화를 보이며 앞으로 자주 쓸지도 모른다며 놀리지 말 것을 당부 받았다.
처음 써서 그런가?많이 어색해 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신선한 기분이다.마치 이세계가 아닌 내가 사는 세상에 향수를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은 것 같다.
정말.. 돌아 갈 수 있을까?내 고국.. 나의 고향.. 부모와 친구들이 있는 내 세상으로...
어느덧 오후 6시가 지나고 있었다.
바람을 통해 트롤의 시체에서 풍기는 피의 잔향이 숲으로 퍼져 나가자 시체 청소부라 불리 우는 헝겊을 뒤집어 쓴 코볼트 무리가 숲 안쪽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트롤 4마리를 해치운 나와 붉은 오크가 얼마나 강한지 이해한 녀석들은 함부로 덤비지 않고 분위기만을 살피고 있었다.
오늘 산책은 여기까진가 보다.. 난 저녁을 먹기 위해 로이드 저택으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내부에 들어선 난 붉은 오크와 벨벳을 불러들이기 위해 리턴을 클릭했다.
지하 수로 끝자락에서 정신을 잃은 벨벳은 화랑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스마트 폰에 저장된 게임속으로 리턴 되어 돌아왔다.
화면상에 벨벳은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누워 있었지만 붉은 오크는 펄쩍 뛰며 그녀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히고는 안전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행동이 이상하다 싶어 벨벳의 상태를 체크해 보니 심각할 정도에 데미지를 입은 것을 보고 경악스러운 얼굴 표정을 짓게 되었다.
밖에 나오면 힘과 능력이 반감되어도 벨벳이 저지경이 되었다는 부분은 이해가 어려웠다.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창고를 열어 최고급 회복 물약을 1개 사용하고 6시간 쿨타임이 지나면 잊지 말고 또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다행인 것은 벨벳의 상처는 회복중이고 휴식과 병행해 치료약을 계속 사용하면 완치가 된다는 부분이다.
그나저나 벨벳이 말한 왕도 벨리타에서 일어나는 이상 징후.. 그걸 조사하겠다고 나갔다가 저런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 징후라는 것과 연관을 짓지 않을 수 없었던 난 이것을 상의하기 위해 이브에게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건넸지만 그녀는 내 제안을 상큼하게 거절했다.
요즘은 연구실로 놀러오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되려 연통 없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정중히 충고를 해주었다.
엘리샤의 방 문를 예고 없이 열어 그녀의 속살을 보았듯이 연구실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볼 일 보는 이브 입장을 고려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맞았다.
일단 벨벳이 일어나길 기다려 볼 수 밖에 없다.
요즘 휴이를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졌다.
마을 확장 사업 때문에 이래저래 바쁘게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엘시노어 영지에 변화는 작은 이야기 거리가 되어 주변 영지로 퍼져 나갔고 이내 몇몇 영주들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가장 먼저 호기심을 들어낸 인물은 엘시노어 동쪽 룩카인 영지를 다스리는 맥시밀리안 루앙 남작이었다.
그는 빚쟁이 로이드 영주가 어떻게 저토록 빠르게 하이네 마을을 번영 시키는지 그 이유가 실로 궁금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한편 릴리와 배니 그리고 로제타의 수고 덕분에 후질구리했던 로이드 저택은 나름 깔끔한 자태를 찾아가고 있었다.
물론 건축 장인과 드워프의 도움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말이다.
건강미 넘치는 배니에겐 어느덧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고 일이 끝나는 오후엔 데이트 하러 나가기 바뻤다.
두 번 다신 사랑따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지 일주일도 안돼,새로운 운명과 만난 그녀는 무척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릴리는 로제타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우리 셋은 가볍게 차와 과자를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로제타를 돌봐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었다.
릴리는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서랍장에서 어떤 것을 꺼내 나를 저택 뒤쪽으로 데려와 수줍은 얼굴로 네잎클러버를 건네주었다.
“화랑씨.. 저와 사귀어 주세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릴리에게 고백을 받았다.
이세계엔 네잎클로버가 실제로 존재한다.하지만 찾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그건 남녀가 고백하거나 청혼을 할 때 내거는 것이 네잎클러버였기 때문에 따간 사람이 많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종종 이걸 찾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돈 많은 부자들은 보석을 건네주지만 가난한 이들은 네잎클러버가 사랑.행운.소망.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작은 바램을 담아 상대에게 건네주었다.
릴리는 이것을 찾기 위해 엘시노어 영지 주변을 몇 날 며칠을 뒤져 간신히 하나를 찾아낸 듯 보였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릴리는 네잎클러버를 화랑 앞에 내밀었다.
이것을 받으면 그녀를 허락한다는 의미로 두 사람은 정식으로 사귀게 된다.
릴리는 조용한 성격에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여성으로 티 없이 깨끗하고 순수함을 지닌 착한 여인이다.
내 대답이 늦어질수록 릴리는 긴장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하기에 난 주저 없이 그녀 앞에 머리 숙여 단호한 내 입장을 밝혔다.‘죄송 합니다!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릴리는 먹먹한 심정을 표면적으로 들어내며 네잎클러버를 뒤로 숨기고서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부럽네요.. 그 여자분이... 답을 주셔서 고마워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후다다닥
릴리는 눈물을 흠치고서 달아나듯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어나 고백해 본 것은 처음이었고 차인 것도 처음이었다.
릴리의 첫 사랑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로즈에게 차이고부터 난 솔로가 됐다.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 심심풀이로 사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릴리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했고 고백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내일부터 릴리 얼굴을 어떻게 보지?
분명 배니가 날 대하는 태도가 변할 테고 로제타도 그러할지도 모르는데..
다소 복잡한 신경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피해 다닐 생각은 없다.내가 결정한 선택에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난 포탈을 열었다.그때 로제타가 걸어 나와 나를 향해 달려왔다.
“화랑 오빠 주인님.. 오늘은 저도 집에 가고 싶어요”
방에 들어온 릴리는 침대 시트로 얼굴을 파묻고 흐느적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로제타는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잠시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해 나오게 된 것이다.
자초지정을 들은 화랑은 로제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충전을 다소 게을리 한 탓에 스마트 폰 배러티는 40%밖에 되지 않았다.
ㅌ블러를 통해 즐겨보던 야동도 오늘은 쉬어야 할 판이다.그나저나 이곳에 오고 여성과 재대로 관계를 가지지 못해 다소 욕구불만에 빠져 있는 시기다.
밤거리의 여인촌으로 가서 돈 주고 풀고 와야하나?약재상 하야비가 그곳엔 가지 말라고 했지만 손빨래를 해서 현자 타임을 갖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술기운에 로즈를 덮친 것도.. 아리아의 매력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이브를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입술과 눈동자에 시선이 가는 것도.. 릴리가 고백한 순간 바로 거절 하지 못한 것도 다 이런 충만한 양기를 해소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노예를 사서 풀자니 로제타 보기 창피해서 그 짓은 안되겠고.. 선택에 여지가 없지만 그러다 내가 성병에 걸리면 이브는 과연 뭐라고 말할까?망신 망신 그런 망신이 없겠지?
난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외투를 걸치고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은 에텔 도시 북쪽이라 밤거리의 여인촌과 용병 주점 그리고 노예 시장이 무척이나 가까웠다.
설마 내가 재수 없게 걸리겠어?생기넘치고 깔끔해 보이는 여성분을 초이스하면 별 탈 없겠지 싶은 마음에 밤거리의 여인 촌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오늘 밤은 가르시아 저택으로 갈 필요가 없어,저녁 늦게까지 할 일은 그다지 없는 상태니 더 잘됐다 싶었다.
20여분을 걸어 밤거리의 여인촌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수많은 남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고 거리로 나온 여인들은 헐벗은 각선미로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용병,모험가,거주민과 상인 그리고 병사와 기사로 보이는 남자들도 눈에 띄었다.
어쩌면 저 인파 사이에 귀족 자제들도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녀나 노예를 냅두고 밖에서 욕구를 풀까도 싶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깐..
마담처럼 생긴 뚱뚱한 아줌마가 삐끼 마냥 남자들의 거기를 만져대며 들어오라고 호객 행위를 하는데 굉장히 낮익은 장면이다.예전에 친구따라 갔던 태국 어느 거리에서도 저런 장면을 본 기억이 났다.귀를 만지거나 거기를 건드리거나 엉덩이를 때렸는데.. 그래봐야 1년 전 이야기지만..
어여쁜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들과 함께 1평반 정도 되는 쪽방으로 들어가 버리고,선택 받지 못한 여인들만이 거리에 남아 배회하는 남자들을 잡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돈을 벌지 못하면 밥을 먹을 수 없다.그런 처지에 놓인 여성들은 손님들에게 선택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나한테도 두 명이나 되는 여성과 꼬맹이 하나가 들러붙어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경쟁을 하고 있었다.가이야인은 흔했고 반인반수들은 꺼려했다.하지만 나 같은 혼혈은 은근 인기가 있는지 각자 자신만의 스킬과 서비스를 내세워 내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랑 동갑내기거나 20대 초반이 둘이고 한명은 13살 정도 되는 매우 어린 소녀였다.로제타는 16살이 되는 해 이곳에 팔려 왔다고 했다.대체 이 아인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이 아이 어깨에 찍힌 선명한 노예의 표시.. 참담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또다시 히어로마냥 이 아이를 구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이 아이도 귀족집안에 태어나 어엿한 아가씨의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과 완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귀족가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신분을 가진 아이였다면 이런 일을 해서 돈을 벌진 않았을 것이다.
난 어린 소녀에 머리를 만져주며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었고 소녀는 3실링이라고 당당히 말했다.그걸 지켜본 여성들은 나를 질나쁜 변태취급하며 돌아섰다.
난 소녀에게 30실링을 건네주며 이틀 정도 쉬라고 말했고 돈을 받은 소녀는 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세차게 흔들고는 혼잡한 인파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저 돈을 받고 정말로 쉴지..아니면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또다시 호객행위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흥이 싹 가버렸다.
내가 살던 곳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를 이곳에서 배운다.
만약 내가 노예였다면 어떤 기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사람답게 살기위해 반기를 들었던 노비들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처절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나라도 뜻있는 동지들을 모아 세상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른다.그들 입장이 아니었기에 어두운 일면을 보려하지 않았다.
그때 였다.
내 옆을 지나친 남자로부터 낮익은 냄새를 맡아 돌아서게 되었다.지난날 이른 아침에 이곳에서 처음 만난데다 아리아가 벨리타로 출발하는 날에도 루비어 저택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기사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기사는 움찔거리며 잠시 머뭇거렸고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끝내 한숨을 내쉰 그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화랑님.. 소개가 늦었군요.. 전 로건 호커스입니다..”
40대 중간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갈색 스포츠 머리카락을 가진 그와 악수를 나눈 후 입을 열었다.
“제 소개는 필요가 없겠군요.. 오랜만입니다. ”
이 시간에 이런 거리를 거닐고 있다면 목적은 하나 밖에 없다.
그건 쌓인 욕구를 풀기 위해서다.난 그에게 단골집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걸었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런 곳은 없다며 단호하고 분명하게 의사를 피력했다.
지난번에도 봤지만 오늘도 만났는데... 이게 단순히 우연이라고??난 어제도 당신을 봤지만 모르는 척 했다는 식으로 슬쩍 떠보았는데,그는 딱히 부정을 나타내지 않은 식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전 즐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찾고자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말하는 투가 넌 즐기로 왔을지 모르지만 난 숭고한 뜻이 있어서 왔다는 식으로 피력해,나도 모르게 그걸 받아치고 말았다.나도 사람을 찾고 있다!그저 간혹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안전한 상대 말이다.그러자 그는 의도하지 않은 미끼를 덥석 물고서 나를 데리고 어두운 골목으로 끌고 오더니 진지하게 질문 하였다.
“그렇군요!당신이 루비어 저택에 자주 방문한 이유가 거기 있었군요!그래 정보는 어느정도 모았습니까?”
“네?아.. 진척이 없습니다.. ”
단순히 호기심으로 접근할 요량으로 말만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대체 이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하.. 그러시군요.. 저 역시 이 더러운 촌 거리를 돌며 수시로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 돈을 주고 잠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다 재수 없게 로사부인의 딸과 동침이라도 하게 되면 제 목숨은 날아가 버릴 텐데..”
로사 부인?
누구지?
“아~ 그거 참 주의해야 겠군요..그래도 대략에 인상착의를 아실테니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겠죠?”
“인상착의를 아시오!!”
인상착의를 모른다?
“아!아뇨!!호커스 기사님이 아시나 해서 던져본 말입니다”
“알면 이 고생 하겠습니까?하아~”
그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감싸고는 쓴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18년 전 몰락한 귀족가의 여식으로 전락한 로사 발렌타인은 어느 부호의 노예가 되어 밤거리의 여인이 되고 만다.그런 그녀는 우연히 도시 시찰을 나온 막시무스 랏테 아우르고의 눈에 띄게 되고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녀의 대해 은밀히 조사를 한 결과,충격적이게도 그녀는 갈리테우도 백작의 사유 재산이 된 상태였고 비참하게도 매일 5실링에 몸을 파는 여인으로 전락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정한 상대와 결혼을 한 몸이지만 가장으로써 충실한 삶을 살아온 그의 심장을 훔친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막시무스는 식욕과 숙면을 온전하게 취하지 못하며 깊은 실음을 내쉬며 지내왔다.
걸리면 약도 없는 사랑병에 걸린 것이다.
명망 높은 왕족의 혈통을 가진 자로써 노예로 전락한 여인을 마음 두고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면 이는 가문의 명예와 위신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 없어,두 아들의 아버지라는 본분을 접어두고 남몰래 로사라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그 누구와도 잠자리를 갖지 말 것을 권유하며 그녀에게 상당량에 백금화를 쥐어주고는 몸과 마음을 자신에게만 줄 것을 요구했고 로사는 그것을 허락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은 시작되었지만 주변 여인들은 그녀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지 않고도 포주에게 매일 돈을 건네주는 것을 수상히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해 로사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쁜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막시무스 공작과 관계를 갖고부터 데스 그린 포션을 먹지 않은 덕분에 생긴 새생명이었다.하지만 포주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데스 그린 포션을 강제로 먹여 태아를 죽여 버릴 것을 우려한 그녀는 막시무스에게 도움을 갈구하려 했지만 그는 아버지에 명을 받고 벨리타로 건너가 버린 상태였다.거기다 손님을 받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에 의구심을 내비친 여인들은 로사가 비상금을 만든 사실을 밀고했고 포주는 곧 그녀로부터 엄청난 양에 백금화를 빼앗기 이른다.하지만 포주에게 구타를 감수해서까지 지킨 물건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바로 가치 없어 보이는 골동품 은시계다.이건 막시무스 공작이 그녀에게 유일하게 건네준 물건이었다.로사는 백금화 전부를 내줄망정 이 은시계만은 필사적으로 지켜냈다.
백금화 하나만큼은 항문에 숨기고 도주를 결심한 로사는 해결사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도시 밖으로 탈주해 마을 촌장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출산했지만 갈리테우도 백작이 고용한 헤드 헌터와 부하들에 끈질긴 추격으로 인해 그녀는 촌장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다.그녀는 자신에게 찍힌 노예 인장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로사는 자신을 버리고 아기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횃불 통에 얼굴을 집어넣어 1분을 버텨냈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 로사는 곧바로 말이 먹는 식수에 얼굴을 밀어 넣고 흉물스럽게 변한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쪽 시야를 잃은 데다 흉측하게 변한 얼굴을 가지고 에텔 도시로 다시 들어와 빈민촌에서 살아갔다.노예의 표식을 숨기고 사람들에게 구걸해가며 끼니를 때우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막시무스 공작은 로사가 사라진 사실에 크게 놀라 그녀를 찾기 위해 남 물래 노력을 기우렸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그저 그녀는 임신중이란 사실을 알아채고서 로사를 돌봐 주었던 촌장에게서 여아의 대한 단서와 에텔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로사는 예전에 아름다움을 잃어 더는 막시무스 공작에게 찾아갈 수 없게 되었고 딸아이의 출생 또한 비밀로 하였다.
칼리 조항에 의해 딸아인 결국 노예가 될 것을 알기에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 줄 수 없다는 그녀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딸아이가 8살이 되는 해..
병이 들어 죽어가는 로사는 딸 아이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게 된다.
넌 고귀한 혈통을 가진 아이다.네 아버지는 이 도시에 살며 매우 훌륭한 사람이란 점을 잊지 말라며 그녀에겐 자신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그리고 망가진 골동품 은시계를 건네주며 절대로 팔지 말고 항시 가지고 다니란 말을 남겨준다.소녀는 어머니가 남겨준 유일한 유품을 받으며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명이 끝나가는 것을 알아차린 로사는 자신이 죽거든 시체꾼에게 시체를 팔아 맛있는 음식을 사서 먹으라는 마지막 유언과 함께 로사의 일생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어머니가 노예이기에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본 일이 없던 소녀는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며 그녀의 시체 앞에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버린 남자의 존재를 머릿속에 지우며 홀로 살아남기로 마음먹고는 어머니의 시신에 발화액을 뿌리고 뼈만 남을 때까지 살점들을 태워 도시 한편에 고이 묻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은시계를 보관하고 있으며 어엿한 어머니의 성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