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에 응하기 전 엘리샤는 휴이에게 화랑의 대한 확실한 정보를 요구했다.
최소 그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말이다.화랑이 왕도 벨리타에 있다는 뻔한 이야기나 뜬금 없는 지역이 거론 되어도 이 거래는 무효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화랑은 왕도 벨리타에서 절 이곳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다스리는 엘시노어 영지는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죠.. 앞으로 에텔 도시에 잖은 왕래를 하고자 집을 구하러 다니던 참이었고 화랑이 당신의 집을 추천해 준 것입니다.. ”
그 말은 화랑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사는 곳에 찾아와 주었다는 말이 되었다.
미야가 보고 싶어 왔다고 해도 그가 미련이 있어 찾아온 것은 분명했다.
“그럼 화랑과 또 만나게 되나요?”
“아마 그럴겁니다..”
“그럼 화랑을 이곳으로 데려와 주실 수 있나요?사례는 하겠습니다”
휴이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야기가 너무 앞서갔습니다.. 전 화랑의 대한 소식을 전재로 당신과 흥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을 돕고 안 돕고는 이 거래에 성사 여부에 걸린 문제죠”
엘리샤는 책상 서랍을 열고서 토지 소유 증서를 꺼내 휴이 앞에 꺼내 보여줬다.
“집을 170금화에 팔도록 하죠.. 대신 화랑을 만나면 제가 보고 싶어 한다고 아니아니 미야가 보고 싶어 한다고.. 절대 나쁘게 하지 않는다고.. 화내지도.. 때리지도.. 내쫓지도 않을 테니.. 한번만 와달라고 말 좀 전해 주세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엘리샤의 눈빛을 지켜본 휴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무래도 엘리샤를 피하는 것은 화랑 같았다.그녀의 반응을 보건데 화랑을 그리워하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여관 이름을 에거시 라고 짓고 개업한 당사자가 주인이 아닌 점장이자 주방장을 맡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부조리한 상황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토지 소유 증서와 매입 증서에 양식을 만들고 그곳에 싸인을 마쳤다.
그리고는 마크에게 자신의 신분증서와 토지 소유 증서 그리고 계약서를 건네주고는 휴이를 따라 사법 관리국에 다녀오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엘리샤는 휴이에게 마지막까지 잘 부탁한다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야는 언니의 서글픈 표정을 보고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 됐지만 홀 서비스를 도맡았기 때문에 여유를 낼 틈이 없었다.
------------------------------
노예 소녀는 몸을 깨끗이 씻고는 호수 밖으로 걸어 나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포근한 바람이 소녀의 피부를 살며시 스쳐지나 갔다.그 귀하다는 거품 가루를 사용해 씻어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어두운 방이 아닌 밖에 있다는 점은 마치 자유를 얻은 미묘한 기분마져 갖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는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였다.
70미터쯤 되는 곳에서 6명에 남자들이 나타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내 벌거벗은 소녀를 발견하고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노예 소녀는 안절부절 하며 주인을 깨워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 갈등에 빠지기 시작했다.
금세 눈앞까지 접근한 남자는 칼을 뽑아 소녀의 목에 들이대고는 야비한 미소를 내지었다.
“순순히 따라오면 저놈에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지”
소녀는 어두운 낯빛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남자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가 밝았던 화랑이 인기척 소리에 눈을 떴고 왠 남자들이 노예소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는 한걸음에 달려가 몸을 날려 남자의 안면을 걷어차 쓰러트렸다.
“쿠아악!!”
털썩
쓰러진 남자의 동료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고 화랑을 향해 달려왔고 노예 소녀는 웅크린 자세로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주인님을 무사하게 해달라고 에레오 여신께 빌고 빌었다.
하지만 소녀의 걱정과 달리 화랑은 무리 없이 남자들을 상대로 싸워나갔다.
칭-!
“으흑!”
묵직한 일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자세가 무너져 뒤로 밀려난 남자는 화랑이 보통 내기가 아니란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되었다.
3명이 한 번에 덤비자 화랑은 자세를 낮춰 발도 자세를 취하고 검신에 마나를 모아 전력을 다해 휘둘렀는데,강력한 돌풍이 남자 셋을 덮쳐들며 배와 가슴에 치명상을 입히며 그대로 나자빠져 버렸다.
피를 토한 청년들은 고통에 심음하기 시작했고 부상당한 남자들은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노예 소녀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상처 입고 신음하는 남자들을 큐어로 치료하는 화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대단히 강했으며 용감하고 멋있었다.자신을 구하기 위해 검을 뽑고 악당을 물리쳐준 왕자님 같았다.
치유의 빛이 엉망으로 상처 입은 피부를 회복 시켜 주었고 베인 상처들도 말끔하게 고쳐 주었다.남자들은 화랑의 선의에 고마움을 표함과 동시에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노예 소녀에게도 사과를 하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그들은 브론즈 등급에 용병들이었다.마침 에텔 도시로 가던 중 호수를 보고는 휴식을 취하러 온 것인데 눈앞에 벌거벗은 여성이 있어 재미 좀 보려고 데려가려 했던 것이다.
“다친데 없어?”
“네 주인님”
물기는 모두 마른 것 같아 노예 소녀의 손을 잡고 가방 안에 넣어뒀던 옷가지들을 꺼내기 시작했다.노예 소녀는 내게 속옷을 받고는 그것으로 가슴을 가리고 팬티를 입었다.속옷 역시 지금까지 입은 일은 없었지만 이야기를 들어 대충 사용법은 알고 있었다.
그 다음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건네주었고 하늘하늘한 치마 테투리가 매력적인 하늘색 원피스를 입혀 줬다.
이토록 아름다운 옷을 입어 본 적이 없는 노예 소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화랑을 응시하고 있었다.정말 받아도 되는 건지.. 자신이 입어도 되는 것인지..
“마음에 안들어?”
노예소녀는 고개를 강하게 저어 보였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아!그렇지.. 아까 누워서 잠시 생각해 봤는데.. 네 새로운 이름 말인데.. 로제타로 하는 것이 어떨까?”
화랑이 지어준 새로운 이름을 들은 소녀의 표정은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끝내 그 자리에 옹크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화랑은 이름이 마음에 안들면 다시 지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눈물을 쏟아낼 뿐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돌멩이란 이름을 지어 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것이다.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모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어머니 밑에서 12년간 살아왔다.
12세가 되어 상품 가치가 생기자 그대로 노예 시장에 팔려갔고 수많은 남자들의 손을 거쳐 이리저리 팔려 다녔다.
그녀가 16살이 되는 해,젊은 남자에게 팔려간 그녀는 밤거리에 여인이 되어 2년간 수백명이 넘는 남자들의 밤시중을 들어야 했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자신은 돌이라며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자기 자신을 몰아 붙여 왔다.
임신을 막기 위해 꾸준히 복용했던 데스 그린 포션은 그녀에 몸을 점차 망가트려가고 있었다.
실제로 소변을 보던중 죽어있는 태아를 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로제타는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약에 부작용으로 생리를 할 필요도 없어졌다.자신은 돌멩이다.아기를 만들 필요도.. 꿈을 꿀 필요도..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여기서 한번 더 팔려가게 되면 짐승에 먹이가 될 것 같아 화랑에게 도움을 구했고 그는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
집과 옷 그리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고 고마웠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화랑은 로제타의 등을 토닥여 주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자꾸 그렇게 울어대면 이쁜 얼굴 다 망가질 거야.. 앞으로 우는 것보다 웃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로제타는 웅크린 채 머리를 끄덕였다.
화랑은 로제타의 머리를 만져주며 그녀가 진정 될 때 까지 곁을 지켜 주었다.
그녀의 어깨엔 노예라는 표식이 있었다.칼리 제도 조항에 따르면 노예는 저 표식을 숨기고 다녀서는 아니 됐다.
“넌 노예가 아냐..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웅크린 로제타는 계속해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누르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저 눈물의 의미가 무엇이 됐든 우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되길 바랬다.
울다 지친 로제타는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었고 난 그것을 닦아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그리고는 이브의 연구실로 포탈을 열고 로제타와 함께 들어갔다.
도면에 1차 뼈대를 완성한 이브는 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여자 아일 데려오는 거야?아무리 지인 관계라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
다소 예민하게 구는 이브를 향해 로제타를 소개해 주었다.
로제타는 숙녀의 예절을 전혀 숙지하지 못했다.그저 머리 숙여 이브에게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나에게 자초지정을 들은 이브는 안경을 한차례 건드리고는 로제타 어깨에 찍힌 노예 표식과 팔 그리고 허벅지 사이에 피멍을 살폈다.
결정적으로 노예를 통해 돈을 버는 포주가 그녀를 팔려고 했다면 심각한 병이나 문제가 있는 것 또한 분명해 보였다.
“화랑,미안 하지만 자리 좀 비켜 주겠어?이 아이에게 물어 볼 것이 있어”
“아!?알았어 로제타 이브는 내 친구야.. 그러니깐 겁먹지 말고 지시에 잘 따라줘”
“네 주인님”
언제부터 친구가 된 것일까?
이브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애초에 친구를 잘 사귀지 않는 성격이고 없어도 아쉬울 것이 하나 없었다.화장과 이쁜 악세사리, 아름다운 드레스와 몸매 관리에나 신경 쓰는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봐야 아무런 영양가도 없다고 여기며 사교파티엔 참석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남자로 인해 무료했던 나날이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그리고 오늘 또 하나에 일거리를 가지고 태연하게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재멋대로 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되려 기쁜 마음이 들었던 이브는 친구라면 이정도 일은 돕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로제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전 주인이 너를 팔려고 한 이유는 너에게 심각한 병이 생겨서 일거야.. 혹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어?”
“이전 주인님께서 절 무허가 치료소로 데려가셨고 그곳을 운영하는 사제께서 제 질 안을 보시고는 헤르페스 증상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브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외 아픈 곳이나 다른 병은?”
“감기가 나아도 헛기침을 오래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난폭한 손님분께서 제 유두를 물어뜯어 없어졌는데.. 그 부분이 붉게 부어서 여전히 아파요”
로제타로부터 얻은 정보들을 종이에 모두 적은 이브는 그녀를 탁자에 눕히고는 팬티를 벗긴 후 허벅지를 벌려 사타구니 사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법 라이트를 이용해 로제타의 은밀한 부위를 꼼꼼히 살핀 이브는 추가적인 부분들을 종이에 적었다.그리고는 구석에 쌓아 두었던 잡동사니를 만지작거리는 화랑에게 다가갔다.
“저 아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아.패패 시장 남동쪽으로 가면 약초 거래상이 밀집되어 있는 솔리온 거리가 나와.. 필요 목록을 적어 줄 테니 모두 사오도록 해..”
“알았어 그리고 말이야... 여러므로 고마워”
화랑의 답례 인사를 받은 이브는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손 많이 가는 친구를 만난 것도 내 복이지 싶어.. 하지만 난 울보한테 약하니깐.. 도와줄께”
멋쩍은 미소를 내짓는 날 본 이브도 잔잔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난 패패 시장쪽으로 포탈을 열었고 곧바로 솔리온 거리로 달려갔다.
이브와 단 둘이 남게 된 로제타는 거대한 연구실 내부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이브는 레드 포션을 가져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마시도록 해.. 내 몸 여기저기 나있는 상처들이 말끔히 치료 될거야.. 덩달아 내 목에 염증 치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
“감사합니다..”
로제타는 이브로부터 레드 포션을 받고는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한 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것을 모두 들이켰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뭐라 표현은 어려웠지만 끝 맛은 굉장히 썼다.하지만 남자의 그것 보다는 먹을 만한 느낌이었다.
한편 화랑은 패패 시장 중심가에서 솔리온 사거리로 서둘러 달려갔다.
애석하게도 로즈는 솔리온 사거리를 모두 돌아보고 거록턴 수산 시장쪽으로 이동한 참이었다.기구하게도 두 사람은 자꾸만 엇갈리고 있었다.
그만큼 왕도 벨리타는 너무나도 넓었다.
그리고 오늘 태양력 1452년 7월 21일
로랜드 왕국과 세피아 왕국 연합이 미슈미드 왕국을 향해 전쟁 선포한 날이기도 했다.
미슈미드 왕국에 사절단은 로도스 왕국과 엘베록 왕국 그리고 칼리세 왕국으로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서둘러 출발 시켰지만 모든 준비를 마친 로랜드와 세피아 왕국은 이미 15만이라는 대군을 모아 국경 지역을 향해 진군 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