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무쪼록 현명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회장님이 걱정이 많으십니다.”
활동우익(活動右翼) 단체 타이코우카이(大行会) 수장인
마에하라 키이지(前原希一)는
정중한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의미지, 지금 그 말은?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 있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중요한 시기이니까요.”
마에하라는
여전히 정중한 말투로 답했다.
-말한 그대로다?
“그렇습니다.”
-그냥 조용히 움츠리고 있어라.
괜히 말썽부리지 말고.
나는 그렇게 들렸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묻어 있는 분노가
더욱 강해졌다.
“오해이십니다, 시마다 선생님.”
마에하라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시마다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다.
내일모레
그 에이전트의 남지친구는
1박 2일 일정으로 아키타로 떠날 것이다.
즉 애블린 길먼은
도쿄에 혼자 남게 된다는 이야기다.
코시자와 회장은
시마다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
코시자와 회장의 생각이었고,
마에하라도
그런 회장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나 변수가 있었다.
시마다가 독자적인 세력을 움직인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그 미친개가
혹시라도 미쳐 날뛰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사와베 국장이 지적했다.
거대한 선박이 침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구멍 하나였다.
그리고
시마다는
배가 침몰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에 구멍을 뚫고도 남을 멍청이였다.
그래서
마에하라에게
당조짐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시마다는
애블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줄 것을 원했고,
그래서
그가 원하는 것처럼
앞으로 며칠간 진행될 예정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물론
시마다에게
전부 다 이야기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자 친구가
양조장 견학을 갈 것이고,
그사이에
애블린이 혼자 남게 된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마에하라는
시마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줌으로써,
나라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하는 동지에게
정보를 공유했다는 명분을 주고,
한편으로는
코시자와 회장의 이름을 이야기함으로써
그에게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오해라…… 마에하라 군.
“네, 선생님.”
-자네는 나를 아주 우습게 보고 있군.
“오해이십니다, 선생님.”
마에하라는
시마다가
어쩌면 생각보다 더 똑똑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한 놈.
시마다의 나직한 욕설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마에하라는
잠시 동안 끊어진 전화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시마다의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천한 놈이라.
***
“천한 놈.”
시마다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차 바닥에 있는 힘껏 던져 버렸다.
푹신한 차 바닥은
시마다가 던진 전화기를 품지 못하고
튕겨 내 버렸다.
그렇게 튕겨진 전화기가
몇 번 회전한 다음
시마다의 발치에 떨어져내렸다.
시마다는
구둣발로 그 전화기를 박살 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작 야쿠자 주제에
자신에게 명령하듯 말을 한 마에하라의 얼굴을 대신해
전화기라도 짓밟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중의원이다.
시마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의원인 자신에게
이런 모욕을 가한 마에하라는
일본 국민에게 모욕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시마다의 생각이었다.
시마다는
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인내심을 발휘해
전화기를 박살 내고 싶은 충동을
참아 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는
그 천한 놈에게
합당한 형벌을 줘야 한다.
그리고
형벌을 주기 위해서는
전화기가 필요했다.
중의원 시마다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힘을 쓴다면
고작 야쿠자에 불과한
마에하라의 목을 잘라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찰을 동원해
마에하라를 말려 죽이는 것이다.
폭력단대처법 발효 이후,
경찰은
폭력단과의 투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위에 올라섰다.
마에하라의 타이코우카이가
정치단체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근본이 야쿠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경찰청 장관을 압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경찰청 장관쯤 되면
아무리 중의원인 시마다라고 해도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 없다.
국가공안위원회를 통해 압박을 넣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시마다에게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간다.
경시총감이나 경시감을 불러서
조인트를 까는 정도가
적당하다.
경시총감이란 직위는
웬만한 야쿠자 조직 한두 개는 날려 버릴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 정도면
시마다에게도 부담이 없다.
시마다는
발치에 떨어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열어
경시총감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의 이름을 찾았다.
시마다는
손가락을 통화 버튼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누르지는 않았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감히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개에게
경찰로 상대하는 것은
너무 점잖은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그의 손가락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개에게는 개를 때리는 몽둥이가 제격이다.
사람 때리는 몽둥이는 격에 맞지 않다.
만약 경찰이
마에하라의 조직을 때려잡는다면?
시원하지가 않다.
시마다는
자신의 구둣발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광택이 살아 있는
구두 굽으로
그의 입을 짓이기고 싶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그 입에
두 굽을 박아 넣고 싶었다.
경찰은 적합하지 않다.
시마다는
다시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그리고
다른 이름을 찾아냈다.
그가 준비한 세력,
니시야마구치구미(西山口組).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가
내부 투쟁을 통해 고베야마구치구미로 분열되고,
다시 거기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분파가
니시야마구치구미였다.
고베야마구치구미를 지배하는
기존 세력에 불만을 품은
젊은 야쿠자들이 독립해 만들어진 신생 조직은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뒷배가 될 권력이 필요했고,
시마다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코시자와가
타이코우카이를 가지고 있듯,
시마다도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력을 원하고 있었다.
마에하라의 타이코우카이(大行会)는
성장하고 싶어 하는
니시야마구치구미에게 좋은 먹이가 될 것이다.
개에게는 개로 상대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시마다는 마음을 정했다.
경찰 카드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우선 개들끼리 싸움을 붙인다.
니시야마구치구미가 손을 잡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테스트도 할 겸.
좋은 기회이다.
시마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시마다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마에하라의 주인,
코시자와 회장이 마음에 걸렸다.
개를 때리기 전에
개 주인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시자와 카네모토(越沢兼友).
코시자와 중공업의 회장이라는
그의 직함은
위험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정계가 재계보다 우위에 있는
일본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재벌그룹 회장보다
중의원의 사회적 위치가 더 높다.
문제는
그가 단순한 재벌 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이 아니다.
코시자와 중공업의 모체인
코시자와 그룹은
메이지 시대에
스미토모, 미쓰이 등과 더불어
지금의 일본의 근간을 만든 초창기 기업이고,
전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GHQ에 의해 분류된 15대 재벌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며,
버블 붕괴에도 무너지지 않고
6대 기업집단으로 살아남은
전통 있는 명가였다.
그리고
코시자와 가문을 이끄는
코시자와 카네모토는
코시자와가문의 당주일 뿐만 아니라,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인
‘일본을지키는국민회(日本を守る国民会)’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그 위세가 적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도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의 배경이
시마다의 손가락이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멍청이가 동상이몽
아니
개꿈에 취해서
한심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사쿠라바 잇토키도
슬슬 행동을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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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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