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바티칸시국을 나라로 인정하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바티칸은
외교 관계의 주체가 아니었다.
바티칸은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의 영토’,
즉 땅을 의미할 뿐이었다.
공식적인 해석에 따르면
가톨릭의 주체는 Sancta Sedes,
영어로는 Holy See라고 표현되는 성좌(聖座)였다.
즉 성좌라는
최상위 개념 아래
교황청(Curia Romana)이라는 하위 개념이 있고,
교황청의 하위 개념 아래,
바티칸이라는 세속의 영토가 있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가치 없는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국제외교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주권국가로 인정받는 바티칸시국이
타국과 수교 관계를 맺고,
외교 공관을 설치할 때,
그 외교 공관의 국제법상 지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교황청과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청의 외교관과 외교 공관에,
기존 외교 관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대신
교황청 대사관과
교황청 대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를 적용함으로써
차별점을 두었다.
바티칸 대사관을 의미하는 ‘Vatican Embassy’ 대신에
교황청 대사관을 의미하는 ‘Nuntiatura Apostolica’를,
대사를 의미하는 ‘Ambassador’ 대신,
교황청 대사를 의미하는 ‘Apostolic Nuntio’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주베네수엘라 교황청 대사를 맡은 이가
바로 프란세스코 마리아니(Francesco Mariani) 주교였다.
이날 마리아니 대사는
대사관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추기경좌 성당인 카라카스 대성당(Caracas Cathedral)에 있었다.
베네수엘라 가톨릭교회의 최고 수장인
발타사르 엔리케 포라스 카르도조(Baltazar Enrique Porras Cardozo) 추기경과의 면담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추기경 집무실,
마리아니 대사는
베네수엘라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추기경과 마주 앉아 있었다.
“대사께서 이곳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죠?”
추기경이 물었다.
“……기억도 안 납니다. 하도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마리아니 대사의 답에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니 대사가
전임 교황청 대사였던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주교의 뒤를 이어
스물네 번째 교황청 대사로 임명받은 해가
2013년이었다.
그리고
2013년은
조짐을 보이던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해였다.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추기경이 물었다.
베네수엘라가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교황청 대사라는 이름만으로
귀빈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취임한 마리아니 대사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교황청 대사이자
성직자로서
경제 위기로 고통 받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정신적, 종교적 지주 역할을 해야 했다.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빈민 구호와 같은
실질적 지원 사업도 진행해야 했다.
지원 사업에는
돈과 인력이 필요했고,
마리아니 대사는
베네수엘라인이 아니면서도
베네수엘라에 부임한 대사라는 이유로
바티칸과 유럽을 위시한 여러 선진국에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했다.
“주님께서 정해 주신 자리입니다.
어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마리아니 대사가 말했다.
추기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티칸도
어찌 보면
하나의 나라였고, 조직이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의자의 수는 줄어들었고,
그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Prelate’라는 이름의 고위성직자들에게는
정치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에게는
정치 놀음을 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으리라.
아니,
그저 어떻게 하면
빈민가에 빵 하나를 더 나눠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유아들의 사망률을 낮출지를 생각하는 마리아니 대사에게
정치 놀음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추기경은 마리아니 대사의 마음을 이해했다.
현세의 지옥이라는
베네수엘라에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지켜 내기 위해,
절망과 싸워 온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말 없는 대화로
서로의 마음을 다독인 두 사람이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을 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게.”
추기경의 대답에
문이 열리고,
비서 사제가 모습을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하게.”
추기경의 말에,
비서 사제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간 후,
또 다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시간 전,
산 호세 어린이 병원에서
에녹 노이스에게
종이 뭉치를 건네받은 도밍게즈 의원이었다.
추기경 집무실로 들어온 도밍게즈는
추기경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그간이라고 해 봤자,
고작 이틀 전인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어서 일어서게.”
추기경이 미소 띤 얼굴로
도밍게즈에게 말했다.
“항상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
연세가 있으시니까요.”
“아직 여기에서 할 일이 남았으니
주님께서 금방 부르시지는 않으시겠지.”
추기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 나누시게.
그리고,
끝나면
저번처럼 바로 갈 생각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할 말은,
가기 전에 차나 한잔하고 가게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추기경님.”
도밍게즈의 대답을 들은
추기경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자신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추기경이 밖으로 나가자,
집무실 안에는
손님인 마리아니 대사와 도밍게즈 의원만이 남았다.
“대사님도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도밍게즈 의원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 끼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 전
에녹 노이스에게 건네받은 종이 뭉치를 꺼내어
마리아니 대사에게 건넸다.
“별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마리아니 대사는
그렇게 말하며,
건네받은 종이 뭉치를 바라보았다.
4725 5648 5716 3223 1154 3242…….
종이 뭉치에는
비규칙적으로 나열된 네 자리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마리아니 대사는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이 종이 뭉치를 건넨
도밍게즈 의원 또한 숫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수고하셨군요.”
마리아니 대사가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니 대사가
종이 뭉치를
자신의 가방에 넣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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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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