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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보아 마을이 나타나려면 두어 시간은 더 나가야 했기 때문에 점심은 탁 트인 초원에서 먹기로 결정했다.아리아는 포탈을 통해 레아의 침실로 건너갔고 나와 휴이는 푸석한 빵을 씹으며 한가로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주제는 정략결혼에 대한 것이었다.
“그럼 크리스가 아무리 널 좋아해도 백작이 허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야?”
“당연하지.. 에밀턴 백작가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작위 혹은 그 이상에 가문과 연을 맺는 것이 아무래도 이익이 크니깐”
“크리스의 마음은 무시되도 된다?그런 뜻?”
“좋은 사람과 맺어지면 어차피 나 같은 거 금방 잊어버리게 돼.. 사랑의 서약은 절대적이야.. 그것을 한 시점부터 오직 한 사람만이 하늘이자 태양이 되니깐”
이세계는 남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 같았다.
일부다처제와 노예 제도 거기다 결혼한 여성은 오직 한 남자만 섬겨야 한다.남자는 결혼한 시점부터 바람을 피든 세컨드를 만들던 니 맘대로 하세요..라니.. 이게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우리 가문은 내년쯤 되면 영지를 반납해야 해,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내 자식 대를 마지막으로 폐작을 맞이할지도 몰라.. ”
“공을 세우면 되잖아”
“하핫 이런 태평성대에 공을 세우기 쉽겠어?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길잡이를 자처하는 내 꼴이... 너무 한심스러워...”
내 눈엔 유능한 젊은 인제로 보일 뿐이지만 그가 가진 인맥은 보잘 것 없을 뿐이다.크리스가 휴이를 좋아해도 그녀의 아버지가 반대하면 성사되기 어렵다.거기다 곧 영지도 반납을 해야 한다고 할 정도니 몰락하는 가문을 눈여겨 볼 이들은 없을 것이다.
“기운내라고.. 네 대에서 가문을 다시 일으키면 되니깐”
“고마워.. 힘내도록 할게”
영주님이라고 다 속편하게 떵떵거리고 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휴이는 기울어가는 가문을 책임지고 일으켜 세워야하는 사명이 있고,그것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상황이다.
아리아는 명망 높은 가문의 영애로 태어나 정해진 운명을 거부 할 수 없이 살아가야만 한다.
차라리 엘리샤와 미야처럼 하루하루 힘들게 벌어먹고 살더라도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그녀들의 삶이 더 편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난 생각난 김에 일기를 열어 보았다.
일기속에 난 막시무스 공작과 그의 가신들을 올가미로 모두 죽여버린 상황이었다.웨인과 바슈를 포함한 에우르고 가문에 씨를 말려버린 상태로 오직 레아만을 납치해 그녀를 강제로 임신 시키고자 매일 성고문을 하고 있었다.무려 4일이나 성고문을 쉬지 않고 한 결과 정신적으로 덜 성숙했던 레아는 끝내 굴복을 하고 말았다.그녀에게 억지로 색욕의 미약을 마시게 한 것도 한몫 한 느낌이 강했다.
유니온 나이트의 새로운 수장 실베스타 아우로라 후작은 귀족들을 규합해 사건을 규명하고자 힘을 기우렸고 유니온 원탁에 모인 사람들 앞에 나타난 내가 레아를 데리고 오자 그들은 모두 레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레아는 내가 시키는 대로 모든 원인은 아리아에게 있음을 폭로했고 분노한 유니온 나이트 파벌은 막시무스 공작에 복수를 하기위해 아리아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녀를 숙청하고 더 나아가 다크 허리케인 파벌도 쑥대밭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분위기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난 레아와 사랑의 서약을 마쳤다.
이제 에텔 도시는 악마같은 놈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그는 자신의 이러한 업적을 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온갖 개소리로 일기를 도배해 나갔다.
확실히 일기를 볼 때마다 부아가 치민다.
당장이라도 저곳으로 건너가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얼마나 세상을 망치고 싶은 걸까?미야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매일 매일 그녀를 범했다.
그녀는 더 이상 저항 따위 하지 않는 순종적인 성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았다.색욕의 미약을 마신 레아도 더 이상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고 에텔 도시에 모든 전권을 잡게 된 난 색욕의 노예와 분노의 집행자 그리고 오만의 신사를 모아 엘베록 왕국을 집어 삼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그 시작점은 바로 동부 세력권 유니온 나이트에서부터 였다.
아리아가 잡히면 안되는데.. 저놈을 막을 영웅은 과연 없는 걸까?
저렇게 사악한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다니.. 나의 다른 이면이겠지만 정말로 소름끼치고 무섭다.일기 속에 그려지고 있는 게 흑이라면 과연 난 백이 맞을까?내 정체성에도 혼란이 오긴 마찬가지다.설마 근본적으로 나 역시 저런 쓰레기가 바탕은 아니겠지?
아냐!난 저런 것이 전혀 부럽거나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일기를 보고나면 항상 기분이 더럽다.식욕도 떨어진다.그래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일기속에 내 세 번째 능력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난 그것을 신경 쓰고 있다.대체 저 녀석은 무엇을 빌었는지 궁금하지만 그는 대답해 주지 않는다.맞춰 보라며 비아냥 댈 뿐이다.거기다 저놈은 종종 나 말고 다른 존재를 언급할 때도 있다.제3에 인물에 대해 잠시 언급 했지만 그 내용은 매우 짧은 편으로 내 호기심만을 자극할 뿐이었다.
어째든 난 저놈과 다른 세상에 있다.
이게 안도해야 할 문제인지 어떤지 몰라도 저 세상에 고통 받는 사람들한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저놈에 숨겨진 능력이 무엇이든 나와 그건 아무 상관없다.
더군다나 아리아를 붙잡아 저놈이 뭘 할진 불 보듯 뻔한 문제다.저놈은 미쳤다.미친 놈이 뭘 하건 나만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난 이제부터 일기를 한 달에 한번 보려고 한다.그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단지 기분 나쁜 것은 저놈은 매일 내 일기를 본다는 점이고 내 사생활이 미친놈에게 노출 되고 있다는 점이 너무 싫을 뿐이다.
일기를 지우면 저 놈한테 노출 되는 일이 없지 않을까 싶어,지우려고 했지만 이건 지워지지 않았다.
배터리는 현재 55%로 평소 조금씩 적립하여 모아뒀고 루카스와 게일 그리고 한스 브라이튼으로부터 카피한 기술은 적당한 용량이라 큰 부담은 없지만 이상하게 벨터로부터 카피한 기술들은 대부분 고용량뿐이라 지우기 일수였다.대체 카피로 인한 용량 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지...
출발까지 아직 30분이나 남았으니 한 숨 자려고 자세를 잡을 때였다.
내 밝은 귓가에 대지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그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난 몸을 일으켜 세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무 위에서 망을 보던 배틀 엑스의 용병단원이 서쪽 초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적이다!!”
난 재빠르게 마차 위로 올라가 서쪽 지역을 바라봤다.
대략 말을 탄 산적 20기와 검과 방패로 무장한 산적 30여명이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마부는 사색이 된 얼굴로 휴이를 바라봤고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마차를 출발 시켜라!기병은 고작 20기에 불과하다!최선을 다해 따돌리는 거다!”
난 휴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에텔 도시에 경비대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을까?”
“그때와 상황이 달라!저 정도 규모라면 저쪽도 총력전이라 할 수 있어!희생이 엄청 날거야!”
에텔의 치안 경비대는 그 일대 치안을 관리하는 병사들이다.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편리한 병사들이 아니었다.
“그럼!용병 주점에 가서 용병들을 불러올께!”
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움켜잡았다.
“부탁해!가능한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알았어”
난 포탈을 열어 에텔에 용병주점으로 건너왔다.
한참 때라 많은 용병들이 주점에 모여 술을 즐기고 있었다.그곳에는 오스만 캘룸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 뒤에 열린 마법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도적 섬멸에 참여할 용병분들을 모집합니다!한시가 급해요!”
마법 문을 등진 날 괴이하게 바라보는 용병들은 술렁이기만 할 뿐,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내 심각한 표정과 더불어 마법 문에서 위험한 냄새를 맡은 것인지 그저 상황을 예의주시할 뿐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자리를 박차고 한 사내가 녹색 후드를 눌러쓰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도적 규모는?”
“기병 20에 보병 30 입니다..”
“전투 무대는?”
“음..그..초원!초원입니다!”
이마를 뒤덮은 긴 갈색 머리카락과 말끔하게 다듬은 턱과 코 그리고 입주변에 잘 다듬어진 수염,강인한 눈매와 빛나는 청동 갑옷과 잘 어울리는 녹색에 후드 망토.플래티넘 로얄등급에 아르슬란 그리프가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 문을 향해 걸어갔다.
“마스터 제프.. 술 값은 달아놔.. ”
“그러겠습니다”
“뭐하나 젊은 친구?나 하나면 충분해.. 더 욕심낼 필요 없어”
척 봐도 그는 무척이나 강해보였다.
목소리는 굵직했지만 부드러웠으며 생김새는 남자인 내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에 중후한 멋이 느껴지는 중년이었다.
뒤이어 용병들이 무장을 마치고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는데,오스만씨도 진중한 얼굴로 무기를 허리에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슬란 그리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포탈을 향해 차분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움직일 것 같지 않은 용병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문을 통과한 아르슬란은 이 경이로운 마법에 신기함을 느끼면서도 300미터 앞까지 접근한 기병들을 노려보며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는 검신에 반사되는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아래에서 위로 손을 쓸어 올렸다.그러자 검신의 면에서 강렬한 붉은 오라가 발생했고 그것을 감지한 한스 브라이튼이 아르슬란 그리프를 바라보며 큰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환희를 비췄다.
그는 붉게 빛나는 검신을 저 멀리 달려오는 기병들을 향해 시원하게 휘둘렀고 붉은 검기는 그들을 향해 재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쿠-과과광!
“우아아악!!!“
“비..빌어먹을 뭐야 이건!!”
대지에 닫자마자 터져 나오는 엄청난 파편이 진동과 폭음을 몰고 기병들을 덮쳤다.
아르슬란이 검을 높이 쳐들고 용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너희 뒤엔 우리가 있다ㅡ!”
한스 브라이튼이 검을 치켜들고 배틀 엑스 용병단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아르슬란 그리프님을 따르라 모두 돌격이다!!”
“돌ㅡㅡ격!!!”
구구구구구구구구쿵
무언가라도 씌인 듯 용병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적들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고 마차에서 뛰어나온 용병20여명도 검을 뽑고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르슬란은 마차에서 내려와 검 끝을 대지에 내고 그대로 내달렸는데,축지법을 사용하는 것 마냥 엄청난 속도로 선발대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루카스와 게일은 저 엄청난 사내가 내뿜는 투지에 잠시 넋을 뺏겼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용병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테리 보니는 사색이 된 얼굴로 저 멀리 달려오는 아르슬란을 보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아..아르슬란이다!저..저 녀석이 왜 이곳에?”
용병왕 아르슬란 그리프의 대한 소문은 쿤자스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인물이다.
4명에 플래티넘 용병중 가장 강하며 가장 많은 세력을 두고 있는 그의 위용은 일국에 왕과도 같다고 일크러지고 있었다.
저런 거물이 나타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쿤자스는 아르슬란과 그 뒤를 따르는 용병들의 숫자를 보고는 테리 보니 목에 검신을 겨눴다.
“히힉!”
“감히 날 속이다니!!”
“오해야!나도 몰랐다고!!저..저..저녀석이 이곳에 있다고는!!”
진형이 무너진 기병들은 배틀 엑스와 충돌하며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대로 나가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뒤에 달려오는 도적단은 어느새 마나 소드를 펼치는 아르슬란의 먹이로 전락되어 버렸다.
쳐-억
“크아악!”
처-억 처-억 챙그랑!
아르슬란 검에 닫는 모든 것은 잘리거나 두 동강날 뿐이었다.
도적들은 압도적인 힘 앞에 혀를 내두르며 그대로 달아나려 했지만 벨터의 차가운 칼날이 그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나갈 뿐이었다.
“끄아악!”
쳐-억 촤아아악!
“사!살려줘!!크아아!”
거침없이 도적단을 도륙하는 아르슬란의 붉은 검기는 전장 한가운데를 휩쓸며 30여명이나 되었던 도적단을 순식간에 10여명으로 줄여나갔고 벨터는 달아나는 도적들 목과 심장을 정확히 저격해 그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때 대지 아래에서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더니 그곳에서 길이 8미터가 넘는 엄청난 골램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재미있군”
지형에 이변을 느낀 아르슬란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지가 요동치자 말들은 놀라 흥분하기 시작했다.
“벨터!!술자가 있을 것이다!맡겨도 되겠나?”
“아아!귀찮지만 찾아보죠!”
아르슬란과 벨터는 각자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다시 한 번 붉은 마나를 검신에 모은 아르슬란은 골램에 오른쪽 다리를 향해 검기를 날렸고 그 공격은 멋지게 명중한다.
길이 8미터가 넘는 골램은 용병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고 도적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후퇴다!!후ㅡ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