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유성의 7일 4화 파도타기
“야-------호!”
바다를 헤쳐 나가는 로파파 머리 위에서 치아나는 소리쳤다. 치아나는 로파파의 머리 바깥 부분 잎을 적당히 붙잡고 있다.
“정말 굉장해요! 바다를 건너고 있어요. 생각한 것보다 빠르고. 바닷바람도 시원해! 공중날기를 못 한 것도 이렇게 보면 호사였군요! 관장님 봐요! 갈모매들이 떼지어 날고 있어요! 귀여워라! 봐봐요! 어라? 관장님?”
치아나가 뭐라 계속 말하지만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으으, 이래서 내가 파도타기를 안 하는 거-우우우욱!
겨우 올려다보는 나에게 치아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 관장님이 그렇게까지 파도타기를 안 하려고 했던 이유가 이거였군요? 뭐가 ‘멀미할걸요?’ 에요. 멀미하는 건 본인이시면서. 우후후.”
타기 전에 가방에서 만병통치제를 병째 들이키긴 했다. 마신다고 별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배 타는 것까진 괜찮은데. 아니, 다른 포켓몬을 타는 것도 대부분 괜찮은데, 이 로파파가 이상한 거예요. 너무 빠르다고요.”
“네에~? 이렇게 신나는데?”
한 마디 툭 던진 치아나는 다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뜩이나 좁으니까 조심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누구에게 충고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대로 바다를 빙 돌아서 잿빛도시로 가는 거죠?”
“에, 예. 이 속도라면 삼십 분이면 도착할 거예요. 거기까지 가면 저녁이 될 테니까. 센터에서 쉬죠.”
“삼십 분? 그럼 올 때도 있으니까 합쳐서 한 시간은 탈 수 있겠네요.”
“아니, 올 때는 그냥 산을 내려오면 되니까, 바다 쪽으로 오진 않을 것 같은데요.”
“네에에에!? 바다로 와요, 바다로~. 네?”
“안돼요. 절대 산으로 내려갈 겁니다. 아니, 잠깐. 애초에 치아나씨는 다시 등화도시로 돌아올 필요가 없잖아요.”
“아, 그럼! 한 번만 왕복하는 거 어때요? 잿빛도시까지 갔다가, 다시 등화도시로 왔다가 다시 가는 거죠!”
“뭐예요? 그 동선낭비는?! 안 돼요!”
도합 한 시간 반 동안 로파파를 붙잡고 있으라고? 진짜 죽을 지도 모른다.
“공중날기도 못 했는데, 이 정도도 안 돼요?”
“그건 제 탓이 아니잖아요! 안된다면 안 돼요.”
단호한 내 말에 치아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치만......”
조용해진 치아나를 슬쩍 보자 한 쪽 볼에 작은 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울면 어떡해요?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네? 저 안 울었는데요? 아무리 저라도, 파도타기 못 했다고 울지는, 어라?”
그 때 치아나의 다른 쪽 볼에도 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내 볼에도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눈물이 아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새까만 먹구름이 가득했다. 이건 설마.
“아, 비 온다. 거봐요, 운 거 아니죠?”
......큰일 났다.
“잿빛도시까지 잘 갈 수 있을까요? 어? 관장님? 왜 그러세요?”
내가 이래서 파도타기를 안 하려고 한 건데.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비에 젖는 거 때문에 그래요? 저, 관장님? 괜찮으세요?”
아마 내 얼굴색은 저 바다보다 파랗게 질려있었으리라.
쏴아아-
소나기가 쏟아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치아나에게 외쳤다.
“빠, 빨리, 아무거나 꽉 잡으세요!”
“잡으라니, 지금도 잘 잡고 있는-꺄아앗!”
말하는 걸 잊었는데, 내 로파파의 특성은 쓱쓱 이다.
빗방울은 점점 거세지고, 그에 따라 로파파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장난 아니게 위험하다. 치아나도 이젠 겁에 질려 있었다.
“까아악! 이건 너무 빨라요! 비까지 오는데, 어디 비 피할 때라든가 없어요?!”
“여긴 바다 한가운데잖아요! 비 피할 데라니.......!”
마지못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 멀리 희미하게 구조물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8번 수로에 왔다. 그렇다면!
“그렇지! 좀 지저분하지만 잠깐 쉴 데가 있어요! 로파파! 저기 왼쪽에 보이는 거까지 가줘!”
목적지를 들은 로파파는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헤쳐 나갔다. 희미했던 물체는 점점 커져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목적지에 다다른 로파파는 겨우 헤엄을 멈췄다.
***
“여긴, 배?”
“일단 올라갑시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죠.”
로파파의 머리에서 아슬아슬한 자세로 일어나 기울어진 배의 갑판 위로 올라탄다. 휘청거리는 치아나를 간신히 잡아 올린다.
“로파파, 들어와!”
그렇게 달리고도 힘이 남아돌아 보이는 로파파를 볼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짧은 팔다리로 어떻게 그리 빨리 헤엄치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쓱쓱일 필요가 없다. 젖은 접시인 녀석으로 잡았어야 했나.
“그래서 여긴 어디에요?”
올라온 곳은 다 무너져 가는 배의 갑판이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긴 하지만, 비 피할 데 정도는 있다. 어린 시절 이 근처에 살았다면 다 아는 사실이다.
“설명은 나중에. 일단은 비부터 피하죠.”
“흐으, 좀 추운데요.”
흠뻑 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 다 옷 윗부분이 많이 젖었다.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건 좋지 않다. 치아나는 조금 떨고 있었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일단 들어가죠”
갑판에서 배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배 안을 비췄다. 주말이었다면 아이들이 놀이터로 쓰고 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람이 많이 없다.
“헤에, 이런 데가 있었군요. 확실히 잠시 쉬기는 좋겠네요. 방도 여럿 보이고.”
“일단 수건으로 몸을 닦아요. 갈아입을 옷은... 어, 남자 옷들밖에 없는데.......”
생각이 짧았다. 예나에게 부탁했으면 여자 옷을 빌려왔을... 아니지,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다. 한참 당황하며 가방을 뒤지고 있을 때, 치아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일단 빌려 주세요. 저 방안에서 갈아입고 나올게요.”
치아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가더니 근처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시간이 흐른 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 됐어요. 관장님도 갈아입으세요. 체격 차이 때문에 좀 헐렁하네요.”
내 옷을 입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는 건 기분이 묘하다. 이상한 기분이 들 뻔도 했지만, 그 전에 몸이 으스스 떨렸다. 나도 서둘러 방에 들어가 옷을 바꿔 입었다.
***
뽀송뽀송까진 아니어도 아까보단 훨씬 나아졌다. 난파선 안을 흥미롭게 둘러보던 치아나가 입을 열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난파선이라곤 해도 사람이 많이 다녀가니까요.”
“난파선인데?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떠 있는 건가요? 사람들은 왜 다녀가나요?”
“질문이 많아요. 하나씩.”
치아나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어차피 비 그칠 때까진 할 일도 없잖아요. 심심한데, 이 배에 대해 알려 주시면 안돼요? 그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그럼 저도 좋은 걸 알려 드릴게요.”
이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한 마디 추가했다.
“어쩌면 레쿠쟈님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해 줄 수 없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아는 범위 안에서는 설명해 드릴게요.”
“오오! 기대되는데요?”
“기대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럼, 어디부터 얘기해야 하나.”
어린 시절, 뉴스에서 봤던 이야기, 그리고 예전에 조사했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시작은 우선 여기부터다.
“예전에 이 108번 수로에는 ‘대보라홀딩스’라는 회사가 운영하던 씨보라라는 시설이 있었어요.”
밖에는 아직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p.s
1) 특성 ‘쓱쓱’은 비가 오면 스피드가 2배가 되는 특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