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 이아 아으 동동다리.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가 들려오며 꿈은 시작된다.
3층으로 구성된 넓은 오페라 하우스에 관객이란 나뿐이다.
흰 가면을 쓴 배우들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노래하고 춤춘다.
배우들이 사용하는 말이 이탈리아어 또는 스페인어로 추측되었다.
어쩌면 동남아쪽 언어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내게 익숙한 영어나 일본어는 아니었다.
나는 팔 다리가 의자에 묶인 채로 움직이지 못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묶이는 게 싫었다. 죽도록 싫었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숨이 거칠어지고 몸이 떨리면서 생각이 굳는다.
혀를 씹고 입술을 뜯고 뒷머리를 의자에 박으며 자해를 시작한다.
묶여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부터는 계속 울면서 풀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있을 지 없을 지 모를 신에게 빌면서 제발 풀어달라고 빌었다.
배우들에게 욕짓거릴 내뱉어도 그들은 무시로 일관했다.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그들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었던걸까.
그들은 계속해서 춤추고 노래할뿐이었다.
텅빈 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울리고 환호성이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나 춤은 박수를 보낼만큼 좋았던 건 아니었다.
몇 주를 계속 이런 꿈을 꾸었다.
주인공처럼 보이는 여자가 죽으면서부터 꿈은 본격적으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배우들의 가면이 달라졌다.
처음엔 가면에 점이 생겨나더니 그 점이 어느새 가면 전체를 뒤덮었다.
이윽고는 그 점들은 오징어의 색소 세포처럼 수축하고 이완되기를 반복했다.
그 즈음부터 팔다리를 묶던 밧줄이 느슨해졌다.
좀 더 연극에 집중하라는 듯이 배우들은 내게 손짓하고 호응하라는 듯이 신호를 보냈다.
꿈틀거리는 듯이 움직이는 가면이 징그러웠지만 그들의 몸짓에 나는 박수를 쳤다.
내가 그들에게 반응할수록 그들의 언어는 점점 더 익숙한 것으로 변했다.
얄라리 얄라.
배우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꿈을 자각했다.
묶여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완전히 사라져 정신이 맑아졌다.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막을 내리기 위한 붉은 커튼과 호수를 그린 뒷배경. 그리고 그 배경에서 꿈틀거리는 얼굴.
남자의 얼굴.
황달이 심한 지 피부뿐만 아니라 눈알까지 누렇게 되어있었고 온 몸이 물곰치처럼 불어있었다.
입술엔 수포가 크게 차서 굼벵이같았다.
윽.
내가 혐오감을 담아 소리를 내자 배우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꿈을 자각해서 드디어 꿈이 멈추나했지만 그들은 나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나에게 화를 내듯 소리쳤다.
아으 동동다리!
아으 동동다리!
그들은 계속 그렇게 소리쳤다.
이아! 이아! 아으 동동다리!
지금도 떠올리면 그 목소리들이 머리를 울리는 듯 하다.
꿈에서 깨고나고서 한동안 술을 달고 살았다. 잠은 거의 못 잤다.
오컬트적인 걸 조사하면서 이런 건 다 개꿈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꿈을 꾸고나서부터 내 정신 건강이 급격하게 안좋아졌던 것 같다.
동시에 안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다.
이 나이에 알바만 하고 있고 꿈도 미래도 없다.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아볼까 고민도 했고 진지하게 목숨을 끊으려고 준비도 해봤다.
술에 꼴아서야 잠들었고 한 시간 길어야 세 시간을 자고 깼다.
한번은 열이 크게 올라 알바를 쉬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포기하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꿈이 뭐 대수인가. 난 어차피 죽을건데.
그런 마음으로 알람을 껐다.
빨리 뛰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남자, 누더기 옷을 입은 왕을 재회했다. 이번엔 꿈을 자각하지 못한 채였다.
오른손에서 열 개로 뻗은 손가락들이 꿈틀거렸다. 그는 농이 흐르는 입으로 무어라고 했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 했다.
꿈 속의 나는 포기한 듯 입을 다물고 축 늘어졌다.
나는 언제나 싫은 일이 있을 때 입을 다물었다.
꿈은 허무하리만큼 급격하게 끝났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나는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현실에 무슨 복선이 있단 말인가.
갑자기 당첨된 로또, 갑자기 찾아오는 기적과 구원자. 그것만큼 좋은 게 또 어디있는가.
갑자기 찾아오는 해피엔딩을 나는 싫어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지지만 나는 끝이 좋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비릿한 비극은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좋아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회색으로 끈적이는 그것은 살며시 뱀처럼 생긴 머리를 내밀었다.
왕은 무어라 소리치고 뱀은 나를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이 과정은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뱀이 여러 마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뱀과 왕은 말싸움을 하듯이 서로에게 소리쳤고 그 틈을 타서 극장에서 빠져나왔다.
이아. 이아. 동동다리.
동동다리 트플트큰가.
이브튼크 흐에혜 은그르크들르.
이아 이아 아으 동동다리.
동동다리 프틀트큰가.
얄라리아 흐에혜 은그르크들르.
아으 아으 알랑셩.
나는 그렇게 첫번째 꿈에서 깼다.
나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은 사라졌다.
열이 내렸다.
나를 괴롭히던 진상 새끼는 내가 쉬고 있는 사이에 또 일을 저질러서 경찰서로 끌려간 모양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꽤 오랜만에 웃었던 것 같다.
나는 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꿈을 꾸고 난 이후로 뱀이 좋아졌다.
귀엽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번째 꿈을 꾸게 된다.
올해는 연속되는 꿈을 꽤 많이 꾼 것 같다.
본문
[단편] 꿈일기 - 누더기 옷을 입은 왕
추천 0 조회 185 댓글수 0
ID | 구분 | 제목 | 글쓴이 | 추천 | 조회 | 날짜 |
---|---|---|---|---|---|---|
118 | 전체공지 | 업데이트 내역 / 버튜버 방송 일정 | 8[RULIWEB] | 2023.08.08 | ||
30565309 | 연재 | 에단 헌트 | 152 | 2023.08.08 | ||
30565308 | 연재 | 에단 헌트 | 213 | 2023.08.07 | ||
30565307 | 연재 | 에단 헌트 | 154 | 2023.08.06 | ||
30565306 | 연재 | 에단 헌트 | 187 | 2023.08.05 | ||
30565305 | 연재 | 에단 헌트 | 214 | 2023.08.05 | ||
30565304 | 연재 | 에단 헌트 | 135 | 2023.08.05 | ||
30565303 | 연재 | 에단 헌트 | 159 | 2023.08.05 | ||
30565302 | 연재 | 에단 헌트 | 176 | 2023.08.05 | ||
30565301 | 연재 | 에단 헌트 | 199 | 2023.08.04 | ||
30565300 | 연재 | 에단 헌트 | 155 | 2023.08.04 | ||
30565299 | 연재 | 에단 헌트 | 149 | 2023.08.04 | ||
30565298 | 연재 | 에단 헌트 | 136 | 2023.08.04 | ||
30565296 | 연재 | 에단 헌트 | 148 | 2023.08.03 | ||
30565295 | 연재 | 에단 헌트 | 153 | 2023.08.03 | ||
30565294 | 연재 | 페르샤D | 128 | 2023.08.02 | ||
30565293 | 연재 | 에단 헌트 | 136 | 2023.08.02 | ||
30565292 | 연재 | 에단 헌트 | 157 | 2023.08.01 | ||
30565291 | 연재 | 에단 헌트 | 160 | 2023.08.01 | ||
30565290 | 연재 | 에단 헌트 | 110 | 2023.08.01 | ||
30565289 | 연재 | 에단 헌트 | 147 | 2023.07.31 | ||
30565288 | 연재 | 에단 헌트 | 197 | 2023.07.31 | ||
30565287 | 연재 | 에단 헌트 | 236 | 2023.07.31 | ||
30565286 | 연재 | 에단 헌트 | 130 | 2023.07.31 | ||
30565285 | 연재 | 에단 헌트 | 194 | 2023.07.31 | ||
30565284 | 연재 | 에단 헌트 | 183 | 2023.07.30 | ||
30565283 | 연재 | 에단 헌트 | 139 | 2023.07.30 | ||
30565282 | 연재 | 에단 헌트 | 227 | 2023.07.30 | ||
30565281 | 연재 | 에단 헌트 | 182 | 2023.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