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탑’이라 불리던 기둥의 앞에 도착했다. 저 멀리, 강가에서 보았던 그 크기보다 수배는 더 커진 기둥의 모습에 네모난 로봇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입이 벌어졌다.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니, 인간의 범주에서 이런 걸 만들 수는 있는 것인가. 그 오래된 유적의 어느 건물도, 그 기둥의 절반에 달하는 높이를 가진 것은 없었다. 그만큼 지하도시에서의 모든 것 중에서도 이질적이면서도 독보적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크기로는 따라올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나무의 밑동같이 바닥에서 시작해 천장까지 높게 솟아있었다. 자연현상 일리는 만무했다. 그렇다고 정말로 거대한 거인이라도 존재하지 않는 한, 이런 구조물을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 가까이서 보니까, 장난 아닌데. 어이, 안내원 로봇 씨. 이건 누가 만든 거래?”
“부정. 본 기체명은 ‘토토’. 또는 02번. 안내원 명칭. 부적절.”
“참, 로봇이란 건 다 이런 건가? 그래, 토토 양반. 이 탑은 누가 만든 건데?”
“부정. 대답 불가. 권한 부족.”
“권한 부족…? 그게 무슨 말이야? 민간인들한테는 말할 수 없다는 거야?”
“긍정. 주민 이상의 권한이 아니면 답할 수 없음.”
제이는 머리를 글적이며, 귀찮다는 목소리로 로봇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번거로움을 느끼며 성내는 제이의 모습을 본 로젤리아가 그를 말리고는, 조심히 네모난 로봇에게 되물었다.
“워워. 제이, 일단은 상냥하게 물어봐야지. 저, 토토 씨. 권한 부족이라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부정. 본 기체에게 접근권한 변동에 대한 권한 및 기능은 없음.”
“... 그럼, 다르게 접근해 보시죠. 토토 씨. 탑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그들의 뒤에 있던 푸른 로봇이 로젤리아와 제이 사이를 걸어 나와 네모난 로봇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저 질문받은 로봇은 자신에게 질문을 한 로봇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짧게 말했다.
“대답 불가. 미등록 개체. 질문 권한 없음 ”
“이 깡통은 또 이러네. 그냥 고물상에다가 던져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뭐만 하면, 부정이니 부족이니 말이야. 진짜로 길안내만 하고 다른 건 하는 게 없잖아.”
“하하, 일단은 기다려보죠. 로젤리아 씨. 죄송하지만, 제가 한 질문을 다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쩌면 재밌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가요? 아, 알겠습니다. 토토 씨…”
푸른 로봇이 로젤리아에게 전한 부탁은, 곧이어 질문이 되어 네모난 로봇을 향했다. 제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뒤돌아 도시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토토라 불리는 네모난 로봇이 곧이어 질문에 답했다.
“긍정. 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만들어지지 않음. 선물 받음.”
“... 선물…? 제가 아는 그 선물 말인가요? 그 생일날 포장해서 건네주는 그런…”
“부정. 탑은 포장되지도, 된 적도 없음.”
“아, 아뇨.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내가 잘못 들었나? 저 로봇이 지금 선물 받았다고 표현한 거야? 저거 진짜 깡통 아냐?”
“흐음… 선물 말인가요.”
“... 설, 설마. 고장 났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토토 씨, 그런 거죠?”
제이는 고개를 돌려 절망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웃었다. 그리고 네모난 로봇을 비웃었다. 로젤리아는 허황함을 느꼈고, 푸른 로봇은 그 대답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제이는 그 뒤로 몇 번을 더 비아냥 거렸고, 로젤리아는 쭈그려 앉아 한숨을 토해냈다. 푸른 로봇은 그저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로젤리아에게 부탁했다.
“로젤리아 씨. 하나 더 하도록 하죠. 저 위에 천장에서 반짝이는 것들 또한 선물 받았는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라서 그렇습니다.”
“... 예, 저 토토 씨…”
또 한 번의 기다림. 이야기가 탈출에서 멀어진 듯한 제이는 그저 무릎 밑을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구두로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를 차고있는 사이, 바닥에서 자라나고 있던 한 떨기의 잡초와 하얀색 꽃에 시선이 닿았다. 밝지만, 그 땅 아래 속에서도 식물이 자란다는 사실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식물이 햇빛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제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 전력의 근원. 본 기체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끔, 탑과 같이 선물 받음.”
“역시, 그런 건가요. 로젤리아 씨. 이번에는 어떤 한 존재에 대한 겁니다. ‘아르메디나’라는 존재에 대해 물어봐주시죠.”
“아르메디나…? 그건 또 뭐 하는 건데?”
“... 일단은 들어보죠. 로젤리아 씨.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지금의 상황이 못마땅한 듯 째려보는 제이를 넘어, 로젤리아는 터덜터덜 일어서서는 또 한 번 토토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이는 푸른 로봇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궁금증에 찬 채, 조심히 물었다.
“손님, 그런 깡통에 신경 써서 뭐하게. 걔는 그냥 고물값이나 받고 갖다 던져 주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말이야.”
“아직까지는 추측 단계이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는 전설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로젤리아는 푸른 로봇을 향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는 갑자기 활기가 찼고, 제이의 머릿속은 의아함을 가진 채 나아갔다. 그리고 또 한 번 네모난 로봇은 말하기 시작했다.
“...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야. 어떻게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부정. 대답 불가. 해당 질문에 관한 정보 존재하지 않음.”
“... 아르메디나는 모른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입니다. 탑과 천장을 선물 한 존재는 인간인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신이라도 있다는 거야? 아니면 다른 세계의 방문자가 또 있었다는 이야기 인가?”
“글쎄요. 여러분 앞에는 실체가 없는 존재가 말을 하고 다니고, 푸른 금속 몸에 자신의 정신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존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 저 로봇의 대답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당하다는 듯이 푸른 로봇을 바라보는 제이에게, 푸른 로봇은 그저 담담히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아직, 그 무엇도 명확하게 판명난 게 없습니다. 이 탑이라는 게. 그저, 꾸며진 동화의 일부인지. 아니면, 몰락한 전설의 잔재인지 말입니다.”
로봇은 조용히 말했다. 그 어조는 차분했으며, 침착했다. 제이는 느꼈다. 푸른 로봇의 그 질문은,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장난 같은 분위기로 임하고 있던 것은, 로젤리아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그저 무너져가는 영광의 잔재일지도 모르고요…”
푸른 로봇의 마지막 말은 어디선가 슬픔이 느껴졌다. 제이는 고개를 돌려, 탑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 벽면에 왼손의 장갑을 벗고는 그 맨 살을 살포시 얹었다. 다른 이들이 네모난 로봇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그는 그것을 느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 같이 매끈했다. 돌을 깎아낸 것이 아닌,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다는 것 같이 말이다. 이런 거대한 기둥을 만들었을 존재에 대한 감탄은 멈추지 않았다. 그 연갈색 표면은 천장의 빛을 받아 빛났고, 지금도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이는 생각했다.
‘인간이 아니라면, 신이 이 기둥을 만들었다는 걸까…?’
그때였다. 네모난 로봇은 숙녀의 질문에 대한 또 한 번의 대답을 토해내려고 했다. 제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또 한 번 고개를 돌렸다.
“부정.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 존재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이다.”
“... 그렇군요. 인간이 아니라면… 역시 저 천장이 문을 여는 걸 방해하는 걸까요. 정말로 흥미로운데...”
혼자 감탄과 의문에 빠진 푸른 로봇을 향해, 제이는 가볍게 손뼉을 몇 번 쳤다. 푸른 로봇에 시선이 쏠린 로젤리아와 생각에 빠진 푸른 로봇도 제이에게 시선을 향했다.
“자자. 마지막 질문이 끝났으면, 일단은 탈출이 우선이잖아. 손님도 로제도. 올라가서 다음을 생각해. 유적은 도망가지 않아.”
“그렇네. 기둥에 정신을 팔려서 그만. 저, 토토 씨. 이 기둥을 통해서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나요?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도 있나요?”
“긍정. 외부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음. 비상시를 대비한 구조물. 승강기를 추천.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 가능.”
“... 승강기인가요. 사람이 탈 수 있는 정도라니. 그런 건 옆 도시에서도 아직 상용화가 안됬다고 들었는데…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안전이라는 단어가 통할까…?”
“뭐, 저렇게 움직이는 장난감도 만드는 조상님이든, 저 탑을 만든 존재든. 엄청난 능력으로 뭐든 못하겠어. 토토 양반. 그 승강기라는 건 어디서 타는 건데?”
“승인. 현 위치에서 탑승 가능. 상층부에 자리한 승강기의 하강을 위해 잠시간 대기 바람.”
네모난 로봇은 말을 마치고는 탑이라 부르는 기둥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곧이어, 네모난 로봇의 옆으로 벽면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의 간격을 두고 입구 같이 생긴 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네모난 로봇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본 제이는 계속되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푸른 로봇에게 조금 전까지의 질문을 한 이유를 물어봤다.
“그래서, 손님은 뭘 알아냈는데? 아니지, 뭘 알아차렸는데?”
“아, 그거 말인가요. 흠… 승강기가 내려오는데 시간도 걸릴 것 같으니 심심풀이로 이야기라도 해볼까요.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도 들어보고 싶군요.”
자신의 세계와 또 다른 이들의 세계에서 공통점이라 부를만한 것을 찾은 로봇의 마음은 조금 흥분한 듯했다. 로젤리아와 제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는 들뜬 마음으로 말을 시작했다.
“저의 세계에서는 수정이란 게 존재합니다. 이 탑처럼 거대하고 저 위에 천장처럼 환하게 빛나죠. 기록에 따르면 그건 여신이 선물한 물건으로, 저와 저의 종족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아, 그럼 아까 아르메디나라고 말하셨던 게 그 여신의 이름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실질적으로 신이란 존재가 있나 없냐는 관심 밖이었습니다만, 이건 꽤 재밌는 우연이라고 할까요. 실로 흥미롭습니다..”
“신이라… 우리도 그런 옛날이야기가 있지. 입이 험하고 난쟁이인 신이 사람들에게 지식을 내렸다는 그런 거였지?”
“그렇지. 오르베도 씨가 옛날에 읽어주시던 동화책에 자주 등장했던 신이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난 모르겠네. 책은 동화도 지루해서 말이야. 그래서, 손님 생각에는 그 여신이란 존재랑 우리 조상님들한테 저 커다란 거랑 반짝이는 걸 준 존재가 동일 인물이라 생각하는 거야?”
“흠, 글쎄요.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주장은 아마 말도 안 될 거고, 여러분들의 조상님 분들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또 좀 그렇군요. 많은 세계를 다녔지만. 이 정도 크기의 구조물은 지금보다도 몇백 년은 진보한 기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렇겠네. 당장 도시의 시계탑이 3개를 합쳐도 못 비빌 것 같으니 말이야. 신이라....”
“하하,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기술력이 뛰어나셨던 조상님들이셨을지도 모르죠! 아직도 계셨다면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은…”
“보스!! 신나 하는 도중에 미안한데. 조금 전부터 무언가가 보스네를 향해 빠르게 접근 중이야!!”
“뭐? 정확하게 말해봐! 적대적인 존재야? 어디에서 오는 건데!? 도시 내부는 분명 깨끗했잖아!”
“몰라! 중요한 건 빠르고 많아!! 확실한 건, 작별인사해주러 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푸른 로봇의 급박한 대화를 들은 제이와 로젤리아는 로봇의 등 뒤 너머, 도시의 모습을 올려다봤다. 확실하게 검은색의 무언가가 무리를 지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건물의 벽을 뛰며, 낮은 지붕을 타고, 거리 한가운데를 지나, 마치 수많은 벌레떼가 먹이를 노리듯. 그들의 시야를 채우던 하얀 건물들은 검은색 점박이가 생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들이 대처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것들은 순식간에 기둥 주위를 포위했다. 아니, 그것들이 노리는 것은 기둥이 아니었다. 붉은색의 빛나는 수많은 눈이 향하는 것은 기둥도, 네모난 로봇도 아닌 살아 숨 쉬는 두 명의 생명체와 푸른 로봇이었다.
“... 토토 씨. 혹시 친구분들이신가요…?”
“부정. 전방에 위치한 기체들. 목적. 도시의 치안.”
“그래, 그럼 저 깡통은 정말로 길안내용이었다는 거네.”
“그것보다는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커져가는군요. 이제 와서 저희를 반겨주려고 온 건 아닐 거고 말입니다.”
“저, 일단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토토 씨처럼 잘 해결될지도 모르지 않나요…?”
“글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만약 잘 되면, 저기 있는 애들 전부 다 내가 이름 붙인다.”
“일단은 시도해볼까요. 로젤리아 씨,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들도 저를 생명체로 인식하지 않을 테니까요.”
“예! 한 번 해보겠습니다!!”
로젤리아는 조심히 그것들의 앞에 섰다.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녀가 바란 경험에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섰다. 만남이라는 시도가 없으면 공존이라는 과정도 없는 법. 어쩌면 그들에게 선의로 다가가면, 선의로 보답하지 않을까라는 자그마한 희망을 로젤리아는 품었다. 그리고 빌었다.
“바, 반갑습니다! 저는 이 일행의 대표자인 로젤리아 오스왈드라고 합니다!!”
제이가 이마를 가볍게 쳤다. 그리고 그 손이 주르륵 내려가며 두 눈을 가렸다. 누군가의 심장은 바쁘게 뛰었고, 누군가의 얼굴을 빨개졌다. 로젤리아의 뒤에 자리한 두 기의 로봇도, 그들을 둘러싼 수십 기 정도의 로봇도 정적을 이루었다.
그 정적 속에서도 그것들의 붉은 눈은 빠르게 굴러갔다. 현재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들을 관찰했다. 마치, 처음 보는 생명체에 호기심을 갖는 어린아이 같이, 또는 냉철한 관찰자 같이 말이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은 경쾌한 전자음이었다. 정중하면서도 시원하게 말이다.
“반갑습니다. 로젤리아 씨. 저희는 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기체들입니다. 저는 0278번. 뒤에 계신 민간인 남성 1명과 미등록 개체 1기 또한 환영합니다.”
“... 오! 가 아니지. 저, 저희는 이 도시에 길을 잃어 들어오게 됐습니다. 나쁜 일을 저지른다거나, 그런 목적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이는 두 눈을 가린 채 이번에는 자리에 구부려 앉았다. 그에게 있어, 그녀의 대화 내용은 너무나도 수상했고,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 오랫동안 자신과 지내온 이 라는 걸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쓰려왔다. 그런 그의 속을 모르는지, 그녀와 그것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긍정. 여러분들의 도시에 들어선 이후 행적은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별다른 불법적 행위가 없었다는 것은 이곳의 모든 기체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아, 다행이군요. 그럼 저희는 이 기둥에 있는 승강기를 타고 도시를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렇군요. 02번 에게 탑의 승강기를 작동하게 명한 건 당신인가요?”
“예, 그렇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저희는 빠르게 사라지도록 하겠습니다.”
“... 제이 씨, 저 아까 말했던 예감이 확신으로 바뀐 거 같습니다.”
“... 응? 갑자기 왜?”
로젤리아의 대답에 그것은 정적을 이루었다. 푸른 로봇의 말을 들은 제이 또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것의 질문은 질문보다는 추궁에 가까운 느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제이는 가방을 땅바닥에 내던지고는 빠르게 일어서서 로젤리아의 뒤로 다가갔다.
“... 증언 수집. 자백 확인. 현 시간부로 긴급 명령 001호에 한해, 탑 근방에 위치한 민간인 남녀 2명과 미등록 개체 1기의 구속한다.”
그것은 그 기다란 팔을 로젤리아를 향해 뻗었다. 그때였다. 제이는 그녀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강하게 끌었다. 그녀의 짧은 비명과 함께 뒤로 조금 멀리 넘어져갔다. 놀란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봤을 때에는, 제이가 그것을 째려보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 민간인 남성. 반항 행위는 처벌의 수위를 높일 뿐. 순순히 투항을 요구한다.”
“어이쿠, 미안해라. 적어도 정당한 이유가 아니면 싫은데? 내 머리는 너네들 가져다가 고철값이라도 벌라고 하는 걸?”
또 그렇게 침묵이 흐르는 사이, 푸른 로봇이 로젤리아를 향해 걸어가 안부를 물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 조심히 일으켜 세우고, 급박하게 변한 상황을 걱정했다. 적어도 평화로운 작별은 불가능 할거라 생각했다.
“로젤리아 씨. 죄송하지만, 저기 토토 씨와 함께 붙어있어 주시겠나요. 아무래도 한바탕 격전이 일어날 거 같습니다.”
“... 제가 잘못한 걸까요. 제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어차피 승강기가 원인이면 저희가 저걸 타려고 했을 때에도 방해가 들어왔을 겁니다. 일단은, 자리를 피하시죠.”
“... 예, 알겠습니다.”
로젤리아는 조심히 드레스를 들어, 네모난 로봇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조금 전 문이 생겼던 틈 안으로 몸을 숨겼다. 푸른 로봇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 뒤돌아 봤다. 그는 제이와 로젤리아 사이에서 자리를 지켰다.
“현 시간부로. 1단계 무장을 허용. 구속 대상들에게 또 한 번 경고한다. 순순히 투항하면, 처벌 수위는 줄어든다.”
“휴, 유적지의 치안 로봇이든, 뭐든. 결국 도시의 양아치들이랑 별다른 게 없네. 들어와, 하나씩 말고 전부 다 말이야.”
제이는 오른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냈다. 천장의 빛을 받아 하얗게 광이 나는 금속의 팔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세를 다잡았다. 그런 그를 향해 수많은 그것들이 달려들었다. 제이는 빠르게 뒤로 빠졌다.
그것들의 채찍 같이 기다란 팔은 허공을 찔렀다. 제이는 그 상태로 두, 세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푸른 로봇의 옆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 손님 예감이 맞았네.”
“그렇군요. 별로 맞기를 바라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어떻게든 승강기가 내려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말입니다.”
“얼마나 걸릴려나. 저런 금속 몸을 한 놈들과 싸우는 건 처음이라 말이야. 아, 대련은 노카운트야. 이해하지?”
“... 하하, 이런 상황에서도 활기차시는군요. 제가 앞장서서 수를 줄이겠습니다. 제이 씨는 로젤리아 씨와 토토 씨 쪽으로 향하는 남은 놈을 처리해 주시죠. 아마 수가 상당하니, 저 혼자서는 역부족일 겁니다.”
“좋아, 잔반 처리도 내 주특기지. 맡겨만 줘.”
푸른 로봇은 정신을 곤두세웠다. 그 두 눈은 붉게 변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듯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에게 말했다.
“제네, 상공에서 로젤리아 씨랑 토토 씨 쪽을 신경 써줘. 너무 높게 떠있지는 말고, 승강기가 도착하면 바로 도망칠 수 있는 정도로만 고도를 유지해줘.”
“예이. 또 한 바탕하는 거야? 누나한테 혼날 텐데.”
“... 나비를 위해. 이야기 하나 만들어 가는 걸로 하자.”
검은 그것들은 나란히 서서, 자리를 지켰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달려들지도, 도발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상대방을 관찰했다. 푸른 로봇의 뒤에 선 제이는 주위를 가볍게 돌아보고는 싸움을 준비했다. 또 한 번 자세를 다잡았다. 그 사이에 검은 그것들은 더욱 모여들어 대열을 이루었다.
“제압 대상들이 투항 의지가 없다고 판단. 전 개체는 위법자의 제압을 우선시한다. 제압에 무력이 따르는 점을 대상들에게 미리 알린다.”
그것들의 기다란 오른손이 하나로 뭉쳐져서 몽둥이와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는 파지직 거리며 푸른색과 흰색의 전기가 통했다. 그것들에 맞선 두 존재는 그것을 주의했다.
“... 손님, 저거 맞으면 위험한 거 아니야?”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조심하죠. 저도, 제이 씨도 저걸 맞아서 좋을 게 없을 거 같으니 말이야.”
그것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푸른 로봇은 일단 가볍게 옆으로 피하고는 발차기를 날렸다. 발차기를 맞은 그것은 옆으로 굴러, 또 다른 기체들과 부딪혀 굴렀다. 이번에는 푸른 로봇이 달려들어갔다. 난장판이었다.
푸른 로봇이 전방에서 적들을 몰아세우고, 그 옆으로 세어 나오는 한, 두기 정도의 그것들을 제이가 금속 팔로 부서뜨렸다. 그런 광경을 로젤리아는 조용히 네모난 로봇과 숨어봤다. 무력의 충돌, 어째서 평화로웠던 유적탐사가 순식간에 싸움으로 변했는지에 그녀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조금 전 그것들 중 하나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 토토 씨. 긴급 명령 001호라는 건, 뭐죠…?”
“승인. 긴급 명령 001호. 긴급상황을 맞아. 3등급 이하의 주민의 외부 출입을 제한. 약 300명의 주민이 이에 해당함.”
“... 하지만, 카일 씨는 도시의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고 하셨는데… 긴급상황이라는 건 뭐죠? 남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부정. 긴급상황에 관한 정보. 대답 불가. 권한부족.”
“긍정. 그 외의 잔존 인력에 대한 질문. 활동범위는 도시 내로 한정됨. 도시 내에서의 활동은 자유로움.”
로젤리아의 붉은 두 눈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그 도시는 어쩌면 수많은 이들의 원혼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했고, 겁이 났다. 그저 불안한 느낌을 느끼는 한 사람의 걱정과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울림이 수백 년 동안 조용했던 도시를 한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