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암-.”
맥스는 하품을 하며 일어나, 반쯤 감긴 눈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여느 날과 같이 옆에선 아나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맥스는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아나에게 덮어주고, 가만히 소녀를 바라봤다.
“언제 봐도, 그날 그대로구만.”
맥스는 씨익 웃으며 조심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랜 시간의 걸음으로 다리에서는 근육통을 느꼈지만, 익숙한 일인 듯 그냥 넘어갔다. 맥스가 방문을 닫고 작업실로 나오니 테이블에는 카산드라와 로봇이 양쪽으로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그래서, 맥스가 깨 먹은 장비값의 액수만 네 자리를 넘는다는 거지!”
“하하, 생각보다 대단한 모험이었는데요.”
맥스는 로봇이 카산드라의 수다 상대로 붙잡혀 있다 생각하고 조용히 인기척을 냈다.
“크흠. 무슨 담소를 그렇게 재밌게 나누시나?”
테이블에 앉아있던 두 사람은 하얀 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을 바라보았다. 먼저 말을 건건 카산드라였다.
“노인내, 소리 없이 자길래. 골로 간 줄 알았잖아. 아나는?”
맥스는 농담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웃으며 말했다.
“뭐, 저승 구경하고 왔지. 꼬맹이라면 아직 자고 있어. 원래 잠이 많은 아이니까 조금만 더 놔두자고.”
그렇게 말한 남자는 조용히 두 사람에게 다가와 카산드라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의자에 한쪽 팔을 걸친 채 말했다.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거지? 정말 오랜만에 푹 잔 거 같은데.”
“글쎄, 한… 4시간…? 아, 이쪽 멋쟁이 오빠가 도와줘서 두 사람 세탁물은 다 씻어놨어. 먼지가 한가득 있던걸.”
“하늘을 천장으로 두고 노숙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저녁은? 사실 별로 배고프지는 않은데, 꼬맹이는 성장기잖아.”
“그렇네, 잠시만 있어봐. 아까 밥하고 남은 재료가…”
카산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로봇이 남자에게 말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더군요. 적어도 평범한 삶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에요.”
남자는 의자에 달린 팔걸이에 있던 팔에 얼굴을 괘며 로봇을 조용히 바라봤다.
“... 남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게 취미이신가?”
로봇은 맥스가 로봇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게 불편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불편을 느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그랬습니다.”
대답을 들은 맥스는 그대로 로봇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 3명이 많다라… 그쪽도 참 비밀이 많은 족속이구만. 뭐, 피차 비슷한 사이 같으니 우호적이게 가보자고. 아까 말은 농담으로 받아주게나.”
“... 맥스, 냉장고 안에 남은 게 얼마 없어! 오늘은 이미 상점가도 닫았을 거고, 그냥 사다 먹자!”
카산드라의 말을 들은 맥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산드라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어어, 좋지. 저번에 먹었던 볶음 국숫집 아직도 영업하나? 꼬맹이가 거기를 좋아하던데.”
“어… 아, 거기라면 아직 하겠네. 그럼 잠시 갔다 올까.”
카산드라는 말을 끝내고는 밖을 나갈 채비를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런 여자에게 맥스가 말했다.
“산드라! 내 아가씨는? 멀쩡하게 끝났어?”
“어어, 그 작업대 위에 아나꺼랑 같이 있어!!”
맥스는 그대로 작업대로 가 자신의 총을 확인했다. 해머와 트리거를 서로 돌아가며 당겼다. 총기의 작동음을 확인한 맥스는 그대로 작업대 옆, 옷걸이에 걸려있는 자신의 총집을 챙겨 허리에 둘러맸다.
“... 허이, 차. 좋아. 형씨, 나랑 산드라는 잠시 밖에 갔다 오도록 하지. 아나를 좀 깨워서 정신 좀 차리게 세수라도 시켜줘. 저 꼬맹이 편안한 곳에서 잠들면 쉽게 안 깨어난단 말이지.”
“알겠습니다. 아, 제 식사는 사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길 안내도 해주시는데, 밥까지 사주시는 건 민폐 같아서 말입니다. 저는 돌아오시는 사이 간단하게 먹어두겠습니다.”
“... 그런가, 그럼 부탁하지. 얼마 안 걸릴 거야.”
맥스는 자신의 총기를 총집에 넣은 뒤, 카산드라를 기다렸다. 곧이어 카산드라가 간단하게 채비를 끝내고 나왔고, 두 사람은 가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멋쟁이 오빠, 그럼 갔다 올게~”
“조심히 갔다 오시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문을 닫고 사라지자, 로봇은 아나가 자고 있는 방을 향해 걸었다. 문 앞에 도착한 로봇은 문을 열고 들어가 자고 있던 아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흔들어 깨웠다.
“아나, 일어나. 맥스 씨가 밥 사오 신대.”
로봇은 소녀를 흔들었다. 소녀는 하품을 하며 누운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마치 한 마리의 소동물 같았다.
“하아암~”
그리고 앉은 채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반쯤 감긴 눈과 부수수 뜬 머리는 소녀가 얼마나 숙면을 깊게 취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하얀 반팔 셔츠 차림의 소녀는 반쯤 잠이 깬 상태로 주위를 둘러봤다. 마지막 기억 속에 자신이 잠이 든 방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봇이었다.
“... 오빠, 맥스는...?”
“맥스라면 카산드라 씨랑 저녁밥 사러 가셨어. 볶음국수…? 를 사 오신다던데?”
“... 우웅”
그 한마디를 끝낸 소녀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로봇은 잠시 기다렸지만, 소녀의 머리가 앞뒤로 살살 왔다 갔다 했다.
“... 보스? 다시 자고 있는데?”
“그러게… 나비는 이러면 곧바로 깨어나던데.”
로봇은 다시 소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소녀의 상체가 전보다 조금 크게 앞뒤로 흔들렸지만, 소녀의 정신은 아직도 꿈의 세계였다.
“... 오늘 아침에는 바로 일어나던데… 맥스 씨가 말한 게 이거였나.”
“보스, 나한테 하나 생각이 있는데 말이야. 후후…”
로봇은 제네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설명에 이 사태를 해결할 가장 큰 가능성을 느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소녀는 여전히 꿈나라임에 포기한 로봇은 소녀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제네에게 일의 처리를 맡겼다.
“... 그럼, 시작할게. 보스.”
“좋아, 제네. 어디 해보자. 사과라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잠시 후 로봇에게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건 전날 있었던 맥스의 술주정이었다.
“으음~? 아나,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내가 술 마시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야! 오구오구 우리 아나, 우리 귀여운 아나!!”
로봇에게서 퍼져 나온 음성이 끝나자 마자였다. 소녀의 두 눈은 곧바로 커다랗게 뜨였으며, 그 목소리가 들린 장소를 바라보기 위해 빠르게 일어나 뒤돌았다. 소녀의 오른손은 자신의 허벅지 부분을 향해 가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도착한 곳은 허공뿐이었다.
“... 일어났네, 아나.”
한방에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 소녀는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몸은 굳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저기, 맥스 씨가 밥을 사 온다고 해서, 깨워놓으라고 하시더라고…”
로봇의 말이 끝나자, 소녀는 붉어진 얼굴을 뒤돌아 감추고 빠르게 방을 나갔다. 로봇은 그 모습을 보고 제네에게 말했다.
“화내겠지…?”
“거의 당첨인 거 같은데.”
로봇은 자신이 저질러 버린 사태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이후 카산드라와 맥스가 돌아와 네 사람은 자그마한 파티를 열었다. 식탁 위에는 술과 포장된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분위기는 한껏 흥이 나있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마지막 밤이니, 모두 흥이 나게 놀아보자고!”
맥스가 소리치자, 카산드라가 옆에서 술잔을 들며 소리쳤다. 로봇과 아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와아…”
아나의 감탄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고, 맥스와 카산드라는 술을 벌컥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로봇은 그런 광경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네 사람 중 안색이 안 좋은 건 아나뿐이었다.
“... 아나? 왜 그래? 지금은 즐겨야 하는 시간이라고!”
맥스는 시작부터 취기가 돌기 시작한 거 같았다. 아나의 얼굴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카산드라와 맥스 두 사람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도,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로봇은 그 장단에 맞춰 박수를 쳤다. 금속 손에서 나오는 손뼉은 악기의 울림 같기도 했다.
곧이어 노래를 부르던 두 사람은 테이블을 벗어나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시끌벅적한 난장 속에서 아나도 조금씩 표정을 풀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와 물건들 속에 맥스가 쓰러져 누웠다. 카산드라는 맥스를 널브러 둔 채 의자에 앉았다. 맥스의 코골이가 울러 퍼졌다.
“크어억-.”
로봇은 첫 만남 때처럼 사고를 치지 않는 맥스를 보고 안심했다. 아나는 막바지에 이른 연희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고, 카산드라는 취기가 돌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 맥스 씨는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건가요?”
로봇이 카산드라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맥스를 바라봤다.
“하하, 저 쫌생이는 언제나 저런다니깐, 술은 몸에 맞지도 않으면서, 한번 들어가면 멈추지를 않아요. 바람이나 좀 쐬어주면 알아서 다시 기어들어가 잘 거야.”
카산드라는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맥스에게 다가갔다.
“바람이라면 제가 맥스 씨를 옥상으로 업고 가겠습니다. 카산드라 씨는 아나랑 같이 뒷정리를 부탁드리죠.”
“으응? 그래? 그럼 나야 좋지, 노인내 술주정은 나도 아나도 못 버티니깐 말이야. 적당히 있다 들어와. 새벽은 아직 쌀쌀해서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깐 말이야.”
카산드라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 위에 어질러진 접시를 정리했다. 로봇 또한 일어나 맥스의 왼쪽 어깨 밑으로 팔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조금씩 걸어 나갔다.
“어이 으으, 형씨이이- 좋아써, 오늘 끝까지 가보자고오오.”
혼잣말을 연속으로 하는 맥스를 들고 옥상에 도착한 로봇은 그를 옥상 한쪽 벽에 앉혔다. 시간대는 아직 새벽이었다. 달이 중천에 떠 밝게 빛났으며, 그 주위를 별들이 한가득 채워나갔다.
“기온은… 역시 쌀쌀한 정도인가, 밤공기를 마시며 이 바람을 맞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로봇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의 금속 몸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에 불편을 내뱉었다. 그 후 맥스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샌가 다리를 구부려 앉은 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리시네요. 혹시 방금까지 연기셨나요?”
로봇은 반 정도는 진심을 섞어서 말했다. 맥스는 멍하니 하늘을 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흐흠, 아직도 머리가 띵하긴 하지만, 아까보다는 나은 거 같구만 그래.”
로봇은 맥스가 기댄 벽에 팔꿈치를 기대어 도시를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건물은 불이 꺼진 채 어두웠다. 그 사이의 몇몇 건물은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도 야간시간대를 노리는 상점이라고 로봇은 생각했다.
“밤하늘은 좋아하나, 형씨?”
맥스가 로봇에게 물었다. 로봇은 잠시 생각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간대를 말하라면... 역시 별이 뜨는 밤 시간대일 것이다. 로봇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옛날 추억 때문일까요. 별이 가장 잘 보이는 밤하늘이 가장 좋더군요.”
바람이 살며시 불었다. 맥스의 갈색 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밤바람을 느꼈다. 마치 바람을 음미하듯이, 눈을 감고 생각을 비웠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다시 말했다.
“나도 그렇다네, 가끔씩 아나에게 별자리를 설명해줄 때가 떠오르는 군. 꼬맹이도 좋아했는데 말이야. 근데 어느샌가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도 않더군. 이제는 아나가 나보다 더 잘 찾아낸다네.”
맥스는 과거 회상과 신세한탄을 같이했다. 로봇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결코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얼굴에 다 보인다고 할까요.”
맥스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완전 다 들켜버렸구만. 자네도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얼굴만으로도 알 수 있다니 말이야. 이젠 나도 퇴물이구만!!”
큰 목소리로 말을 끝낸 맥스는 이어서 은은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 그렇지, 젊은이들이 우리 같은 아저씨들을 지나가는 건 당연한 거야. 물론 아나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 같은 게 있는 건 맞다네. 하지만 그 아이도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어.”
맥스는 조용히 앞을 바라봤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는 말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나설 준비가 될 때까지 아이를 울타리로 감싸지, 그리고 울타리를 감싸는 그 순간부터 부모는 아이를 가두는 울타리를 거둬야 할 때를 봐야 하는 법이라네...”
“...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아나는 다를 거야. 언젠가는 저 아이의 두 다리로 그 울타리를 박차고 나아가야 할 순간이 올꺼야. 어쩌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
로봇은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 낮에 얘기하셨던 병에 대한 말인가요…?”
맥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있어, 그의 병은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준 알람 시계 같은 존재가 아닐까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뭐, 그렇지. 저 아이도 16살이야, 그 정도면 이쪽 세계에선 이미 성인이지. 그리고 1인분 그 이상을 하는 아이고 말이야. 하나를 가르치면 이미 둘을 배우는 그런 아이야. 늙은 노친내 뒤치다꺼리하며 살기에 저 아이는 너무 아까워.”
맥스는 웃으며 대화를 마쳤다. 로봇은 그런 맥스를 보며 감탄했다. 부모라는 존재의 덕을 보지 못한 자신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친자식도 아닌 아나를 마치 자기 자식인 듯 최선을 다했음을 로봇은 느꼈다.
“아나는 축복받았군요.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질투가 나기도 하네요.”
로봇은 아나와 맥스 두 사람이 부러운 듯이 말했다. 맥스는 그런 로봇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흐음. 그쪽도 비밀이 많은 건 여전한데 말이야. 재미난 이야기라도 하나 해보지 그래?”
“저 말입니까…? 솔직히 말재주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리 재미있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만…”
맥스는 묵묵히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로봇은 잠시 생각하고, 얘기를 풀어냈다. 그건 맥스와 아나를 만나기 전에 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보자… 동화나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쯤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행자는 다양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또 다른 세계에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은 마치 그 여행자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 앞으로 그 여행자가 경험할 수많은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맥스는 로봇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로봇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몰랐지만,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맥스는 그저 묵묵히 로봇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노인이 몇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자네의 여행은 앞으로 수많은 고난이 기다린다네.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나.’ 여행자는 그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로봇은 현자의 충고를 회상했다. 그 넓고, 고요한 그 연구소에 앉아 들은 이야기를 말이다.
노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카일, 내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조언일세. 그대가 이 조언을 듣고 참고할지 말지는 그대의 선택 이라네.”
로봇은 조용히 노인의 말을 경청했다. 현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첫째, 앞으로의 여행에는 큰 위험이 기다린다네. 자네의 그 금속 인형은 비록 쉽게 부서지지는 않지만, 그 강도가 튼튼한 것뿐. 상대방에게 위협이 될만한 무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걸세. 그래, 자네라면 이해하겠지. 무기를 준비하게. 이는 무조건적으로 생명을 헤하라는 게 아니네. 스스로를 그리고 자네의 주위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말일세.”
노인은 수통에 물을 마셨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둘째, 자네가 당장이라도 체감하고 있겠지만, 앞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걸세. 다양하고도 특이한 사람들 일거야. 나 같은 노인내를 만난 건 콧방귀나 뀔 정도에 독특한 사람들 말일세. 그 사람들이 모두가 우호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대가 먼저 마음을 열어준다면 그들도 따라줄 걸세.”
노인은 기침을 했다. 말이 길어짐에 따라 노인에게 생기는 부담도 커졌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네. 그 사람들, 그래. 자네가 만날 사람들을 도와주게나. 덕은 주면 돌아오는 법. 그대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나서서 도와주겠다 싶지만, 그래도 이 늙은이가 멋있는 말을 했다 생각해주게.”
“... 내가 해주는 조언은 이 세 개가 끝이라네. 그대가 이 말을 가슴에 새겨도 좋고, 흘려보내도 좋다네. 자네의 미래는 자네의 선택에 따른 법이니 말일세. 그래, 이제 이 뒤에 따라오는 것은 내가 주는 충고 정도로 생각…”
“... 같은 말을 들은 남자는 다음 세계를 향해 나섰습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간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옛날에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말입니다. 재미있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로봇의 말이 끝나고, 맥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런가, 또 다른 세계라… 이야기 속 형씨도 재밌는 사람이로구만, 난 먼저 내려가겠네. 슬슬 지치는 구만. 내일은 준비를 마치고 저녁쯤에 출발할 걸세. 형씨도 들어가서 눈이라도 붙여두게나.”
맥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의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가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로봇이 말했다.
“맥스 씨, 내일 있을 작전 말입니다. 저도 참가시켜 주시죠. 일단은 시설을 둘러보는 게 먼저겠지만, 만약 제가 찾는 게 아니라면 저도 돕겠습니다.”
맥스는 로봇을 보지 않고 뒤돈 채 말했다.
“산드라가 말해줬나, 하여튼 그 여자도 말이야… 좋네, 자네도 준비 단단히 해두게나. 분명 예상도 못한 규모의 큰 축제를 벌일 테니깐 말이야.”
맥스는 말을 끝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로봇은 홀로 남아, 조용히 도시를 바라보았다.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하는 하늘은 도시의 어둠을 조금씩 걷어갔다.
“... 생각해보니 나, 이야기 속 여행자가 남자라고는 안 했던 거 같은데…?”
“이미 들킨 거 같은데, 보스.”
“... 그런가, 뭐, 어때. 내일… 아니, 오늘이구나. 우리도 준비 단단히 하자, 제네.”
“에입, 보스.’
걷혀 가는 검은 하늘의 한쪽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로봇은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나와 맥스 두 사람의 마무리가 확실하게 맺어지도록 돕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