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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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미터 단위의 극소인공물을 만들 수 있고, 수 천 km단위의 대공사를 할 수 있는 문명세계의 인간이었던 나는 이세계에 왔다. 불을 피우는 기술조차 없는 원시 이세계에. 이 무지몽매한 이세계의 원주민들에게 우월한 현대 문물을 전파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물론이고 인류 수 만년의 역사 동안 이어지고 숙성되어 내려온 인문학적 지식 또한 이들에게 알려주리라. 그리고 나는 최후에 이세계의 신이 된다!
그리고 이세계의 신이 될 남자는 고뇌하고 있는 중입니다.
“가슴……만지고 싶다.”
누차 말하지만 이세계는 불을 피우는 기술도 없는 원시 세계다. 그런 세계다보니 이세계인들은 가슴과 생식기나 간신히 가리는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만 입고 다녔다. 조금 커다란 가죽 중간에 구멍을 내서 그 구멍에 몸을 집어넣어 골반과 가슴에 걸리게 하는 옷을.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옷자락이 위로 휘날려서 그 안쪽을 살짝살짝 보여주는데……차라리 벗고 다녀라! 그쪽이 덜 야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잖아!
이세계인들이 유인원에서 간신히 벗어난 모습이라면 나도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세계인들은 유인원은 커녕 판타지틱한 동물귀와 꼬리를 가진, 미형이었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선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미인들이 완전히 벗은 것보다 더 야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욕망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옷 안쪽이 드러나도, 가끔은 완전히 옷을 벗고 돌아다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이들이 옷을 입는 것은 수치심보다는 기능 혹은 미적인 이유로 옷을 입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받아주지 않을까?
……아니! 나는 신이 될 남자다. 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수 천 수 만 년 동안 신이 될 내가 그런 저속함을 드러내서는 안 될 일! 나의 행동이 나를 신으로 추앙할 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인데 모범이 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사사롭고 저속한 욕망을 충족시킬 생각만 하다니 언어도단! ‘신께서 이르시길 상대를 존중한다면 상대의 심장과 가까운 상대의 가슴을 움켜쥐어라.’라는 말도 안 되는 인사법이 보편화 되면 어쩌려고!
그리고!
내 행동을 불쾌하게 여겨서 쫓아내거나 죽이려고 하면 어떡해. 만약에 내가 은인들에게 쫓겨나 혼자 살게 되면 오래지 않아서 죽을 게 뻔하고, 저기 저 양심 없는 하렘남이 감히 자신의 연인들을 건드린 시건방진 수컷을 죽음으로 응징하려 든다면? 양심은 없어도 근육은 차고 넘치는 저 하렘남과 맨손으로 싸우면 나는 10초 만에 찢길 자신이 있다.
그리고!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들에게 욕정을 품고 함부로 욕망을 해소할 수단으로 여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내 행동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지라도 나는 내가 불순한 의도로 그들에게 행위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껴 말했다.
“아아. 이것은 양심이라는 거다.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지.”
빌어먹을 현대 문명의 이기는 거의 다 두고 왔으면서 현대 문명의 도덕은 왜 온전히 가져오는 건데. 물리법칙에 종속된 기술과 달리 도덕은 사회가 달라지면 많이 바뀌잖아. 나도 욕망대로 살고 싶다!
“#$@$%*?”
내 양심과 말싸움을 하던 중에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한 명의 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은인 중 한 명. 비교적 덜 노련해보이고 임신하지 않은 여성. 검회색의 체모와 특이하게 왼쪽 눈은 노란색, 오른쪽 눈은 하늘색인. 임시 명명 ‘짝눈이’였다.
짝눈이는 나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
이세계의 언어였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너도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
짝눈이는 귀를 쫑긋거리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라면 나와는 인연이 없을 환상적인(동물귀와 꼬리가 있으니) 미인이 내 앞에서 야한 복장을 입고 귀엽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세계 굉장해!
“%^&@#*##?”
“오우! 저 이세계어 몰라요우.”
진짜로.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다면 지금 당장 등록하고 싶을 정도다.
짝눈이는 팔짱을 끼고 끄응 소리를 냈다. 짝눈이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한가 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신기하네. 세계가 완전히, 그리고 종족도 다른데도 표정과 행동으로 약간은 의사소통이 되니 말이다.
하긴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부족끼리 맨 처음으로 접촉했을 때에는 손짓 발짓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점점 서로의 언어를 익혔겠지. 내가 인류학자거나 인류학을 전공했다면 지금 상황을 무척이나 반겼을 것 같다.
하지만 유감! 내 전공은 컴퓨터 공학입니다! 이런 저런 언어를 배우긴 했지만 여기서 쓸 만한 건 하나도 없네요!
“…….”
#include
int main(void){
for(;;){
printf("망할");
}
return 0;
}
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망할……
내가 한참 전공을 살려서 뇌코딩으로 욕을 하고 있을 때 짝눈이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 보다.
짝눈이는 팔짱을 풀고 두 손으로 내 양 볼을 눌러 내가 입을 벌리게 했다. 그리고 나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앗! 이세계 여자들은 개방적이구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난 눈을 감았다.
후후, 원래 세계에서는 잘생겼다는 소리는 부모님한테도 못 들어봤지만 이세계의 기준으론 내가 미남인가 보다.
이세계는 최고야!
나는 한껏 기대에 차서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던 접촉은 없었다.
내 양 볼을 누르던 힘이 사라졌다. 그리고 인기척도 나에게서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떴다. 짝눈이는 나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일은 없었다.
어허! 이집 김칫국 하나 시워어언하다!
“…….”
#include
int main(void){
for(;;){
printf("시벌");
}
return 0;
}
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시벌……
내가 한참 전공을 살려서 뇌코딩으로 욕을 하고 있을 때 짝눈이는 내 손을 잡았다. 거칠고 여자치고는 큰 손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손이었다.
짝눈이는 나를 잡아당겨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나는 순순히 짝눈이가 잡아당기는 대로 따라갔다. 방금 전과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은인들의 보금자리는 숲 한 가운데의 공터였다. 그러나 공터에서 벗어나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는 숲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인간조차도 자연 그 자체인 세계에서 나무들은 온전히 자신의 수명대로 뻗어나갔다.
수십, 수백, 수천 년 동안 자랐을 나무들 사이로 우리는 걸어갔다. 나무들 사이로 생전 처음보는 동물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정체를 모를 소리들 숲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오지를 탐험하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일이 나에겐 현실이 되어있었다.
“^*^&#%*%&@.”
“그렇지. 3편이 최고였지. 1편과 2편의 진중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설정을 유지하면서 그 이후 작품의 세련미까지 포함하여 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게 3편이지.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영상기술만 발전하고 정작 중요한 스토리와 설정이 서서히 망가지더니 최근에 나온 8편은 어휴. 말하지 말자. 말하니 빡치네.”
그리고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꼬리가 난 짐승귀 미녀가 나를 선도하며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짝눈이는 내가 한 말을 들어준 후 웃으며 말했다.
“#%*^&%.”
진짜로 이세계어 속성 강의 학원이 있으면 즉시 등록하고 싶다.
길을 걸어가며 짝눈이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했다. 아마 나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러나 선의를 가지고 나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감정만은 전달이 되었다.
예쁜 애가 성격까지 좋네.
좋다. 신이 될 내가 말하노니 내 너를 나의 배필로 맞이하……긴 개뿔이. 얘가 눈이 없냐. 뭐가 아쉽다고 얘가 내 짝이 되겠냐. 앞으로 내가 이세계에서 이룩할 일을 생각하면 내가 분명 신으로 추앙받기 충분하겠지만 남성으로서 매력이 있냐고 한다면……자뻑 점수를 줘도 이세계에선 낙제점을 면하긴 힘들 것 같다.
내가 말했지. 이세계인들은 전부 미형이라고. 하렘남도 예외는 아니더라. 완전 육체미의 화신. 그리고 수염이랑 머리카락이 지저분해서 그렇지 그 속에 있는 얼굴은 일부만 보여도 잘 생겼을 거라는 확신이 들게 만들더라.
짝눈이가 그런 놈을 차고 나를 선택한다고? 그 정도면 망상이지.
어흑! 팩트자학이 너무 아프다.
“%*^&$!”
짝눈이가 내 손을 놓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응. 뭐야? 나 두고 가지마! 나 여기 길 몰라!
다행히 짝눈이는 멀리 가지 않았다. 짝눈이는 크게 도약하더니 착지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나를 돌아보았을 때 짝눈이의 손에는 다리가 달린 뱀이 있었다. 도마뱀이나 돌연변이로 다리가 난 뱀과는 달랐다. 몸은 뱀처럼 길쭉하면서 진짜로 쓰는 게 확실한 다리가 네 개 달린 뱀처럼 생긴 생물이었다.
“#$*%!”
짝눈이는 나에게 다가오며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오오, 굉장해, 굉장해.”
나는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수풀 때문에 보이지도 않던 걸 어떻게 발견하고, 그걸 또 순식간에 잡는 것을 보면 짝눈이도 뛰어난 사냥꾼일 것이다.
그러나 이 뛰어나고 귀여운 사냥꾼은 박수라는 것이 뭔지 모르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냥감을 든 채로 박수를 쳤다.
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껴 말했다.
“아아, 이것은 박수라는 것이다. 기쁘거나 감탄할 때 양손바닥을 부딪쳐 소리를 내는 행위지.”
물론 못 알아듣겠지. 그러나 내가 감탄하고 있다는 감정은 전해졌는지 짝눈이는 이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으며 꼬리를 파닥였다.
파닥파닥! 귀여워!
“$*@$#%#*$%.”
짝눈이는 다리 달린 뱀을 나에게 내밀었다. 선물……이라는 의미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짝눈이가 내민 다리 달린 뱀(얘도 명명해야겠네. 그러면 다리 달린 뱀이라는 의미로 족사.)을 잡았다. 내 한 손에 다 들어오는 크기였다. 족사는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렸다.
그런데 얘를 가지고 뭘 하라고?
나는 짝눈이를 바라보았다.
짝눈이는 어떤 행동을 해보였다. 이것만큼은 명확하게 전달이 되었다.
‘머리를 이로 잘라서 뱉은 후에 남은 부분을 우걱우걱.’
아하. 이게 이세계인의 최신 유행 길거리 간식이로군요.
나는 족사를 바라보았다. 족사는 자신의 죽을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내 손아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짝눈이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이로 잘라서 뱉은 후에 남은 부분을 우걱우걱.’
신이시여. 아차, 이세계의 신(이 될 남자)은 지금 이세계의 원주민에게 받은 선물을 앞에 두고 신을 부르고 있는 중이지.
버릴까? 아니 그러면 기껏 잡아준 선물을 버린다고 짝눈이가 싫어 할 텐데.
먹을까? 으으으으으으. 아직 살아있는 이걸?
하지만 이세계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아무리 거부감이 들어도 살기위해선 이런 것들을 먹어야할 것이다. 지금은 그 각오를 할 시기가 엄청 빨리 왔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나는 각오했다. 눈을 감았다. 입을 벌렸다. 천천히 족사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그작!
“어어어어억!”
아파! 물렸어! 물렸다고!
족사에게 입 아래를 물리고 만 나는 놀라서 족사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독! 독! 독이 있는 거면 어떡해!
나는 손등으로 물린 곳에 대었다고 땐 후 자국을 보았다. 피가 묻어나지는 않았다. 다시 해도 마찬가지. 다행이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안도하고 나니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짝눈이가 웃고 있었다. 온몸이 들썩들썩, 입은 커다랗게, 소리는 크게. 그리고 꼬리는 파닥파닥!
내 꼴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겠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하다. 손바닥만한 작은 동물을 먹으려다가 오히려 먹히는 꼴이라니 그러고 허둥지둥 버둥버둥 거리는 꼴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쪽팔려어어어어어!
내가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야. 짝눈이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기껏 먹을 것을 줬는데 그것도 못 먹는 등신? 하하하. 신은 맞네. 등신(等神).
“^*%^%^*.”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입니다.”
웃음은 그쳤지만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짝눈이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족사에게 물린 부분을 자세히 관찰했다.
“#$%!*%.”
“의사 선생님 전 어떻게 됩니까?”
“$+_$#$.”
“얼마 안 있으면 딸의 생일입니다.”
딸은 없지만. 그냥 농담이다.
짝눈이 선생님께서는 진단을 끝내고 치료를 하셨다.
할짝.
“%^*%*$%.”
이건 짝눈이가 한 말이다.
“$*%&$$%$*#$%9$%$#*^$%#*!”
이건 내가 낸 소리다.
짝눈이는 나의 환부를 핥았다. 입술 바로 아래를.
정신에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일부 당황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동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이 문제와 가능한 수정사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참조하세요.
재부팅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짝눈이를 따라서 걷고 있었다. 짝눈이의 치료는 내가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독이 내 심장에까지 도달한 게 분명하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에이썅. 오그라드는 소리는 때려치우고 인정해야겠다.
나 짝눈이한테 반한 것 같다. 아니 가정형으로하면 안 되겠다. 나 짝눈이한테 반했다.
쉬운 남자라고 하지마. 예쁘고 착하고 자신에게 진한 스킨십을 하는 여자에게 안 반하는 남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으으. 그런데 짝눈이는 이미 하렘남의 하렘의 일원이잖아. 그 하렘에서 짝눈이를 빼내려면 하렘남과 싸워서 이겨야하나? 그리고 하렘남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치더라도 짝눈이가 나를 좋아해주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갈 길이 멀다.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목적지가 실존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어떡한다.
“$%>^*&&%.”
짝눈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짝눈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앞에 절경이 펼쳐졌다.
하늘이 있었다. 백사장이 있었다. 물이 있었다. 섬이 있었다. 수평선이 있었다. 파도가 있었다.
하늘만큼 푸르른 물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넘쳐난 물이 하늘까지 닿아있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물인지 알 수 없었다. 등 뒤에는 아직도 숲의 소리가 들렸지만 앞에서는 물결치는 소리가 들렸다.
“^*&%*.”
짝눈이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이끌었다.
고운 모래가 내 발 밑에서 사박거렸다. 백사장에 짝눈이와 나의 발자국이 남았다.
숨을 들이마셨다. 짠내는……나지 않았다.
저기 먼 섬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물 속으로 잠긴다.
짝눈이가 내 손을 놓았다. 짝눈이의 발아래 물이 찰박거렸다.
파도가 짝눈이의 다리에 닿아 부서졌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호주머니를 뒤져 나의 몇 안 되는 현대기기를 꺼내 그것을 켰다.
짝눈이의 머리카락과 꼬리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짝눈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두 손으로 물을 퍼서 그것을 마신다.
물방울이 짝눈이의 몸을 타고 내린다.
나는 초점을 짝눈이에게 맞췄다.
스마트폰 속에 있는 짝눈이가 웃으며 말했다.
“&*%^&$%*%&@#*.”
나는 촬영버튼을 눌렀다. 바람이 불었다.
찰! 바람에 휩쓸린 짝눈이의 옷이 들썩이더니 그 속에 있는 것을 드러냈다. 칵!
우오오오오오오옷!
“이세계 굉장해!”
나는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의도하고 찍으려고 해도 찍는 게 불가능할 순간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절경의 자연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미녀가 우연히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옷이 들쳐져 모든 것을 드러내며 웃는, 섹시함과 청순함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결코 다시는 볼 수 없을 순간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보존되어있었다.
“현대 문명 굉장해!”
내 평생의 보물로 간직하리라!
내가 우연한 행운에 기뻐하고 있을 때 짝눈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스마트폰을 잽싸게 숨겼다.
“&*^&%*#$?”
짝눈이는 다시 내 손을 잡아당기며 물가로 이끌고는 두 손으로 물을 퍼 마시는 시늉을 했다.
“&^%*%.”
바로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짝눈이가 어째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내가 이세계로 온지 사흘이 지났다. 웅덩이의 물을 마실 수 없었던 나는 그 동안 수분을 과일로만 섭취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짝눈이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짝눈이는 물을 마시지 않던 나를 위해서 이런 물이면 마실까 하며 구태여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나는 그제야 물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물에서는 짠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먼 곳을 봐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 은인들이 마시던 흙탕물과는 달랐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물을 펐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드넓은 호수의 물이다. 그리고 불을 피우는 기술도 없는 세계의 물이었다. 오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물을 마셨다. 사흘 만에 마신 물은 말라가는 온 몸에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
짝눈이는 내가 물을 마시자 기뻐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감동해서 그렇기도 했고……
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껴 말했다.
“아아. 이것은 양심이라는 거다.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지.”
나를 위해서 구태여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은인의 알몸 사진을 찍고 좋아하던 내가 더 없이 한심했다.
짝눈이는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폰을 꺼냈다.
나는 아까 전 찍은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반한 여자의 알몸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삭제/취소)
이 사진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삭제]/취소)
사진이 삭제되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는 물놀이를 하는 짝눈이를 보며 어떻게 해야 그 하렘남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지 고민했다.
-짝눈이 side-
웅덩이 물 없다. 목마르다. 목마르면 안 좋다. 안 좋으면 좋게 한다.
“오빠. 나 많은 물에서 물마시고 온다.”
새끼 밴 오빠짝꿍(새언니)이랑 놀던 오빠한테 알리고 굴에서 나왔다.
굴에서 나오니 이상하게 못생긴 동물(이하 이못동) 있었다. 이못동 물 안 마신다. 이못동 물 마시는 거 모른다.
“[아아. 이것은 양심이라는 거다.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지.]”
이못동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목 안 마르다?”
이못동 나 본다. 귀 이상한데 났다. 꼬리 없다. 이상하게 못생겼다.
“나 물 마시러 간다.”
“[너도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
“물 마시는 거 모른다?”
“[오우! 저 이세계어 몰라요우.]”
이못동 소리 나 모른다. 나 소리 이못동 모른다.
나 이못동 입 안 봤다. 물 없다. 입 안 물 없으면 목마르다. 이못동 목마르다. 목 마르면 안 좋다. 안 좋으면 좋게 한다.
나 이못동 많은 물에 데려간다.
“이못동 이상하게 못생겼다.”
“[그렇지. 3편이 최고였지. 1편과 2편의 진중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설정을 유지하면서 그 이후 작품의 세련미까지 포함하여 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게 3편이지.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영상기술만 발전하고 정작 중요한 스토리와 설정이 서서히 망가지더니 최근에 나온 8편은 어휴. 말하지 말자. 말하니 빡치네.]”
“이못동 재밌다.”
이못동 얼굴 계속 움직인다.
이못동 재밌다. 나 이못동 좋아한다. 엄마엄마(할머니, 지도자) 이못동 좋아한다.
족사 보였다. 족사 맛있다. 나 족사 좋아한다. 엄마 족사 좋아한다. 오빠 족사 좋아한다.
나 족사 이못동한테 준다.
“족사다!”
나 족사 잡았다.
“잡았다!”
족사 이목동한테 보여줬다.
“[아아, 이것은 박수라는 것이다. 기쁘거나 감탄할 때 양손바닥을 부딪쳐 소리를 내는 행위지.]”
이못동 좋아한다. 이못동 좋아하면 나도 좋다.
“족사 맛있다.”
나 족사 이못동한테 줬다.
이못동 족사 받았다. 이못동 족사 먹는거 모른다. 나 알려줬다. 머리 자르고 우걱우걱.
이못동 눈 감았다. 저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아그작!
“[어어어어억!]”
물린다.
이못동 날 뛴다. 이못동 재밌다. 나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못동도 웃었다.
“웃으면 좋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 이못동 물린 곳 봤다.
“아픈 거 없다.”
“[의사 선생님 전 어떻게 됩니까?]”
“이거 쉽다.”
“[얼마 안 있으면 딸의 생일입니다.]”
이거 낫게 하기 쉽다.
나 이못동 입 아래 핥았다.
“핥으면 낫는다.”
“$*%&$$%$*#$%9$%$#*^$%#*!”
이못동 얼굴 빨갛다. 이못동 버둥거린다. 이못동 재밌다. 나 이못동 좋다.
“많은 물이다.”
많은 물에 왔다. 여기 물 많다.
“물 마시자.”
나 이못동 물 앞으로 끌고 왔다. 이못동 물 안 마신다. 이못동 물 마시는 거 모른다. 나 물 마시는 거 가르쳐 준다.
나 물 마셨다. 나 물 마시는 거 가르쳐줬다.
“이게 ‘마신다’는 거다.”
“[이세계 굉장해!]”
나 물마시는 거 가르쳐 줬다. 이못동 좋아한다.
“[현대 문명 굉장해!]”
나 기다렸다. 이못동 물 안 마신다.
나 이못동 물에 더 가까이 했다.
“물 안 마신다?”
나 물 마시는 거 다시 가르쳐 줬다.
“마신다.”
이못동 물 마셨다.
“그게 ‘마신다’는 거다.”
이못동 물 마셨다. 이못동 목 안 마르다. 목 안 마르면 좋다. 이목동 좋으면 나도 좋다.
“[아아. 이것은 양심이라는 거다.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지.]”
이못동 또 이상한 소리 한다. 재밌다. 그래서 나 이못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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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인(쉽게 반하는) 속성은 이세계물의 필수요소죠.
그래서 주인공에게 부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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