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라는 곳은 일종의 레이어였다.
현실과 우주 위에 위치한 그 레이어에는
관념 중심의 물리법칙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물리법칙과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이 아닌
나름의 상호작용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수 억년의 성찰을 통해 물리적인 이동이 가능하게 된 이후,
영감이 처음 시도한 일은 이 성찰을 함께 할 동료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주 도처에는 지옥의 존재들이 즐비했고 그들에게
영감이 터득한 원리를 전달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동료의 수는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영감과 함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우주를 관찰하고,
인식을 넓히고, 더 많은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함께 우주의 물리법칙을 성찰할 수록 영감의
일과 운동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이제 지옥의 존재들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며
전자와 원자의 운동, 쿼크의 종류까지 관찰이 가능하였다.
역설적이게도 우주가 팽창하여 관찰할 물질들이
희소해 질 수록, 지옥에서의 연구활동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현실의 관념은 죽음 이후에는 지옥의 관념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물질이 붕괴되는 과정이 가속화될 수록
지옥에서의 관념의 수도 가속증가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존재들이 지옥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다양한 의식들을 영감이 드디어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아주 원시적인 동물의 의식에서부터 인공적인 프로세스 의식,
외부 은하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식들을 접했고 심지어는
아무런 의식이 없을 거라 여겼던 성운의 무기물질에서조차
의식작용이 있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은 생각 하나가 몇 만년 단위의 길고 느긋한 의식이었는데,
지옥의 존재들은 이미 시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초탈한 존재였기에 그들의 의식을 받아들이는데 성공하였다.
이후에는 암흑 물질로 구성되었던 관념들과 접하게 되면서
광자로만 인식한 덜 분명한 우주가 더욱 명백히 밝혀지게 되었다.
우주의 비밀이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빛의 속도를 넘어서지 못했던
영감과 그의 동료들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는 팽창하여 물질을 잃어버렸지만 지옥의 존재들은
그에 발맞춰 빠르게 팽창하고 성찰하였다.
그리하여 지옥에는 존재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