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고의 노력 끝에 몰상식한 용사와 그 용사를 잡아먹으려 드는 동료를 탁자 앞에 앉혔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이게 가능한 사람은 나 외에는 한손에 꼽을 정도겠지. 잠시 동안만 우월감에 젖어있자.
…….
…….
…….
자 적당히 심적인 만족감도 얻었으니 이야기를 진행하자.
오른쪽에는 오늘 전례가 없는 커다란 사고를 쳐주신 용사가 멀뚱멀뚱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 끝에는 그 용사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는 그 동료가 있었다. 온순한 대형견과 그 대형견을 쏘아보는 고양이 같은 모양새다.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보닌이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지껄여봐.”
칼리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테이블이 크게 들썩였다.
“윽!”
칼리만이 몸을 숙이고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렸다. 보닌이 정강이를 걷어 찼나보다. 보닌은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은퇴의 이유 말이야.”
정강이의 고통을 가라앉힌다고 칼리만의 대답은 늦었다. 그러나 그 늦은 대답이 참 가관이다.
“말했잖아. 지겨워서라고.”
설마 했는데 진짜로 그 이유로 은퇴하겠다고 한 건가. 지금까지 15년 정도 용사로서 살아왔으니 지겨워질만하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걸로 은퇴하기에는 너무나도 명분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납득하지 못할게 뻔하다. 특히나 칼리만에게 용사로서 높은 도덕적 관념을 가지라고 말하는 보닌에게는 그 정도가 심하겠지.
보닌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이쪽도 예상대로다.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하얀 목덜미가 붉게 변해있었고, 눈빛에는 살기가 그득했다. 평소라면 이정도로 되기 전에 이미 달려들었을 것이다. 달려들지 않는 건 역시 내가 대화를 먼저 하자고 말을 해놔서일 것이다. 바꿔서 말한다면 이게 폭력으로 전환되면 지금까지와는 도를 달리하는 폭력이 행사될 거라는 거다.
보닌은 칼리만에게서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짜내듯이 말을 꺼냈다.
“야……유스빈. 이제 만족하냐? 더 이상 대화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보닌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새끼, 오늘 은퇴시켜주자. 죽여서.’
그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진심으로 보닌이 칼리만에게 달려들면 주위에 끼칠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일단 이 왕궁은 없어진다고 보면 되겠지.
하지만……
“너도 멀었군.”
나는 보닌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며 웃었다.
이 정도는 예상 내다.
“뭐?”
“보닌. 너도 아직 많이 멀었군.”
보닌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노기가 사라졌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겠지.
“앞으로 두 가지만 약속해라.”
중지와 검지를 펴 보닌 앞으로 내밀었다. 보닌이 방금 전에 한 말을 파악하기 전에 대화를 진행시켜야한다.
“머, 뭐?”
나는 중지를 접었다.
“첫 번째. 지금부터 내가 칼리만과 대화할 때 끼어들고 싶으면 내 허락을 맡아라.”
보닌의 눈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인간주제에 누구……”
보닌이 탁자를 두 손으로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더 빠르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외쳤다.
“앉아, 보닌!”
보닌의 눈이 다시 동그랗게 변하더니 앉은 것도 일어난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행동을 멈췄다. 7년 동안 보닌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내가 보닌에게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나는 접었던 중지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하나 더 늘린다.”
“야, 유스빈, 너…….”
“앉아라.”
보닌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내 말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발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나의 태도가 왜 이러는지 머릿속으로 궁리하고 있겠지.
7년 동안 옆에서 지켜봐온 나다. 이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앉아.”
“…….”
보닌은 여전히 갈등하는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그냥 앉자니 자존심이 반발하고, 그렇다고 일어서자니 나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이대로 뒀다가는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고, 보닌도 짜증을 내겠지. 이제는 달래자.
이번에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나쁜 의도로 뭔가를 한 적이 있나?”
“…….”
보닌은 약간의 간격을 두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날 믿나?”
“…….”
이번에는 위아래로.
다 넘어왔군.
“그러면 앉아. 날 믿고.”
보닌은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방금 전 만큼의 격한 기색은 없다. 자존심 때문에 순순히 따라주는 태도를 보여주기 싫은 거다.
하지만 이내 앉기 싫지만 그래도 앉아준다는 투를 잔뜩 내며 보닌은 자리에 앉았다. 칼리만과 마찬가지로 이쪽도 정신연령은 애다. 이쪽은 실제로 사회경험이 7년 밖에 안 되니 무리도 아니다.
보닌이 자리에 앉고 약간의 뜸을 들이고 나는 중지를 다시 접었다.
“앞으로 우리를 깔보는 말투를 쓰지마라.”
보닌의 기색이 다시 약간 격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곧장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방금 전에 목소리를 높인 보람이 있다.
이번에는 부연 설명을 해주자.
“지금까지는 언젠간 고쳐질 거라 믿고 넘어왔지만 이번기회에 확실하게 걸고 넘어가야겠다. 지금 당장 고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른다.
“분명 우리는 인간이다. 그리고 너는 신이었던 자의 후손이고. 너희 종족에 비해서 인간이 여러모로 못한 면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동료다. 언제까지 동료를 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깔볼 거냐? 우리가 정말로 너보다 열등한 자들인가? 너는 지금까지 너보다 못 한 자들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은 건가? 네가 우리를 대등한 관계로 봐주길 원하는 게 너무 과한 희망인가?”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대답을 독촉하지는 않는다. 칼리만과 다르게 보닌은 이정도로 말하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정신연령도 어리고 난폭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심정은 이해해줄 줄 아니까.
여기에 대해 적당히 생각할 수 있게, 그러나 대답을 독촉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마지막 약속에 대해 말하기 위해 검지를 접었다.
바로 그 때.
“……미안.”
“…….”
이건 예상 못했다.
정말이지……이 녀석은.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고맙군.”
“흥.”
정말이지 같이 다니는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녀석이다.
이 분위기라면 세 번째도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겠다.
난 검지를 폈다가 다시 접으며 말했다.
“앞으로 칼리만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할 때 칼리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해라. 아니면 적어도 마음속으로 셋까지 세고 교정해라. 그게 너에게도 칼리만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아까 연회장에서 한 것을 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더군.”
칼리만도 보닌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자신이 뭔가를 잘못 한 것을 자각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게 되었고, 보닌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인내심이 길러졌다.
조금씩이나마 둘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보닌은 이번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초반에 조금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이걸로 확실하게 대화의 장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자.
칼리만이 어째서 은퇴를 생각하게 됐는지 확실하게 추궁하고, 그 원인이 적당하지 않으면 은퇴를 철회하도록 설득하자. 그 이유가 합당하다면 칼리만을 도와주고.
칼리만은 용사이면서도 우리의 동료니까.
칼리만에게 던질 질문을 정리하며 지금가지 대화에서 소외되었던 칼리만에게로 눈을 돌렸다.
“…….”
“…….”
“…….”
……그 사이에 잠들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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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비유해보는 용사일행의 관계.
유스빈 : 어린 두 자식에 한숨만 늘어나는 엄마
칼리만 : 덜 떨어진 장남.
보닌 : 장남을 부끄러워 하는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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