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백제 금동관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백제의 금동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사례가 약 8건 정도 있습니다. (국은 이양선금동관, 리움금관 등은 제외) 이 중 1개는 웅진백제 시기의 것이고, 나머지 7개는 한성백제 시기의 금동관입니다. 관식의 경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 관식과 지방의 백제 고분에서 발견되는 은제 관식들을 다뤘습니다.
은제 관식을 꽂은 백제 관모의 복원안은 센트룸님의 『백제 관모 복원안』을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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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수록된 백제 관모의 기록-
《북사(北史)》에는 “백제(百濟)의 의복은 고구려(高句麗)와 대략 같다. 조회(朝會)의 배례(拜禮)와 제사(祭祀) 때는 그 모자(冠)의 양쪽에 날개를 붙이고, 군(軍)의 행사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나솔(奈率) 이상은 관(冠)에 은꽃(銀花)을 장식하였고, 장덕(將德)은 자색 띠(紫帶), 시덕(施德)은 검은 띠(皂帶), 고덕(固德)은 적색 띠(赤帶), 계덕(季德)은 청색 띠(靑帶), 대덕(對德)과 문독(文督)은 모두 황색 띠(黃帶), 무독(武督)으로부터 극우(剋虞)까지는 모두 백색 띠(白帶)였다.”라고 이른다.
《수서(隋書)》에는 “백제(百濟)에서는 좌평(佐平)으로부터 장덕(將德)까지는 자색 띠(紫帶), 시덕(施德)은 검은 띠(皂帶), 고덕(固德)은 적색 띠(赤帶), 계덕(季德)은 청색 띠(靑帶), 대덕(對德) 이하는 모두 황색 띠(黃帶), 문독(文督)으로부터 극우(剋虞)까지는 모두 백색 띠(白帶)를 사용하였다. 모자(冠)에 대한 제도는 모두 같지만, 다만 나솔(奈率)이상(以上)은 은꽃(銀花)으로 장식하였다.”라고 이른다.
《당서(唐書)》에는 “백제(百濟), 그 왕은 소매(袖)가 큰 자색 도포(紫袍)와 청색 비단바지(靑錦袴)를 입었으며, 검정색 나직 관모(烏羅冠)에 금꽃(金花) 장식을 하였고, 흰 가죽띠(素皮帶)에 검은 가죽신(烏革履)을 신었다. 관인(官人)들은 모두 비색(緋)으로 옷을 입고, 은꽃(銀花)으로 관모에 장식하였다. 일반인(庶人)들은 비색(緋)과 자색(紫)을 입지 못하였다”고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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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 백제 관모의 3D 복원안은 제작자이신 센트룸님이 스케치업으로 무료 배포를 하고 계십니다. https://blog.naver.com/lnn0909/221326475879 백제 관모가 필요하신 분들은 한번 받아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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