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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몬 크로니클: 개요】
디지털 월드의 용량은 이전부터 염려해왔던 대로 디지몬의 개체 수 증가에 의해, 이미 한계를 맞이하던 참이었다.
이대로 용량이 부족하게 된다면, 디지몬은 물론이고 디지털 월드를 포함한 우주 그 자체가 소멸해버릴 것이다. 관리 프로그램인 이그드라실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대책으로써 프로젝트 아크를 발동한다.
프로젝트 아크.
그것은 바로 이그드라실이 신 세계 뉴 디지털 월드를 만들어내고, 용량이 부족해진 구 디지털 월드는 폐쇄해버린다는 프로젝트다. 그 후 뉴 디지털 월드에는 한정된 수의 디지몬만을 전송시키고, 구 세계에 남은 디지몬은 모두 살처분한다는 내용이다.... 그 무시무시한 죽음의 계획에 많은 디지몬이 반발했지만, 이그드라실은 그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강압적으로 프로젝트 아크를 밀어붙였다.
살처분의 수단으로는, 디지몬을 효율적으로 소멸시키기 위해 만든 바이러스 「X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X프로그램이 살포되면, 구 디지털 월드는 눈깜짝할 사이에 죽음만이 남은 세계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구 세계에 남은 디지몬들은 모두 소거해버리겠다는 게 이그드라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에는 착오가 있었다. 바로 그 X프로그램에 대항해서 X항체라 불리는 면역 데이터를 몸 속에서 만들어 낸, 이른바「X진화」라 불리는 새로운 진화를 이뤄낸 X항체 디지몬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X항체 디지몬들은, X프로그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신세계에 초대받지 못 한 손님들은 뉴 디지털 월드로 이주해왔다.
X항체 디지몬의 존재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이그드라실은, 네트워크 세큐리티 최고 지위에 있는 세큐리티이자 자신의 부하인 「로얄 나이츠」에 어떠한 지령을 내렸다.
신세계에서 X항체 디지몬을 말살시키라는 지령을 받은 로얄 나이츠는 대숙청이라고 말하며, X항체 디지몬들을 소거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대학살이 이뤄지고 있는 한편, X항체 디지몬과는 또다른 존재인 「데크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떤 디지몬에게서 분리된 데이터에 의해 태어났다고 추측되는 데크스는, 디지몬의 디지코어를 끊임없이 섭취하는 괴물로, 피해자들에게선 「죽음 그 자체」라 불리며 두려움을 사곤 했다.
이 사태에, X진화를 이뤄낸 오메가몬X와 듀크몬X가 대처에 나섰다. 그 와중에 오메가몬X와 적대했던 한 디지몬이 13번째 로얄 나이츠 알파몬으로 진화했고, 그렇게 그들은 일시적으로 함께 싸우기로 했다.
거기에 알파몬의 파트너인 인간 소년 코우타, 그와 함께 나타난 오류우몬과 그의 파트너 유우지도 함께 데크스와의 격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유대의 힘으로 훌륭하게 데크스를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 후, 데크스와 맞서 싸웠던 이들은 어딘가로 조용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 디지몬 크로니클 X: 개요 】
프로젝트 아크 사태가 일어난지도 15년이 지났다. 그 기나긴 세월 속에, X프로그램에 침식되어 죽음의 세계가 되었던 구 디지털 월드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리 프로그램인 이그드라실은 구 세계를 관측하면서 살포되었던 X프로그램의 농도가 옅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구 디지털 월드와의 연결을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했던 이그드라실은, 마치 예전에 저질렀던 과오를 인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1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지령을 로얄 나이츠에게 내렸다.
구 디지털 월드를 조사해오도록. 그 명령을 받은 건, 슬레이프몬과 크레니엄몬이었다. 구 세계로 향하는 선발대로 뽑힌 두 성기사는, 이그드라실에게서 X항체를 부여받았다. 기준치보다 떨어졌다곤 해도, 혹시라도 X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을까 싶어서 내린 예방책이었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조사를 마친 슬레이프몬X와 크레니엄몬X는, 구 세계에 도착했을 때 갔던 곳에선 패권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구 세계는 이미 무법지대가 되었다고 보고했다.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 둘에게 구 세계에 다시 파견 임무가 내려졌는데, 이번에는 제스몬도 동행하는 쪽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그리고 임무가 시작됐다. 스승인 간쿠몬에 의해 X항체를 하사받아, X진화를 이룬 제스몬X는, 각지의 분쟁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떤 안건을 생각해냈다. 구 디지털 월드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두고, 배틀 로얄을 벌이자는 계획이었다.
패권 다툼에 그나마 규칙이 생기면서 조금이나마 혼란을 진정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뒤에서는 또다른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배틀 로얄을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지켜보던 루체몬X가, 명계인 다크 에리어와 구 세계를 잇는 게이트를 대량으로 열어버린 것이다. 명계에 갇혀있던 수많은 디지몬들이 그대로 구 세계를 향해 쏟아져나왔다.
이 사태를 보고받은 이그드라실은, 로얄 나이츠 전원에게 긴급 출동 명령을 내렸다.
한편, 구 세계에선 칠대마왕이 각지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참전하기 시작했고, 세계는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칠대마왕 전원이 X진화해버렸다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로얄 나이츠도 그에 맞서 X진화하여, 마침내 양 측의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은 로얄 나이츠 외에도 더 있었는데, 바로 코우타와 유우지, 그리고 그 둘을 태운 알파몬과 오류우몬이었다. 그리고 오메가몬X나 듀크몬X도, 수많은 디지몬들을 이끌고 그 싸움에 참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빛과 어둠의 격돌도 슬슬 최종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칠대마왕 전원의 데이터가 융합된 마신 오그도몬X가 구 디지털 월드에 강림한 것이다. 오그도몬X가 나타남과 동시에 구 디지털 월드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오메가몬X와 알파몬은 자신들의 데이터를 사용해서 구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코우타 일행과 함께 신의 영역인 커넬로 향했다. 그리고, 남겨진 디지몬들은 오그도몬X를 막기 위해 최종 결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The last episode
오그도몬X가 나타난 순간, 하늘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밤하늘과 같은 느낌이 아니라, 하늘의 텍스쳐가 떨어져 나가며 그 너머에 보이는 시커먼 허무의 공간이, 오그도몬X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는 수많은 디아블로몬X들로 뒤덮여버렸다. 자세히 보면 오그도몬X의 몸에서 디아블로몬X가 차례차례 생성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끝이다.」
누군가가 한탄처럼 내뱉었던 그 한 마디는, 어쩌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느낀 감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서울 정도로 절망적인 광경에, 어느 누구 하나 말을 잇지 못 하고 있었다.
오그도몬X의 모습은 다른 모든 이들의 기백을 압도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구름을 뚫을 정도로 거대한 보라빛의 몸체, 그리고 그 엄청난 몸길이만큼이나 긴 여섯 개의 팔로 몇 개나 되는 붉은 대검을 쥐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오그도몬X는 등장한지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총 13체 중에서도 8체나 모인 로얄 나이츠를 전부 무력화시켜버렸다.
전장에 남은 로얄 나이츠는, 후방에서 디아블로몬X의 군단에게 발이 묶인 간쿠몬X와 듀크몬X, 그리고 제스몬X, 이 셋뿐이었다. 그리고 그 세 기사들은 지금, 수많은 디아블로몬X에 의해 서로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
로얄 나이츠가 차례차례 오그도몬X에게 공격받는 모습까진 제스몬X도 똑똑히 보았다.
허나, 일방적인 "유린"은 단 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오그도몬X가 6개의 팔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성기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번갈아가며 오그도몬X에 맞서서 격렬히 싸웠으나,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앞서 덤벼든 동료의 원수도 갚지 못 한 채 간단히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오그도몬X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내지도 못 한 채로....
「어떻게 이런 일이!?」
제스몬X가 보게 된 것은, 오그도몬X에게 맞섰던 디지몬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지고 있는 광경뿐이었다. 소멸은 어찌어찌 피했다고 해도, 최강의 존재라 여겨졌던 성기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쓰러질 줄이야.
만약 제스몬X 본인도 다른 기사들을 도와서 함께 공격해보는 어떨까? 아직 몇몇은 재기 불능까진 가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아니, 아마 제스몬X가 가세한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저쪽에 쓰러져 있는 디지몬들의 수를 늘려줄 뿐이다. 자신의 실력이 미숙하다는 건,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쓰러진 동료를 걱정하고 있을 여유도,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디아블로몬X 군단은 통일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마구잡이로 몰려들며 제스몬X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빠르다.
「이, 자, 식들이!」
일일이 상대하고 있다간 끝이 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려는 듯이, 제스몬X는 등 뒤에 있는 에너지 주먹 택티컬 암즈로 있는 힘껏 공격을 퍼부었다.
철권단죄.
이 기술의 궤도는 마치 태엽과도 같다. 제스몬X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전방위에서 달려드는 디아블로몬X들을 한꺼번에 후려 쳐서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공격에 맞지 않은 놈 하나가, 공중에서 달려들었다.
「아」와 「기」라는 소리밖에 하지 않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달려드는 디아블로몬X는, 그 기다란 꼬리를 휘둘렀다.
.....날 얕보는 거냐!
물론 그 공격 역시 이미 꿰뚫고 있었다. 제스몬X는 전신에 달려있는 검을 자신의 머리 위쪽에 펼쳤다. 자율 방어와 비행 기능을 탑재한 칼날이 총 12자루. 그 12자루 전부가 달려드는 적을 향해 사출되었다.
제스몬X 자신도 그 칼날들과 함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검을 든 양 손을 교차시키고, 필살기의 이름을 외치며 뛰어들었다.
「슈페르트 플뤼겔!」
공중에 떠있던 12자루의 칼날과 제스몬 본인의 대검이 만들어 낸 검의 소용돌이. 참격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며, 디아블로몬X를 꼬리 끝부터 잘게 토막내버렸다. 제스몬X가 디아블로몬X를 가로질러 지나갔을 때 즈음엔, 적은 이미 한 줌의 데이터 조각이 되어있었다.
빌어먹을. 적을 쓰러뜨리긴 했으나, 제스몬X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 했다. 또다른 디아블로몬X들이 대량으로 몰려들어와서, 이미 제스몬X가 서있는 곳까지 들이닥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오그도몬X가 창조한 디아블로몬X는 보통의 궁극체보다도 크게 파워가 떨어진 개체다. 조악한 열화판을 마구잡이로 양산한 거긴 하지만, 그것도 이 정도로 수가 많으면 꽤나 골치 아파진다. 오그도몬X를 막으러 가려 해도, 구더기처럼 몰려들며 대지를 뒤덮어가는 이 악마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갈 순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로얄 나이츠인데 동료와 함께 적장에게 맞서긴 커녕, 그 부하들에게조차 애먹고 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젠 이것 말곤 방법이 없겠어.
끝이 없긴 하지만, 전선에 나설 수 없다면, 적어도 적의 후속 부대를 여기서 막아서자. 제스몬X가 그렇게 결심하고, 마신의 수하인 저 악마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려고 한 바로 그 때.
「왜 그리 축 처져 있는 거냐!」
공중에 떠있는 제스몬X보다도 더 위쪽에서, 대지를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제스몬X가 올려다 보기 전에, 울려퍼지는 폭음과 함께 빛의 기둥이 바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지상에 있던 디아블로몬X는 그 빛에 불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보다, 제스몬X의 시선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그림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부님 오셨으니까 좀 웃으면서 맞이해봐라, 이 멍청한 제자 녀석아!」
그 시선 끝에는 잇몸을 훤히 드러내며 웃고 있는 간쿠몬X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듀크몬X의 왼다리에 매달려 있는 채였지만.
제스몬X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 그의 스승은 다른 사람에 다리에 매달린 상태로 기술을 날렸단 소리가 된다. 그리고 잘못 본 게 아니란 걸 말해주는 듯이, 듀크몬X는 남의 다리에 매달린 채 이목을 끌고 있는 간쿠몬X에게 성가시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쏘겠다는 신호도 주지 않고 갑자기 기술을 날려대는 건 자제해줬으면 하는군, 간쿠몬. 그 반동으로 내 다리를 뽑아버릴 셈이었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네놈을 떨어뜨려주겠다.」
「하하하, 미안하구만! 제자가 꼬맹이 마냥 움츠러 든 꼬라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여버리더군!」
스승은 웃으면서, 자기가 매달려 있는 다리를 몇 번이고 두들겨 대고 있었다.
「어이, 제스몬! 네녀석 때문에 우리 듀크몬 대선배님의 심기가 불편해졌잖냐! 어떻게든 해봐라!」
「하하하....완전 엉망진창이네.」
묘하게 달아오른 간쿠몬X를 보며 뭔가 허탈해진 제스몬X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스승이 디아블로몬X의 무리를 정면에서 작살내버린 자리엔, 커다란 구덩이만 하나 남아있었다. 제스몬X는 간쿠몬X. 듀크몬X와 함께 그 구덩이의 중심에 착지했다.
주변에는 아직 악마 놈들이 득실댔지만, 아직은 이쪽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 이외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스승의 기술을 통해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낀 적들은, 아까 전과는 달리 전황을 신중하게 파악하기로 한 모양이다.
만약 다시 몰려온다고 해도, 이제 이쪽엔 역전의 용사가 둘이나 있다. 제스몬X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제스몬X의 가슴 속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샘솟고 있었다.
....나도, 저 두 사람처럼 강했다면.
디아블로몬X들을 압도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 일도 없었을 텐데. 나에게도 스승님처럼,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야, 임마!」
「아야!」
이마를 타고 흘러오는 통증을 느낌과 함께,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상체가 절로 숙여졌다. 간쿠몬X에게 꿀밤을 맞았단 걸 인지하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짓이야, 사부!」
「또 떨떠름해 하는 표정이나 짓고 말이야. 뭐, 어차피 또 『나도 좀 더 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나, 『이렇게 약해선 누군가를 구할 수 없어』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
정곡을 찔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멍청한 놈아! 그런 쓰잘데기 없는 고민이나 하고 말이야. 네녀석, 설마 혼자서 싸우기라도 할 셈이냐?!」
「하지만 사부는 저 녀석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
「사부님 말씀에 토달지 마라!」
말을 꺼내자마자 칼같이 잘려서, 입도 뻥끗 해선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알겠냐, 제스몬. 난 말이다, 네녀석을 한 명의 어엿한 성기사라 믿고, 여기까지 온 거란 말이다.」
「여기까지 널 끌고 온 건 나지만 말이지.」
듀크몬X가 불평하며 중얼거리자, 그걸 들은 간쿠몬X는 폭소하듯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 듀크몬, 네 말이 맞다! 내 맘을 잘 알아주는구만!」
「난 지금 빈정거리고 있는 거다만.....」
「어이쿠야, 날카롭기도 하구만? 하지만 생각해봐, 난 날 수 없다고. 듀크몬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저 열화판 디아블로몬들과 계속 뒹굴고 있었을 거다.」
그 말을 들은 제스몬X는 조심스럽게 태클을 걸었다.
「.....사부도 날 수 있지 않아?」
「응? 아, 그랬던가? 하하하! 뭐, 그런 자잘한 부분은 물고 늘어지지 마라! 스스로 나는 것보다 이 녀석에게 매달려서 오는 게 더 빠르니까 말이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맙다 말하는 간쿠몬X를 보며, 듀크몬X는 시선을 돌리며 말을 아꼈다. 저 고지식한 듀크몬도, 이 사람 좋은 간쿠몬X 앞에선 아무래도 답이 없는 모양이다.
「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다.」
스승이 몸을 숙였다 폈다 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나는 대신 친구 놈에게 매달려 온 것처럼, 잘하지 못 하는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녀석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얘기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싶을 땐 온 힘을 다해 부딪히면 되는 거고. 개인주의라며 야유를 받기도 하는 우리 로얄 나이츠지만, 지금은 함께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
「네놈은 다른 디지몬들처럼 오그도몬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 싸우러 가고 싶었지?」
반론하고 싶었지만 스승의 말을 자를 순 없었다. 그리고 만약 디아블로몬들을 내버려둔 채로 오그도몬에게 갔다면,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당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미 제스몬의 그런 나약한 생각을 꿰뚫어 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했던 거냐?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일이 더 잘 풀렸을 텐데 라고 말이야.」
「그게, 틀린 얘긴 아니잖아.」
좀 더 강했더라면 이 상황을 돌파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네놈의 고민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허나, 전제가 틀렸단 생각은 못 해본 거냐? 아까 전에도 듣지 않았냐?」
혼자서 싸울 셈이냐는 걸 말하는 건가.
「그렇지 않나, 듀크몬?」
제스몬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자, 스승에게 화제를 이어받은 듀크몬X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스승의 말대로다, 제스몬.」
그렇게 스승의 말을 이어받아서 이야기를 계속하는 듀크몬X였다.
「나는.....아니, 우리들은, 네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네 스승과 함께 여기까지 찾아온 거다.」
「내 힘이 필요하다고?」
「그래, 순식간에 몇이나 되는 동료들이 당해버렸다. 남은 전력은, 성기사 중에서도 여기 있는 우리 셋 뿐이지. 어째서라고 생각하나? 제스몬, 넌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알고 있나?」
제스몬X는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됐는지 라는 질문을 듣자, 그제야 의문을 느낀 것이다. 분명 오그도몬X는 강하다. 하지만, 로얄 나이츠도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강한 이들이다.
디지몬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하자면, 최강이라는 호칭에 가장 가까운 이들만이 모인 게 바로 로얄 나이츠다.
.....그런 성기사들 8체가 상대도 되지 않았다고?
듣고 보니 처음엔 느끼지 못 했던「어째서 이렇게 됐지」라는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스몬X는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진 알지 못 했다.
제스몬X가 혼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이제 다 떠올렸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지, 듀크몬X는 다시금 읊조리기 시작했다.
「애시당초, 우리들의 데이터 구조는 저기 있는 괴물 놈과 싸우는 걸 상정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디아블로몬 X를 무한대로 만들어내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계의 멸망을 가속시키는 오그도몬X의 데이터는, 이미 디지몬이 아닌 시스템(신)의 영역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단 거다.」
물론 같은 신이라고 해도, 오그도몬과 이그드라실은 신으로서의 성질은 완전히 정반대이긴 하지만.
「네가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으니까. 상대는 애당초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게 기본 전제로 깔려있는 놈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쪽은 너무나 많은 전력을 잃고 말았다. 로얄 나이츠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개인주의를 고집할 뿐이라고 투덜대며, 듀크몬X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힘을 합쳐서 도전한다면 신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칼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네 스승이 말했었지?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은 팀으로 활동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제스몬.」
「그 말대로다. 우리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나눠서 한다면, 분명 돌파구가 생길 거다.」
「이런 나도....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디아블로몬X에게 발목이나 잡히는 나라도, 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있고 말고.」
듀크몬X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간쿠몬X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도, 오직 너밖에 할 수 없는 특별한 임무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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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도몬X의 거대한 신체가, 제스몬X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렇게까지 거리를 좁힌 것도 아닐 텐데도, 시야 전체가 모조리 보라색으로 채워질 만큼 저 괴물의 덩치는 거대했다.
여지저기에서 저스티몬X나 위자몬X가 이끄는 증원부대가, 오그도몬X에게 한 방이라도 먹이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디아블로몬X가 적들을 막기 위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제스몬X는 지금, 듀크몬X의 작전에 따라, 공중에서 홀로 오그도몬X를 상대하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슬렸던 디아블로몬X도,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뿌리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놈들에겐 비행능력이 없기 때문에, 날아서 움직인다면 쫓아올 수단이 없다.
「하지만, 정말 생각처럼 잘 풀릴까....」
스승님이나 듀크몬은 분명 힘을 합쳐 싸우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자마자 제스몬X에게 내려진 지시는 다름아닌 단독행동이었다.
젊은 성기사는 불안을 떨쳐내지 못 하고 있었다. 스승이 「특별한 임무」라고 말했으니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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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도몬X의 데이터 구조는 이그드라실과 꼭 닮았다. 쉽게 말해 디지몬은 상처입힐 수 없다는 기능이 생겼기에, 디지털 월드의 물리법칙 상 디지몬으로는 상대할 수 게 없게 된 거지. 그 특성은 이모털 프로그램(파괴 불능의 특성)이라 불린다」
라고 듀크몬X는 설명했다.
그런 상대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반론하려던 차에, 스승이 먼저 대답을 가로챘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로 네녀석의 역할이다. 네 능력인 아우스 제네릭스로 말이지.」
아우스 제네릭스란, 제스몬이 X진화하기 전부터 갖고 있던 특수 능력의 이름이다. 그 능력은 제스몬 자신의 데이터를 일시적으로 고쳐 써서, 한계를 넘는 운동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중요한 건 신체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 아니다. 그 기술을 썼을 때의 넌 "디지털 월드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존재가 된단 점이 핵심이다.」
즉, 아우스 제네릭스를 쓰면 물리법칙인 파괴불능성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스몬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을 벨 수 있는 칼이 될 수 있단 것이다.
「디지몬인 네 공격이 먹혔다는 사실과, 놈이 가진 파괴불능성의 성질은 완벽하게 모순된다. 그 모순이 일어났을 때, 놈의 디지코어는 분명 에러를 일으킬 거다.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턴 우리들에게도 나설 차례가 오는 거다.」
아주 사소한 예외라 할지라도, 오차가 생긴다면 오그도몬X의 디지코어는 계산 착오의 원인 중 하나인 파괴불능성을 버릴 수밖에 없을 거다. 프로그램인 이상, 모순을 안은 채 활동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공격으로도 놈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될 거란 얘기지.」
오그도몬X의 파괴불능성을 마비시키기 전까진, 간쿠몬X와 듀크몬X는 전황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바꿀 수 있도록 다른 디지몬들과 힘을 합쳐서 디아블로몬X의 수를 최대한 줄여둔다.
확실히,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기술이 없는 제스몬X보단, 듀크몬X나 간쿠몬X 쪽이 디아블로몬X를 격퇴하기에 더 효율이 좋을 것이다. 그 사실은 좀 전의 전투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
제스몬X의 역할은 놈의 몸에 상처를 내서 "파괴불능성을 타파하는 것"이라고, 작전을 짤 때 제스몬X는 들었다.
솔직히, 아우스 제네릭스를 쓴다고 정말 오그도몬X에게 공격이 먹힐지는 장담할 수도 없었고, 설령 상처를 입힌다 해도 예상처럼 파괴불능성이 마비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정말 방법이 없어.」
제스몬X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해준 이들이 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단 걸 가르쳐준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로얄 나이츠이기 이전에 간쿠몬의 제자라는 이름이 울고 말 테니까.
「아우스!」
이 능력은, 발동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능력의 이름을 말하면 발동된다. 일단 발동만 된다면 싸움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저 괴물같은 오그도몬X도 분명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제네, 윽.....!?」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가 아우스 제네릭스의 발동을 저지했다. 물리적으로 저지된 게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리 없는 이가 나타난 바람에, 심리적으로 동요했던 탓이다.
비행능력이 없을 터인 디아블로몬X 1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공중에서 날아들면서 말이다.
갑자기 나타난 디아블로몬X와 마주하게 된 제스몬X는, 자기도 모르게 기술이 발동되는 걸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걸 보고, 눈앞의 악마가 킬킬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팀 플레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너희 성기사 놈들은 정말이지, 날 즐겁게 해주는 재능이 있구나. 네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 목소리를 들은 제스몬X는, 코 앞에 들이닥친 악마의 정체가 누군지 깨달았다. 지금 마주 보고 있는 상대는 디아블로몬X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내면은 디아블로몬이 아닌 다른 인물이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착각할 리가 없었다. 스승인 간쿠몬을 쓰러뜨린 상대. 그리고, 제스몬에게 어떠한 정의관을 갖고 있는지 물어왔던 유일한 상대.
「루체몬!」
오그도몬X에게 집어삼켜졌을 터인, 오만을 담당하는 마왕의 이름. 그 이름을 들은 디아블로몬X, 아니, 루체몬X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에 수긍하는 듯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정말이지, 흥을 깨는 데에 재주가 있구나. 하하, 뭐, 좋다. 신이 된 몸으로서, 그 정도는 관대하게 넘어가주지.」
「신이라고....? 네녀석,, 설마!」
「그래, 이 디아블로몬의 육체는 나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 네놈들이 그렇게도 우러러보고 있는 저 오그도몬X가 곧 나의 본체. 이 저주받은 디지털 월드에 강림한, 세계에 파멸과 창조를 내릴 신 그 자체다!」
말도 안 돼. 너무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그런 사소한 한 마디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제스몬은, 저 거대한 디지몬을 자연재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루체몬도 그 재해에 휘말려 통째로 먹혀버리고 만 피해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전 루체몬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 이 사태가, 단 한 명의 디지몬이 계획적으로 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지금 이 상황이 네가 바라던, 다툼 없는 세계를 실현시킬 방법이라는 거냐!?」
「그래,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별 볼 일 없는 네녀석의 정의와는 다른, 나의 대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디아블로몬X의 얼굴을 한 루체몬X가, 다른 디아블로몬들과 간쿠몬X 일행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우스 제네릭스라고 했던가?」
「그것도 다 듣고 있었던 거냐?!」
「물론이지. 평범한 디아블로몬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지금 이 놈들은 내 몸의 일부나 다름없지. 그렇기에 날지 못 할 이유도 없고, 네놈들의 작전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이유도 없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어야 나중에 그 점을 이용해서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까, 일부러 디아블로몬X는 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행동한 것뿐이었다. 디아블로몬의 악마같은 얼굴이, 아까보다도 더 괴악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전의 핵심인 네녀석의 그 성가신 능력은 나조차 아직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유일한 걸림돌이다.」
그리고, 루체몬은 웃으면서 아래를 가리키며, 제스몬의 시선을 이끌었다.
「그렇기에, 그 작전이 성공하게 내버려둘 순 없다.」
「너 이 자식....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네녀석의 정의는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어디, 그럼 구할 수 있다면 구해보거라.」
루체몬의 손가락이 가리킨 끝에는, 수많은 디아블로몬들과 뒤엉켜 있는 간쿠몬X의 모습이 있었다. 스승은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도 전혀 고전하지 않고, 지금도 적들을 있는 힘껏 깨부수고 있었다.
「네녀석이 경애하는 그 스승이란 놈을 말이지!」
그러나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던 전황은, 루체몬의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뒤집혀버렸다. 분명 쓰러졌을 터인 디아블로몬X들이 일어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
간쿠몬X는 보았다.
수많은 디아블로몬X가 모여서, 서로의 몸을 이어붙여가며 형태를 바꿔가고, 한 자루의 거대한 검으로 변하는 순간을.
그것은, 틀림없이 오그도몬X가 쥐고 있는 검과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마치 지면에서 오그도몬X의 팔이 튀어나온 것같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 간쿠몬X는 잠시 멍하니 서있었고, 악마의 검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대지에서 솟아난 팔이 검을 휘둘러서, 허공을 베어갈랐다. 그 공격의 궤도는, 틀림없이 간쿠몬X를 노리고 있었다.
.....이걸로 끝인가. 죽음을 앞둔 상황이란 건 의외로 싱겁구만.
체감상,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적의 군세가 검으로 변해서, 어마무시한 속도로 참격을 날린다니,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달인이라고 해도 상상도 못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간쿠몬X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아직 작전은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 한 이 시점에 말이다.
....수련이 부족했던 걸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단련 부족을 원망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며 팔에 힘을 빼고 바이저 안쪽에 가려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음?」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있어도 몸이 갈려나가는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그 찰나의 순간이란, 원래 이다지도 길게 느껴지는 걸까. 소리란 소리도 전부 사라져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죽음을 맞은 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간쿠몬X는 슬쩍 감고 있던 눈을 떠보았다.
「휴, 위험할 뻔....했잖아, 사부.」
그리고 그 앞에는, 자신의 애제자가 몸을 던져서 저 흉흉한 대검을 막아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저 거대한 칼날은 제스몬X의 육체를 베어내기 위해, 왼쪽 어깨부터 가슴팍까지 깊숙히 뚫고 들어가있었다.
그리고 제자는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 후,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에 남아있는 건, 그 모습을 보고 달려온 듀크몬X가 악마가 휘두른 그 검을 부러뜨리는 광경뿐이었다.
***
아아, 주마등이라는 건 정말 존재하는 거였구나.
***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간쿠몬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던 당시, 제스몬은 아직 성장기인 헉몬이었다. 그 후, 그가 헉몬을 제자로 기르기로 했던 것이,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 계기였다.
그 결정은 헉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간쿠몬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사안이었지만, 혼자서 살아왔던 헉몬은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헉몬은, 스승에게 단련받기 시작했다. 간쿠몬의 여행에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가끔씩 시스터몬들의 도움도 받아가며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숙기에 완전체로 진화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급속도로 진화해서 궁극체에 도달한 건, 디지몬이라는 종족으로서는 좀 특별한 케이스였던 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던 디지털 몬스터라는 존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디지몬은 진화할 때마다 몸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가며, 전에 있던 이름도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언제나 옳았다. 그렇게 느껴왔던 제스몬이, 간쿠몬이 살아가는 방식을 동경하게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곤란해 하는 이가 있다면, 구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그게 내 정의야.」
그리고 진화를 거듭하며 마침내 궁극체가 되었을 때, 제스몬은 성기사가 되었고, 그렇게 꿈꾸던 대로 간쿠몬과 같은 뜻을 가진 로얄 나이츠의 자리에 올랐다.
「이 멍청한 제자 놈아. 그러면 안 되잖냐. 누군가를 보고 배운 정의가 아니라, 너 자신만의 정의를 생각해보란 말이다. 그걸 찾기 전까진, 난 너를 한 사람의 로얄 나이츠로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간쿠몬이 그렇게 내뱉은 건 솔직히 충격이었다. 자신이 로얄 나이츠가 되는 건 간쿠몬도 바랐던 일이 아니었던가?
침울해 하고 있던 제스몬에게, 듀크몬이 「네가 로얄 나이츠로 임명받는 게 결정됐을 때 가장 기뻐했던 건 간쿠몬이었다.」고 말하며 격려해준 건 정말 예상치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 녀석은 네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믿고 걸어나가길 바랐던 거다, 제스몬.」
「누군가를 구하고 싶단 것만으로는....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건 아니지, 아니고 말고. 그 녀석은, 그러니까 간쿠몬은 그저, 앞으로 네 앞에 그 정의보다도 좀 더 커다란 운명이 닥쳐올 거라는 걸 직감한 걸 거다. 스승인 자신보다도 훨씬 큰 힘을 품고 있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너에게 말이다.」
「.....?」
「지금 당장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지금의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라.」
언젠가, 자신의 운명을 통감하는 날이 올 때까지.
그 날의 듀크몬은 그 말을 끝으로, 그 대화를 마쳤다.
그 후, 구 디지털 월드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연 배틀 로얄은 그럭저럭 잘 풀려가고 있다고, 제스몬X는 안심하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날뛰기만 하던 디지몬들에게 규칙을 내려서 무의미한 분쟁이 멈춘다면, 구 세계는 다시 평화를 되찾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제스몬X는 깨달았다. 바른 길을 걷는 이가 있다면, 그렇지 못 한 길을 택한 이들도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말이다.
구 세계에 있는 다크 에리어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발바몬X와 그의 일행이 나타난 순간,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버렸다. 다크 에리어에 갇혀 있던 디지몬들을 풀어버린 칠대마왕. 그들을 막기 위해 로얄 나이츠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칠대마왕과 성기사의 전면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구 세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오만의 마왕 루체몬X와 마주했을 때였다.
그 때, 제스몬X는 듀크몬에게 들었던 「운명」이라는 것을, 루체몬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었다.
***
나 루체몬이 제스몬과 만나게 된 건 필시 필연이었겠지.
녀석과 마주하고 대화를 처음 나눴던 건, 베르제브몬X와 간쿠몬이 서로 웃으며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크하하하! 제법이잖나, 형씨!」
「하하하! 네놈도 실력이 좋구만! 마왕따윈 때려치우고 성기사가 되어보는 건 어떠냐!?」
「그건 사양하지! 미안하지만 그런 딱딱한 일은 딱 질색이거든!」
간쿠몬과의 싸움이 너무 시끄러워서 베르제브몬X와 싸움 상대를 바꿨건만,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질 뿐이었다. 저 두 놈은 소리 지르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저 귀에 거슬리는 싸움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볼품없다는 감상만 들었다.
품위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저 두 놈의 싸움이 이뤄지는 걸 보고 있자니, 내 마음엔 디지털 몬스터는 투쟁 본능에 저주받은 종족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졌다.
「네녀석은 아무래도 저런 것들과는 다른 부류인 모양이구나, 제스몬이여.」
저 둘의 저급한 싸움질에는 관심 없었다. 내가 시선을 눈 앞에 있는 제스몬X에게로 옮기자, 녀석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간신히 자세를 갖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지.」
「네녀석은 대화가 통하는 녀석일 것 같다는 얘기다.」
한 명의 성기사로서 배틀 로얄을 벌인 건 좋은 선택이었다. 무뢰배들로 인해 혼잡해진 세상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법지대였던 그들의 싸움에 규칙을 정해 내리는 것은 루체몬X가 보기에도 최선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로얄 나이츠로서의 지위와 실력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제스몬X에게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아마 제스몬X가 전부터 투쟁이라는 방식에 대해 다른 디지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으로 보았을 때, 제스몬X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녀석일 것이다. 만일 나도 같은 지위를 갖고 있었다면 녀석과 비슷한 방침을 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나와 닮았지만 다른 길을 걷게 된 저 녀석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은 감정이었다.
내 안에서 제스몬X에 대한 평가가 오를 수록, 나는 조금씩 가슴을 욱죄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녀석은 나처럼 젊은 시절부터 다른 이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던 자다.
그러나 나와는 다르게 이그드라실에게 성기사로 인정받고, 스스로가 정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날이 갈 수록 그런 제스몬X에게 내가 느낌 감정은, 질투심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옛날, 내가 아직 신의 영역 커늘에 머물렀던 시절, 디지털 월드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나는 이그드라실에게 진언한 바가 있었다.
그 내용은 저 무의미한 분쟁을 멈추기 위해, 모든 디지몬들의 디지코어에서 투쟁 본능을 없애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세계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신 이그드라실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 안건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디지몬의 「투쟁본능」을 「저주」라고 주장하며, 뜻을 함께할 해방군을 조직하여 이그드라실에게 반역을 일으켰다. 그리고, 결과는 참담하게도 나의 패배로 끝났다.
그 후, 얌전히 소거시켜서 끝내기엔 내 죄가 너무 크다고 여겼던 이그드라실은, 나에게 신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당하는 처벌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크 에리어의 최심부인 코퀴토스까지 떨어졌고, 그 곳에서 마왕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왕이라 불리며 등한시 되었다 한들, 내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저 어리석은 투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한탄스러웠다. 모두가 평등하게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나?」
「그건....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다면 어째서, 네놈은 로얄 나이츠같은 곳에 몸담고 있는 것이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로얄 나이츠야말로 분쟁의 원흉이다. 천계에서 추방되기 이전부터 나는 그러한 사례를 몇 번이고 보아왔다. 지금은 구 세계를 지키겠다며 정의를 자처하고 있지만, 프로젝트 아크 당시엔 숙청이라는 명목으로 무고한 생명을 수도 없이 해치지 않았는가?
결국 로얄 나이츠라 해봐야 서로 피를 흘리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줄도 모르는 오합지졸이 아니느냐? 네녀석은 대체 무엇을 위해 성기사를 자처하며 싸움에 임해온 것이냐?」
「이, 입 다물어! 난 그저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싸움을 일으키는 거라면 너도 마찬가지잖아!?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싶다는 녀석이 왜 싸움을 일으키고 있는 거야!」
역시 동요하고 있군.
이는 제스몬X 역시, 자신이 맡고 있는 성기사 라는 역할에 대해 적잖게 의문을 품고 있었다는 증거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고작 그것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저 정도 되는 녀석이 갖고 있는 포부가, 고작 그 정도일 리가 없다. 만약 그런 녀석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거다.
저 녀석은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녀석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오직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제스몬, 나는 말이다. 누구도 예외없이 투쟁본능이라는 이름의 저주에 사로잡혀버린, 심지어 그 사실에 반감을 품은 나 자신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여 싸우는 걸 멈출 수 없는 이 세계를 구원해주고 싶은 거다.」
허나, 그 저주는 디지털 몬스터라는 종족의 본능. 그렇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 세계 자체를 근본부터 다시 짜맞출 수밖에 없다. 그 말은 즉슨, 그 저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한 번은 리셋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이 손 또한 이미 저주받았다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 바람을 이룰 것이니라. 설령 그것을 오만하다며 천시받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숙원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무의미한 싸움을 불러일으킬 뿐인 로얄 나이츠는 척살할 것이다!」
물론, 저 녀석은 다르다. 나는 처음으로 찾아낸,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줄지도 모르는 이를 앞에 두고,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감을 느꼈다.
「제스몬, 네녀석도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있지 않느냐?!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바란다면 나와 함께 패도를 걷자꾸나, 젊은 성기사여!」
***
나는, 루체몬X가 손바닥에서 화염구를 쏘는 걸 보았다.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쉽게 피할 수 있을 만큼 형편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빈틈투성이인 공격이나 쏘는 모습을 뻔히 보았음에도, 거기에 반격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걸까.
살기 없는 그 일격을 피한 직후,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대가 그럴 거라고 혼자 멋대로 생각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루체몬X로부터 "네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루체몬X가 자신의 이상에 대해 말하는 그 꿈같은 이야기에서, 나는 거기 나온 말 중 일부 몇 가지는 크게 끌리는 내용들이 있었다.
나도 명색이 성기사다. 싸움 없는 평화로운 세계, 그런 세계를 실제로 만들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 내용에 전부 공감할 수는 없었다. 루체몬X의 이상 자체는 훌륭하지만, 그걸 실현시키고자 한 방금의 연설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아직 성기사가 되기 전. 스승과 함께 여행하면서 여러 디지몬들과 인연을 맺어왔던 나는, 저 녀석의 방식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성기사다. 내 나름대로 평화를 바라며, 정의를 가슴에 품고, 이 자리에 오르는 걸 택했다. 그렇기에, 많은 디지몬이 고통받게 되는 루체몬X의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설령 그 방식으로 내가 꿈꾸던 이상향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수많은 친구들이 피를 흘리게 되는 그런 방법이라면.
나는 조용히, 등 뒤에 있는 택티컬 암즈를 펼쳐 들었다. 저 녀석은 검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난 널 막겠어, 루체몬.」
「뭐라고?」
「확실히, 네가 말하고자 하는 건 알겠어. 싸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겠단 생각은 정말 멋지다고도 생각해....그러니까 나도 네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만 너와는 달라.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너와 같은 꿈을, 네가 바랐던 정의를 실현시키겠어.
「하지만 너와 함께 하진 않겠어. 이건 로얄 나이츠라서 내린 결정도, 성기사라서 내린 결정도 아니야. 나는 한 명의 디지몬으로서, 네가 택한 방법까지는 인정할 순 없어....!」
***
그래, 난 찾아낸 거야. 내 나름의....오직 나만의 정의를.
하지만, 이미 늦은 걸지도 모르겠네. 아마 난 이제 곧 저 녀석에게 죽겠지. 그렇다면 하다못해 사부만이라도 구하고 죽겠어.
미련따윈 없어. 사부라면 분명, 나 대신 저 녀석을 막아줄 테니까.
***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통증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아무래도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기절해버렸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들어왔던 건, 자신의 상체를 들어올려서 일으켜 세우고 있는 간쿠몬X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듀크몬X와 다른 디지몬들이, 자신과 스승을 중심에 에워싸고 주변에 있는 디아블로몬X들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사부를 지키려고 했는데.
스승에게 날아오는 공격에 대신 맞았다. 사실은 그 공격을 막아서 사부를 지키려고 했었지만, 꼴사납게도 이렇게 되어버렸다. 루체몬의 예상대로, 자신은 이 전장에서 버티지 못 하고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몸은 고통으로 몸부림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사부.....죄송합니다....」
필사적으로 짜낸 목소리는, 할배몬처럼 팍 쉬어있었다.
「바보같은 놈.....죄송할 짓은 애초에 하지 말란 말이다....」
그걸 들은 간쿠몬도,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제스몬X에게 대답했다.
「사부, 예전에 나한테 말해줬었지....?」
누군가를 보고 배운 정의가 아니라, 너 자신만의 정의를 생각해봐라.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스승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다는 것처럼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찾았어....찾았다구....」
「알고 있다. 저 빌어처먹을 마왕 놈과 만난 후부터, 네 눈빛은 완전히 달라진 걸 봤으니 말이다.」
그저 누군가를 지켜만 주고 끝내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위험에 말려들 수 있는 싸움 자체를 멈추기 위해 맞서 싸우고 싶어.
누군가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생겨나는 올바르지 못 한 싸움을 말이야.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은 녀석한테도 굳이 도움의 손길을 뻗으러 오다니, 내 가르침이라고 해서 그렇게 유도리 없이 따를 필욘 없단 말이다....죽을 수도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뛰어든 거냐, 바보같은 놈....」
「하하....죽기 직전인 사람한테까지 설교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 약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네가 바보란 거다, 이 멍청한 제자 놈아....죽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간쿠몬X가, 제스몬X의 오른손을 강하게 움켜쥔다.
「넌 여기서 죽지 않는다, 알겠나? 지금부터 내가 가진 X항체를, 다시 한 번 더 너에게 넘겨줄 거다.」
아마도, 그는 X항체로 상처를 회복시키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X항체를 과다하게 주입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X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건 지금 신경쓰지 마라. 복잡한 얘기라 나도 잘은 모른다만, 거부반응이란 건 각자 다른 디지몬의 몸에서 생겨난 X항체를 한 명의 몸에 넣을 때 일어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너에게 건넨다면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나.」
확실히, 제스몬X가 갖고 있는 X항체는 원래 간쿠몬에게 넘겨받은 것이다.
즉, 원래라면 존재할 리 없는 "동일한 개체의 몸에서 나온 2번째 X항체"를 제스몬X의 몸에 넣는다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뭐, 그렇게 하면 난 X항체가 없는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버리겠다만.....그걸로 널 살릴 수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거지.」
「사부....」
「스스로의 정의를 깨달은 너라면, 안심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길 수 있다.」
스승이 제스몬X의 오른손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자, 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제스몬X의 손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손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열기는, X항체의 전이가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알겠나? 나처럼 갑자기 큰 힘이 생겼다고 허둥거리지 마라.」
그 붉은색의 빛은 서서히 강해지면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평소 네가 하던대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향해 나아가거라.」
마치 간쿠몬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듯한 감각이,
「앞으로 로얄 나이츠는, 네가 짊어지고 가는 거다.」
진화의 빛이 온몸을 감싸안기 시작했다.
「으윽, 으아아아아악!!」
***
그 광경은 전세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졌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지금까지 알던 제스몬의 모습이 아니었다. 붉은색과 순백이 조화를 이룬 갑옷을 입고 있고, 양 팔에는 황금색의 건틀릿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뻗어나오는 빛의 날개는 등불과 같이 빛을 뿜으며, 제스몬이 X항체를 초월한 새로운 힘에 눈을 떴다는 사실을,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제스몬GX.
그 새로운 모습을 본 누군가가, 그를 세상 그 무엇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자 '제네릭스'라고 불렀다.
***
제스몬GX가 춤을 추듯이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날개에서 발산되는 빛이 하늘 높은 곳에서, 오그도몬X에게 맞서고 있는 디지몬들을 향해 내려 앉았다. 그 빛을 쬔 디지몬들의 상처는 모두 나았고, 싸움 속에서 소진되었던 힘도 전부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그도몬X에게 당해서 쓰러져 있던 로얄 나이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스....모....온....네녀서어어억!!」
오그도몬X, 아니, 루체몬X의 거대한 육체가 내지르는 포효에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전장에 이변이 생겼음을 눈치챈 루체몬X는,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오그도몬X의 육체를 움직여서 제스몬GX에게 공격을 가했다. 참격이다. 6개의 팔이 휘두르는 검은 하늘을, 그리고 소리를 가르면서 목표물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제스몬GX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내가 말했을 텐데, 루체몬.」
내가 널 막겠다고 말이야. 그 때 했던 말이 거짓이나 허세가 아니란 걸,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주겠어.
휘두른 칼은 제스몬GX의 몸을 관통하지 못 했다. 아니,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제스몬GX의 몸에 닿기 직전에 멈춰버렸다.
「이건....파괴불능성?!」
반은 정답이지만, 조금 다르거든. 제스몬GX는 적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아우스 제네릭스다. 지금의 나는, 세계의 어떤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거든.」
물론, 아까 전까지의 제스몬이었다면 파괴불능성과 같은 성질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된 것은, GX의 힘이 지금까지의 제스몬이 갖고 있던 능력을 크게 뛰어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거냐....? 웃기지도 않은 짓은 작작 해라!」
방금 전까지 냉정했던 오그도몬X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지금 이 곳에 있는 것은 오그도몬X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인, 이성을 잃어버리고 달려드는 루체몬X였다.
「죄다 짓밟아버려라, 디아블로몬!」
그 루체몬X가, 지상에 있는 꼭두각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주위의 디지몬들과 계속 싸우고 있던 디아블로몬X 군단이, 갑자기 활기를 띠며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아까보다도 더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제스몬GX가 한 마디를 조용히 읊조린 순간,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빛이 아까보다도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디아블로몬X와 싸우고 있던 디지몬들의 몸이, 제스몬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아우스 제네릭스는 나 혼자만을 위한 힘이 아니야....」
디아블로몬X의 공격은 전부 튕겨져 나갔고, 되돌아간 칼날은 악마들을 순식간에 소멸시켜버렸다. 마치, 모든 디지몬들이 제스몬GX가 된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이 힘은 우리 모두의 힘이 되었다!」
지상에서 일제히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제스몬GX의 날개가 더 밝게 빛을 내고, 더 넓게 펼쳐졌다.
「.....왜, 냐..... 어째서냐....」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와 함께 너와 싸우겠어! 너만큼은 반드시 내가 막고 말겠다!」
제스몬GX와 함께, 별동대로 활동하던 오메가몬X와 알파몬도 날아들었다. 로얄 나이츠도, 그 밖의 다른 디지몬들도. 구 디지털 월드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도, 다크 에리어에서 나온 이들도.
「너와 같은 꿈을 갖게 되면서, 내가 깨달은 사실이 있어. 그리고 그걸 너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매그너몬X와 듀나스몬X가 힘을 합쳐서 오그도몬X의 첫번째 팔을 잘랐다.
「모든 다툼이 어리석은 건 아니야!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싸우고 있던 녀석들이, 지금은 이렇게 너를 막기 위해서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잖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선 부딪혀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충돌까지 모두 없애야 할 필요는 없다. 제스몬GX의 외침에 맞춰서, 슬레이프몬X와 크레니엄몬X가 2번째 팔을.
「투쟁본능이 저주라고? 그런 생각에,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절망에 빠졌기에 너는 마왕이 된 거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말한 것처럼 모든 싸움을 없앤다는 건, 서로 맞부딪히면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전부 부정하겠다는 말이잖아! 그런 극단적인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어!
왜냐하면.....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 다른 것이 있거나 이해하지 못 한 부분들을 직접 부딪혀가며 배워오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들은 더 "진화"할 수 있는 거잖아!」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3번쨰의 팔은 로드나이트몬X와 두프트몬X가.
「크윽....하찮은 성기사 놈들이, 감히 신의 팔을!」
그렇게 차례차례 팔이 잘려나가던 중, 루체몬X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오그도몬X가 노성을 질렀다. 그리고, 주변의 디지몬들을 뿌리치려고 더욱 크게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들도, 너도! 이렇게 서로 부딪히면서 알아가고, 그렇게 하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미래도 찾아오는 거잖아!」
날뛰며 달려드는 적의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알포스브이드라몬X와 엑자몬X가 4번째 팔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우리가 널 구하겠어!」
마지막으로 오메가몬X와 알파몬이, 5번째와 6번째 팔을 정리했다.
「구하겠....다고?!」
「그래! 우리의 모습을 보며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진 너에게, 다시 희망을 되찾아주겠어!」
6개의 팔을 모두 잘라냈으나, 거대한 벽이 나타나서 제스몬GX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벽의 정체는 지상에 모여있던 디아블로몬X들이 융합체였다.
「절망의 어둠이 네 눈을 가려버렸다면, 그 어둠을 걷어낼 만큼 밝은 빛으로 다시 네가 눈을 뜰 수 있게 해주겠어!」
그러나, 동료들을 굳게 믿고 있던 제스몬GX는 갑작스러운 벽 앞에서도 속도를 줄이지도, 멈추지도 않고 계속 나아갔다.
가라, 제스몬.
그렇게 말하며, 제스몬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듀크몬X와 간쿠몬이 디아블로몬X로 만들어진 벽을 단숨에 때려부쉈다.
......고마워, 다녀올게.
제스몬GX와 오그도몬X. 눈부신 빛에 휘감긴 성기사와 구름을 뚫고 우뚝 선 거구의 마신이 드디어 맞부딪혔다.
그 순간 제스몬GX는, 동료들에게 나눠줬던 아우스 제네릭스의 빛이 다시금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느꼈다.
다들....고마워.....!
제스몬GX의 날개가, 조금 전보다도 더 환하게 빛났다.
「우리도 서로 이해해는 거야, 루체몬.....」
그리고 날개는, 오그도몬X의 덩치를 능가하는 한 자루의 거대한 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눈부신 황금색으로 빛나는, 지금껏 그 누구도 보지 못 했던 새로운 궁극전인 <나이츠 인트루더>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제스몬GX는 그 검으로 오그도몬X의 이마를 향해 단숨에 내리찍었다.
「빛이라고? 희망이라고? 잘도 지껄여주는구나! 재미있군! 네놈의 정의와 나의 정의! 희망과 절망, 과연 어느 쪽이 패도(覇道)에 걸맞는 길인지 내 똑똑히 가르쳐주마!」
루체몬X가 소리쳤다. 그리고, 오그도몬X의 머리에 있던 검이 시커먼 아우라를 해방시키며 제스몬GX가 지닌 빛의 검을 막아섰다. 검과 검이 부딪혀 불꽃을 일으켰고, 두 디지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윽고 서로 코 앞까지 다가갔다.
「이 꽉 물고 있어!」
그리고, 두 사람은 빛에 삼켜졌다.
***
제스몬GX의 궁극전인이 오그도몬X를 베어버린 후, 다크 에리어와 이어져 있던 거대한 게이트는 소멸해버렸다. 떨어져 나갔던 하늘의 텍스쳐도 서서히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걸로 싸움이 끝났어. 푸른빛을 되찾아가는 하늘을 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 제스몬X는 그렇게 말했다.
최후의 일격으로 힘을 크게 소모해버린 탓인지, 제스몬은 GX의 힘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 맞섰던 오그도몬X의 육체는, 두동강이 나버릴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소멸해버렸다.
그 후, 몇 갈래의 빛이 게이트에 삼켜져서 다크 에리어로 전송되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 남은 건 1개의 디지몬 알 뿐이었다.
그 알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새하얀 쟈켓을 걸치고, 따각거리는 나막신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오고 있는 간쿠몬이었다.
「해냈구만.」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들어올린 디지몬 알을 제스몬X에게 건네주었다.
「.....사부.」
「이제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난 이제 널 제자에서 졸업시키기로 했으니까.」
뒤이어 "그럼 난 성기사에서 졸업해볼까?"라며 농담조로 말하는 간쿠몬이었지만, 제스몬X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애당초 제스몬X는, 간쿠몬의 후임으로써 길러진 거였으니까.
「어이, 너도 이그드라실한테서 지령이 내려왔지?」
제스몬X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금 전에 이그드라실이 로얄 나이츠 전원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의 내용은 뉴 디지털 월드와 구 디지털 월드를 결합시키겠다는 통지였다.
「또 세계의 용량이 부족해져서 프로젝트 아크를 일으키는 건 아니겠지?」
「그게 말이다, 그 문제는 알파몬 일행과 함께 다니던 인간이 어떻게든 케어해주겠다고 했다더군.」
「...그렇구나.」
케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인간들도 사부나 제스몬 본인과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디지몬들과 인연을 쌓아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이들이니까, 무슨 말인진 몰라도 믿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넌 앞으로 어쩔 셈이냐?」
「나? 어, 그러게....음....」
이번엔 비상 사태였으니 로얄 나이츠 전원이 함께 맞서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로얄 나이츠는 원래는 이렇게 모여서 일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이 믿는 정의에 따라, 단독행동을 하는 게 로얄 나이츠의 평소 모습이었다.
간쿠몬이 성기사를 그만두는 게 진짜든, 아니든, 그의 입에서 「제자에서 졸업」이라는 6글자가 나왔으니, 제스몬X도 이제 한 명의 어엿한 성기사로서 자립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여행이라도 해볼까 싶은데.」
「.....뭐야?」
「사부가 성기사를 그만뒀으니까, 나도 이제 후임을 찾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 말을 들은 간쿠몬이, 지금까지 지었던 웃음 중 가장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너 말이다....기껏 제자에서 졸업해놓고 한다는 게, 이전 스승인 나처럼 후임을 찾아 돌아다니는 거냐?」
「응. 그치만, 이번엔 사부를 보고 흉내내려는 게 아니야.」
여행을 떠나자. 그것은 제스몬 자신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스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갈 거면 이 녀석도 데리고 가라.」
제스몬X는 품에 안고 있는 디지몬 알을 보며, 자신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길러내는 것도 나 자신을 단련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이 녀석이 차세대 성기사가 될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자, 간쿠몬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걸 적극적으로 어필하려는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런 단련밖에 모르는 바보같으니라고. 정말이지, 그런 부분까지 날 닮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칭찬이라고 생각할게.」
「꽤 긴 여행이 될 거다.」
「괜찮아, 그런 건 이제 익숙하니까.」
「짜증나거나 괴로운 일도 무지막지하게 겪게 될 거다.」
「그럴 땐.....음, 노력해봐야지.」
「그리고 또.」
「아, 진짜! 괜찮다니까! 제자에서 졸업시키겠다면서!」
「.....뭐, 그것도 그렇군. 그럼, 힘차게 다녀오라고, 로얄 나이츠!」
간쿠몬이, 자신의 등을 힘껏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제스몬X는 간쿠몬을 뒤로 한 채, 디지몬 알을 안고 날아올랐다.
스승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날아보는 세계의 하늘이었다.
아까 두들겨 맞은 등에서 열이 달아올랐다.
마치 영혼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CRONICLE-X : THE LAST EPISODE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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