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일단 로드 투 세븐 캠페인 하면서 5장 전편을 민 거라서 호부 주는 그냥 리콜렉션 퀘스트 3개도 점검 1시간 전부터 밀었습니다.
제 계정으로는 턱도 없으나 슈퍼 리콜렉션 하나만 깨보고 싶어서 그나마 만만(?)했던 코르데를 골랐습니다. 이것도 온갖 난리부르스를 치면서 사무실 점심시간이 오후 1시부터인데 정확히 12시 59분에 퀘스트 입장했습니다. 직장 동료분들께 게미새인 거 들켜 버렸습니다. -_-
그리고 일하느라 정작 배틀은 점검 끝나고 5장 후편 캠페인으로 넘어갔는데 시작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별에서 온 삼장짱이 정말 열심히 일해 줬지만 보1로는 아무리 보구를 연사해도 코르데의 피가 개미만큼 깎였습니다. 어새신이라 3턴마다 보구가 날아오는데 대숙정방어도 뚫는 즉사에 고통의 비명을 질렀습니다.
당연히 전멸했고 령주 썼습니다.
령주 써서 전원부활시켰는데 또 전멸 직전이 되었습니다. 서포터로 데려온 보3 캐밥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다행히 상성 유리라 야금야금 피를 깎으며 어찌어찌 버텼으나
딱 한 턴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코르데 보구 차지가 다 찼습니다. 무적을 직전턴에 쓴 30초 전의 저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코르데가 보구를 썼습니다.
그런데 캐밥이 안 죽었습니다. 즉사가 안 터졌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캐밥 아브체 날리고 코르데와의 난투전을 끝마쳤습니다. 보상으로 받은 티포트는 올림포스 스토리 밀면서 베디 인연 올리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
고난이도 퀘스트라지만 퀘스트 하나에 대해 이렇게 길게 소감을 쓰는 이유는
뭔가 그냥 제 현실과 겹쳐서 얘기하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사실 최근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회사 단체 건강검진이었고 아무 생각없이 갑상선 MRI를 찍었는데 정밀검진을 하러 오래요. 하니까 갑상선 양쪽의 결절이 다 악성이래요. 갑상선을 도려내야겠답니다. 아직 나이로 계란 한 판도 못 채웠거늘.
죽는 병은 전혀 아닙니다. 회사 단체보험에 실비보험까지 가입해둔 덕에 돈 걱정도 크게는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중순부터 식욕이 없고 무기력한 게 계속 이어지다가 지난 달에는 출근 10분 전에 일어나서 겨우겨우 근무하다 퇴근하면 탈진할 정도였는데 전 이게 우울증 때문인 줄만 알았습니다. 몸의 문제도 있었던 거고 다행히 발견을 했으니 치료를 받으면 많이 나아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심란했습니다. 솔직히 암이라고 해도 아직 수술대에 오른 게 아니니 몸에 대해서는 전혀 실감이 안 나지만 마음은 심란하죠.
제 지난 과거사를 여기다가 다 말하면 그걸로 페그오 메인스토리 1장 분량이 나올 것 같아서 뭐 적당히 요약하자면, 20대의 3분의 2를 완전히 말아먹었습니다. 작년에 3수 끝에 겨우 취직했고 안정적인 신분과 수입을 기반으로 조금씩 망한 인생을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진작 받았어야 했던) 전문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우울, 불안, 무기력, 알코올 의존을 줄여나갔고, 실패와 비판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기에(어느 정도냐면 저는 여기나 다른 페그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는 댓글을 볼 용기가 안 나서 올린 글을 다시 못 봅니다...) '직장이 있는 히키코모리'인 현 상태를 넘어서 진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초5 때부터 꾸어왔던 소설가라는 꿈이었구요. 저는 취미로 제가 원하는 글을 쓰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진실을, 직업으로서의 작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10년 이상 장래희망이다 보니 제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버린 꿈을 놓아주니 이별의 슬픔도 느꼈고, 내 적성에 맞는 다른 진로를 전혀 모르고 이제부터 찾아야 하니까 막막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른 진로를 찾아보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는데 암이래요. 어? 이게 뭔데 어?
저는 지금까지 무언가 진지하게 노력하면 일이 안 풀리고 차라리 별 생각 없이 한 일이 잘 풀리는 일이 흔했는데 또 그렇다 싶더라구요. 답답한 마음에 상담쌤께 말씀드리니, 쌤이 "다르게 생각하면 이제 시작하는 시점에서 잘못되어 있던 기반(몸)을 바로잡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또 최악은 아니더라구요.
나름 최선의 덱을 짜서 갔는데 전멸했고,
령주 3획으로 한 번의 재도전 기회를 얻는 데 성공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자체가 고난이도인데 보구 확률 즉사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까지 있어 궁지에 몰리다가,
진짜 망했구나, 다 끝났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안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래서 마침내 코르데 피를 다 깎고 퀘스트 클리어에 성공하는
게임 퀘스트 하나에 제 인생 27년을 겹쳐보는
엄청난 문학적 비유를 가장한 뻘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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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D metal1님도 남은 한 해 건강 잘 챙기시고 건강검진은 정말 매년 꼬박꼬박 받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ㅠㅠ | 22.10.06 1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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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때 신나서 페그오 커뮤니티에 막 최합 짤 올렸던 거 저도 잊고 있었는데 기억하고 계셨군요ㅠㅠ 그 뒤로 직장인의 애환을 느끼며 나름대로 1년 넘게 열심히 재직 중입니다. 갑상선 결절이 목 많이 쓰는 직업이면 잘 온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가... 그간의 음주 때문이 더 큰가... 여튼 수술 날짜 아직 안 잡혀서 아직 출근은 하고 있습니당. 아무리 체감이 없어도 몸에 암 덩어리가 있는 게 유쾌하진 않아서 빨리 수술하고 싶네요. 저는 슈퍼 리콜에 도전할 시간 자체가 없어서 많은 트라이를 할 수가 없었는데, 케르베로스전은 입장은 해 봤었는데 1라 잡몹의 피통도 10배길래 손절하고 코르데 도전했었다는..ㅠㅠ 케르베로스는 그놈의 보봉이 문제인데 사실상 보봉 스킬을 안 거는 턴이 없고 팀원 대마력이라는 운빨에 기대야 해서 스토리&그냥 리콜 깰 때도 참 피곤했던 기억이 납니다. 캐밥 보구로 약화해제를 풀려고 해도 그 캐밥이 보구를 못쓰는... (먼산) 5장 후편 어제 시작해서 조금 겪어보니 난이도가 더 올라간 게 느껴져서 5장 후편은 슈퍼 리콜렉션은 도전이나 해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악명높은 전투가 넘모 마나... | 22.10.06 11: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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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서포터 중 하나도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 ㅠㅠㅠ 제 덱에서 서포터라 할 5성은 공명 미콩 빛코만 있습니다. 그리고 턴수 보시면 아시다시피 제 덱에 강한 대인 딜러가 없어 어차피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긴 했는데, 코르데 보구의 확률 즉사가 진짜 너무 큰 변수라서... 우리 서번트한테 달린 즉사는 쓰레기 옵션인데 적 서번트의 즉사는 참 잘만 터져요 -_- (령주 전원부활 전 코르데 보구를 캐밥이 맞았었는데 대숙정방어 직후 즉사에 뒷목을 잡았습니다.) 이것도 인생이고 세상입니다(먼산) | 22.10.06 11: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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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이 좀 특수해요. 제가 의사쌤께 초기냐 중기냐 여쭤보니 갑상선은 다른 부위와 달리 초기다, 말기다 하는 개념이 없다고... 항암치료 같은 것도 안 받는다고 합니다. 다행이죠. 왼쪽 결절은 좀 큰데다 딱 봐도 악성일 가능성이 높았는데, 오른쪽 결절은 2mm라는 아주 작은 크기라서 원래는 검사도 잘 안해본다고 합니다. 왼쪽이 악성이니 겸사겸사 검사했는데 이것마저 악성이었던 거죠..ㅠ 갑상선 전절제하면 이제 평생 약을 먹어야 해서(갑상선에서 사람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각종 호르몬이 나오죠) 좀 심란하지만, 임파선 전이라는 변수 없이 한방에 해결하는 게 맞다는 의사 쌤의 말씀에 동의를 했습니다. 수술은 저희 지역에서는 제일 유명한 병원에서 곧 상담을 받을 예정인데 빨리 수술받고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좋겠네요. 응원 감사합니다! | 22.10.06 11: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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