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힘으로는 더 이상의 치료는 힘들 것 같습니다. 환자분께서 원하신다면 연명치료는 가능이야 하겠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키 작은 할머니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올해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는 의연하게 힘든 치료과정을 버티셨지만 결국 이 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가족 분들은 숨을 참으며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만 할머니는 어쩐지 홀가분한 표정이시다.
“아니구먼요. 선생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다우. 여든이면 살만큼 살았고 딱히 여한도 없으니 그렇게 죄송하실 필요 없어요. 오히려 이런 아픈 늙은이 치료한다고 선생님이 마음 고생하셨지.”
표정만큼이나 홀가분한 말투로 할머니는 의사선생님의 사과에 괜찮다고 답하고는 잠시 고민에 빠지셨다. 의사 선생님이 다음에 하실 말씀이 뭔지 알고 있기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시는 것이다.
“병원에 남아 계시겠다면 남은 시간을 더 연장 가능하게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지금의 치료보다도 더 힘들고 부담스러울 확률이 높습니다. 의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차라리 집에서 가족 분들이랑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 병원에서 나가신다면 3개월......, 병원에 남아계신다면 5개월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계셨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이 말을 환자와 가족 분들에게 할 거라면서 미리 나를 불러 귀띔하셨다. 그리곤 자신이 이 말을 할 염치가 없다며 자신이 못나서 환자분을 치료 못한 거라고 털어놓으셨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최선을 다하셨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걸 옆에서 지켜봤다. 왜냐하면 환자분의 간병과 선생님의 치료를 도운 사람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께 선생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다면서 환자 분께서도 충분히 알아주실 거라고 그러니까 의사로써 책임을 다해달라고 응원을 해드렸다. 환자를 간호하고 의사를 도와 치료를 하는 나는 이 환자 분의 간호사다.
“이 늙은이 마음이야 여기서 계속 있는 것보다야 집에 가서 자식들이랑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애들이 하도 바빠서 짐이 될까봐 걱정이라우.”
할머니께서는 솔직한 감정을 얘기하셨다.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봐 걱정이 되시는 지 마지막에 말하고 나서는 근심 들린 큰 한숨을 내쉬셨다.
그렇지만 할머니께서는 지난 몇 개월간의 치료동안 고된 시간을 대부분 홀로 보내셨다. 가족 분들은 열심히 찾아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셨지만 가족들의 시간을 뺏는 게 싫다며 이 할미는 충분히 금방 나을 테니까 걱정 말라며 금방 다시 되돌려 보내시곤 혼자서 긴 치료를 견디신 것이다. 그런 할머니께서 마지막에서야 가족 분들의 품에 돌아가실 수 있는데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봐 그 대답을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간호사로써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면 제가 댁에 가서 모실게요!”
겁쟁이에 낯가리는 나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한 탓에 의사 선생님, 할머니는 물론이고 방금 전 까지 눈물 흘리며 슬퍼하시던 가족 분들까지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자신이 바보같이 크게 대답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그러니까 저는 환자분의 담당 간호사니까 마지막 까지 제가 간병해드리는 게 당연하니까, 그래서 걱정 없이 집에 돌아가실 수 있게......,”
부끄러움을 숨긴다고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당혹감 때문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고 더듬 더듬 거리고 말았다. 나는 더 부끄러워져서 나도 모르게 차트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가볍게 웃으시고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셨다.
“후카쨩은 아직 젊은 사람이니까 해야 할 일도 많고 찾는 환자분도 많을 텐데 그래도 괜찮나요? 이 늙은이 한 명 신경 쓰는 것보다 다른 환자분들을 돕는 게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될 거 같은데, 책임감에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할머니께 용기를 드리려 한 말인데 오히려 할머니께서는 나를 배려해주는 말씀을 하시며 사양하셨다. 그러나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할머니께서 치료를 그만두시고 댁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시더라도 전문적인 간호와 검사를 해줄 전문가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면 새로 사람을 쓰는 것 보다는 지금까지 할머니를 도와드린 내 쪽이 더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이번에는 간호사로써 전문가의 입장에서 대답할 필요를 느꼈다.
“댁에 돌아가셔서 지내시더라도 전문적으로 간호와 혈압 같은 몸 상태를 확인할 사람은 꼭 필요하거든요. 그렇다면 계속 할머니를 모셔온 제가 도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곁에서 도와드리면 가족 분들도 몸도 마음도 편하실 테니까요.”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지 아까와는 다르게 가족 분들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서로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차분하게 대답하자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으신 표정을 짓고는 잠시 생각을 하시다가 입을 여셨다.
“후카쨩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그러면 후카쨩, 누추하겠지만 우리 집에서 잘 부탁한다우.”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인지 날씨는 맑고 개운했다. 다행히 할머니 댁은 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충분히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였다. 나는 아침에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의 병수발을 도왔고 저녁 무렵이 되면 병원에 들려 할머니의 데이터를 전하고 의사 선생님께 이런 저런 보고를 하고 퇴근했다.
할머니의 상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급 호전되었다. 병원에서는 체력이 떨어지셔서 대소변도 내가 받아드리고 약으로 인한 변비 때문에 고생 하셨는데 집에 돌아오시니 스스로 화장실도 잘 가시고 변비도 사라지신 듯 했다. 이 이야기를 해드리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익숙한 곳, 마음이 안심되는 환경에 돌아가셔서 심리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답하셨다. 그리곤 그건 내가 옆에서 간호해드리는 덕도 있다면서 환자를 위해 그런 수고를 몸소 나서준 것에 대해 환자의 담당 의사로서 고맙다고 하셨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모시러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밤중 있었던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께서는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 이야기를 하시거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남편 분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곤 그 양반도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집에서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며 밖에서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안타까워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있어서 자기는 복 받은 할망구라며 고마워 하셨다.
식사에 대해서는 병원 음식을 그만 먹게 되자 크게 기뻐하셨다. 나는 고염분 음식은 안 된다고 주의 드렸지만 그래도 몇 개월 만에 다시 찾은 먹는 즐거움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하루는 만두를 드시곤 오늘은 만두를 먹었다며 만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영감이랑 내가 애를 키울 때 인데 큰 아들 놈이 나이가 차서 동생들 돌볼 만하니까 영감이 오랜 만에 둘이서 시간을 보내자면서 저녁에 만두를 먹곤 영화를 보러갔다우. 그 때 영화에 나온 여배우가 지금 후카쨩마냥 정말 미인었는데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후카쨩이 더 이쁘구만, 여하튼 그 영감쟁이가 영화를 보고나서는 나보고 아까 만두 먹을 때는 우리 마누라가 이뻐 보였는데 영화보고 다시 보니까 이제 보니 만두를 닮았구만 이러는 게 아니우? 그래서 등짝을 후려갈겨 줬지.”
할머니께서는 병원에 계신 시절부터 나보고 이쁘고 참하다면서 칭찬해주셨다. 처음에는 기뻤지만 계속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낯간지러워 질 때도 많았다. 그래서 너무 그렇게 비행기 띠워주신다고 대답했던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자기 집은 자기 자식들부터 손주까지 전부 고추밭이라서 딸이나 나같은 손녀가 꼭 갖고 싶었다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자기 눈에 더 이쁘게 보이는 것 같다면서. 그 후로 할머니와 나는 더 가까워져서 할머니께서는 나를 후카쨩이라고 불러주셨다.
할머니의 이런 칭찬은 댁에 오시더니 더 심해지셔서 TV를 보다가 아이돌이나 여배우가 나오면 쟤네 보다 후카쨩이 더 이쁘다면서 내가 감독이나 프로듀서라면 꼭 후카쨩을 여주인공으로 쓰겠다라는 말까지 하셨다. 나는 농담이 심하시다며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할머니께서는 진심이라면서 나보고
“후카쨩은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라며 조금은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그렇게 첫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곧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시간이 다가오지만 할머니께서는 가끔가다가 숨이 차시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들어하는 게 없으셨다. 할머니께서는 가족 식사에 나를 초대하셔서 가족 분들을 소개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취미 생활도 다시 시작하셨다. 노래를 좋아하시는 할머니께서는 건강하실 때는 친지 분들이랑 자주 노래를 하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찌되었든 환자시니까 무리해서 노래를 하시진 못했지만 대신 이런 저런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나랑 함께 작은 목소리로 음악 프로그램을 따라 부르셨다.
“후카 쨩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목소리가 참 고운 거 같으이. 한 곡만 불러줘요.”
나는 갑작스러운 부탁에 조금 당황했지만 병원과 다르게 할머니가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흥이 나서 가볍게 텔레비전에 나오는 엔카를 한 두 소절 따라 불러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갑자기 그런 표정을 지어서 나는 처음에는 내 노래가 충격적이라 편찮아지신 게 아닐까 걱정되서 괜찮으시냐고 여쭤봤다.
“그게 아니라, 후카쨩은 정말 스스로를 모르는구만 잘 불러서 그래요. 이 늙은이가 요근래 들은 노래 중에 제일 곱네요. 진짜 후카쨩 요즘 나오는 저 아이도루인가 했으면 얼굴도 곱고 노래도 잘 부르고 참 잘 됬을텐데 이렇게 이 늙은이 수발이나 돕고 있으니 세상 참 알 수 없구만.”
칭찬이라기는 너무 무겁기도 하고 간호사로써 자부심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조금은 투명스럽게 대답했다. 자기도 어렸을 때야 여배우나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이제 나는 21살이나 되었고 아이돌은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자기 같은 사람은 너무 흔하다고 나는 그렇게 청초하지도 않고 성격도 적극적이지 못하다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후카쨩이 옆에 간호사인 건 감사한다우. 하지만 후카쨩 같이 사람은 간호사로 한 사람을 돕는 것도 좋지만 아이돌이 돼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하는말이우. 좀 더 자기를 아끼고 잘 알아줬으면 좋겠수.”
그리고 짤막하게 말을 더하셨다.
“여든 넘은 사람 앞에서야 21살이면 아직 뭐든 해도 되는 나이라우.”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예상보다 1개월을 더 지나 할머니는 4개월째인 겨울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는 가족 분들을 모두 모으곤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
“함께 해줘서 다들 고마워......,”
장례를 치르며 가족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데 할머니께서는 일주일 전에 가족 분들마다 한 마디씩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조언이나 개인적인 고마움 같은 것들을 솔직하게 얘기하셨다고 한다.
사실 할머니께서도 내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서 나는 장례식이 끝나고 병원에 돌아가서도 계속 고민을 했다.
“후카 쨩, 예전에 같이 노래 부르다가 했던 얘기 있지요? 후카 쨩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우. 선생님께서 내가 더 이상 힘들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두려웠어요. 가족들이 옆에 있으니 괜찮은 척이야 했지만 내가 집에 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머리로야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 때 후카 쨩이 자기가 도울 테니까 괜찮다고 했을 때 정말 기쁘고 용기가 났어요. 그 후로 후카쨩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면서 외면도 참하지만 마음은 더 강하고 남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인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간호사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후카 쨩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야해요. 이제는 정말 내가 얼마 안 남아서 하는 얘기니까 진심이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요. 한 귀로 듣고 흘려도 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는 후카 쨩 마음이겠지만......,”
사실 나도 어려서는 아이돌이나 여배우가 되고 싶었다. 모두의 앞에서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몸도 둔하고 특히 남들에게 고고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내가 돕고 의지할 존재가 될 수 있는 간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지금 21살이나 먹고 이렇게 고민을 해도 되는 걸까? 그 때 할머니 담당이었던 선생님께서 오셨다. 그리곤 나에게 고민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 지난 번에 돌아가신 환자 분께서 저한테 제가 다른 사람한테 의지가 되는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곤 저보고 더 많은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제가 정말 그런 존재일까 조금은 의심되어서 말이죠.”
“실은 저도 지난 번에 토요카와 씨 덕에 용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그 환자 분께 이제 시한부라는 사실을 말해야 했을 때 고민했던 적이 있었죠? 그 때 후카씨가 응원해주셔서 저는 환자 분께 제 의무를 다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토요카와씨라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말씀하시곤 선생님께서는 낯간지러우신지 코를 긁으셨다.
결심이 섰다. 그 해가 지나고 나는 22살이 되었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본다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다. 모두는 내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 역시 나에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봄이 되어 이직을 알아보던 도중 길거리에서 광고를 보게 되었다.
‘765프로덕션 새로운 아이돌을 모집 중입니다. 모두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보여줄 만남을 기다립니다.’
과제하다가 간호사가 할머니를 간호하는 잡지 르포를 읽었는데 그거 보고 감명받아서 후카라면 이렇게 간호사에서 아이돌이 되지 않았을까 해서 써봤습니다.
참고로 모티브가 된 이야기는 중년의 간호사 분께서 시한부가 된 할머니를 위해 집에 가서 돌봐드린 실화였는데 물론 현실이니까 돌아가시고 나서 간호사는 이직같은 건 하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간호사 나이가 50대였지만 말이죠.